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56화 (56/221)

056. 타석에 선 타자들 (2)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이번 방송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오히려 더 높아졌지. 티비를 보던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넘어와 여운을 쏟아내기 시작했거든.

-본인이 중간에 가수 준비 중이라고 밝혔는데도 아무도 안 믿는 거 너무 웃겼다ㅋㅋ 표정 너무 억울해 보였음.

-그것도 웃겼음. 음치로 지목당했는데 오래 버텼다고 좋아하는 거.

-그리고 노래로 찢었지.

-엄청 잘하긴 하더라고요. 패널들이 전혀 오바하는 것처럼 안 보였어요.

방송이 화제가 될수록 학준이 형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심지어는 자신을 전 직장 동료였다고 소개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분 우리 회사 대리님이었어요. 갑자기 음악 한다고 관두셨는데, 티비에 나와서 깜짝 놀랐네요.

지금 회사에서 다들 대리님 얘기 중이에요. 대리님한테 맨날 노래시키고 괴롭히던 과장님만 아무 소리 안 하는 중.

가수 아무나 되냐고 뭐라 했었다던데, 우리가 대리님 얘기만 꺼내면 불편한 표정이네요.]

-이래서 사람 일 모름. 입조심 해야지.

-근데 솔직히 가수 준비 중인 게 사실이라 해도 앨범 나와 봐야 아는 거지. 막상 냈는데 망해버리면 과장이 맞는 말 한 거 아님?

-ㅇㅇ 저기 나와서 홍보할 정도면 소속사도 어디 듣보잡일 거 아님. 과장이 걱정할 만함.

-아더 레이블이라는데요?

-????

-아더 레이블의 한울이래요! 방금 앨범 티저까지 올라왔음!

-아더 레이블이면 TKM이잖아. 듣보잡 소속사라고 했던 애 어디갔냐?

보도자료를 흘리자 게시판은 기름을 부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바람대로 앨범 공개 일까지 꾸준하게.

그리고 마침내, 싱글곡 ‘Daybreak’가 공개되었다.

“반응이 괜찮아.”

소파에 느긋하게 기댄 서재원 팀장이 말하고 있다. 한쪽 손에는 패드를 들고서.

그가 탁상 위로 패드를 천천히 내려놓더니 시선을 내게로 돌린다.

“네 숙성 회 맛도 좋았지만, 방송의 영향도 톡톡히 봤어. 이 프로가 이렇게 뜰 줄이야.”

“그래서인지 음악 관련 방송보다 예능국에서 더 많이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내가 웃으며 답하자 서재원 팀장도 입꼬릴 올렸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보통 이 정도가 되면 선구안이 좋다고들 하지.”

순간 찔끔했다.

갑자기 이 프로그램을 고른 이유에 대해 물어볼까 싶어서.

그냥 결과만 알고 답을 체크한 거라 풀이 방법은 모르는데···.

다행히 서재원 팀장은 아무렇지 않게 다음 얘기로 넘어갔다.

“홍보팀 말로는 인터넷에 자네 얘기가 꽤 많이 올라온다더군.”

내 얘기···.

나도 반응을 확인하느라 자연스레 몇 개 보긴 했다.

여러 장르를 섭렵하는 프로듀서라느니, 타율 100% 프로듀서라느니···심지어는 천재라는 말까지. 낯뜨거운 칭찬들이 대부분이라 부담스러웠지.

“계속 신비주의로 갈 게 아니라면, 대중에게 노출될 만한 활동도 하는 게 좋겠어.”

“···?”

“그게 자네를 홍보하는 수단이 될 테니까. 그런 것들이 쌓여서 커지면 자네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도 있어.”

무슨 얘길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간단히 말하면 이름값을 올리라는 얘기.

그러면 확실히 실패할 확률을 낮출 수 있겠지. 나를 믿고 듣는 사람들도 많아질 테니까.

뭐, 확실히 도움이 되긴 할 텐데···.

‘시그니처 사운드라도 앞에 넣어야 하나?’

기로이-. JGR-.

영 아닌데···.

그때 서재원 팀장이 불쑥 물어왔다.

“앞으로 발매될 곡이···두 곡 남았지?”

“네.””

끄덕이자 그가 잠시 뜸을 들인다.

“그것까지 모두 괜찮은 성적으로 마무리되면, 그땐 장 작가 커리어에 도움이 될만한 걸 준비해두지.”

“도움 될만한 거요?”

“그래. 그 정도면···.”

그가 옅게 웃었다.

“탑급 뮤지션하고도 작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

[‘누음소’ 의 실력자, 한울. 전격 데뷔!]

