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두 번째 멜로디 (1)
뭘까.
“어디 안 좋으세요?”
“어, 아냐.”
왜일까.
멜로디가 달라질 수도 있는 거였나?
완전히 다른 멜로디가 아른거리니 정신을 못 차리겠다.
다른 소리를 듣는 게 방해가 되는 건 아닌데, 집중할 수가 없어.
이 적응 안 되는 상황에 멍청히 서 있다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날 보는 최정아가 눈에 들어왔다. 퍼뜩 정신을 차리며 수습했다.
“너무 잘 불러서 놀랐어. 녹음 부스가 아니라 콘서트 무대였어야 하는데 싶어서 아쉽더라.”
그제야 최정아의 코랄 빛 도는 입술이 살며시 올라간다.
“콘서트요?”
재차 끄덕이자 최정아는 잠시 눈을 굴리더니 다시 날 봤다.
“저 콘서트 하려면 곡이 몇 개나 필요할까요?”
“그···못 해도 15개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어우, 그럼 피디님이 엄청 힘내주셔야겠네요.”
“나?”
갑자기?
“네, 이제 14곡 남았잖아요.”
무슨 얘긴지 알아듣고 허하게 웃었다.
“그걸 다 나보고 작곡해 달라고?”
되묻자 최정아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곧 회초리가 될 것처럼.
“당연하죠~.”
“나한테 그거 다 받아서 콘서트하려면 너 나이 앞자리가 바뀌겠다.”
“헐.”
양손을 머리 높이로 들어 주먹을 쥐어 보인다. 머리가 얼마나 작은지 주먹이 세 개로 보이네.
“그러니까 빨리해주셔야죠. 저 서른 될 때까지 콘서트도 못 하면 안 되잖아요. 일해라 장기로.”
일해···뭐?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최정아가 꺌꺌대며 웃었다. 저렇게 웃으니 보기는 좋네.
한참 웃던 최정아가 짐짓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14곡을 다 받진 못해도. 그래도 제 다음 곡만큼은 피디님이 해주셨음 좋겠어요.”
이제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그래야 좀 안심이 될 것 같아서요.”
“안심?”
작은 얼굴이 끄덕인다.
“네. 다음도 잘 될 거란 안심.”
그 말에 꽤 묵직하게 다가왔다.
#
흔히 뜬눈으로 지새운다고 하지.
내가 딱 그러고 있다.
학준이 형의 방송 녹화가 잘 끝났는지.
레드리시의 믹싱 작업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최정아가 단번에 그 위로 올라섰다. 멜로디가 바뀌었다는 화두를 들고서.
이건 미뤄둘 수도 없는 화두였다. 그래서 이것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그래, 한 명에게 여러 멜로디를 들을 수 있다.
내가 방금 확인하고 온 사실이다.
그럼 왜일까? 갑자기, 그것도 최정아만···.
글쎄. 과거로 돌아오면서부터 겪는 일에 애초에 이유 따윈 없을 수도 있겠다. 무엇하나 현실적인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정리하자면 이런 느낌이다.
새로운 사람에게 들리는 건, 그 사람에게 멜로디를 주라는 이정표라는 것.
그리고 이미 들렸던 사람에게 다른 멜로디가 들린다는 건···.
단순히 다음 멜로디가 필요해서, 혹은 상대에게 변화가 있어서. 혹은 둘 다.
최정아의 노래를 들으며 내가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노래를 이 이상 더 잘 부를 수 없겠다고 생각했었지. 그만큼 완벽에 가까웠다.
혹시, 그래서일까?
“······.”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차오른다.
답안지가 없어 확인도 못 한다. 갑자기 퀴즈대회처럼 실로폰이 울려 퍼지는···그럴 리는 없겠지.
결국, 이유를 밝혀내기 보단, 이 능력의 변화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건데.
곰곰이 곱씹을수록 이건 분명히 좋은 일이다.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언젠간 닥칠 문제라 생각했던 ‘다음 곡’에 대한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준 셈이고.
이제 내 가수들에게 딱 맞는 곡을, 두 번 그 이상도 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내 의지와는 무관하단 점에서 반쪽짜리긴 하지만···.
