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57화 (57/221)

057. 유명세 (1)

완성된 음원을 확인한 레드리시가 환희에 찬 표정으로 돌아가고.

나는 작업실에 홀로 앉아 숨을 골랐다.

머릿속이 더부룩하다. 얼른 이걸 소화 시켜야 했고, 뇌를 굴렸다.

뭐였더라···그래, 능력.

능력이 잠깐 변했었지.

멜로디가 바뀐 건 아니고, 들리는 음들이 살짝 늘어났었어.

신기한 건, 내가 추가한 음까지 그대로 들린다는 거였다.

작업실 안을 서성이며 고민해봤다. 이건 아무리 예민하게 굴어도 나쁜 일로는 느껴지지를 않네.

꼭 정답을 공개해준 것 같단 말이지. ‘네가 만든 라인이 정답이었어’라고 말해준달까.

이렇게 생각하니 어느새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내가 제대로 멜로디를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한편으론 궁금해졌다.

이 능력의 끝은 어디일지.

그 끝에서 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위치에 있을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곡들을 썼을지.

#

TKM 사옥.

박 팀장은 홍보팀 이 과장을 옆에 달고,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든든한 포만감이 그의 걸음을 어기적거리게 했다.

하지만 그 걸음이 어느 순간 우뚝 멈춰섰다.

몹시 불편한 표정으로 눈을 움직이는 박 팀장.

“······쟨 또 왔네.”

“누구요? 누···아, 장 피디?”

이빨에 낀 들깨 때문에 츱츱 거리던 이 과장이 그의 시선 끝에 걸린 청년을 보며 말했다.

“장 피디야 자주 올 수밖에 없죠. 한울 대박 터지자마자 바로 또 다음 거 준비한다던데.”

“···대박은 무슨. 언제부터 TKM이 음원 차트 중간에 걸쳐 있는걸로 대박 취급을 했어?”

“30위권인데 중간은 아니죠. 그리고 진짜 대박인 건 따로 있고요.”

이 과장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반박하자, 박 팀장이 심통진 얼굴을 기울인다.

“진짜 대박? 그게 뭔데?”

“방송 섭외가 아주 난리예요. 오죽하면 아더 레이블 통화 중이라고 저희 팀한테 전화를 그렇게 한다니까요? 같은 TKM 아니냐면서.”

“···에라이.”

“그러고 보면 장 피디는 어떻게 인지도도 없는 신인으로 저렇게 빵빵 터트리는지···.”

이 과장이 덧붙였다.

“우리 팀장님이 허구한 날 홍보 천재를 음악한테 뺐겼다고···아, 형님 알았어요. 얘기 안 할게.”

뜨끈한 시선에 이 과장이 웃으며 손사레를 쳤다. 그 모습조차 얄미운 박 팀장은 입매를 비틀었다.

“이제 운빨 떨어질 때도 됐어. 쟤 다음이 누구지···어, 그래. 그 외국 놈 앞에서 바람 잡았다는 그 밴드잖아?”

“앤 더글라스를 외국 놈이라 부르는 사람은 형님밖에 없을 거예요.”

“앤이고 나발이고.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앨범 하나 없는 인디밴드가 곧바로 음원을 성공하는 건 불가능하지.”

단언한 박 팀장이 주문이라도 외듯 중얼거린다.

“내가 본 적이 없다고. 그런 경우를.”

#

“꿈을 꿨어요.”

호프집.

주백색 조명이 흔들거린다. 그 아래 있는 유지은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찰랑댄다.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빨간 입술을 뗐다.

“···?”

나를 비롯한 이병국과 기성운이 그녀의 입만 바라봤다. 입술이 다시 움직인다.

“새하얗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어.”

초점을 잃은 연갈색 눈동자가 정처없이 떠돌다 마침내 나를 향한다.

“거기가 어디였는 줄 알아요?”

“어디였는데요?”

“리뷰란.”

“······.”

맥이 탁 풀렸다. 뭔가 했네.

“얘 또 이러네.”

이병국은 고개를 내저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뒤이어 나도 어이가 없어 웃었고.

유일하게 기성운만 진지한 얼굴로 턱밑을 만졌다. 방금 ‘예지몽일지도’라고 중얼거린 것 같은데?

유지은이 곧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다그치듯 묻는다.

“악플조차 안 달리면 어쩌죠?”

“악플만 달리면 어떨 것 같아요?”

갸웃거리며 되물었더니.

곰곰이 생각하고는 사납게 말꼬릴 올린다.

“···고소해도 되나요?”

“거봐요.”

