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63화 (63/221)

063. 대중성을 깨부수는 개성

“맞는 것 같은데···.”

편의점 알바생의 가늘어진 눈이 날 향했다.

“······.”

애써 무시하며 봉지에 과자와 맥주를 담기 시작했다.

괘종시계 시계추마냥 기웃거리던 그녀가 확신을 가진 건, 맥주를 집었을 때였다.

“오디셔닝에 나오신 기로 프로듀서님 맞죠?!”

훅 들어오는 외침에 깜짝 놀라 그대로 맥주를 떨어뜨릴 뻔했다. 시치미 떼기엔 늦은 것 같지···.

“방금 친구들이랑 오늘 오디셔닝 꼭 봐야 한다고 톡 하는 중이었거든요. 근데 마침 프로듀서님이 짠하고 나타나셨어요. 깜짝 놀랐어요.”

“아하하.”

나도 깜짝 놀라는 중이다. 내 웃음소리가 이렇게 어색할 수 있다는 것에.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신이나 콧노래까지 부르며 바코드를 찍던 알바생이 덧붙인다.

“지난주에 나오신 거 진짜 재밌게 봤어요. 마지막에 반전으로 똭 슈퍼패스 쓰시고! 그래서 오늘 거 완전 기대 중이에요.”

“그 감사하긴 한데···계산 좀.”

알바생 손에 들린 내 카드를 보며 말했다. 그제야 알바생이 ‘어머머’ 소릴 내며 서둘러 카드를 긁는다.

“헤, 연예인이랑 대화해본 게 처음이라서.”

연예인이라니.

멍한 눈빛을 보냈지만 알바생은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눈치다.

하긴, 체육인이 방송에 나와도 연예인이라고 하는 마당에···.

초연한 얼굴로 편의점을 나섰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난주 방송으로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이제는 이전처럼 긴가민가한 얼굴로 ‘아, 저! 저!’ 이런 소리도 안 나온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뭔가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겨울엔 마스크, 여름엔 선글라스가 필수템이 될 것 같은 느낌.

그렇다고 후회가 되진 않았다.

내 인지도가 앨범들에도 도움이 되었을뿐더러.

정 대리 말로는 TKM 쪽에서도 계속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것도 성과의 일부로 쳐야 한다고.

레이블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니. 이런 불편한 정도는 오히려 남는 장사지 싶다.

그렇게 생각해야지 뭐.

폭풍 합리화를 하며 빌라에 올랐다.

문을 열자 너저분한 원룸이 눈에 들어온다.

참 이상하지.

나름 간단한 작업만 하며 잘 쉬고 있는데. 어째 하루 종일 일에 치여 살 때랑 집 상태가 별반 다르지가 않아.

고개를 저으며 이불을 구석으로 밀고. 훤히 드러난 매트리스 위에 앉아 비닐을 쏟아냈다.

굴러가는 맥주를 집는데, 핸드폰이 진동한다.

유지은이 무슨 사진을 보내왔다.

오디셔닝 방송에서 캡쳐 된 장면.

마이크를 입에 붙이고, 반대 손 검지를 펼치고 있는 나. 거기에 왠 자막이 합성되어 있다. ‘한 병 더’ 라는.

“······.”

그 아래엔 유지은이 ‘ㅋ’을 한 무더기 보냈다.

이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인터넷에 나와 관련된 짤이 만들어질 때마다 순식간에 퍼서 날라온다. 이쯤 되면 유지은이 만드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돈데···.

[놀려먹는데 재미 들렸죠?]

[웃긴대 어떡해요ㅋㅋㅋ]

[저 한국 뜰 생각 중이에요.]

[헐, 어디로요?]

[아직 안 정했어요.]

[미국, 미국 어떠세요? 저희랑 같이 가서 지난 번처럼 매니저를 해주시는 거예요! 장 매니저ㅋㅋㅋ]

한술 더 뜨길래 답장을 안 했다.

[저기요?]

[피디님?]

[작곡가님?]

[장 번 더 씨?]

징징거리는 핸드폰을 옆에 두고 티비 채널을 휙휙 넘긴다. 볼 게 없네···.

그래서 핸드폰을 다시 집았다. 물론 유지은의 메시지를 읽어줄 생각은 없었고.

-생방송 보려고 치킨 시켜놓고 대기 중.

-이번 시즌은 뭔가 실력 좋은 애들이 많은 느낌보단, 캐릭터들이 재미있는 듯.

-그 기로 프로듀서가 한 몫 단단히 했음.

이제는 내 얘기가 나와도 덤덤하다. 내성이 생겼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음 게시글에 입을 벌렸다.

-그거 맞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도 누가 뽑힐지 뻔히 보였는데, 그걸 반전으로 캐리함. 자기도 슈퍼패스 있냐고 웃으면서 물어볼 때 이 사람은 방송을 아는구나 싶었음.

몰라요.

-작곡천재 의문의 방송천재행.

