065. 달라지는 것들 (2)
제인은 독보적이다.
최고라는 것보단 대체 불가라는 의미가 컸다.
그리 독특하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평범하지도 않은 자신만의 보이스를 갖고 있었고.
어떤 노래든 소화할 넓은 음역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이 원하는 음악 세계가 명확했다.
중학교 3학년의 나이부터 서른이 넘어서까지, 그녀는 항상 독보적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먼 미래에서도.
“제인이라니.”
살짝 얼빠진 목소리가 깔렸다.
“너 공모전 낼 때 내가 TKM 들어가면 설마 제인하고도 작업하는 거 아니냐고, 그랬던 거 기억나?”
“그랬던 것 같기도?”
“놀랍다 진짜. 제인이라니.”
캔맥주를 들이켜던 학준이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 뚝 멈추며 물었다.
“근데, 왜 샌프란시스코야?”
“제인이 지금 거기 머물고 있대.”
“에, 그게 전부?”
“아니지.”
가볍게 고갤 저으며 서재원 팀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총괄을 이정명 프로듀서가 맡았어.”
“이정명이면···그 이정명?!”
학준이 형이 목소리를 홱 높였다.
나는 웃으며 끄덕였다.
전자음악 즉, 미디라는 게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미국에서 배운 것들을 가요에 접목했던, 한국 대중 가요의 트렌디함을 이끌었던 뮤지션이자 프로듀서.
이정명. 그 사람의 스튜디오가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다.
“허, 음악 막 시작했을 때 귀에 닳도록 들었던 이름인데···. 교수님들이 알면 까무러치시겠다. 특히 서 교수님 기억나? 그 빠글 머리에 항상 줄무늬 블라우스 입으시던 여교수님. 그분이 이정명 작곡가 엄청 좋아하셨잖아.”
“그랬나···?”
학준이 형의 표정이 답답하다는 듯 변했다.
“얘 요즘 기억력 왜 이래.”
근데 내가 더 답답하다. 단순히 몇 년 전 기억이 아니거든. 거기다 10을 더해야 한다고.
“그나저나, 진짜 많은 게 달라졌네.”
“형도.”
내가 새삼 달라진 형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카메라 마사지의 영향인가. 잘생겨졌어.
“흐흐, 너 덕분이다 임마.”
“덕분인데 임마는 왜 붙이는 거야.”
“좋으니까 임마.”
“어? 김 가수 요즘 영원한 작곡가님에 대한 예우가 없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내 원룸에 앉아 떠들어댔다.
이야기는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럼 너는 수록곡으로 한 곡?”
“그치.”
“작업해 둔 게 있는 거야?”
“전혀. 아마 가서 하게 될 것 같아. 자세한 컨셉이나 이런 것들은 현지에서 전담팀에게 들으라네.”
“오, 내가 다 기대된다. 제인이 네 곡을 부른다니.”
반짝이는 형의 눈을 보며 나도 살짝 울렁댔다.
한 곡이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제인의 네 번째 앨범.
그녀에게 있어 이번 앨범은 굉장히 중요하단 걸 알고 있다.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앨범의 절반 이상이 그녀의 자작곡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나머지는 이정명 작곡가의 곡으로 해서 발매가 되었었다.
그런데 내가 추가된 거다.
미래가 또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쯤 출발하는데?”
캔을 우그러트리며 묻는 학준이 형.
나도 자작하게 남은 캔을 털어 넣으며 답했다.
“최대한 빨리.”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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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리해야 하는 업무들부터 빠르게 해치웠다.
“기영이 오면 여러 가지 가르쳐 주세요.”
“제가요? 음원 차트 1위까지 찍은 우승자를?”
갸웃거리는 윤태영에게 끄덕였다.
“저도 여러 번 찍어봤는데, 아직도 형한테 배우잖아요.”
“내가 가르친 건 기타밖에 없는 것 같은데···.”
“알게 모르게 많았어요.”
웃으며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 해봤자, 작은 마스터 건반과 컴퓨터에 차곡차곡 쌓아뒀던 데이터 조가리 들이 전부였다.
가면 장비가 모두 있을 거라고 했지만, 호텔에도 있진 않을 테니까.
‘이 기회에 정말 호텔에서 곡을 쓰면 잘 써지는지 시험해 볼 수 있겠네.’
그렇게 가방에 짐을 넣고, 작업실을 나왔다.
