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64화 (64/221)

064. 달라지는 것들 (1)

비행기에 올라탄 기분이다.

소리 지르는 사람 하나 없어도 귀가 먹먹하네. 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다.

카메라가 빨간빛을 내며 돌아가고.

천장에 매달려있던 수많은 조명들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등대를 닮은 조명이 관객석을 훑었다.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바로 옆에서 북을 두드리는 듯한 고양감.

서기영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 옆으로 MC씨가 따라붙는다. 이전 참가자들에게 그랬듯, 소감을 부탁한다.

이에 담담하게 소감을 말하는 서기영.

MC의 시선이 이번엔 우리를 향했다.

-자, 심사위원분들의 소감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곽승태 프로듀서님.

자연스레 화면에 곽승태가 잡혔다. 분명히 이 상황을 예상했을 텐데. 그런데도 표정관리가 꽤 힘들어 보인다.

“우선 축하한단 말을 해주고 싶고. 음···앞으로 가진 개성을 발전시켜서 더 대단한 뮤지션이 될 수 있길 응원할게요.”

곤욕이긴 하겠다. 8화 분량 동안 대중성이 없단 소리를 해대다가 이제 와 태세를 바꾸려니. 자신도 어색하고 민망하겠지.

다음은 박동호.

“정말 전 시즌 통틀어 최고의 역전 드라마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요. 탈락 위기에서 극적으로 생방송에 진출하고, 생방송에서 자작곡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죠. 사람들은 이런 스토리에 끌리기도 하거든요.”

박동호가 마이크를 내려놓자, 송지현이 말했다.

“기영 군이 정말 대단한 게, 각종 음원차트에서 TOP10에 진입했던 곡만 벌써 두 개예요. 근데 이걸 생각하면 누가 떠오르지 않나요?”

그녀가 눈이 휘어지도록 웃으며 고갤 돌렸다. 내 쪽으로.

“오늘 특별 심사위원으로 ‘한 번 더’ 나와주신 기로 프로듀서님. 요즘 작곡천재다, 방송천재다 아주 천재로 핫하신 이분이 떠오르더라고요.”

한 번 더를 강조하자 사람들이 웃는다. 이게 무슨 대단한 유행어라도 된 것 같네.

“멘토와 멘티. 스승과 제자 관계로 뭔가 딱 어울리지 않나요?”

그녀의 말에 서기영이 머리가 무릎에 닿을 기세로 허릴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 말씀이 결승 진출했을 때 보다 더 기쁘네요.”

이제 마지막.

내 차례였다. 마이크를 들고서 무슨 말을 할지 잠시 고민했다.

응원도 응원이지만···.

“기영씨가 자주 하는 말 있죠?”

“···?”

“후회 없도록 해보겠다는 거.”

나는 웃으며 물었다.

“어떤가요? 후회 없을 것 같나요?”

고민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대답은 신경계 반응인 양 곧바로 튀어나왔다.

“넵!”

순간 버튼이 눌러진 것 마냥 어떤 감상이 튀어 올랐다.

난 지금도 이 선택이 맞는 걸까, 이 멜로디가 최선일까. 혹시 또 후회하게 되진 않을까. 계속 고민하는데.

저 자신감이 부럽다. 그래서 역시 탐나고. 방송이 아니었다면 여기서 당장 캐스팅을 외쳤을 거다.

“그거면 된 것 같네요.”

내가 마이크를 내려놓자, MC가 큐카드를 높게 들어 올렸다.

-자, 그러면 서기영씨의 세 번째 자작곡을 지금 바로, 만나보겠습니다!

환호가 터져 나왔다.

#

윤 피디는 연신 웃음을 흘리며 ‘좋다’를 여러 버전으로 읊조리고 있었다.

좋네, 좋아. 좋군.

그러면서도 스태프들에게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노래 시작되면 기로 프로듀서 표정 놓치지 말라고 해. 사인 주면 바로바로 틀고.”

그의 옆에 있는 서 작가도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송지현이 장기로와 서기영을 이어주는 멘트를 쳐준 덕분이었다.

백날 편집으로 뉘앙스를 풍겨도 저렇게 해주는 한마디만 못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본이 아닌 말이라면 자연스럽기까지 하지.

그때였다. 막내 작가가 묘한 표정으로 다가와 보고했다.

“중간 집계 결과 나왔습니다.”

그의 말에 윤 피디와 서 작가 모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대답을 독촉하는 얼굴에 막내 작가가 말했다.