[발매 후 한 시간 만에 52위로 차트 인을 달성하며 성공적인 출발···!]

[유쾌한 모습에 여러 방송에서도 주목. 새로운 예능 블루칩 탄생하나?]

[아더 레이블의 순조로운 시작을 이끈 프로듀서 기로···]

‘또···?’

모니터에 뜬 기사를 드륵드륵 내리던 사운드베리 기자 정이철이 턱을 괴고 고민을 이어갔다. 다리까지 달달 떨며.

그렇게 한참을 부산하게 움직이던 그가 뒤쪽을 힐끔 보더니, 벌떡 일어나 자판기 앞으로 향했다.

정처를 잃은 손가락이 휘휘 돌아가다 탄산수를 눌렀다.

덜컹. 음료를 집어 들고 곧장 자신의 자리를 지나쳐 누군가의 앞에 선다.

갈색 머리가 노트북에 들어갈 기세인 후배 기자.

고심 끝에 뽑아온 탄산수를 올려놓자 그녀가 슬쩍 보다니 말한다.

“어, 선배 고마워요. 저 지금 한울 기사 작성 중이라······.”

타자를 두드리느라 바쁜 그녀에게 정이철이 은근히 말을 꺼냈다.

“연주야. 그 있잖아, 너 기로 프로듀서랑 안면 좀 있다며.”

그제야 채연주가 노트북에서 시선을 뚝 뗐다. 짙은 쌍꺼풀이 정이철을 향한다.

“그런데요?”

“근데 넌 TKM이랑 얽힌게 많아서 인터뷰 요청하는 게 애매하다며.”

“그랬죠?”

채연주의 눈이 가늘어진다. 뭘 말하러 온 건지 알겠다는 표정.

“지난번에 제가 넘겨드린다고 할 땐 신인 프로듀서 인터뷰 받아서 뭐하냐고 그러시더니?”

“큼큼. 그치.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생각보다 금세 유명해질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 그리고 어차피 유명해질 거면 그 신호탄을 우리가 쏘는 게 낫지 않겠어?”

진지한 눈을 빛내며 말하자, 채연주가 천천히 끄덕였다.

“잠시만요. 연락해볼게요.”

“어, 어. 나 자리에서 기다린다?”

그녀가 핸드폰을 들자 확 밝아진 얼굴로 자리로 돌아가는 정이철.

한편, 채연주는 통화목록 상단에 있는 장기로를 찾았다.

신호음 끝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목소리 온도를 얼른 높인다.

“피디님~. 아, 한울씨 기사는 잘 쓰고 있죠. 다른 게 아니라, 선배 기자님이 피디님 인터뷰를 하고 싶다 하셔서요. 네, 네. 그럼요. 사진이요? 아, 실리긴 할 건데. 인터뷰 당일에 측면으로 몇 컷 찍어서 쓰면 될 것 같아요. 네에~.”

통화를 마친 채연주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파티션 너머를 보았다.

정이철 기자가 자리에 앉은 것도 아니고 안 앉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채연주를 보고 있었다.

“두더지야 뭐야···아무튼 편한 날짜 보내달라고 부탁했어요.”

“야, 고맙다! 내가 너 이번 달 자판기 책임진다!”

“에에? 음료로 퉁 치시겠다?”

“······.”

두더지가 스르륵 들어간다.

채연주는 피식 웃으며 의자에 기댔다.

자신이 따고 싶던 인터뷰였기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장 피디에겐 차라리 잘 됐지 싶었다.

‘기사가 가진 파급력을 생각하면, 선배만한 기자도 없지.’

#

1층 카페 구석에 앉아 질문지를 다시 한번 훑었다.

그리고 몸을 늘어트리며 생각했다.

이름값을 올려, 내 이름이 브랜드화가 된다라···.

그러면 곡만으로 뜨기 힘든 이 바닥에서.

방송이나 기획사 빨 없이, 곡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게 되겠지.

아직 너무 먼 얘기려나···?

“피디님이시죠?”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정 대리를 닮은 뚠뚠한 체형의 남자가 웃으며 서 있었다. 얼른 일어나 그와 인사를 나눴다.

“사운드베리 기자, 정이철이라고 합니다.”

“장기로입니다.”

악수 후 명함까지 주고받고서 소파에 앉았다.

사실 인터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비록 쓰이진 않았지만 채연주와 처음 만났을 때도 명목상 인터뷰가 있었고, 회사에서도 보도자료용으로 간단하게 몇 번 했지.

하지만 이번엔 느낌이 좀 다르다. 이전과는 달리 진짜 인터뷰니까. 게다가 정이철 기자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 꽤 유명한 사람이더라고.

