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53화 (53/221)

053. 두 번째 멜로디 (3)

“일단 여기는 비브라토가···.”

“이 부분에서 보잉의 느낌이 잘···.”

“현실적으로 바이올린이 이런 식의 연주는 불가능해서···.”

조목조목 짚는다.

그것을 메모장에 받아 적어가며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그렇게 실현 가능한 연주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서 다음으로 넘어간다.

클래식 비전공자들이 오케스트레이션을 배우는데 있어 가장 어려워하는,

멜로디의 확장.

적게는 20개. 많게는 40개가 훌쩍 넘어가는 악기들이 전부 같은 음을 연주하는 것만큼 끔찍한 것도 없을 거다.

우선 주선율은 정해져 있지.

'최정아의 멜로디.'

다음은 대선율과 그에 따른 확장이다.

이성원은 이 전반적인 과정의 규칙을 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애초에 사람이 별말이 없어 그런가. 뭔가를 가르칠 때도 핵심만 쿡 찌르는 스타일.

‘재밌네. 미치도록.’

윤태영에게 기타를 배울 때와는 또 다른 느낌.

아예 다른 장르를 한다는 것에 모든 게 신선하고 재밌다.

레드리시 믹싱 작업과 병행하느라 자는 시간을 줄였지만, 후회가 전혀 되질 않아.

최 기사는 그런 날 볼 때마다 질렸다는 눈빛을 보내온다.

‘어쩔 수 없지.’

사실 프로듀서에게 프로젝트 2, 3개가 맞물리는 시기가 오는 건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다.

다만 나는 그걸 좀 더 열심히 하려는 것뿐이거든. 후회 따위는 없도록.

그렇게 며칠간, 이성원의 도움을 받아 미디 위에 하나의 악단을 만들어냈다.

트랙 하나하나가 구성원인. 가상의 오케스트라.

트랙들이 연주를 시작한다. 자기들이 정말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도 된 것처럼 저마다의 음을 내며.

그걸 듣는 이성원의 표정은 잔잔한 호수에 작은 알갱이를 톡 떨어트린 것 마냥 졸졸댄다.

곡이 점차 발전하면서, 좀처럼 변하지 않던 이성원의 표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5분. 커피잔에서 퍼져나간 커피 향이 작업실 구석구석에 스며들 때쯤, 트랙들이 연주를 멈춘다.

와, 꽤 감동인걸.

멜로디조차 현악기로 연주해 놔서 얼핏 들으면 진짜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들리네.

물론, 아직 고쳐야 하는 부분이 많을 거다.

대선율이 멜로디를 타고 넘어오지 못하도록 좀 눌러야겠고. 다른 라인들도 여러 번 점검해야 한다.

‘주선율을 사람의 목소리가 연주해야 하니까.’

그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이런 자체 피드백을 하고 있는데, 이성원이 입을 뗐다.

“대충 감 잡은 것 같네요. 이 정도면 연주자들이 듣고 이해해서 느낌을 살려낼 정도는 될 거에요.”

그가 덤덤하게 내뱉는 말을 대신 이었다.

“이제부턴 그냥 곡이 좋아야겠네요.”

이성원의 표정이 조금 더 출렁댄다.

‘이거보다 더?’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겠지.

#

방음이 완벽한 작업실에 있다 보면 시간이 무감각해지는 순간이 온다.

한 시간쯤 지났나 싶으면, 서너 시간이 훌쩍 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

달칵.

미디를 저장한 이성원이 구부정한 자세 그대로 일어났다. 차게 식은 머그컵을 손에 들고서.

문을 열고 나온 그는 곧장 정수기로 향했다.

잠도 깰 겸 남은 커피에 얼음을 들이부은다. 그리고서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작업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어지간하네.’

장기로를 두고 한 말이었다.

자신보다 일찍 출근해, 더 늦게 퇴근하기가 일수. 집을 이사했다더니 그 후부턴 빈도마저 늘었다.

오전에는 레드리시라는 밴드의 음원 작업을, 오후에는 오케스트라 편곡을 한다.

그 중간중간에 공릉에 있다는 레드리시 합주실을 들르기도 하고, 한울의 데뷔를 체크 하기도 한다.

‘살인적인 스케줄.’

장기로는 진짜 ‘프로듀싱’을 하고 있었다. 기획. 총괄이란 뜻에 맞게.