그제야 유지은이 조금 진정된 얼굴로 안주를 집어 먹기시작했다.

후우.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나도 긴장되긴 마찬가지.

‘이 상황이 언젠 긴장 안 됐냐만···.’

레드리시의 미래가 바뀌었다는 생각에 더 묵직하다.

원래는 앨범 한 장 내지 않고 미국으로 갔던 레드리시였는데.

지금은 한국에서 앨범을 먼저 내게 되었다.

지금 당장 큰 성과를 못 내더라도 미국 진출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생각을 곱씹는 사이에도 시계는 부지런이 움직였다.

마침내 시간이 됐다.

나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었고.

레드리시도 각자의 핸드폰을 들었다.

검색하자 그들의 앨범이 나타난다. 그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운 얼굴들이다.

강렬한 빨간색이 얹어진 앨범 자켓.

수록곡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나는 리뷰란부터 확인했다.

가장 빠르게 반응을 볼 수 있는 곳이니까.

‘새하얗고 뭐...?’

꿈은 역시 반대다.

빠른 속도로 리뷰란에 댓글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악플도 없다. 전부 노래가 좋다는 얘기들로 도배가 되고 있다.

‘고소 안 해도 되겠네.’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엄지로 새로 고침을 두드리는 세 사람이 보인다.

입꼬리가 승천을 하고 있네. 그걸 보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반응은 계속 늘어날 거니까 좀 모아서 보고, 한잔하죠.”

화면에 눈이 끈덕지게 붙어있던 세 사람이 맥주잔을 들었다. 나도 옆에 있는 잔을 들어 맞부딪혔다.

시원하게 쭉 들이키는데 유지은이 말을 걸었다.

“감사해요. 피디님.”

“뭐가요?”

“저희 뽑아주신 거요. 제 만원이를 잃게 한 거 용서해드릴게요.”

“···그래줘서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요?”

저 만원은 대체 언제까지..

유지은이 배시시 웃는다.

코끝을 긁적이며 말했다.

“여러분도 수고했어요.”

“넴! 그럼 저희 앨범 나왔으니 이제 활동 시작하는 거죠?”

끄덕이자 신이 오른 유지은이 말을 잇는다.

“뭐부터 해요? 혹시···막 페스티벌도 가고 그러나요? 지산이라던가···.”

“오, 그것도 괜찮겠네요.”

“진짜요? 와, 그게 저희 꿈이었거든요!”

신이 나서 이병국을 퍽퍽 때린다. 이병국은 다시 핸드폰에 정신을 뺏겨, 통증을 못 느끼는 듯하고.

“지산으로 되겠어요? 해외 페스티벌도 가고 그래야지.”

“에이, 그건 너무 크잖아요. 일단 차근차근히 우리나라부터 하다 보면···흐흐.”

꿈에 부푸는 유지은을 보며 입이 근질거렸다.

얼른 얘기해주고 싶은데, 아직 확정된 게 없으니···.

그렇게 또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새벽 1시.

“차트 나왔겠네요.”

내 말에 세 사람이 그대로 멈췄다.

“하하···.”

“설마 차트까지 들었으려고.”

“그치? 우리 첫 앨범이잖아.”

“그래도 한 번 볼까?”

이병국이 비장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올린다. 저 핸드폰이 무슨 성배쯤 되어 보인다.

그때 내 핸드폰이 덜덜하고 진동했다. 다들 긴장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랐지.

핸드폰 집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먼저 확인하고 있어요.”

“아닙니다! 피디님 오시면 확인할게요.”

이병국이 떠받들고 있던 핸드폰을 다시 내려놓는다.

빙긋이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속은 미친 듯이 벌렁거린다.

차트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핸드폰에 뜬 이름을 보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진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오랜만이에요. 저 브랜이에요.

“네, 알고 있습니다.”

-연락 너무 늦었죠?

“하하, 아닙니다.”

말하면서도 머리가 뱅글뱅글 돈다.

저 뒤에 뭐가 나올까, 마른 침을 연신 삼켰다.

-뭐, 어쨌든. 제가 설레발 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좀 오래 걸렸어요. 테스트로 얘기했던 코첼라. 확정됐습니다.

얘길 듣자마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이걸로 모든 게 잘···.

-그리고 계약서 보낼게요.

“네?”

-바로 계약하죠.

뭐지? 코첼라를 테스트로 삼는다는 거 아니었나?

벙벙해하는 그때 브랜의 한마디가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앨범 잘 들었어요.

*

“피디님!”

유지은이 손을 펄럭였다. 얼른 와보라는 듯이. 다가가자 보글보글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놀라지 마요. 저희···!”

