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61화 (61/221)

061. 대중성 (1)

무대가 어두워지고.

서기영에게만 작은 조명이 쏟아졌다.

심사위원석은 여전히 같은 조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간 찌푸리는 거 하나, 입꼬리 떨리는 거 하나 카메라에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이게 좀 전까진 무지 신경 쓰였는데, 서기영이 노랠 부를 준비를 마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흩어져 버린다.

대신, 내 시선이 서기영에게 콱 박혔다. 여전히 그가 보낸 데모가 뇌리에 남아 맴돈다.

그것만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을 이유는 충분했다.

마침내 흘러나온 락킹한 사운드 위로 서기영의 목소리가 얹어진다.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눈을 깜빡였다. 자세를 고쳐 앉고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

전혀 달랐다. 데모 속 서기영과는.

목소리는 분명히 같은 사람의 것인데,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넘칠 듯이 출렁이던 바이브레이션은 온데간데없고, 밋밋한 미성만 남아 운율을 낸다.

왜 이렇게 색이 팍 죽어버렸지?

데모와 지금의 차이.

그 갭이 혼란스러웠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노래를 끝까지 이어졌으나, 반전은 없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버렸다.

서기영을 기다리고 있는 건 이번 공연에 대한 좋지 못한 평가들뿐이었다.

-시도는 좋았지만, 강렬함을 보여주기엔 부족한 무대이지 않았나 싶어요.

-저도 비슷한 의견이에요. 역시 다양한 장르의 곡을 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았나···.

-곡 선정이 좀 미스였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기영 군한테 어울리지 않았네요.

신랄한 심사평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내 차례가 다가온다.

의문 어린 눈으로 서기영을 바라보며 마이크를 잡았다. 서기영도 나를 올려다본다.

TKM 공채 오디션 때도 그랬지만, 앞에서 대놓고 누군가를 평하는 건 참 곤란하지. 그럼에도 듣고 느낀 그대로를 말할 수밖에.

-뭔가···밋밋했어요.

곽승태와 송지현의 심사평에도 덤덤하기만 하던 서기영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런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최근에 스타일을 많이 바꿨나요?

-아, 넵.

역시···.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어. 짧은 시간에.

이런 건 누군가 억지로 바꾸라고 시킨 게 아니고서야 힘들지.

느릿느릿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곡 선정이 미스였던 것도 맞지만 결정적으로 밋밋하게 느껴진 이유는 거기에 있었던 것 같네요.

덤덤한 표정 뒤로 뭔가 여러가지 감정이 만개한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한 곡 더 가능할까요?

옆에서 박동호가 껄껄거리며 웃는다.

-프로듀서님, 여기서도 한 번 더를 외치시는 거예요?

그의 말에 스태프들 중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얼씨구 서기영까지?

쩝···.

소리 없이 입으로만 웃던 서기영이 마이크를 들고 물었다.

-어떤 노랠 해야···.

늘어지는 말꼬리 뒤에 내가 덧붙였다.

-자작곡 어때요? 원래 본인 스타일대로.

#

모든 무대가 끝났다.

참가자들은 모두 개별 인터뷰를 하러 흩어지고. 심사위원들에겐 회의시간이 주어졌다.

누굴 올리고, 누굴 떨어트릴지. 이 회의에서 생방송 진출자가 정해지는 거다.

송지현이 다리를 꼬며 낮게 감탄했다.

“현재는 오늘도 현재 했네요.”

“걔야 뭐.”

곽승태가 채점표를 툭툭 치며 웃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심사를 이끌었다.

“일단 얘는 확정이다 싶은 애들부터 올리자고. 이현재 올리고. 또?”

“오정우도 오늘 실수 없이 잘 한 것 같아요.”

“어, 오정우 괜찮았지.”

“서아는 실수가 좀 많았어요···.”

송지현이 망설이자 박동호가 끼어들었다.

“근데 스타성이 있잖아요. 생방으로 올려야 하지 않겠어요?”

이에 곽승태가 주억거린다.

“얼굴도 이쁘장하고, 춤도 잘 추고. 생방에 필요해. 그래야 다양하게 그림이 살지.”

오늘 무대만의 실력보단 스타성과 대중성으로 걸러진다. 이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루의 포텐은 그날에서 그치는 경우도 많으니까. 충분히 이해는 가지.