그거 둘 다 아니고.

해명 영상이라도 찍고픈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리모컨을 들었다.

UBC를 틀자, 오디셔닝 로고가 휘황찬란하게 뱅글뱅글 돌며 관객들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단숨에 MC에게까지 날아간 로고는 폭죽처럼 펑, 하고 터져버렸다. 물론 전부 CG로.

그리고 무대를 비추던 영상은 VCR로 전환되었다.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멘토링을 촬영했던 VJ. 그가 인터뷰하듯 스툴에 앉아 질문을 받는다.

[자기소개 좀 해주시죠.]

-아, 저는 야생 버라이어티쇼로 유명한 <와일드>에서 5년 동안 일했던 VJ입니다.

[와 거기에서 5년이나 일하셨다면 <오디셔닝>은 정말 편하셨겠어요?]

-···저도 그럴 줄 알았죠.

곧바로 다음 장면에서 내가 나왔다. 6명에게 멘토링을 하고있는.

벽에 설치한 카메라에 이따금 VJ가 걸린다. 처음엔 밝기만 하던 표정이 점점 잿빛이 되어간다. 그럴 때마다 흑백 화면으로 전환되며 우울한 BGM이 흘러나왔다.

다시 인터뷰 장면으로 돌아오고.

머뭇거리던 VJ가 대답했다.

-잠시도 쉬질 않으시더라고요.

*

VCR 덕분에 내상을 입은 채로 무대를 봐야 했다.

또 인터넷 뜨거워지고, 여직원 신나 하고, 유지은 짤 부자 되고. 그러겠지, 뭐.

순서대로 무대가 이어진다.

마침내 서기영의 순서가 되어선 수백 명의 관객들이 의구심 어린 시선으로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주 방송 직후부터 서기영은 뜨거운 감자였으니까.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카메라가 그들의 면면을 잡아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에 금이 가듯, 놀람이 퍼져나간다.

모두가 똑똑히 본 거다.

개성을 완벽히 녹인 서기영의 자작곡이.

대중성이라는 프레임을 깨부수는걸.

#

“반응 너무 괜찮은데요?”

살짝 흥분한 듯 서 작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건너편에 앉은 윤 피디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뿜어냈다.

“특히 서기영은 음원 순위가 압도적이예요.”

“8위라 그랬지?”

“네.”

윤 피디가 허하게 웃었다.

“생방송에선 3등을 했는데, 음원 순위는 제일 높네.”

“그러니까요. 이거, 곽승태 프로듀서가 좀 민망하겠어요. 대중성 없는 스타일이라고 그렇게 지적했는데.”

“그러게 유명 프로듀서라고 항상 맞는 게 아니라니까. 알면 내는 곡마다 다 성공시키지.”

“기로 프로듀서는 그러잖아요?”

눈을 껌뻑이는 윤 피디.

“그 친구는 예외로 쳐야지.”

서 작가도 어쩐지 왜? 라는 의문을 달지 않고 고갤 끄덕였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패드로 향했다.

-기로 프로듀서가 맡은 6명의 실력이 유난히 확 늘어서 놀랐네요. 떨어진 사람들 너무 아쉽 ㅠ

-실력 느는 게 무슨 기로 프로듀서 때문 인 것처럼 말하네. 오디셔닝에 트레이닝팀 따로 있음. 멘토링은 그냥 방송 보여 주기용임.

-VCR 안 봤나요? 그게 어딜 봐서 보여주기 용인가요? 진짜 혼신을 다해서 알려주더만.

-게다가 방송 촬영분 말고도 추가로 더 불러서 알려주고 그랬다잖아요.

“역시 기로 프로듀서 얘기가 많네요.”

“뭐라는데?”

“기로 프로듀서가 맡은 6명 실력이 유난히 확 는 것 같다는 얘기도 있고, 아. 서기영한테 슈퍼패스 쓴 게 이번 오디셔닝 신의 한 수였다는 얘기도 있어요.”

“흐흐.”

윤 피디가 기분 좋다는 듯 연신 웃음을 흘렸다.

“이러다 우승까지 하는 거 아녜요?”

“그건 힘들지. 1화부터 차곡차곡 쌓인 이현재의 팬덤이 만만치 않아서.”

단호한 대답에 서 작가도 주억거렸다.

그때 윤 피디가 덧붙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하자고.”

“네?”

“만약에 서기영이 다음 생방까지 통과해서 결승전까지 간다면···.”

윤 피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렸다.

“이번엔 우리가 기로 프로듀서에게 한 번 더를 외쳐야 하지 않겠어?”

그의 머릿속에선 장기로와 서기영이 다시 한번 만나는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

서기영의 기세는 대단했다.

방송 당일엔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르는가 하면, 음원으로 공개되고는 순식간에 차트 9위라는 기염을 토해냈다.

생방송 1등을 한 이현재가 12위였다는 걸 감안했을 때, 참가자 중에선 압도적인 1위였다.

