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54화 (54/221)

054. 멜로디를 돕는 선율

제법 그럴듯하게 들리는 현악기들이 음을 늘어지듯 연주한다.

역시나 가상의 악기답게 가벼웠다.

하지만 그런 건 찰나의 감상에 불과했다.

적절한 확장과 잘 쌓은 화음이, 그걸 덮어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현악기들의 연주는 건반이 들어오며 홀연히 사라졌다.

남겨진 건반 위로 다시 현악기들이 겹겹이 쌓인다.

전주만큼 규모가 있지는 않았다. 대신 몇 안 되는 선율들이 주선율의 부름에 응답하듯 위아래로 넘실댔다. 마치 주선율을 도우려는 것처럼.

그리고 어느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주선율을 끌고 올라간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 주선율은 사람의 목소리로 대체 될 것이란 걸.

그래서 각자가 상상하는 가장 매력적인 목소리를 그 위에 입힐 수 있었다.

마침내 정점에 이르러서, 모든 라인들이 주선율의 빛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 순간, 47명의 단원들 머릿속엔 물음들이 차오른다.

각자 모두 다른 물음들.

하지만 그 끝에는 모두 같은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곡은 좋은가?

“······.”

여기까지 이르러선, 장르를 구분하는 게 모호해져 버린다.

그저, 좋았다.

*

“단원들도 대체로 긍정적인 것 같죠?”

다시 집무실로 돌아가는 복도.

이주연 선임 피디가 말을 꺼내자 최연석 예술감독은 입매를 씰룩거렸다.

“그런 것 같더군.”

“그럼, 감독님은······뭐, 안 여쭤봐도 될 것 같네요.”

“나? 그래 보이나?”

“데모를 들으신 이후로 줄곧 그래 보이셨어요. 아, 이거 해야겠다.”

“······.”

최연석 감독은 결국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푸흐흐 웃었다.

“그나저나 작곡가님이 말한 얘기 있잖아요. 정말 괜찮은 것 같았죠?”

“콘서트?”

“네.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 단발성이었잖아요.”

최연석 감독이 주억거렸다.

“확실히 매력적인 그림이지. 시그니처 클래식 콘서트라···.”

그가 후후거리며 웃는 사이, 이주연 피디는 ‘그럼 이만’이라며 꾸벅 인사를 해왔다.

“전 회의 들어가 보겠습니다. 작곡가님 기다리시니 얼른 보고하고 연락드려야죠.”

“그래, 수고해.”

이주연 피디가 형식적인 절차를 밟기 위해 떠나고, 그길로 최연석 감독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선 다시 소파에 앉았다. 탁상 위에 놓인 두툼한 악보 뭉치에 시선을 두고서.

작곡가가 두고 간 악보.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

앞장이 사락 넘어간다.

어설픈 총보였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그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빽빽이 들어찬 글씨들이 말해준다.

가고자 하는 방향만큼은 확실하다고.

이 확신을 위해 기로, 기로마다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겠지.

“대단하군.”

음악의 방향을 막대기로 가리키든. 펜으로 가리키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이미 이건 ‘지휘’라 불러야 했다.

#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내내, 웃음이 번졌다.

미래에서도 기사로 이름 정도만 들어봤던 현중 필, 그리고 최연석. 그들과 만나 대화를 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약속받았다.

특히, 데모를 들은 최연석이 ‘이걸 들으니 완벽히 설득되었네요.’라고 말할 땐···정말 아드레날린이 전신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었지.

새로워서 그런 걸까.

이 정도까지 감격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가 내 일에 적응하고, 능숙해지는 만큼 무뎌지기도 하니까.

‘그래도 여전히 즐겁지만.’

도넛에 커피까지 바리바리 사들고 2층에 전달했다. 그리고 3층에 혹시 누군가 있을까, 도넛 한 박스와 커피를 들고 올라갔다.

‘어?’

뭐지, 데자뷰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익숙한 장면이었다. 지난번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최정아 매니저가 보인다.

“매니저님.”

이번엔 내가 먼저 알은체를 했다.

“아, 피디님.”

“정아가 와 있나 봐요?”

