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62화 (62/221)

062. 대중성 (2)

“이거 방송되는 날 집에 숨어 있어야겠네요.”

박동호가 낄낄대며 겉옷을 챙긴다.

옆에 있던 송지현이 웃으며 끄덕였고.

그녀의 시선이 날 향해 있었다.

“어때요? 11명 중 6명한테 멘토로 지목된 소감이?”

그녀의 말처럼 생방송 진출자 중 과반수가 날 멘토로 지목한 상황.

비록 일회성이긴 하지만···의외지.

“얼떨떨하네요.”

내 대답에 송지현이 바람 빠지는 소릴 내더니 이내 작게 끄덕였다.

“뭐, 진출자들이 이해는 가더라고요. 워낙 꼼꼼하게 짚어주는 데다가, 실수한 부분은 한 번 더 불러보라고까지 하면서 잡아주니까.”

그러다 갑자기 불쑥 물어왔다.

“전 어때요? 전 앞으로 어떤 스타일로 불러야 할까요?”

성인이 되기도 전에 키즈 아이돌로 큰 인기를 누렸던, 그리고 지금은 기획사에서 이사님이라고 불리는 여가수.

그런 그녀의 질문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더 레이블로 오세요. 알려드릴 테니까.”

툭 던진 말에 송지현의 웃음보가 터졌다.

“이적 제의예요?”

그 너머의 박동호도 낄낄댄다.

곽승태만 못마땅한 듯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못 해서 안 하나. 특별 심사니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지. 어떻게 매번 촬영마다 이거 불러봐, 저거 불러봐, 그래.”

중얼거리며 그가 나가자 송지현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우승 후보인 현재 데려갔으면 됐지. 뭐 저렇게 질투를 하시나. 누가 솔라톤 아니랄까 봐, 욕심도 많으셔.”

그녀의 속삭임에 옅게 웃으며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에게 기회가 되면 또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터벅터벅 심사위원석을 내려갔다.

그 길로 세트장을 벗어나려는데, 누군가 아래에서 서성이다, 날 보더니 성큼 다가온다.

서기영이었다.

“감사합니다.”

곧바로 꾸벅 인사하는 그를 보며 나도 엉겁결에 목을 숙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나보다 형이라 해도 믿겠다.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은 아니지만 남자답게 턱과 광대가 있어 스물둘로는 전혀 안 보이네.

찰나에 그런 생각을 하며 답했다.

“오늘 부른 자작곡도 좋더라고요.”

진심이었다.

데모로 보냈던 자작곡과는 다른 곡이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곡 또한 서기영에게 어울렸다. 듣는 내내 간질거릴 정도로.

이로써 명확해진다. 서기영은 자신이 뭘 불러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게.

확실히 탐난다. 싱어송라이터로서건, 프로듀서로서건 그에겐 재능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중성이 없다고 자기 스타일을 버릴 필요 없어요.”

재차 인사하는 서기영에게 덧붙였다.

“넵, 명심하겠습니다.”

“명심까지야···.”

“아뇨, 주신 기회 정말 열심히 쓰겠습니다. 후회 없도록요.”

웃음이 나왔다. 무슨 버튼이 눌러진 것 마냥. 어쩌면 내가 느끼는 감각의 일부는 동질감일지도 모르겠네.

여러 참가자들을 보며 잠시 흐릿해졌던, 이곳에 온 목적이 스멀스멀 살아난다.

떨어지면 아더 레이블로 오라는 얘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훅 내려갔다. 후회 없이 해보겠다는 애한테 떨어지면이라니.

마음속으로 고갤 수차례 내저었다.

이제 생방송에 진출한 이들에겐 한 달 남짓의 시간이 주어진다.

녹화된 방송이 모두 방영되기 전까지 자신들의 실력을 갈고닦아, 마침내 생방송에서 보여주는 거다.

거기에 도움을 주는 게 멘토였고.

서기영을 비롯한 여섯 명이 나를 지목했다.

나는 욕심은 잠시 미뤄두고, 웃으며 말했다.

“멘토링때 봅시다.”

비록 하루지만, 제대로 도와줄 생각이었다.

#

며칠 뒤, 아더 레이블 사무실.

김지희와 여직원이 긴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대화의 주제는 지금 3층 녹음실에서 오디셔닝 참가자들과 멘토링이 한창인 장기로.

여직원이 테이블을 퉁퉁 쳤다. 신이 난 톤으로.

“아니, 어떻게 6명한테 지목을 받으셨대요? 이런 경우 여덟 시즌 동안 처음이지 않아요? 이거 방송 나가면 또 난리 나겠네!”

김지희가 주억거린다.

“그러게요. 심사를 어떻게 하셨길래.”

“PD님 성격 보면 예상되는 게 있긴 하죠. 소속 가수들한테 하는 것처럼 하시지 않았을까요?”

김지희가 끄덕였다.