“서기영도 좋았어요.”

내가 말을 꺼냈다.

그러자 곽승태가 피식 웃는다.

“본인이 한 번 더 시켰다고 너무 챙겨줄 필요 없어요.”

“챙겨주는 게 아니라, 자작곡은 정말 좋았어요.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였습니다.”

옆에 있던 송지현이 끄덕인다.

“저도 꽤 의외긴 했어요. 일단 자작곡이 예상외로 너무 괜찮았고요. 저희가 그동안 대중적이지 않다고 했던 스타일이 오히려 자작곡엔 찰떡이더라고요.”

곽승태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생방에 올라갈 스타일은 아니지.”

“맞습니다. 한계가 너무 명확해요.”

박동호의 동조를 들으며 입가를 매만졌다.

이 심사위원들이 들은 것과 내가 들은 게 같은데 평은 왜 이렇게 다를까.

사람이니 다를 순 있겠지.

뭐가 옳다, 그르다가 명확하지 않은 문제긴 한데···.

왜 이번만큼은 내가 맞는 것 같지?

멜로디가 들려오진 않지만, 그만큼 강하게 끌린다. 그의 자작곡을 한 번 더 들으니 더욱 그랬다.

멜로디를 들어 만든 곡이 항상 성공이었듯.

이것도 비슷한 확신이었다.

“그러면 기로 프로듀서님은 서기영을 올리자 쪽이고, 나랑 곽 프로듀서님은 아니고. 지현씨는 어때요? 대영이도 남았는데. 둘이 비교하면?”

“아 그렇게 둘이 비교하면···.”

잠시 고민하던 송지현이 마지못해 결정했다.

“대영이겠네요.”

곽승태가 묻는다.

“기로 프로듀서님 불만 없죠?”

나는 작게 끄덕였다.

이쯤 되니 이걸···.

내 감각을 증명하고 싶어진다.

어차피 대중성이란 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듣느냐 라면.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거든.

“네. 그런데···.”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홱홱 돌렸다. 가까이에 있던 스태프가 눈치껏 다가온다.

“무슨 일 있으세요?”

이러면 좀 뻔뻔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뭐, 애초에 그런 캐릭터가 된 것 같으니 상관없겠지.

“궁금한 게 있어서요. 저도 심사위원이잖아요?”

“아, 예.”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심사위원은 슈퍼패스 한 장씩 있지 않나요?”

#

“슈퍼패스?”

나머지 심사위원들은 이미 모두 한 장씩 써버린.

묻고 따지지도 않고 한 명을 합격시키는 일종의 와일드카드.

윤 PD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되물었다.

헤드셋 너머로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자긴 아직 한 번도 쓴 적 없으시다고···.

윤 PD는 듣다가 웃음이 터졌다.

“그치, 그치. 아직 한 번도 안 쓰긴 했지. 이번이 처음이니. 일단 잠깐 기다려봐.”

헤드셋을 툭 빼내 목에 건 윤 PD가 옆에 있던 서 작가에게 이야길 전했다. 연신 낄낄대며.

“어때,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서 작가는 머뭇거렸다.

“무슨 룰이 주먹구구식으로 바뀌냐고 욕먹지 않을까요?”

“융통성이지, 재미를 위한 융통성. 솔직히 이미 지난 시즌에 비해서도 시청률이 안 좋은데, 매번 똑같이 해선 진짜 답 없잖아. 매번 보던 마스크 지겨울까 봐. MC도 바꾸고, 특별 심사위원도 부르고.”

“그건 그렇죠. 확실히 재미는 있을 것 같긴 한데···.”

“그치? 또 기로 프로듀서 하면 무명을 대박내는 걸로 유명하잖아. 만약에 슈퍼패스로 올라간 애가 덜컥 우승이라도 해봐. 이야, 구도 딱 나오네. 대박이야.”

서 작가는 그것까지 바라진 않았다. 생방송에서 한 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걸로 괜찮지 않겠나. 무게추가 기울었다.

끄덕이는 서 작가를 보며 윤 PD가 다시 헤드셋을 쓴다.

“어, 알겠다고, 드린다고 해.”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물었다.

“근데, 그걸 누구한테 쓰겠다는데?”

