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59화 (59/221)

059. 유명세 (3)

메이킹 필름이 터졌다.

실시간 검색 순위를 장악하며 포털사이트를 휩쓸었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는 앨범 발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대기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았지만, 사람들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떠들어야 할 내용이 산더미였으니까.

음악 영화의 메이킹 필름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연출 퀄리티부터.

단편적으로 들어도 대박의 향기가 물씬 나는 최정아와 오케스트라의 조합까지.

기대감으로 샤워를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메이킹 필름의 최대 수혜자(?)는 따로 있었다.

프로듀서 기로.

메이킹 필름이 공개된 오전부터 꾸준히 언급되고 있는.

순해 보이는 얼굴로 ‘한 번 더’를 외치는 인지 부조화의 주인공.

‘저 프로듀서 대체 누구냐’는 이야기가 돌자 몇몇 사람들이 정이철의 인터뷰 기사를 긁어 왔다.

그가 쓴 맛깔난 기사까지 합쳐지자 장기로의 이미지는 더욱 견고하게 완성되고 있었다.

‘기로’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르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단 하나의 영상이 만든 여러 돌풍 속에서.

최정아의 두 번째 싱글앨범이 공개되었다.

건물 2층에 새로 마련된 아더 레이블의 사무실.

분위기가 산뜻하다.

그럴 수밖에.

지난밤 몰아친 돌풍이 최정아를 차트 꼭대기까지 단숨에 올려놨으니까.

동시에 한울과 레드리시의 음원 성적도 껑충 뛰었다. 그리고 한 번만 뛴 게 아니라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한울, 21위!”

“레드리시, 47위!”

직원들이 무슨 눈치 게임이라도 하듯, 한 시간마다 순위를 외쳐댔다.

“신기하네요.”

불통이 난 전화기와 씨름하던 여직원에게 A&R 김지희가 다가가 말했다.

“정아씨의 컴백이 먼저 나간 한울과 레드리시한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게···이런 경우가 절대 흔한 일이 아닌데. 그쵸?”

여직원이 끄덕였다.

“아마 같은 아더 레이블이고, 장 PD님에게 곡이나 프로듀싱을 받은 뮤지션들로 묶이다 보니까 그런 것 같네요.”

“이게 인지도의 힘인가 봐요.”

“그러게요. 이럴 때 방송 출연 딱 해서 스타 프로듀서로 자리매김하시면 좋을 텐데···싫다고 하시니.”

김지희가 물었다.

“방송 섭외도 들어왔어요?”

“네. 근데 PD님은 이 정도도 부담스러우신가 봐요.”

“하긴···하루아침에 유명세를 탄다고 생각하면, 무서울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흠. 그래도 아쉬워요. 스타 프로듀서 하나가 열 뮤지션 안 부럽다잖아요.”

“그쵸. 뮤지션은 곡을 냈으면 텀이 있는데, 프로듀서는 계속 곡을 내니까.”

둘이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끄덕였다.

마침 3시 정각이었다.

“한울, 19위! 드디어 10위권이에요!”

“레드리시, 45위! 나란히 두 계단 오릅니다!”

직원들이 이젠, 해설 비스무리한 것까지 곁들여 외치고 있다.

#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작업들이 모두 끝났다.

다음날 바로 몸살 기운이 오더라.

몸이 가까스로 버텨왔나 보다.

그렇게 하루 종일 누워있는 와중에도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약을 사러 나갔더니 눈길질이 다반사다.

있지도 않은 사인을 요청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무섭다며 피하는 사람도 있다.

범죄 스릴러 영화 속 반전 악역이 된 기분이랄까.

서재원 팀장이 말한 인지도가 이런 인지도는 아니었을 텐데 말이지.

뭐 결과적으론 음원 차트에도 효과가 있었다는 것 같으니 다행이지.

각 앨범 리뷰란을 가면 내 얘기가 꼭 끼어있는 걸 보면···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럽다가도 그럭저럭 긍정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

이러다 말겠지.

“······.”

곧 사그라들 것이다.

그럴 거야.

그러···겠지?

뭔가 걸쩍지근함을 느끼며 누워있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서재원 팀장이 말한 조건이 충족되었다. 세 앨범 모두 성공시켜 보라던.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탑급 뮤지션이라···.

잠시 TKM 내의 몇몇 이름을 떠올리다가, 이럴 시간에 산더미처럼 쌓인 데모나 듣자는 생각이 들었다.

흣짜. 먼지 쌓인 노트북을 끌어와 옆에 펼쳤다.

