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58화 (58/221)

058. 유명세 (2)

셔츠 단추를 잠그며 밖으로 나왔다.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아까 보던 SNS를 마저 확인했다.

그새 댓글이 더 달렸네. 계속 밀어 올리는데 댓글이 끝도 없어.

-앨범 5개를 연속으로 성공시킨 프로듀서가 있다길래 찾아왔습니다.

-헐, ‘봄이올까요’랑 ‘기억애’ 작곡가가 같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플로라 곡도 프로듀서님 손을 거쳤다니···.

-요즘 뭐만 하면 천재래.

-지금까지 성공시킨 곡들만 봐도 천재인 건 맞지 않음?

-근데 천재치고 너무 평범하게 생기셨어요. 그래서 더 호감이 가네요 ㅋㅋㅋ

-맞음. 천재에 대한 편견을 깨주심ㅋㅋ 천재 하면 떠오르는 예민함이 1도 안 느껴짐.

정이철 기자가 다분히 의도한 듯한, 천재라는 이미지 메이킹. 불특정 다수의 주목을 받는 게 생각보다 훨씬 부담스럽다. 그 와중에 외모 지적은 당황스럽고···.

‘그렇게 밋밋한 얼굴인가···.’

그래도 전철 한 번 타면 세 번쯤 보는 얼굴은 좀 심한데?

얼떨떨한 기분으로 카페에 들렀다.

프라프치노를 한 잔 시키고서 가만히 기다리는데 어쩐지 옆 통수가 따끔거린다.

돌아봤더니 어떤 남자가 날 힐끔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사람과 맞나 비교하는 모양새로.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히려 남자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성큼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하길래 나도 어색하게 마주 인사를 했지.

그리고 고개를 드는데 불쑥 봉투 하나가 나타났다. 뭐야, 소름 돋게. 설마 팬레터···.

“제 데모 CD예요.”

“와, 다행···.”

“네?”

“아, 아닙니다.”

“노래 정말 잘 듣고 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기가 차네. 카페의 다른 사람들은 내가 누구길래 저러나 싶은 표정들이다. 다행이지. 여전히 날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게.

얼른 CD를 받아들고, 프라프치노까지 확보해서 사무실로 올라왔다.

2층은 며칠째 부산하다. 이번에 인력을 더 뽑으며 책상 등의 사무용품들이 추가로 들어온 탓이었다.

아침에 메시지를 보내온 여직원에게 다가서자 그녀가 빙긋 웃었다.

“SNS 보셨어요?”

“네···.”

“대박이에요. 하루 사이에 SNS 팔로워가 만명 가까이 늘었어요.”

“아니, 인터뷰 기사 하나 났다고 어떻게···.”

“그동안 PD님을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특히 작곡 관련 커뮤니티에선 지금 PD님 얘기가 9할이던데요?”

고무적인 표정의 여직원을 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프라프치노의 달짝지근함이 남아 있다.

‘그래, 뭐 사람들이 너도나도 알아보는 것도 아니고···.’

이 기회에 프로듀서로서 인지도도 올리고 입지도 다지고, 아예 다 해보지 뭐. 언제 팍 사그라들지 모를 관심이니까.

체념한 듯한 내 표정을 보며 여직원이 웃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일정 확인을 독촉했고.

“일단 레드리시 홍보영상이 역시나 반응이 뜨거워요. 레드리시의 미국 진출까지의 과정이 워낙 드라마틱하다 보니, 애초에 짜고 치는 거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여직원이 패드를 건네며 으쓱거린다.

“대부분은 영화 같단 반응들이에요. PD님이 핸드폰으로 찍어서 망정이지 카메라로 각 잡고 찍었으면 애매해질 뻔했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대부분 학준이 형의 방송 출연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있는 기억을 콱콱 쥐어 짜내어, 도움이 될만한 방송들을 솎아냈다.

시청률이 높았거나, 화제성이 좋았거나 하는 방송들 위주로.

새로 온 직원들은 프로듀서가 뭐 저런 것까지 검토하나 싶겠지만, 사실 프로듀서니까 이러는 거지. 작곡뿐만 아니라 뮤지션의 모든 면을 살펴야 하는 게 프로듀서니까.

게다가 학준이 형은 내가 끌어온 사람이잖아. 책임감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이상입니다.”

여직원이 싱긋 웃으며 말을 마쳤다.

끄덕이며 패드를 마저 훑는데 이상한 항목이 걸렸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별 심사? 학준이 형이?

“이건···.”

내 반응에 목을 쭉 빼고 패드를 본 여직원이 손뼉을 친다.

“아, 맞다. 그건 한울씨꺼 아니에요.”

“그럼요?”

“PD님한테 들어온 거예요.”

“네?”

“장 PD님이요.”

나한테 들어온 방송이라고?

멍하니 쳐다보자 여직원이 쿡쿡대며 웃는다.

“방송국 작가라는 분한테 연락 왔었거든요. PD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방송 출연?”