여직원이 날 보더니 갸웃거린다.
“가서 한 달 이상 머무실 거 아녜요?”
“아마도요?”
“근데 짐이 그것뿐이에요?”
짐을 돌아봤다.
백 팩. 그리고 중간크기 정도의 캐리어.
그것뿐이 맞다.
“옷 같은 건 현지에서 사 입으려고요.”
여직원은 애써 이해하려는 모습이었다.
“그게 나을 수도 있겠네요. 아참.”
그러다 불쑥 물어온다.
“정아씨한테 얘기하셨어요?”
“···?”
“안 하셨어요?”
“해야 하나요?”
“아뇨 꼭 해야 한다기보단···.”
왜 그래 찝찝하게.
“안 하면 삐질 텐데.”
작게 중얼거린다.
내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왔다.
“정아 바빠요. 아마 저 돌아올 때까지 바쁠걸요?”
이민 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말하자 여직원이 날 쳐다본다.
굉장히, 뭐랄까. 묘한 얼굴이었다.
“뭐, 피디님 마음이니까. 어쨌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오실 때 선물은 잊지 않으시겠죠?!”
“푸흐, 꼭 잊을게요.”
캐리어를 끌며 밖으로 나섰다.
뒤 따라 나온 윤태영과 인사를 마치고 택시를 잡아탔다.
뒷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는데 이제야 실감이 난다. 샌프란시스코를 간다는 것도. 그게 제인과 작업하기 위함이란 것도.
한강을 우측에 두고, 쉴 새 없이 달렸다.
햇빛이 강줄기를 따라 비친다. 물 위에서 바스러지는 빛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런 미래를 상상했던 것 같다고. 아주 예전엔.
하지만 과거로 돌아와선 그러지 않았지.
10년의 시간 동안 내가 배운 것이 있었다.
너무 먼 미래를 구체화하면, 그 괴리감에 지친다는 것.
그래서 현재와 눈앞의 가까운 미래에만 집중해왔다.
그렇게 음악을 하는 것 자체를 즐기며 지난 1년을 보낸 것 같다.
그리고 어느새,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부푸는 사람들과 작업을 하게 되었다.
미뤄뒀던, 구체화 시키지 않았던 생각들이 밀려든다. 그것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창밖 풍경처럼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네, 지금 공항 도착했어요. 아 괜찮아요. 비행기 시간 넉넉해요. 네, 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너무 당연하게도 몸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오가는데, 아버지가 전화를 바꿔달라 하신단다.
“아버지가요?”
-어, 나다.
“몸조심하라는 얘기면 엄마가 이미···.”
-니 사인 있지? 그거 하나 이쁘게 써서 좀 보내봐.
“···네?”
-동네 사람들이 니 사인 좀 받아달라 하는데 이런 일로 바쁜 널 오라 가라 할 순 없잖냐. 내가 연습해서···응? 뭔 말인지 알지?
게이트 앞에 서서 한참을 웃었다.
이렇게까지 얘기하시는데 사인이 없다 하기도 참 뭐해서 대충 얼버무렸다.
전화를 끊고서, 수속까지 모두 마친 후, 커피 한 잔 사서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았다. 종이와 펜을 꺼내 사인이라도 만들어 볼까 싶다가, 문득 여직원의 얘기가 떠올라 핸드폰을 집었다.
통화 버튼을 누른지 얼마 되지 않아, 최정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디님!
“촬영 중이야?”
-네? 촬영 중이면 못 받죠.
그치. 내가 정신을 놨네.
“아 그렇겠네. 그럼 뭐 하고 있어?”
-메이크업 받는 중이에요. 이따 저녁에 음악 방송 촬영이 있어서요. 피디님은요? 작업실은 아니신 거 같은데?
“어, 나 공항.”
-네? 공항은 왜요?
“출장 가게 됐거든.”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니지.
“어, 갑자기.”
어쩐지 입이 멋대로 논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최정아가 잠시 조용해졌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화사한 목소리로.
-그렇게도 할 수 있구나···.
“응?”
-저 외국에서 녹음하는 거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혹시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보셨어요?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최정아는 한참 동안 영화 속 명장면을 읊어댔다. 이쯤 되면 외국에서 녹음하는 게 적어도 음악의 퀄리티 때문은 아니지 싶다.
“이제 비행기 탄다.”