이메일에 들어가 파일들을 내려받고, 다시 드러누웠다.

‘쉬는 김에 이거 다 듣고···몸 괜찮아지면 습작도 하자.’

음악을 끝내고, 음악을 한다.

그래도 급한 작업들이 끝나서 그런가, 산더미처럼 쌓인 데모를 보면서도 마음이 편하네.

여유롭게 음악 감상이라니. 퀄리티와는 상관없이 마냥 즐겁다.

휴식과 일의 적절한 조화랄까.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 하겠지만 뭐, 괜찮다. 내 주변엔 그런 사람들뿐이라 위안이 되거든.

지금 당장 윤태영한테 전화하면, 바로 베이스 치고 있단 소리가 나올걸?

달깍. 데모를 틀며 한 가지만 걱정했다.

‘졸린 노래는 없길.’

이 자세면 바로 잠들 거 같거든.

그렇게 커튼 사이로 새어든 빛이 벽을 비출 때부터, 땅거미 지듯 바닥을 쓸고 올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아직까지 확 귀에 꽂히는 목소린 없다고 생각하며 창밖을 보았다. 앙상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 진짜 빠르네.’

그때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노이즈가 톡톡 터져 나왔다.

동시에 굉장히 올드한 피아노 소리가 울린다.

순간 찌릿하다.

그리고 뒤이어 담담하게 말하는 듯한 노래가 들리는 순간.

전기가 오른 사람처럼 몸을 벌떡 일으켰다.

#

“수고하셨습니다!”

참가자들의 허리가 사방으로 접힌다.

스태프들도 수고했다며 한마디씩 하고는 뒷정리에 나섰다.

그렇게 참가자들만 한쪽에 남았다.

“후유, 긴장돼 죽는 줄 알았네.”

안경 낀 남자가 땀을 닦아내며 벽에 기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훈훈한 외모의 남자, 이현재가 피식 웃었다. 그의 쌍꺼풀 없이 쭉 찢어진 눈이 호를 그렸다.

“아직 생방 경연도 아닌데 긴장을 하고 그래.”

안경잡이가 비죽댄다.

“너야 긴장이 안 되겠지. 오늘도 칭찬만 받으셨잖아요.”

“너도 오늘 괜찮았어. 음이탈 한 번 난 거 빼곤.”

“그게 진짜 쫄렸다고.”

“야, 걱정 말라니까. 다른 시즌이었으면 몰라도 이번 시즌엔 그런 걸로 안 떨어져.”

이현재가 목소릴 낮춰서 속삭였다.

“나머지가 수준 낮아서.”

둘은 조소 섞인 웃음을 킬킬대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심사위원석에서 내려온 중년 남자가 뚜벅뚜벅 다가와 이현재에게 말했다.

“오늘도 잘하더라고.”

“앗, 감사합니다.”

언제 조소를 머금었냐는 듯 헤실거리며 인사하는 이현재. 중년 남자는 탐난다는 눈빛으로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시간 날 때 회사로 한 번 와. 구경시켜 줄 테니까.”

“넵!”

깍듯이 인사하자 중년 남자는 주억거리며 세트장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환희에 찬 눈으로 보던 이현재는 옆에 있던 안경잡이를 비롯한 참가자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으며 으스댔다.

“흐흐.”

입이 찢어져라 웃음을 흘리는데, 불쑥 참가자들 중 하나가 신발 끈을 묶고선 출구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이현재가 불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노래도 못 부르면서 폼은 오지게 잡네.”

안경잡이가 말을 받았다.

“서기영? 쟤 지난 시즌이었으면 진즉에 떨어질 실력인데.”

“오늘도 간당간당했잖아.”

“그치. 다음 촬영 때 떨어지는 건 뭐, 확정이라고 봐야지.”

“과묵한 척하는 거 존나 재수 없었는데. 이제 빠이네.”

이현재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

세트장을 나온 서기영은 덤덤하게 오늘 있었던 무대를 회상했다.

발라드 곡 미션.

음역대가 그리 높지 않은 서기영으로선 곡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결국, 키까지 낮춰 불러야 했다. 그나마 계속 지적당했던 창법 문제를 상당 부분 고쳐내어 간발의 차이로 떨어지는 건 모면했지만···.

문제는 다음 미션이었다.

이번엔 피드백이랄 게 별로 없었다.

즉, 고칠 게 없다는 뜻.

보통 좋은 의미로 쓰이지만, 이번의 경우엔 고쳐봐야 의미 없다는 뉘앙스였다.