이유가 뭘까? 이 프로젝트 레이블의 성과를 인정받고, 정식 레이블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분명히 그런 면도 있겠지. 그거야 비스트로도, 자신도 있는 목표니까. 패잔병으로 돌아가는 건 싫으니.

하지만 장기로에겐 그 이상의 뭔가가 있어 보였다.

‘꼭···.’

음악을 못 해 죽은 귀신이 있다면 딱 저런 모습이었을 것 같은···.

‘터무니없네.’

이성원이 요상한 지점까지 흘러 들어간 머릿속을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차라리 가진 바 능력이 부족했다면, 그러려니 했을 거라고. 레이블에 누가 안 되려면 노력이라도 해야지. 그렇게 냉소적으로 바라봤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렇지 않으니까.’

아직 세 곡뿐이지만, 모두 성공적으로 히트시킨 프로듀서.

재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남에게 큰 관심이 없는 이성원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장기로는 분명 뛰어난 탑라이너로서의 재능을 갖고 있다. 가수에게 완벽하게 맞춰진 곡을 써내는 걸 보면 솔직히 경이로울 지경이었지.

‘그랬는데···.’

이성원은 어제 자신이 마지막으로 들었던 장기로의 작업물을 떠올렸다.

역시나, 클래식의 어법으로 보자면 많이 어눌했다. 하지만.

의도는 진했다. 명확했고, 단단했다.

뭘 말하고자 하는지가 분명했다.

그걸 곱씹다 보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탑라이너로서의 재능에 가려져 있던,

편곡자로서의 재능.

그게 언젠가부터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음을.

살짝 소름이 돋는다.

클래식계의 난다긴다하는 천재들을 봐도 이런 적은 흔치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내일이랬지.’

오케스트라 관계자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

장기로의 작업물을 들은 그들의 표정이 어떨지 그려본 이성원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작업실로 몸을 돌렸다.

#

다음날.

나는 경기도에 위치한 현중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무려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던 현중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있는 곳.

어쩐지 중세 기사들이 쓰던 투구가 떠오르는 백색의 건축물을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에 서서 전화를 걸었더니 잠시 후, 안쪽에서 오피스룩을 입은 여자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선다.

“혹시 장기로 작곡가님···?”

“아, 네.”

끄덕이자 여자가 반색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현중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줄여서 현중 필의 선임 피디. 이주연.

나는 그녀의 안내에 따라 뒤를 따랐다.

복도에서 마주친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이주연과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자연스레 시선이 움직이자 이주연이 설명했다.

“여기 단원분들이세요. 한분 한분이 모두 실력 있는 분들이죠.”

그녀가 일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자부심 넘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비스듬히 내리막인 복도를 쭉 따라 걷다가 푯말 없는 문 앞에서 이주연을 따라 멈춰섰다.

그녀가 문을 두드린다. 경쾌하게 두 번 정도. 그리고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이주연에게 목인사를 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갈색 소파 위에 앉아 있는 백발의 중년 남자.

현중필의 예술감독, 최연석.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지휘자이자, 음악 감독인 그를 보니 이제야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딛은 느낌이 물씬 났다.

그가 일어나 나를 반긴다.

“어서 와요.”

굵직한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악수할 때에도 아귀에서 불편하지 않은 힘이 전해져 온다.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소파에 둘러앉았다. 길쭉한 유리 탁자를 사이에 두고.

오시는 길은 어땠냐. 멀진 않았냐 등의 이야기를 하던 최연석 감독이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본론을 꺼냈다.

“저희 단원 중, 2악장이 과거에 TKM에서 녹음을 했었더군요. 그 친구를 통해서 이번 제안을 듣게 되었는데.”

최연석 감독이 빙그레 웃었다.

“재밌더라고요. 마침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이 오케스트라의 대중화이기도 했거든요.”

서재원 팀장을 통해 전해 듣긴 했지.

세 곳 정도와 연락이 오갔는데, 그중 그나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게 이곳 현중 필이다. 신기하게도 세 곳 중 현중 필이 가장 큰 오케스트라였다. 감독이 저런 생각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물론 아직 섭외가 확정된 건 아니다.

그래서 아쉬운 건 우리 쪽이었다.

오케스트라는 결코 일반적인 세션 섭외가 아니니까.

이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예술 감독이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의구심도 있죠.”

이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해.

이어지는 말은 꽤 회의적였다.