“지금 이현재가 간발의 차로 앞서고 있습니다.”

“간발의 차?”

“네. 점수로 따지면···30점도 차이 안 납니다.”

“그래?”

윤 피디가 팔짱을 끼며 흥미진진한 눈으로 무대를 보았다.

서기영이 자작곡들로 급격한 인기 상승곡선을 맞이하고 있지만.

이현재는 1화부터 쌓아온 팬덤이 엄청나다. 지난 생방송 때까지만 해도 그 차이가 꽤 컸다. 그래서 좁히기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윤 피디였다.

설마 정말로 대역전이 일어날까?

사실 이제와 순위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이미 출연자들에겐 의미 없을지도 몰랐다.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수혜자가 결정된 거나 진배없으니까.

서 작가가 패드에 올라오는 반응들을 확인하며 말했다.

“서기영 결승 곡에 대한 기대가 엄청난데요? 오디셔닝 최초로 음원 1위 찍는 거 아니냐고 사람들 난리 났어요.”

“음원 1위라···.”

뒤에서 대기하던 막내 작가가 어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입니까?”

“아, 자긴 아직 못 들어 봤지?”

이미 음원은 자정에 출격할 수 있도록 마스터링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윤 피디와 서 작가는 그 곡을 미리 들었다.

막내 작가의 끄덕임에 서 작가가 입매를 끌어올렸다. 윤 피디와 같은, 기대감에 찬 얼굴이었다.

“생방송 1등은 몰라도···음원 1등은 가능할지도?”

#

모두가 숨죽인 채 무대를 지켜봤다.

오늘은 어떤 곡을 들고 왔을지 기대 가득한 눈빛.

드러머의 신호에 맞춰 기타리스트가 리프를 연주한다.

두 마디쯤 지나서, 그 라인을 베이스가 함께 따라가기 시작했다.

유니즌 (Unison).

까랑한 고음과 묵직한 저음이 시티 팝을 연상케 하는 라인을 그렸다.

그리고 스네어만 잘게 쪼개던 드럼이 사운드의 물꼬를 튼다.

하나씩 추가되는 악기들이 안달 나게 하면서도 고양 감을 높인다.

그 정점의 순간에 악기들의 현란한 연주가 단순해지며 서기영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이미 들었던 자작곡.

가장 처음에 들었던, 데모 속 곡이 완전히 바뀌었다.

피아노가 빠지고, 템포가 바뀌었으며, 기타 리프가 추가되었으며. 보다 팝적인 느낌이 짙어졌다.

결승 곡에 맞게.

서기영은 내가 언급했던 것들을 모두 소화해냈다. 내가 기대한 것의 플러스알파로.

저릿하게 소름이 돋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서기영은 천재다.

#

서기영, 박서아, 이현재가 무대 위에 나란히 올랐다.

다들 굳은 표정이다. 박서아는 톡 건들면 울겠는데? 이현재도 바짝 긴장한 얼굴이고.

서기영만 원래 저 표정이라 이질감이 없다.

나도 살짝 긴장된다. 궁금하기도 하고.

서기영의 결승 무대는 나에겐 누군가에게 멜로디가 들릴 때와 비슷한 충격이었다.

이게 다른 사람들에겐 어떻게 들렸을까?

실력이 어느 궤도에 오른 작곡가들도 어김없이 하게 되는 고민.

‘내 감각이 맞을까?’

어쩐지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머리에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사이, 네이비색 정장을 차려입은 MC가 무대 위로 올라와 사인을 기다린다.

그의 손엔 큐카드와 봉투 하나가 끼여져 있다. 저기에 오늘의 결말이 적혀져 있겠지.

-자, 드디어 투표가 마감되었습니다! TOP3의 대단했던 무대. 모두 박수 한 번씩 주시죠.

우레와 같은 함성. 그리고 박수소리가 현장을 뒤덮었다.

-심사위원 점수와 시청자 문자 투표를 합산해서 총점이 높은 단 한 사람이 오디셔닝 시즌8, 우승의 영예를 거머쥐게 됩니다!

MC가 큐카드 사이에 끼워진 봉투를 열었다.

-오디셔닝 시즌8! 최종 우승자는!

켤 수 있는 조명을 전부 틀어 놓은 것 같다. 사방이 휘황찬란하게 번쩍인다. 무대 앞쪽에선 축포를 쏘아 올릴 에어샷들이 천장을 바라보고 대기 중이었다.

환호가 커지고.

귀가 먹먹해진다.