심사위원들조차 탈락을 확신하는 눈치랄까.

‘모르겠다. 오늘은 그래도 붙었다는 걸 즐기고, 고민은 내일부터 빡세게 하자.’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츄리닝 바지 속에서 불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아 무음···.’

촬영 때문에 무음으로 해놓은 핸드폰에 전화가 들어오고 있었다. 꺼내어 보니 모르는 번호. 지난번에 지원한 알바 자리인가 싶어 얼른 받았다.

“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메일 보내신 거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제가 지원을 너무 많이 해놔서 그런데, 혹시 어디시죠? 카페인가요? 아니면 헬스장?”

-네?

“아, 그럼 피시방인가요?”

-아뇨, 여기 아더 레이블입니다.

잠깐의 정적.

“아더 레이블? 아더···.”

마침 지나가는 버스를 서기영은 그냥 보냈다. 당황해서.

이제 연락이 온다고?

침을 삼켰다. 울대가 방지턱을 넘는 것 마냥 출렁거린다.

“어, 혹시 기로 프로듀서님 계시는-.”

-네 맞아요.

그렇구나. 진짜 아더 레이블···.

근데, 지금 통화하는 사람 목소리가···.

서기영은 설마 하며 물었다.

“···혹시 한 번 더, 라고 말해주실 수 있나요?”

-네? 아, 네 뭐···한 번 더.

“왘!”

#

데모를 듣자마자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사실 1분 37초. 여기까지 듣고 그냥 걸어버렸다.

이런 건 또 처음이네.

레드리시야 누군지 아니까, 목소리만으로 확신을 갖고 연락을 했다면.

이번엔 느낌이 많이 다르다.

건반 하나에 담담하게 말하듯 부르는 목소리가 완벽히 내 취향이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끌린 건 아니었다.

듣는 순간 뭐랄까···.

과장 좀 보태서, 자신의 멜로디를 부르는 가창자를 보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딱 맞는 노래를 부르는 데모의 주인공, 서기영.

제목에 적힌 ‘자작곡’이란 글씨를 보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 통화로 확인해 보니 버스가 이미 떠났다. 젠장.

서기영은 현재 UBC에서 방송 중인 <오디셔닝 시즌8>에 출연 중이었다.

나한테도 출연 제의가 들어왔었던 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전화를 끊고 다시 벌러덩 누웠다.

“···으어.”

아무래도 내가 음악 말고도 사람 모으는데 취미가 들렸나 보다. 레이블의 영향인가. ‘내 사람’을 만들고 싶다는 소유욕 같은 게 자꾸 생기네.

‘분명히 다른 기획사에서 확 채갈 텐데···.’

아쉽다, 아쉬워.

그때 전화가 울린다. 일정을 관리하는 여직원이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쉬시는데 죄송하다는 말부터 들려온다.

푸흐,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런데 왜요?”

-아, 다른 게 아니라. 방금 UBC에서 또 전화가 와서요. 이번엔 아예 거기 PD님이 전화하셨더라고요. <오디셔닝> 특별 심사위원으로 출연하실 생각 정말 없냐고···.

“······.”

-역시 싫으신가요?

“그으게···.”

몸을 또 일으켰다.

#

“뭐라셔요?”

김지희의 물음에 여직원이 눈을 깜빡였다.

“하시겠다는데요?”

“엥···?”

“멀까요, 갑자기.”

어리둥절한 여직원의 말에 김지희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묘한 눈을 빛냈다.

“그런 걸지도.”

“어떤 거요?”

“연예인병. 유명세에 맛 들이신 거죠, PD님 젊으시니까.”

“네에?”

“풉. 그건 좀 아닌가.”

“PD님 성격상···그럴 것 같지는···.”

“않죠.”

“네.”

끄덕이던 여직원이 갑자기 피식 웃었다.

“이렇게 된 거, 코칭을 좀 해야겠어요.”

“어떻게요?”

“이번에 컨셉 제대로 생겼잖아요. 그거 밀고 가야죠.”

“그···투페이스?”

“한 번 더 빌런.”

“다 좋은데 안 좋아.”

둘이서 주고받으며 끅끅댔다.

“아 이러다 엄청 유명해지시면 어떡하죠?”

“좋은 거 아녜요?”

“그쵸. 그렇긴 한데, 그러면 매니저를 한 명 붙여드려야 하나···.”

“아, 저는 PD님 방송 때 뭘 입고 나가면 좋을지부터 생각해봐야겠네요.”

작당 모의가 한동안 계속 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