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60화 (60/221)

060. 후회 없도록

최정아 매니저는 차에 타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녹화가 끝나고 이렇게 개운한 게 얼마 만인가.

얼마 남지 않은 믹스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달달함이 입안에 척 들러붙는 걸 느끼며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다르네, 달라.’

이 바닥에선 첫 번째 성공보단 두 번째 성공을 더 쳐준다고 했던가. 거기서부턴 운의 영역이 아니니까.

그래서일까, 미묘하게 방송국놈들의 태도가 변했다.

예전엔 ‘인기 있으니 부르긴 하는데···’ 정도였다면 이젠 정말 스타를 보는 눈빛들이다. 반짝 스타 말고.

‘어후.’

이젠 반짝이란 말만 봐도 지긋지긋한 매니저였다.

그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뒷좌석에 앉아 꼼지락거리는 최정아가 보였다. 입가에 환한 미소가 그려져 있다.

“안 힘들어?”

“넵!”

미소만큼이나 환한 목소리.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그녀가 갑자기 피식대고 웃는다.

뭘 보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한 매니저는 그러려니 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차가 출발하며 그의 입이 열렸다.

“PD님도 부담 많이 되시겠다. 갑자기 사람들이 막 알아볼 거 아냐.”

“그렇겠죠? 저도 처음에 기분 되게 이상했는데.”

“보통은 그렇지. 근데 뭐, PD님이면 적응 잘 하실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사람이···걱정이 안 되는 스타일이잖아?”

최정아가 고개를 파닥거린다. 그러다 불쑥 물었다.

“근데 되게 신기한 게, 전 녹음실에서 전혀 못 느꼈었거든요. PD님이 메이킹 필름에서처럼 그러는 거.”

“에? 진짜?”

“네. 오히려 엄청 나긋나긋하다고 생각했는데.”

매니저가 그건 아니지, 라는 표정으로 룸미러를 보았다.

“···어떻게, 병원으로 갈까?”

최정아가 빵 터져서 옆으로 넘어간다.

“아니 진짠데. 이거 악마의 편집 같은데.”

“나도 PD님한텐 고마운 게 많거든? 근데 그래도 그 영상은 정말 있는 그대로 찍혔단다.”

최정아가 고개를 좌우로 살랑거리며 다시 핸드폰을 보았다.

“그런가···풉.”

“또 뭐래?”

“PD님 말투 따라하는 법도 있어요. 긍정문 다음에 부정문이 오는 게 포인트라는데요?”

매니저가 낄낄댔다.

“아우, 웃기다. 그건 글코 이번에 방송 출연도 하신다던데···.”

이미 인터넷엔 그가 <오디셔닝>에 출연한다는 떡밥이 돌고 있었다.

“더 바빠지시겠네.”

최정아가 이것만큼은 아쉬운 듯 입을 비죽댔다.

#

지금 나는 사전 인터뷰를 하겠다고 찾아온 작가와 마주하고 있다.

서 작가라고 했지.

꽤 인상이 드세다.

그러나 그녀보다 신경 쓰이는 건 테이블 위에 떡하니 올려진 캠코더다.

내 얼굴을 찍겠단 의지로 빨간 불을 반짝이니 신경 쓰여 죽겠네.

쩝. 서 작가가 건넨 종이 뭉치를 넘겼다.

기획 의도 등과 함께 참가자들 프로필이 보인다. 나는 슥슥 넘겨 서기영을 찾았다.

‘이렇게 생겼구나.’

미성과는 달리 남자답게 생긴 얼굴.

프로필을 쭉 읽어내려가는데, 서 작가가 캠코더 세팅을 끝내고 말문을 뗀다.

“<오디셔닝>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예요. 혹시 보신 적 있으실까요?”

봤지.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한 시즌6까진 잘 챙겨 봤던 것 같다. 그 이후론 흥미를 잃었지만.

대다수의 시청자들도 나와 비슷했기에 <오디셔닝>은 시즌8이 마지막이었지.

“네, 지금 방영된 4회까진 시청했습니다.”

“오, 어떠셨어요?”

“재밌었어요. 다들 열정도 있고···.”

서 작가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 눈여겨본 참가자가 있으셨나요?”

그녀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해본다.

눈여겨본 참가자?

4회까지 눈씻고 찾아봐도 서기영은 없었다. 편집에서 걸러져 나간 거다. 나는 사실 그가 궁금해서 본 건데, 퍽 허탈했지.

우선 날 빤히 보는 서 작가에게 대답은 해야겠고···.