#

한편, 참가자들은 대기실에서 인터뷰가 한창이었다.

“후회 없도록. 전 이 말이 좋더라고요.”

막내 작가의 말에 서기영이 설핏 웃었다.

“항상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기영씬. 이번 무대를 서면서는 어떤 각오로 임했을까요?”

서기영은 잠시 고민했다.

“여기까지 와서 좋다. 오늘도 잘하자···?”

“생방송에 진출하자 가 아니라요?”

“넵.”

짧은 단답에 난색을 표하던 막내 작가가 다른 주제를 꺼냈다.

“오늘 기로 프로듀서님이 한 곡을 더 시키셨어요.”

서기영이 끄덕인다.

“어땠나요? 갑자기 시키셨을 때.”

“열심히 불러야겠다. 그 생각밖에 없었어요.”

“하하, 근데 사실 저 깜짝 놀랐어요. 솔직히···.”

막내 작가가 속삭였다.

“기영씨 자작곡이 오늘 들은 것 중에 제일 좋았거든요. 그 곡 나중에 꼭 앨범으로 내줘요. 알겠죠?”

그러면서 쿡쿡댄다. 서기영도 작게 웃으며 감사하단 말을 했고.

그때 스태프의 외침이 들려왔다.

“심사 끝났습니다. 다시 무대로 오를게요!”

둘 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내 작가는 주먹을 쥐어 보이며 후다닥 사라졌다.

서기영은 살짝 긴장한 얼굴로 무대로 향했고.

인터뷰를 마친 다른 참가자들도 우르르 무대로 가는 중이었다.

“현재야 뭐 프리패스고, 나머지 아홉 명이 누구냐가 관건이네.”

“근데 오늘 서기영 무대 괜찮지 않았어요? 바뀌기 전 스타일이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작곡에 부르니까 좋더라고요.”

“그래도 그거 하나론 탑 10은 무리지. 여기가 작곡 오디션이면 몰라.”

앞에서 주고받는 말들에도 서기영은 개의치 않았다. 곧장 무대 위로 오른다. 당당한 자세로 서 있던 이현재가 슬쩍 보더니 조소를 띄운다. 신경 쓰지 않고 빈자리에 섰다.

‘실망하셨으려나.’

심사위원석이 올려다보인다.

거기에 기로 프로듀서가 있었다.

최정아의 ‘기억애’를 들었을 때, 전기에 감전된 것 같았다. 얼른 작편곡자를 확인했지. 그곳에도 기로 프로듀서가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전화가 왔었지. 나를 좋게 보고. 신기하고 아쉬웠다. 방송을 나가지 말고 기다릴걸.

그랬는데, 오늘 와보니 심사위원석에 떡하니 앉아있었다. 그리고···.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지.

시선이 툭 떨어졌다.

그 사이 모든 참가자가 무대에 올라서자 스태프들이 바삐 움직인다. 이윽고 뒤쪽으로 MC가 올라오고.

-오디셔닝 시즌 8, 파이널 미션. 생방송에 진출할 참가자들을 지금 공개하겠습니다!

녹화가 재개되었다.

-가장 먼저 생방송으로 진출할 참가자는!

조명이 무대 위를 휘젓는다.

그리고,

-이현재!

지금까지 1위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이현재가 10개의 의자가 놓여진 진출자 석으로 향한다.

이현재를 필두로 줄줄이 불려 올라가기 시작한다. 비어있던 의자가 하나둘 채워지고, 결국 열 자리가 모두 꽉 들어찼다.

서기영은 아직 무대에 남아 진출자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

‘후회가 남는다.’

아쉬움이 끈덕지게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저기에 못 올라서가 아니었다.

단지···.

박수와 응원을 비집고, MC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소리가 뚝 멎었다.

진출자건 아니건, 모두가 뒤를 돌아봤다.

-특별 심사위원을 맡아주신 기로 프로듀서님께서 슈퍼패스를 쓰셨어요.

주변이 술렁인다.

MC가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로써 이번 오디셔닝 시즌 8, 생방송 진출자는 총 11명입니다.

서기영은 설마, 라고 생각했다. 기대하는 게 아닌, 그럴 리 없다는 설마.

그러나 MC의 말이 이어지는 순간.

-서기영!

담담했던 표정이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과묵했던 이미지와 함께.

“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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