독특하지만 목소리가 자작곡을 만나면서 분위기 깡패가 되었다는 게 다수의 의견.

하지만 여전히 회의적인 사람들도 꽤 많았다.

한 곡 정도야 신선해서 듣지만 금세 질릴 거라며, 다음 주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던.

하지만 그런 의견들이 무색하게 서기영은 두 번째 생방송에서도 새로운 자작곡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다음날 음원 사이트엔 그 곡이 6위에 올라 있었지.

“기세가 대단해요. 오디셔닝이란 프로그램 덕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내는 곡마다 TOP10이라니.”

여직원은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서기영의 선방이 아더 레이블의 이미지에 좋을 이유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합법적인 덕질이랄까.

그때였다. 캐스팅 업무를 맡은 남직원이 불쑥 물어온것은.

“피디님 서기영씨랑 연락하시나요?”

“네, 그런데요?”

“결승 끝나자마자 캐스팅 전쟁일 것 같은데. 혹시 서기영과 기획사 관련해서 얘기 나누신 적 없으신가 해서요.”

“아, 있어요.”

덤덤하게 대답하자 남직원이 목소릴 홱 높였다.

“기획사 얘기요!?”

“네.”

“뭐라고 하던가요? 아더 레이블로 올 생각 있대요?”

내가 빙그레 미소지으며 답하려는데, 마침 전화가 울렸다. 오디셔닝의 서 작가였다. 남직원의 황망한 눈을 뒤로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프로듀서님. 잘 지내고 계시죠?

목소리만으로 기분 좋은 상태가 느껴진다.

“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하하, 프로듀서님 덕분에 시청률이 확 올라서 저희도 요즘 일 할 맛 나요!

“저 때문은 아니죠. 기영이 때문이지.”

-그 서기영을 프로듀서님이 살렸잖아요.

인사나 다름없는 이야기들이 오가고, 서 작가가 조심스레 본론을 꺼냈다.

-다른 게 아니라 이번에 프로듀서님 반응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서 결승전 때 한 번 더 모실까 하는데 혹시 스케줄 괜찮으세요?

#

아침이 어둡다 했더니 우중충한 하늘이 눈을 펑펑 쏟아내고 있다.

아무래도 쌓일 눈인가 본데.

“타이밍 좋네.”

눈발이 굵어지기 직전에 방송국에 도착했으니.

밴에서 내리자 입김이 시야에 확 퍼진다. 옷을 움츠리고, 곧장 세트장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에도 나를 알아보는 방송국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 중엔 명함을 주며 자기 방송에 출연을 제의하는 피디도 있었고, 드라마 OST를 의뢰하고 싶어 하는 직원도 있었다.

그들을 모두 뚫고 세트장에 도착하니 나를 본 서 작가가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일찍 오셨네요?”

“눈 온다고 해서 일찍 출발했어요.”

“아하. 그럼 일단 대기실에서 좀 쉬고 계세요. 지금 리허설 중이라···.”

그녀 뒤로 자욱한 스모그를 보며 말했다.

“저도 리허설 구경 좀 하죠, 뭐.”

서 작가가 그러라며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한다.

나는 스태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모퉁이로 붙어 무대를 살폈다.

번쩍이는 조명 아래 실루엣이 넘실댄다. 결승 3인 중 홍일점인 박서아였다.

무대 위에 오른 그녀가 날 보곤 놀라며 인사했다.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고.

이윽고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음색도 음색이지만, 춤을 정말 잘 춘다.

하서윤을 닮고 싶다고 했었지.

‘성격을 닮아선 안 될 텐데···.’

그러고 보니 하서윤은 플로라 작업 때 이후로 한 번을 못 봤네. 하긴, 1년 가까이 다닐 동안 제인도 마주친 적이 없는데 뭘.

TKM 최고의 간판 뮤지션과 작업을 못 해본 건 둘째치고, 한 번도 못 본 건 좀 억울한데?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이름을 확인하고 곧장 전화를 받았다.

서재원 팀장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넘어온다.

-오늘 방송 촬영 있다던데?

“네, 지금 UBC에 있습니다.”

-인지도를 쌓으랬더니 얼마 되지도 않아 무슨 유명인이 되어있더군. 이거 자네한텐 무슨 말 할 땐 조심해야겠어.

“하하.”

어색하게 웃자 서재원 팀장도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다 ‘그건 그렇고.’라고 말끝을 흐린다. 본론이 나올 타이밍인가 본데···.

-일전에 얘기했던 거 기억나나? 세 앨범을 모두 일정 궤도에 올리면 그땐 정상급 뮤지션과 연결해준다던 거.

“네.”

-그거 확정됐어.

이렇게 불쑥 이야기가 나오니 순간 벌렁거린다. 내심 기대하고 있었나.

그나저나, 누굴까?

숨죽이고 기다리자 서재원 팀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쾅 찍혔다.

-제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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