지금까지 나온 것만 본다면야, 실력적인 측면에선 역시 이현재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글쎄···.

“아직은 없었어요.”

내 대답에 서 작가는 살짝 의외라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원래의 표정을 지어보이며 인터뷰를 계속 이어갔다.

종합해보면, 내가 나가는 회차는 8회였다. 생방으로 진출하기 전, 마지막 관문.

듣다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서기영은 탑10에 들어 생방송 진출권을 따냈을까?

‘시즌8을 안 봤었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

“이제 프로듀서님이 오셔서 해주셔야 할 것부터 간략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우선 심사부터.”

그녀가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말을 이었다.

“그냥 레이블의 오디션 심사를 보러 오셨다고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솔직한 생각을 말해주시는 게 관건이죠. 요즘 시청자들은 저게 진심인지 아닌지 단박에 알거든요.”

다발로 뱉어지는 그녀의 말에 느릿하게 끄덕였다.

“그리고 심사 외에도 멘토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멘토로 지목받으실 경우 하루 정도 생방 진출자와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담게 되실 거예요.”

이건 생방 진출자들이 심사위원을 역으로 지목하는 방식이었다. 이미 이전 시즌들에서 숱하게 반복되어 온 거라 익숙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간단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갑작스런 대중들의 주목에 기분이 어떠냐는 둥, 앞으로 방송 활동도 할 거냐는 둥.

내가 뭐라 대답하기 어려운 것들뿐이었다.

그러다 슬슬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서 작가가 ‘아 참’이라며 한가지 질문을 덧붙였다.

“무명이었던 신인을 연이어 성공시킨 프로듀서로서 참가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나는 순간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묘하잖아.

음악을 포기했던 내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해야 한다는 게.

“······.”

새삼 또 느낀다.

과거로 돌아와, 정말 많은 게 변했구나.

*

서 작가는 질문을 던져놓고, 젊은 프로듀서를 보았다.

최근엔 대중의 주목까지 받고있는.

음악밖에 모르는 천재 프로듀서.

이 세상이 모두 자신의 것 같을, 저 프로듀서는 지금 꽤 깊게 고민하는 눈치였다.

어느 질문보다 더.

그게 꽤 인상적였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담담한, 그래서 더 진심같은 말투로.

“후회는 없었으면 좋겠네요. 10년 뒤쯤 되서 자신을 돌아봤을 때.”

인터뷰는 그걸로 마무리되었다.

촬영 날 보자는 인사와 함께 사무실을 나온 서 작가는 곧장 윤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끝났어?

“네.”

-그래. 어땠어?

“역시 음악 쪽으로는 자기 기준이 명확해 보이더라고요.”

-뭐라는데?

“지금까지 방영된 걸 모두 봤는데, 눈길 가는 출연자가 없었다네요.”

-어?

의외 섞인 목소리였다.

사실 이번 시즌에 전체적인 수준이 떨어진 건 맞았다. 하지만 이현재만큼은 어느 시즌에 갖다 붙여놔도 우승을 노릴 만큼 실력 있는 참가자였다.

이미 그 솔라톤의 곽승태도 눈독 들이고 있지 않나.

당연히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고.

“신기하죠? 당연히 이현재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당연한 얘긴 재미없지. 뭐 또 없었어?

“글쎄요. 의외로···.”

서 작가가 말했다.

“괜찮은 사람 같았어요.”

#

<오디셔닝> 촬영 당일.

아침 일찍부터 방송국으로 향했다.

김지희와 여직원이 일일 매니저를 붙여주겠다 노래를 부르길래 퍽 난처했네. 연예인도 아닌데 무슨 매니저씩이나···.

그래서 혼자 가는 대신 옷은 김지희가 입으란 대로 입어야 했다.

옥스포드 셔츠에 깔끔한 슬랙스.

아, 메이크업도 받았지. 머리에 화장에···.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중이다.

“어, 기로 프로듀서님? 하하, 안녕하세요. 윤 PD라고 합니다.”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의 남자가 악수부터 해왔다.

“아, 메이킹 필름, 그거 잘 봤어요. 거기서 프로듀서님이 아주 씬 스틸러더라고.”

“하하.”

“오늘도 그런 모습들 많이 보여줘요. 음악에 관해선 얄짤없는 그런 거. 알죠?”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

“오늘 잘 해봅시다!”

껄껄거리며 사라지는 윤 PD.

이어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로 안내를 받았다.

“후우.”

녹화시간이 7, 8시간씩 된다는데 벌써부터 피곤하다. 막막하구만.