-저도 메이크업 끝났어요!
한껏 들뜬 목소리다. 한 시간에 걸친 메이크업이 끝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저 피디님.
“응?”
-저도 나중에 그렇게 할게요.
“해외에서?”
-네. 전 더 멋진 곳···유럽, 유럽에서 불러드릴게요.
“그래, 여권 꼬박꼬박 갱신해 놓을게.”
소리 내어 웃는 최정아와 전화를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벅차는 기분을 팔짱 안으로 끌어안고, 머리는 목 베개에 뉘었다.
그렇게 10시간의 비행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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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디님이시죠?”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웃으며 다가온다. 얇은 티에 자켓. 눈이 펑펑 내리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옷차림이었다.
“네, 맞습니다.”
“딱 보고 알아봤어요. 제가 이번에 오디셔닝 엄청 재밌게 봤거든요.”
남자는 유쾌하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름은 김지환. 직책은 제인 전담팀의 실장이었다.
나는 그의 차로 이동했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오디셔닝 얘기를 하다가 시내로 접어들자 이번엔 무슨 현지 가이드인 양 샌프란시스코에 관해 설명도 해준다.
“바트라는 전철이 있는데요. 샌프란시스코엔 이거 하나예요. 저기 포웰역 인근이 가장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데···.”
알아둬서 나쁠 건 없는 이야기들이기에 경청했다. 리액션도 해가면서.
차창 밖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커다란 도로에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들.
그리고 그 아래로 보이는 노을 빠진 바다.
“계시는 동안 여기서 머무실 거예요.”
녹색 외벽이 유난히 눈에 띄는 호텔이었다.
나의 체크인까지 도와준 그는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해가 졌네.’
창밖이 어두컴컴하다.
짐을 풀고서 먼저 씻었다. 그리고 노트북과 마스터 키보드만 꺼내 탁자 앞에 앉았다.
스케치라도 끄적여볼까 해서 세팅을 했는데···.
‘막막하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썼겠지. 하지만 멜로디를 듣고 나서부턴 곡에 접근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부를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하달까.
한동안 빈 프로젝트와 야경이랄 게 없는 창밖만 번갈아 보았다.
“만나 봐야 쓸 수 있으려나···.”
내심 멜로디가 딱 들려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이내 흐트러뜨렸다. 의존증이 도지는 건 사양이니.
한참의 고민 끝에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풀썩 쓰러졌다.
여전히 프로젝트는 텅 비어있지만, 그래도 한 가지 가닥은 잡은 것 같았다.
어떤 느낌의 곡을 제인에게 줄 것인가.
그것에 대한 아이디어 하나가 머릿속에서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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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부자 동네죠.”
적색 철골이 낭자한 금문교를 건넌다.
차량은 다리를 건너 비스듬한 지형을 가진 동네로 접어들었다.
모노 톤의 예쁜 집들이 지형에 따라 한눈에 보였다. 얼핏 감천 문화 마을이 떠올랐지만 느낌은 많이 달랐다.
전용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며 구불진 길을 오른다.
마침내 중턱에 있는 건물 앞에 멈춰섰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자주 나오는 해변 앞 저택 느낌이 물씬 나는 건물.
문에 라는 영문이 반짝였다.
“아마 다들 와 계실 거예요.”
김 실장이 문을 열었다. 곧바로 커다란 홀이 시선에 꽉 찬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면면이 다양하다. 한국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인종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김 실장님 오셨어요?”
한 여자가 김 실장과 인사를 나누더니 내 쪽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전담팀 팀원 중 한 명이라고.
두리번거리며 묻는 김 실장.
“이 피디님은?”
“회의실에요. 연아씨랑 같이 있어요.”
이 피디님은 이정명 프로듀서일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연아는 제인의 본명이었고.
마른 입술을 적시며 김 실장을 따랐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적갈색 문.
들어가자 커다란 원목 테이블 하나가 보인다.
그리고 그 순간.
“이거 이질감이 크겠는데···.”
걸걸한 음성이 회의실에 울렸다.
이어서 얇고 나긋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도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고 싶어요. 선생님도 그러셨잖아요. 언젠가는 필요하다고······어?”
그들이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는 사이, 나는 내 표정을 점검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들을 향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인사할 수 있었고.
다행이지.
너무 오랜만에 들리는 거라, 심장이 터질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