정말 그랬다면, 이렇게 선택이 몰린 것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다른 소속 가수들이 장 PD님에게 이끌린 것처럼.

그녀의 눈이 시계로 향했다.

“벌써 12시간 째네요.”

“그러게요. 걱정돼요···.”

“그쵸? 앨범 3개나 성공시키셨으면 어디 한 달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오셔도 모자랄 판에 곧바로 또 일을 저렇게 하시니···.”

그러자 여직원이 몰랐다는 듯 되물었다.

“아, 그 얘기였어요?”

“아니예요?”

“전 장 PD님 말고 오디셔닝 참가자들 얘기한 건데. 그 친구들이 장 PD님 일하는 방식 따라가려면 고생 좀 하겠다 싶어서요.”

김지희는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이었다.

“아···?”

#

“서아씨도 수고했어요.”

방송 첫 주부터 인기를 끌어 지금은 팬클럽까지 생겼다는 박서아.

그녀가 준비해온 곡은 하서윤의 곡이었다. 확실히 목소리 톤도 어울리고, 춤도 잘 추니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나는 부스에서 나오는 그녀에게 당부했다.

“세션분들께 브릿지에 리타르 넣는 거 꼭 얘기하고요.”

그게 곡 전체의 그루브를 살려줄 테니까.

고개를 파닥거린 박서아가 뿌듯함이 가득한,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몹시 진 빠진 얼굴로 소파 빈자리에 털썩 앉았다.

“다음은, 기영씨.”

“넵.”

서기영이 일어나 부스로 향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가장 기대한 순서였다.

나를 지목한 6명 중 유일하게 혼자 자작곡이다.

재생 버튼으로 향하는 손가락이 간지럽다.

준비가 된 걸 확인하고 얼른 노래를 틀었다.

-!

경쾌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서기영이 곧바로 목소리를 냈다. 콘덴서 마이크를 타고 들어온 멜로디가 귓가에 닿자, 또 찌릿 거린다.

‘세 곡째 전부 이런 느낌이네.’

이쯤 되면 서기영에겐 자기 자신의 멜로디가 들리는 거 아닌가 싶다. 세 곡, 전부 다 그 정도로 서기영과 찰떡이었다.

몇 가지만 바꾼다면.

“우선 멜로디의 동기는 좋아요. 근데 예를 들어···.”

건반에 손을 얹어 후렴부 멜로디 라인을 그대로 연주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연주하며 라인을 조금씩 바꿨다.

멜로디를 발전시킬 때처럼.

“이걸, 이렇게 바꾸면···.”

“···!”

대단한 걸 한 건 아니다.

음 몇 개만 바꿨을 뿐.

“이것만으로도 꽤 편하게 들리죠.”

결국, 대중적이란 건 익숙한 거다.

곡의 색을 결정하는 모티브를 유지한 채, 서기영의 색을 분명히 하면서도 듣기 편한 라인을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서기영에게 해주고픈 피드백이었다.

멘토링이 계속 이어진다.

편곡에 쓰일법한 아이디어도 몇 개 건넸다.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것저것 제안했다.

물론 이 문제는 예민한 거라 강요하진 않았다. 참가자이기 전에 이 곡의 작곡가니까.

“···?”

VJ가 슬쩍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1, 2시간은 더 붙잡고 있었을 거다.

“저, PD님.”

“아, 네.”

“이제 촬영은 철수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퀭한 눈으로 날 본다.

그제야 시간을 확인하며 진출자들을 둘러봤다.

아닌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있어도, 다들 지친 게 티가 난다.

나는 서기영에게 나오라고 한 후, 멘토링을 정리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제안했다.

촬영이 아니어도, 언제든지 와도 좋다고.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서는 참가자들.

‘어째 VJ가 제일 신나 보이네.’

피식거리며 다시 녹음실로 들어왔다.

“흣짜.”

의자에 몸을 쑤셔 넣었다.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스르륵 내려갈 것 같은 자세로 모니터에 띄워진 녹음파일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생방송을 위해 6명이 준비해온 노래.

얼마나 고민했을지 선하다.

부르고 찾고, 또 부르며 수십 번씩 생각했겠지.

이게 맞나, 이렇게 해서 될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그중 누군가는 예전의 나처럼 포기하고 싶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게 너무 이해가 가서 적당히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더라.

방송 안 나간다고 거절한 게 민망할 정도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책상 앞으로 옮겨갔다. 처음부터 다시 재생해본다.

뭔가 놓친 게 있진 않을까 싶어서.

더 해줄 말이 없을까 싶어서.

언제든 오라고 했으니.

‘왔을 때 해줄 말은 있어야지.’

*

날이 밝았다는 걸 알게 된 건 녹음실을 나섰을 때였다.

그것도 동이 트고 있는 것도 아닌, 완벽한 아침.