나 오면 확인한다더니. 벌써 봤나 보네.

그리고 저렇게나 신이 난 걸 보면···.

“차트 안에 있어요. 91위!”

“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건 나에게도 의외였다.

동시에 어떤 가능성이기도 했다.

레드리시가 이번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눈앞에서 환호하는 레드리시를 바라보며 잠시 기다렸다. 이제 근질거리는 거 안 참아도 되겠지. 확실해졌으니까.

“저도 좋은 소식 가져왔는데.”

차분한 목소리를 내려 했는데 잘 안되네.

들뜬 마음에 성대가 벌컥벌컥 걸려.

“코첼라 페스티벌에 가게 됐어요.”

내 말을 들은 세 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코첼라? 그거 캘리포니아에서 하는 페스티벌 아녜요?”

“누가 간다는 건데요?”

“···설마, 우리가 가요?”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걸 본 유지은이 재차 확인해왔다.

“우리···놀러 가는 거예요?”

“기껏 데뷔했는데 놀러 갈 시간이 어딨어요.”

“그쵸···근데 간다고요? 코첼라에? 미국에? 그럼 우리 일하러 가는 거예요? 무대에 서요!?”

연달아 쏟아지는 유사 질문들에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마다 유지은을 비롯한 멤버들의 표정이 붕붕 뜬다.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미국 투어를 하게 될 거예요. 앤 더글라스와 함께.”

내가 말했다.

환호성은 없었다.

대신 그것보다 더 극적인 표정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

<아더 레이블, 턴투더 레이블과 손잡고 미국 진출···!>

<앤 더글라스가 소속으로 있는 턴투더 레이블에 대하여···>

<미국 진출을 하게된 레드리시는 어떤 밴드?>

<레드리시, 한국 뮤지션 중 최초로 내년 봄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에 선다···!>

“차트 순위 올라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덩달아 한울까지 올라가더라고요.”

“뭐, 그런 경우가 있어?”

“프로듀싱한 사람이 같잖아요.”

“아무리 그래도···아니 근데 그 기로란 프로듀서는 지금 한 달 사이에 두 앨범을 낸 거야?”

“준비야 더 이전부터 했겠지만, 결과적으론 그렇죠?”

“무자게 공격적이네.”

자판기 앞에 모인 기자들의 대화를 들으며 채연주가 웃었다. 같이 걷던 정이철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걸로 공격적이다고 하면 어쩌나.”

“네?”

“그 친구, 다음 달에도 곡 하나 낸데.”

“···!”

채연주가 뜨악한 표정으로 정이철을 보았다.

“누, 누구 곡이요?”

“그건 안 알려 주더라.”

“와, 기로씨 뭐 몸이 두, 세 개 되나? 분신술이라도 쓰는 거 아녜요?”

“미친 듯이 일만 하는 타입 같긴 하던데.”

주억거리는 정이철에게 채연주가 묻는다.

“근데 인터뷰는 언제 올리실 거예요? 한지 꽤 됐잖아요?”

“오늘 올리려고. 지금이 딱 적기 같아서.”

“그렇긴 하겠네요. 이번 일로 기로씨에 대한 언급이 훨씬 늘어났고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으니···.”

채연주가 넌지시 물었다.

“이번엔 컨셉이 뭐예요?”

정이철은 인터뷰한 사람의 캐릭터성을 파악하고, 그걸 화제성 있게 기사에 녹여내는 거로 유명했다.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그가 ‘이번에?’라며 말문을 열더니 이내 입매를 올렸다.

#

오랜만에 늘어지게 잤다.

한울에 레드리시까지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나 보다.

대체 몇 시야···.

베개 속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찾았다.

레이블 여직원에게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아더 레이블 공식 SNS를 보라고?’

갸웃거리며 핸드폰을 뒤적였다.

가장 윗 게시물에 인터넷 기사가 링크 걸려 있었다.

들어가 보니 낯익은 사진이 떡하니 나온다.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척(?)을 하고있는 나였다.

정이철 기자와 했던 인터뷰가 이제 올라왔나 본데···헤드라인 상태가?

<천재 프로듀서 기로, 그의 영감에 대하여···>

“기어이 이런 식으로 썼네.”

천재 프로듀서라니.

기자들이란···.

이때 까지만 해도 별 대수롭지 않았다.

태연하게 기사를 읽고 별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후, SNS로 돌아왔고.

그제서야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뭐야···.

‘댓글이 뭐 이리 많이 달렸어?’

생각보다 나에게 너무 많은 관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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