일단 오늘 들은 멜로디는 활용해야겠지.
최정아의 다음 곡을 위해.
“흐아.”
이제 좀 자볼까 싶어, 매트리스 위에 누웠는데 새롭게 들린 멜로디가 계속 맴돈다. 오랜만이라 그런가···도저히 못 자겠네.
이러나, 저러나 못 잘 운명인 거다.
그래, 일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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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커피 머신이 커피를 꾸역꾸역 쏟아낸다.
곧바로 카페인을 충전하며 작업실로 들어섰다.
‘멜로디를 발전시키는 건 진짜 오랜만이네.’
따지고 보면, 플로라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진짜 오래됐잖아?
새삼 낯설어져 피식 웃었다. 옆에 펼쳐져 있는 공책을 끌고 와 들었던 음들을 차례대로 적는다. 그다음은?
빤히 본다. 흐름을 파악하는 거다. 그러면 이 멜로디가 어떤 키(Key)를 가졌는지 어떤 느낌을 표현하고자 하는지가 보인다.
F키고. 느낌은···.
‘꽤 단조롭네.’
직접 들었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기억애’에 쓰인 이전 멜로디보다 훨씬 단순했다. 아니, 지금까지 들었던 멜로디 중에서도 제일.
그렇다고 이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충분히 매력적인 음들의 조합이니까.
오히려 단조로운 만큼 힘이 있고, 쉽게 머릿속에 남는다.
문제는 이럴 경우 어떻게 편곡하냐가 정말 중요해진다는 거다. 뭐든 적당히 어울릴 테니까 선택이 어려워진달까.
‘우선 후렴부터 확정 지어야겠네.’
멜로디는 어디까지나 모티브다.
듬성듬성 빠진 이.
그곳을 채워 넣어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번엔 그것도 꽤 난이도가 있을 것 같았다.
이봐, 역시나 뭐든 어울리네.
지금까진 음들을 나열하다 보면 이거다, 싶은 게 있었는데. 지금은 전부 고만고만하다.
이걸 어쩐다···.
팔짱을 끼고 고심을 하다가,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그리고 또 고민을 하다가···.
책상 위에 올려진 핸드폰이 바들거렸다. 확인해 보니 메일이 들어왔다는 알림이었다. 그것도 무려 브랜의 메일.
쭉 읽어내려갔다.
레드리시의 프로필 사진과 필요한 서류 등을 보내달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시간 될 때 여직원한테 부탁해 놔야겠네.
“흐음.”
메일을 보고 있다가 문득, 앤 더글라스의 공연이 떠올랐다.
자신을 위해 작곡한다고 했었지···.
어쩌면, 그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최정아의 곡을 만드는 거다. 그렇담 최정아를 위해 작곡을 하게 되는 셈이지.
다시 단조로운 멜로디를 보았다. 그 위에 최정아를 덧씌웠다. 음색부터 사소한 습관까지. 어떻게 해야 그녀가 가장 편하게 부를 수 있을까? 거기서부터 시작해 보자.
그렇게 8마디 정도의 후렴구를 완성 시켰을 때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에 난 흐릿한 창 너머로 큰 키에 머리 위로 톡 튀어나온 꼬랑지가 달랑거린다.
실루엣만 봐도 윤태영이었다.
‘딱 맞춰 왔네.’
마침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점이었거든.
#
“정아씨, 오늘 생방 진짜 좋았어요!”
“아까 정아씨가 ‘기억애’ 부를 때, 나 진짜 눈물 날 뻔했잖아.”
보이는 라디오를 마치고, 두 디제이의 칭찬 세례가 이어진다.
“다음 앨범은 언제 나와요?”
“맞아, 기대하는 사람들 많더라고.”
최정아는 어정쩡하게 선 채로,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논의 중이에요.”
“공백기 가지지 말고 얼른 컴백해. 요즘은 워낙 빨리 잊혀지잖아. 반짝 스타라고 깎아내리는 여론도 있는 것 같던데 그럴 때일수록 독하게 마음먹고 노 저어야지.”
“에이, 괜히 부담 주지 마요. 천천히 내도 되죠 뭘. 그래도 노래 좋으면 다 잘 되게 되어있어.”