하하. 쉬는 동안엔 새 나라의 어린이 좀 돼보나 했더니. 어림도 없네.

정수기로 다가가 냉수를 들이켰다.

목구멍이 찡할 정도로 차가웠지만 잠이 깰 정도는 아니었다.

‘집 가서 자자.’

결심하고 계단을 주르륵 내려갔을 때였다.

문 앞으로 누군가 다가온다.

PD들도 아니고, 직원들은 더더욱 아니고.

“어, PD님.”

“······.”

“어제 언제든 오라고 하셔서.”

그래서 바로 왔구나···.

서기영의 무뚝뚝한 얼굴에 설핏 민망한 웃음이 그려진다.

“하하, 그나저나 엄청 일찍 출근하셨네요?”

“아, 네···.”

일찍 온 건, 너고.

못 간 게 나고.

“뭐, 들어와요.”

웃음이 난다.

잠을 못 자 허탈해서 그런 건지.

이렇게 바로 와 기특해서 그런 건지.

졸려서 모르겠네.

#

이후로, 다른 참가자들도 한 두 번씩 더 왔다 갔다.

그리고 서기영은 거의 매일같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덕분에(?) 나는 그의 자작곡을 전부 들어볼 수 있었다. 모든 곡이 마찬가지로 전부 서기영과 찰떡이라 놀랐고, 그 개수에 한 번 더 놀랐다.

이 정도면 결승전까지 내내 자작곡으로 할 수도 있겠는데?

물론 거기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 사이, 방송은 어느덧 생방송 직전까지 방영이 되었다. 당연히 내가 나온 출연분도 전파를 탔다.

그리고 반응은···.

“대박이에요.”

여직원이 싱글벙글한다.

뭐가 저렇게 좋을까. 저 정도면 아더 레이블 수장 자릴 저 사람한테 줘야 하지 않을까?

“시청률이 4%나 올랐잖아요.”

“그게 저 때문이라기엔···.”

“1% 내외로 찔끔씩 오르던 게 PD님 나온 회차에서 훌쩍 뛰었는데, 당연히 PD님 때문이죠.”

그게 이해가 안 간다고.

“곡 한 번 더 부르라고 시킨 건 혹시···.”

“절대 아니죠.”

컨셉 대로 의도한 거 아니냐고 물어보려 한 거 다 안다.

“그럼 슈퍼패스는요?”

“그건···그건 또 왜요?”

“이건 ‘한 명 더’ 잖아요.”

“······.”

“완전 방송 체질.”

아니라니까.

“오죽하면 PD님 소주 광고 찍어야 한다는 사람들까지 생겼겠어요.”

“그, 그걸 제가 왜 찍어요.”

“지글지글 불판에 고기를 굽던 PD님이 빈 소주병들을 쭉 바라보다가 손을 딱 들면서!”

설마···.

아니겠지.

“한 병 더!”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제 뭘 해도 다 이런 식으로 볼 것 같네.

레드리시가 언제 미국을 가더라. 그냥 따라갈까. 브랜이 받아주려나···.

지이잉. 힘없이 버튼을 눌러 커피를 내렸다.

내 표정을 보며 꺌꺌 웃던 여직원이 짐짓 진지하게 물어왔다.

“근데 기영씨 정말 잘 될 거 같아요?”

내가 의문 어린 표정으로 돌아보자 여직원이 설명한다.

“마지막에 자작곡 잠깐 나온 게 반응이 좋긴 한데···아직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 같더라고요.”

나도 봤다.

취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바이브레이션을 왜 저렇게 넣냐, 너무 과하다. 감정 과잉이다. 등의 반응도 꽤 있다. 누군가는 창 하냐며 비웃는 이도 있었다.

“만약에 기영씨가 잘되면 우리 레이블한테도 분명히 호재로 작용할 텐데요. 거기다 방송 끝나면 딱 바로 영입을···!”

저건 내 생각이랑 좀 비슷한 것 같기도.

“그래서 PD님은 몇 등 예상하세요? 막 생방 첫날 떨어지진 않겠죠?”

반 살짝 넘게 내려진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

“글쎄요.”

“이현재인가? 그 친구가 인기가 많더라고요. 박서아도 만만치 않고. 그래도 두 번째 생방송까지만 살아남아도 충분히 이슈가 되니까···.”

결과적으로 한 5등 정도만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그래야 내 능력이 돋보이고, 여차하면 영입도 하고, 아더 레이블이 성장하고, 레이블이 안 없어지고, 그래야 자신이 오래 일 할 수 있다는 결론. 천잰데?

“그럼 좋겠네요.”

오랜만에 크게 웃으며 작업실로 들어왔다.

커피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5등···.

솔직히 그 안에 들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가진 확실했다.

서기영의 자작곡을 들을 때마다 멜로디를 듣는 듯한 감각이 뇌를 들쑤신다는 것.

그리고 이 감각은,

항상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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