MC가 우렁찬 목소리로 호명했다. 동시에 꽃가루를 터트리는 에어샷.

그 많은 조명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어두워진 사위 너머로 환하게 빛나는 서기영이 보였다.

이 순간 주인공이 된 서기영은.

“······.”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환호성이 잠잠해지고 MC가 마이크를 그에게 건네자, 관객들 중 누군가가 제법 큰소리로 외쳤다.

“왜 왘 안 해줘요!”

그 말에 웃음바다가 번지기 시작한다.

서기영은 수상소감 끝에 짧고 굵은 자신의 유행어를 외치며 무대를 내려갔다.

시즌 전체를 통틀어도 이런 마무리는 없었다.

#

“피디님.”

흥분과 환호가 꽃가루와 함께 가라앉은 무대를 지나 밖으로 나가려는데, 서기영이 날 불렀다. 꽃을 한 아름 안고서.

시야가 가리는지 뒤뚱뒤뚱 다가온다. 그 뒤로 중년 남자가 보인다. 서기영의 아버지이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가시는 거예요?”

“어. 아버지셔?”

“넵.”

나는 꾸벅 인사했다. 고개를 드는데 숨을 헙 들이켰다. 서기영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아버지가 순식간에 내 앞으로 와 손을 덥썩 잡았다.

“고맙습니다.”

순간 미소가 번졌다. 부자가 똑같다. 이렇게 목소리에선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데, 표정은 일정해.

“아닙니다. 다 기영이가 잘 해서 이렇게 된 거죠.”

“저 방송 다 챙겨봤습니다. 다 피디님 덕입니다.”

아들 입장에선 서운할 만도 하건만, 서기영은 몹시 긍정하는 끄덕임을 보여줬다.

“맞아요. 피디님 덕.”

그렇게 한참을 서기영 아버지 손에 붙들려 있었다.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조만간 여수에 다시 내려가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다 문득 서기영을 다시 봤을 때, 녀석이 안절부절 못 해한다는 걸 눈치챘다.

거의 항상 무표정이니, 이럴 때 더 돋보일 수밖에.

짐작 가는 게 있어 미소를 그렸다.

“어이쿠, 피디님 바쁘신데 보내드려야지.”

서기영 아버지가 손을 놓고 목인사를 한다. 나도 허리를 숙이고 서기영을 돌아봤다.

그가 인사를 해왔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끈덕진 시선에 대고.

뭔가를 갈구하는 목소리에 대고.

내가 말했다.

“근데 언제 올 거야?”

“···네?”

“오고 싶다며. 언제 올 거냐고.”

일시 정지 버튼이 눌렸나.

뚝 멈춘 서기영의 안면근육이 점차 버라이어티해진다.

우승했을 때도 저런 표정은 아니었다.

“그, 그럼···저···!”

“무려 우승자신데, 안 받아줄 리가.”

“피디님···!”

영문 모를 표정이던 서기영 아버지도 뭔가를 눈치챈 듯, 많은 감정들이 담긴 눈빛을 냈다. 나는 한 번 더 따뜻한 손에 붙들려 있어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인사를 반복적으로 나누고, 밴으로 돌아왔다. 시트에 몸을 축 늘어트린다.

“방송 촬영도 곤욕이야.”

반면 입꼬리는 더욱 올라간다.

눈을 감고 그 뿌듯함을 음미했다.

오로지 데모곡에서 느낀 기묘한 감각에서 시작했다. 탐이 났고, 묘한 동질감 같은 것도 느꼈다. 그래서 움직였다. 그 수완을 오늘 걷었다.

준수한 뮤지션으로서의 능력. 그리고 그걸 훌쩍 뛰어넘는 프로듀서의 재능을 가진 서기영.

‘곧 외부의 도움 없이도, 정규 앨범을 내는 게 가능해지겠어.’

머리가 돌고 돌아, 곡 작업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 돌아왔다.

“곡 작업···.”

서릿발 어린 차 창문을 보며 오전의 통화내용을 회상했다.

‘제인···이요?’

16살에 데뷔해 줄줄이 히트곡을 내며 TKM 간판스타가 된···.

내가 가진 미래의 기억 마지막까지도, 최정상이었던.

국내 여성 뮤지션 중엔 견줄 사람이 없는 독보적인 아이덴티티의 뮤지션.

얼떨떨한 내 목소리에 나지막하게 웃던 서재원 팀장은 자세한 얘긴 TKM으로 와서 하자며 대략적인 일정만 공유했다.

‘본격적인 작업은 내달 말쯤이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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