“대중가수의 음원 작업에 참여하는 게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

순간 덜컥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대신 속으론 여러 생각이 튀어나오도록 내버려 뒀다.

왜 내 앞에서 저런 얘길 할까?

묻는 거겠지. 정말 대중화에 도움이 될 것 같은지.

아쉬운 입장이니 된다고 입바른 말을 해야 하겠지만. 글쎄···.

나는 최연석 감독이 모를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답했다.

“기대하시는 것만큼 도움이 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 대답에 선임 피디는 살짝 당황한 얼굴색을 띠었다. 최연석 감독은 주억거릴 뿐 별 말은 없었고.

자, 이제 까놓고 얘기했으니. 대안을 얘기해야 할 차례. 현중 필을 섭외하기 위한.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이유. 뭐가 있을까.

10년 뒤에도 클래식은···대중들에겐 어려운 음악이지. 하지만 지금만큼은 아닐 거다. 그 이유를 되짚어보면 뭔가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풀어놓고 마른 입술을 달싹이다, 마침내 열었다.

“음원만으론요.”

“음원만···?”

선임 피디가 되묻는다.

나는 그녀에게 시선을 살짝 옮겼다.

“가수가 음원만 내진 않으니까요.”

“···?”

선임 피디가 그 답을 찾으려는 듯 눈을 굴리는데, 최연석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콘서트겠군.”

빙긋이 웃으며 끄덕였다.

“네. 대중음악 가수와 협연을 주제로 시그니처 콘서트를 만든다면 그냥 음원만 내는 것보단 훨씬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그러자 감독의 표정에 의심이 번져나간다.

내 말에 대한 의심이 아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의심.

그리고 나는 그 의심을 굳힐 카드를 준비해왔다.

“데모를 들어보시겠어요?”

#

50명에 가까운 인원이 커다란 연습실에 앉아 있다. 각자 악기, 혹은 악보를 손에 들고서.

왼쪽 끝에 앉아 있던 단원들 중 누군가가 물병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을 꺼냈다.

“그 작곡가 온 것 같더라. 아까 이주연 피디님이랑 감독님 방으로 가는 것 같던데.”

그녀의 말에 바로 앞에 있던 단원이 고개를 홱 돌리며 반응했다.

“그거, 정말 하긴 할 건가 보네요.”

말을 꺼낸 단원이 끄덕였다.

“기획팀은 꽤 긍정적인 것 같던데? 뭐, 감독님까지 오케이하면 성사되겠지.”

“그럼 될 가능성이 높긴 하겠네요. 감독님도 대중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잖아요.”

둘의 대화에 주변 단원들도 이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다시 작곡가에 대한 얘길 꺼냈다.

“저도 아까 지나가다 봤는데, 작곡가가 꽤 어린 것 같던데요···. 기껏해야 20대 중 후반?”

살짝 걱정이 낀 말투. 이를 대변하듯 다른 단원이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의구심을 높인다.

“클래식 전공도 아니라는 것 같은데 작업이 가능할까? 괜히 우리만 고생하는 거 아냐?”

“맞아요. 주변에 그런 거 녹음하는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작곡가 잘못 만나서 편곡을 자기가 하고 있단 애들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1 바이올린 수석 단원, 선예은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작곡가 곡 들어봤는데, 노래는 좋긴 하던데···.”

그리고 그때, 문이 열리며 최연석 감독이 들어왔다. 뒤로는 이주연 피디가 따라 들어온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던 연습실이 단번에 조용해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의 인사에 모두가 한목소리로 답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렇게 최연석 감독이 단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이주연 피디는 장비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작곡가가 준 파일을 언제든 재생할 수 있도록 세팅했다.

“뭐, 소문으로 다들 들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여기 눈만 100개 가까이 되다 보니까 오늘 제가 누굴 만났는지도 이미 퍼졌겠네요.”

그의 말에 웃음소리들이 세어 나왔다.

주억거리던 최연석 감독이 말을 이어간다.

“제가 여러분들보다 곡을 먼저 들었습니다. 어땠는지는 노코멘트 하죠. 여러분들의 생생한 반응이 궁금하거든요.”

그러면서 이주연 피디에게 음악을 틀어도 좋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이윽고 노래가 흘러나오며.

단원들의 표정이 가지각색으로 떠올랐다.

최연석 감독은 그 모습을 보며 나지막하게 웃었다.

저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