앞으로 뜰 만한 사람을 기가막히게 찾아 인터뷰하는 걸로.

어쨌든 그런 그의 눈에 내가 들었다는 건데···.

정이철 기자는 내 질문지를 슬쩍 보더니 입매를 올렸다.

마실 것까지 모두 테이블에 올려지자,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자, 그럼 인터뷰를 진행해볼게요. 우선···피디님이 작업하신 이력부터 쭉 훑어보죠. TKM에 입사하게 된 계기인 공모전부터 얘기해 볼까요?”

정이철 기자는 질문지를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지로 보낸 내용을 토씨 하나 안 빠트리고 물어왔다. 외워왔단 거지.

그 때문인지 점점 그냥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노련한 기자가 어떤 느낌인지 확 와닿는다.

그렇게 얼마나 대화를 나눴을까?

“이건 질문지에도 없는 질문이에요. 이 궁금증이 들었을 땐 이미 질문지를 보낸 후라서요.”

“네, 말씀하세요.”

정이철 기자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물어왔다.

“작곡에 관심이 많은 네티즌들이 피디님을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뭔 대단한 얘기일까 싶었는데···.

목에 들어갔던 힘이 훅 빠진다.

어이가 없어서.

“진짜 천재이신 분들한테 죄송할 얘기죠. 전 천재가 아니에요.”

해괴한 능력을 가진···시간여행자지.

“그래요?”

“네.”

단호하게 끄덕였다.

영감을 얻듯 멜로디를 듣는 능력이 생겼지만, 이걸로 천재라 한다면 너무 염치없지.

갑자기 뚝 떨어진 능력이잖나. 그리고 천재라면 더 대단해야 하지 않을까?

정이철은 느릿하게 고갤 주억거렸다.

“제가 음악평론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쪽 짬밥이 있어서 듣는 귀가 나쁘진 않거든요. ”

큼큼 거리며 목을 가다듬은 그가 질문을 이어간다.

“흔히 자기복제라고 하죠. 이 노래가 저 노래 같고 그런. 그런데 피디님 곡들은 공통점이랄 게 별로 없어요. 대신 가창자와 묶이는 느낌이었죠.”

이것도 질문지엔 없는 질문이었다.

“화가로 치면 대상을 그리는데 그림체까지도 그 대상에 맞게 바꾸는 느낌이랄까···어떻게 이런 식으로 작곡을 하실 수 있는 건가요?”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최대한 나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말로.

“뮤지션들이 제게 영감을 줘요.”

“······.”

“그리고 이건 제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찾아오는 것 같아요.”

“영감이요?”

“네.”

“영감이라, 영감···.”

정이철 기자가 어딘가 묘한 눈을 뜬다. 그리고는 이내 납득 되었단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며 말했다.

”보통 그런 걸 받는 사람을 천재라고 하죠.“

#

정이철 기자는 작업실을 배경삼아 내 사진을 몇 장 찍고서 돌아갔다. 매우 만족한 얼굴로.

덕분에 나는 굉장히 찝찝해졌고.

‘뭐, 천재로 봐주면 오히려 좋은 건가···?’

심란한 마음을 달래며 커피를 내리는데, 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칙칙한 중저음의 목소리 둘도 함께.

완성된 음원을 듣기 위해 온 두 번째 타자, 레드리시였다.

얼굴에는 기대감이 잔뜩 펌핑되어 있었다.

그들을 보니 내 걱정이 걷힌다.

“올라갈까요?”

“넹.”

이병국과 기성운이 곧장 몸을 돌려 다시 계단으로 올라간다. 유지은은 싱글거리며 나를 기다렸고.

“오늘 인터뷰 하셨다면서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 피디님 전화 꺼져있어서 직원분께 연락드렸더니 알려주시던데요?”

“아아. 인터뷰 때 혹시나 싶어 전화를 껏······.”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놓칠 뻔했다.

고개를 홱 돌려 유지은을 보았다.

살짝 놀란 표정의 유지은이 눈알을 굴린다.

“왜, 왜요?”

당황한듯 얼굴이 빨게진 유지은을 빤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녜요. 아무것도.”

또 다.

콘서트홀에서 최정아에게 들렸던 것처럼···.

또 그런다.

그때 잘못 들은 게 아니었어.

분명히 멜로디가···더 들렸다.

애초에 들리던 것보다 더 많은 음들이 들렸고.

그 음들은 내가 멜로디를 발전시키며 넣은 음들과 일치했다.

즉, 내가 만든 라인을···

멜로디가 그대로 연주했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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