고개를 돌리니 불 켜진 녹음실이 끄트머리에 있었다.

“네.”

도넛 박스를 그가 앉은 테이블 앞에 내려놓고, 커피도 한잔 건넸다.

“좀 드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일부러 가져 올라왔어요. 이거 이따가 정아랑 드세요.”

“아 네···.”

그러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그의 앞에 앉았다.

지난번에 물어보려다 말았던 게 기억나서.

“정아 요즘 어때요?”

“네?”

반문하는 매니저에게 질문의 이유를 설명했다.

“사무실 식구들이 걱정하더라고요. 정아 표정이 항상 안 좋다고. 근데 제가 봤을 땐 또 괜찮았거든요. 그럴 때만 제가 본 건진 모르겠지만.”

“아···.”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요.”

매니저의 시선이 붕 뜬다. 난색이 떠오른다. 굳이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다고 얘길 하려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아한테 직접 들으시는 게 맞겠지만, 정아가 피디님께 말씀드릴 것 같지 않아서요···.”

공기가 정수리부터 붙잡고 늘어지는 것 같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 뭔가 있긴 하구나.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아가 지금 많이 지쳐있어요.”

“아···활동을 오래 하긴 했죠.”

싱글을 낸 게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 가수는 연기자처럼 작품 끝, 하면 쉴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감안 해도 긴 시간이었지.

그런데 매니저는 고개를 젓는다.

“아뇨, 그것보단···.”

그리고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을 이야기 한다.

“부담 때문에요.”

2층에서 한 조각 먹었던 도넛이 부풀어 식도를 턱 하니 막는 느낌이었다.

내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자 매니저는 마른 침을 연거푸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계속 잘해야 한다는 부담···SNS스타라는 프레임을 벗어 던지고, 다음 앨범도 성공시켜서 반짝 스타가 아니란 걸 증명 해야 한다는···그런 부담감을 정아가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일부 그런 여론이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최정아는 볼 때마다 편안한 표정이었고, 실력은 날로 늘었다. 그래서 당연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최정아를 데뷔시키기 위해 합주실을 다녔을 적 했던 고민이 부지불식간에 다가왔다.

최정아는 가수에···연예인에 적합한가?

내가 과거의 걱정과 마주하는 동안 매니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근데 이게 인터넷보다 녹화현장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아요. 질투심 많은 가수들이 은근히 까내리고, 정아 앞에서 대놓고 못 하는 사람들은 저에게 들으란 식으로 말해요. 드문드문 매니저들끼리도 견제가 있고요.”

“······.”

“그런 일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겪다 보니 애가 쉬려고를 안 해요. 스케줄 끝나면 연습. 또 연습. 그러다 제가 연습을 하루 말리면, 다음날 하루는 두 배로 열심히 해요.”

“······.”

“처음엔 긍정적으로 생각 해보려고도 했는데. 바보 같았죠. 요즘 정아가 눈에 띄게 지치고 있어요.”

매니저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답답한 듯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날 본다. 눈에 침울함이 골고루 물들어있다. 입가에도 마찬가지.

“매니저로서 굉장히 실격인 말이긴 한데···제가 아무리 좋은 쪽으로 끌어보려 해도 잘 안 되네요.”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한 번 얘기해봐도 될까요?”

씁쓸함이 담긴 목소리가 곧바로 들려왔다.

“그러면 정말 감사하죠. 정아가 피디님을 많이 의지하니까···.”

그래, 최정아가 날 많이 의지하지.

그런데 나 또한 그랬다. 내가 시작부터 함께한 가수이니까. 항상 든든했지.

그리고,

‘나한테 책임이 없다 할 순 없겠네.’

그녀가 원한 걸 떠나,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건 분명히 나였으니···.

그러니까, 내가 해결을 해보자.

#

“피디님!”

밝다. 하지만 지난번과는 다르게, 애써 밝다.

지쳐가고 있다는 매니저의 말이 피부에 와닿는 느낌.

사람들의 시선이, 평가가 저렇게 만들건가?

음악이 좋지만, 노래가 좋지만.