#

내가 지금 방송 출연을 논할 땐 아니지.

당장 최정아의 녹음을 준비해야 하거든.

그래서 일단 싫다고 했다. 녹음 때문이야. 암, 녹음 때문이지. 무서워서가 아니라.

오늘은 콘서트홀이 아닌, 3층 녹음실에서 녹음이 이루어진다. 그녀의 목소리만 따로 따기 위한 녹음.

작업실에서 준비하다가, 시간 맞춰 올라갔다. 최 기사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녹음실에 카메라 설치가 한창인 방송팀.

‘아, 메이킹필름···.’

최정아의 앨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낱낱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이 영상은 짤막한 예고편 형식으로 SNS 등에 풀릴 거고, 풀 버전은 컴백 날짜에 맞춰 포털사이트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좋은 홍보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막상 내 앞에 카메라들이 있으니 꽤 불편하네.

녹음 중에도 카메라가 계속 돌 생각을 하니 왠지 부담된다.

‘이래서 디렉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물 한잔을 가득 담아 자리에 앉았다. 문득 옆에 있는 최 기사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설마 모자···.”

“아, 이거? 푸흐흐. 그래, 머리 없는 거 숨길라고 썼다.”

순순히 인정하는 최 기사.

신기한 건 모자를 썼어도 티가 난다는 거다. 물론 그걸 굳이 말해주진 않았지만.

이윽고 최정아가 도착했다.

그녀가 목을 푸는 동안, 나와 최 기사도 녹음을 위한 점검을 마무리 지었다.

“일단 1줄부터 차례대로 녹음하자.”

그렇게 디렉과 함께 녹음이 시작되었다.

카메라가 돌고 있단 생각은 어느새 의식 뒤편으로 넘어가 버린다. 오로지 녹음에만 집중했다.

최정아가 목소릴 내자,

“이야···.”

최 기사가 첫 소절부터 감탄한다.

그가 발을 굴러 의자를 내 옆으로 붙였다.

“진짜 잘 부르네. 장 PD가 작업하는 가수들은 볼 때마다 실력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 같어.”

“푸흐, 그래요?”

“그렇다니까?”

오바스럽게 말하는 최 기사에게서 시선을 떼고 최정아를 응시했다. 그리고 악보를 보았다.

도입부. 이 곡에서 가장 낮은 음역대의 파트. 하지만 그 옆엔 악필로 이렇게 적혀 있다.

[작게 부르지 않을 것.]

이걸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최정아가.

낮게, 도입부스럽게. 하지만 결코 작지 않게.

이로서 그녀의 노래가 갖는 다이나믹이 무궁무진해진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기에 저런 감탄이 나오는 거지.

지금의 최정아는 정말 벽 하나를 넘어선 느낌이네.

뿌듯함이 차오른다. 그리고 기대된다.

이 앨범이 세상에 나왔을 때, 최정아를 반짝스타라고 손가락질하던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좋네.”

하지만···.

-정아야, 한 번 더 해보자.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알잖아. 더 좋아진다는 걸. 그걸 알고 어떻게 만족할 수 있겠어.

“정아야, 이거 너무 좋았거든? 일단 킵하고 한 번 더 부르자.”

-네!

토크백에서 손을 떼자 최 기사가 묻는다.

“킵 안 할거지?”

“넵.”

“또 시작이구만. 내가 고스톱도 못 치는 사람인데, 이거 덕에 도박하는 기분을 느낀다니까···.”

“후후.”

“방금 그 웃음 너무 사악해 보였어.”

다시 녹음이 진행된다.

반복, 또 반복.

그때마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토크백을 눌렀다. 그리고 한 번 더! 를 외쳤다.

“일단 이거 킵하고, 한 번 더 가자. 컨디션 보니 더 좋은 거 나오겠다.”

옆에선 최 기사가 만족을 모른다며 중얼거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도 최 기사고, 그리고 최정아도 녹초가 되었을 때쯤, 마침내 녹음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아···.”

최정아가 비척대며 밖으로 나온다.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밖으로 나섰다.

방송팀은 여전히 부산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때 스태프 중 한 명이 쭈뼛거리며 다가온다.

“PD님, 메이킹필름에 쓰일 인터뷰가 필요한데 혹시 해주실 수 있나요?”

“인터뷰요?”

“네. 간단한 질문에 답해주시면 됩니다.”

들어보니 관계자들은 모두 했다는 것 같았다. 나도 별생각 없이 끄덕였다.

“네, 그런 건 해드려야죠. 정아 일인데.”

#

UBC 방송국.

“윤 PD님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친 이들이 인사를 해왔다.

윤 PD는 입가에 고슬고슬한 미소를 머금고 끄덕이며 팀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곳엔 이미 작가들과 조연출이 빨래인 양 늘어져 있다. 찍고있는 방송이 거의 막바지였기에 다들 체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중이었다.

“오셨어요···.”