소파에 늘어지듯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천장을 멍하니 보는데, 품안에 있는 핸드폰이 연이어 울린다.

방송 잘 하고 오라는 응원 메시지들이었다.

일일이 답장하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났다. 아까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스태프가 다시 나타났다.

“프로듀서님. 심사위원석으로 이동하실 게요.”

*

뭐가 화려하다.

LED 화면에 버튼에.

TKM 공채 오디션 때와는 느낌이 완전 다르네. 여긴 세트장이니까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내심 감탄하며 의자에 앉으려는데 뒤이어 다른 심사위원들이 올라온다. 먼저 올라오며 싱긋 웃는 실력파 가수, 송지현. 그 뒤로 사자 창법으로 유명한 박동호도 보인다.

그들과 일일이 인사하는 사이, 마지막 세 번째 심사위원도 위로 올라왔다.

솔라톤의 프로듀서이자 <오디셔닝>에 시즌 3부터 심사위원을 맡아온 곽승태. 일명 대중성 판별사라고도 불린다. 하도 참가자들의 대중성을 판단해서.

“아~기로 프로듀서님. 요즘 핫 하신 분.”

건네는 손을 마주 잡고 목인사를 했다.

“오늘 많은 활약 부탁할게요. 우리가 그동안 너무 음악적으로만 심사를 해서 그런지 윤 PD님이 예능적인 부분을 채워 넣고 싶으셨나 봐.”

어째 삐뚤게 들린다. 기분 탓인가?

“기로 프로듀서는 예능인 해도 잘 하겠더라고. 컨셉 잡고 하는 게.”

아니구나. 그냥 삐뚠 거였어.

내가 끄덕이며 말했다.

“네. 너무 대중성 타령만 하다 가진 않으려고요.”

빠직. 애벌레 마냥 꿈틀 거리는 미간을 온화하게 보며 덧붙였다.

“예능답게.”

곽승태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들썩이는데, 스태프가 외쳤다.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달라는 소리였다.

그가 몸을 돌리길래 나도 다시 의자에 앉았다.

큐 사인과 함께 수많은 카메라들이 돌기 시작했다. 녹음실에서 마주한 카메라들과는 또 다르다. 지금은 정글에서 늑대 무리를 만난 것 같애. 뭔가 먹잇감이 있으면 득달같이 달려들.

솔직히 긴장되지만, 애써 아닌 척을 했다. 이런 건 또 잘하지.

이윽고 은은한 조명을 밑에서 쏘아 올리는 무대 위로 각양각색의 참가자들이 우르르 몰려 올라섰다.

나는 자연스레 눈을 굴려 목표를 포착했다.

왼쪽 끝에 서서 날 보더니 놀란 눈을 하고 있는 서기영.

프로필 사진으로만 보다가 이렇게 보니, 생각보다 키가 크다. 떡대도 있고. 운동했나?

유심히 지켜보다가 통화로 들었던 ‘왘!’ 소리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그때 반대편에 있던 MC가 마이크를 들었다.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오늘은 생방송 진출권을 얻기 위한 마지막 미션 무대입니다. 즉, 탑10을 가리기 위한 자리죠.

-기대가 되네요. 과연 이번 미션인 ‘락앤롤스타’를 가장 잘 소화해낸 참가자가 누굴지.

-누가 올라가고, 누가 탈락의 고배를 마실지. 오디셔닝 시즌8, 생방으로 향하는 마지막 무대!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서기영에게서 시선을 떼고 참가자들의 면면을 둘러봤다. 낯익은 얼굴이 없다. 저 이현재를 제외하고는.

후에 솔라톤이 만들 새로운 보이그룹의 멤버가 될 이현재.

‘인기가 엄청났지.’

나는 다시 서기영을 보았다.

반면, 저 친구는 본적이 없다. 적어도 가수로서는.

작곡 실력이 있으니 작곡가를 했을 순 있겠지.

나는 허리를 등받이에 딱 붙였다.

순서에 따라 무대를 내려가는 참가자들.

이제, 첫 번째 순서인 서기영만 무대 위에 남아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송지현이 마이크를 들었다.

-이번엔 어떤 곡을 준비했나요?

-본 조비의 ‘you give love a bad name’입니다.

-오, 꽤 과감한 선택을 하셨네요. 사실 서기영씨는 지난번 미션 때도 아슬아슬했죠. 오늘은 어때요? 잘 하실 수 있겠어요?

서기영이 아슬아슬했다고?

아직 데모곡을 들은 게 전부인 나로서는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서기영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후회 없도록 불러보겠습니다.

후회 없도록.

그 말이 참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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