그런 내가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작곡가를 고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중 앞에 서는 건 대단한 감정 노동일 테니까. 사람 하나를 말려 죽일 수 있을 만큼.

“또 연습 중이었어?”

“엥, 저희 만난 거 일주일 넘게 지났는걸요.”

“그 사이에 몇 번 왔는지 다 들었어.”

“헤에, 피디님. 연습을 하면 칭찬을 해주셔야 하는 거예요.”

싱긋 웃는 최정아를 보며 마주 웃었다. 살짝 텐션이 올라간 최정아가 재잘댄다.

“한 번 들어보실래요? 이번엔 ‘기억애’ 말고, 지금 빌보드 차트에 올라있는 팝송인데···.”

“정아야.”

“네?”

“노래 부르는 거 재밌니?”

다소 진부하고 유치할 수 있지. 근데 사람들은 거기에 흔들린다. 지금 최정아처럼.

섣불리 대답을 못 한다. 거짓말을 잘못하니까. 애써 만든 가면이 스르르 녹는다.

“노래 부르는 거 부담되지?”

내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최정아.

“아, 아···그게···.”

도리질 치던 고개가 툭, 하고 떨어졌다.

“재미가 없진 않아요. 여전히 제 꿈이고요. 근데···동시에 노래 부르는 게 무서워졌어요.”

부담보다도 더 거친 표현처럼 들린다. 무섭다는 게.

“사람들 시선 때문에?”

“······.”

“다음엔 실패할까 봐?”

“······.”

대답은 없었다. 그게 대답이었고.

큰 두 눈에 유독 빛이 많이 담기는 걸 보니 눈물이 고인 것도 같다.

당황스럽네.

무려 오케스트라 측과 미팅을 하고 왔지만.

이래서야···.

“정아야, 공백기를 좀 가질래?”

“아뇨. 그러면 안 된다고···.”

“누가?”

“······.”

“다른 사람 말 때문인 거면 신경 안 써도 돼. 너 이제 아더 레이블이야. TKM 눈치 안 봐도 되고.”

그제야 최정아가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만은 아녜요. 이대로 쉬면···어쩌면 노래랑 진짜 멀어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래요.”

나는 빤히 최정아를 보았다.

적어도 괜찮은 척은 아닌 것 같지.

주륵주륵 묻어나는 처연함에 참지 못하고 USB를 꺼냈다.

“그래, 음악 때문에 생긴 병이니까. 음악으로 없애보자.”

다가가 컴퓨터에 꽂았다. 떠오르는 폴더에서 음원 파일을 찾고선, 최정아를 돌아봤다.

“사실 곡을 썼거든.”

“설마, 제···.”

“어, 네 곡.”

“···!”

이제 와 돌이켜보면, ‘기억애’는 최정아를 단련시키는 기구 같았다.

내가 장르를 포크로 정하면서, 그리고 기타와 첼로만으로 사운드를 만들면서, 자연스레 그 부담이 최정아에게도 전해졌겠지.

나는 그게 내심 미안했고, 이번엔 방식을 바꿨다.

최정아에게 어울리는 것보단, 그녀가 편하게 부를 수 있는가에 집중했다.

“이번 곡은 노래 부르는데 훨씬 덜 부담될 거야.”

“···?”

“다른 멜로디들이 네 목소릴 받쳐줄 거거든.”

노래를 틀었다.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가 동시에 만들어내는 전주.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최정아가 입을 벌렸다. 그 입은 곡이 끝날 때까지 다물어질 줄을 몰랐고.

“이거···거의 오케스트라···.”

“거의가 아닐걸. 마침 전화 왔네. 잠시만.”

나는 핸드폰을 들고 나왔다. 구태여 나온 이유는 최정아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데, 참는 게 보여서.

-작곡가님.

이주연 피디의 목소리였다.

-약속한 대로 긍정적인 소식 알려드리려고요.

당찬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었다.

-아, 그래서 말인데요. 가창자가 내정되어 있다고 하셨었잖아요?

“네, 그랬죠.”

-이제 누구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최정아. 엉엉 운다. 들키기 싫은 모습일까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주연 피디에게 말했다.

“최정아요.”

그녀의 외로운 싸움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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