“뭐 좀 찾았어?”

서 작가가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주문을 확인하는 점원처럼.

“특이한데, 신선한···심사위원이요?”

끄덕이는 윤 PD에 서 작가는 고개를 저으려다가 멈칫하며 말을 이었다.

“아, 요새 인터넷에 자주 언급되는 아더 레이블 프로듀서가 있길래, 거기 연락은 해뒀어요. 답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아더 레이블 프로듀서?”

“네. 기로라고 이현, 최정아, 플로라 이렇게 다섯 앨범을 연속으로 터트린 프로듀서예요. 사람들이 엄청 궁금해했는데, 마침 정이철 기자가 인터뷰를 했더라고요.”

“···그래?”

윤 PD의 눈이 자그맣게 반짝였다.

그때 끝에서 엎드려 노트북을 하던 조연출이 몸을 일으켰다.

“어, 최정아 메이킹 필름 올라왔어요.”

이에 서 작가가 반응했다.

“그거 예고편 뜨면서부터 아주 난리던데. 오늘 컴백이지? 아 맞다, 아예 최정아를 부르는 건 어때요?”

서 작가의 의견에 윤 PD가 미간을 좁혔다.

“SNS 스타로 이미지 굳힌 애를 심사위원으로?”

“좀 그런가···.”

“차라리 그 사람 얘기 더 해봐. 아더 레이블 프로듀서라는.”

“뭐 딱히 없어요. 천재 프로듀서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정도?”

그때 마우스를 달깍거리던 조연출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프로듀서가 이 메이킹 필름에 나오나 본데요?”

“그래?”

“네, 댓글에 반이 기로 프로듀서 얘기네···.”

윤 PD가 조연출 뒤로 다가섰다. 서 작가를 비롯한 다른 작가들도 천천히 모여들었다.

마침 조연출이 메이킹 필름 영상을 튼 시점이었다.

최정아가 반주 없이 ‘기억애’의 후렴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절정의 순간에 무대의 조명이 툭 하고 꺼져버린다.

이윽고 절전된 화면에서 새로운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 깔리는 옅은 선율들.

가볍게 감아쥔 활을 비춘다.

곧바로 검은 옷자락들이 스치듯 지나가고.

탁, 하고 켜진 하나의 조명 위로 은빛 지휘봉이 허공에서 멈춰선다.

지휘봉이 내리그어지며 화면이 밝아진다.

그리고 그 순간, 최정아의 목소리와 수많은 선율들이 다 함께 튀어나오며 화면은 다시 검게 물든다.

“워···.”

“이건 며칠 전에 공개된 예고편 그대로 썼네.”

“전 처음 보는데, 난리 날만 했네요.”

“그치 무슨 영화 예고편인 줄.”

이다음부턴 그냥 다큐멘터리 형식이었다.

최정아를 주인공으로 한.

노래를 연습하는 최정아와 차근차근 진행되는 앨범 준비.

하지만 화면전환이 속도감 있고, 연출이 수려해 지루함을 느낄 새는 없었다.

윤 PD 조차도 낮게 감탄하며 10분이 넘는 영상을 미동도 않고 볼 정도였으니까.

영상 끝자락에 다다라 최정아가 마지막 녹음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웬 모자쓴 아저씨와 어린 청년이 디렉을 보고 있었다.

서 작가가 청년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 기로 프로듀서예요.”

“···되게 젊네?”

윤 PD가 팔짱을 풀고, 무릎에 손을 얹으며 얼굴을 가까이 했다.

“뭐 저렇게 순둥순둥하게 생겼···.”

-한 번 더.

“······.”

-한 번 더 가자.

-정아야. 지금 너무 좋거든? 그러니까 한 번 더 가자.

“······.”

-좋아, 한 번 더.

눈들이 껌뻑인다.

이 짧은 순간에 프로듀서의 입에선 ‘한 번 더’가 몇 번이나 쏟아진 걸까.

“아니, 너무 좋은데 한 번 더, 는 너무한 거 아니냐고···.”

구석에 찌그러져있던 막내 작가가 본인이 서러운 듯 중얼거렸다.

그 사이, 화면은 인터뷰 장면으로 전환 되었다.

최정아에 대해 아낌없는 칭찬을 쏟아내는 관계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로듀서가 질문을 받았다. 한 소절을 수십 번씩 반복해서 녹음하는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프로듀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한다.

“더 잘할 수 있으니까요.”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순둥순둥한 마스크로 저렇게 웃으니 정말 온화하다. 저렇게 따듯할 수가 없다. 좀전의 ‘한 번 더’를 외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

“······.”

메이킹 필름이 끝났다.

조연출이 휠을 굴렸다.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이 위로 올라온다.

-뭐죠. 왜 프로듀서는 한 명인데, 두 명을 본 것 같죠?

그걸 본 윤 PD가 마침내 허리를 폈다. 개운한 얼굴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특이하고···신선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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