“요즘 노래 좋다고 잘 되나. 정아씨만 해도 노래 좋고 잘 부르기도 하지만 일단 화제성이 한 몫 톡톡히 했잖···.”
“언니, 쓸데없는 말 좀.”
“아니, 사실이 그러니까.”
둘 사이에서 어색하게 웃던 최정아가 대화가 마무리되자 얼른 인사하고 복도로 나섰다.
뒤따라온 매니저가 방송국을 어느 정도 벗어나자 고개를 내저었다.
“저 개그우먼 하여튼···뭐 저리 남 걱정이 많아?”
묵묵히 걷던 최정아가 피식 웃었다.
“뭐, 틀린 소린 아니니까요.”
“무슨 소리야. 완전 틀린 소리만 나불대더만. 너가 노래 부르는 걸 봐놓고도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냐.”
“소일라 덕에 화제성으로 뜬 것도 맞고, 공백기 길어지면 반짝 스타가 되는 것도 맞죠.”
“에이, 아니라니까. 그런 말 신경 쓰지도 마.”
“신경···안 써요.”
무덤덤한 표정의 최정아. 그래서 더 만들어진 표정 같았다. 매니저는 씁쓰름한 입맛을 다시며 당부했다.
“오늘은 이걸로 스케줄 끝이니까. 얼른 들어가서 쉬자. 오늘은 연습 안 하기로 한 거 기억나지? 건강 좀 챙기자. 너도, 나도.”
“네···.”
순순히 끄덕이는 최정아를 보며 매니저가 그제야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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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밖에 안 되는 후렴구를 들은 윤태영은 오묘한 얼굴을 보여줬다.
“장르는 어떤 거죠?”
역시나···.
“뭘 거 같아요?”
“짐작하기 어려운데요?”
“그니까요.”
“···?”
윤태영이 날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
“고민 중이었거든요.”
“누구 곡인데요?”
“정아요.”
“그분 하면 포크 아녜요?”
그렇긴 하다.
‘기억애’만 해도 그렇다.
어쿠스틱 기타와 첼로. 두 개가 주된 악기였지.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반항심이라도 생겼는지, 포크가 꺼림칙했다.
“이 멜로디에 포크는 자칫 늘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아, 그렇네요. 심심할 확률이 높긴 하겠네요.”
“······.”
다시 고심이 시작되었다. 그때 윤태영이 주변을 둘러보다 불쑥 말했다.
“악기군부터 정해보는 건 어때요?”
“악기군이요?”
“네. 뭐, 피아노가 들어갈 건지. 기타가 들어갈 건지. 이런 식으로 짜다보면 자연스레 가능한 장르들이 좁혀지겠죠.”
악기군부터라···.
이 단조로운 멜로디에 어떤 악기가 들어가야 곡을 풍성하게 만들까?
사용해 본 악기 종류가 적으니, 넣을 악기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무턱대고 넣을 수도 없지.
최정아의 목소리와 어울려야 하니까.
기억애 때처럼 선율을 살릴 수 있는 악기가 좋겠는데.
아니면 좀 더 웅웅 울리면서도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을 공간에 퍼트리는······ 내가 말하면서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로 설명하기 힘든 최정아만의 분위기가 있단 말이지. 아무래도 목소리가······.
지이잉-
뭐지.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던 멜로디를 쥐고 흔드는 진동에 고개를 들었다.
윤태영이었다. 핸드폰을 열어 확인해보더니 게슴츠레한 눈을 했다.
미간은 찡그리고 있는데 입 꼬리는 올라가 있는 기묘한 표정.
저런 감정표현은 또 처음 보는데?
“자꾸 보내네.”
“···뭔데요?”
“아, 제 조카요.”
윤태영이 슬쩍 화면을 보여준다.
6살이나 되었을까?
꼬맹이 하나가 장난감 같은 바이올린을 들고 끼깅끼깅 어설픈 연주를 하는 동영상이었다.
아.
아하······.
연주 들으니 왜 그런 얼굴을 했는지 알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게 윤태영의 표정을 따라하고 있었다.
“이번에 학예회에서 연주한대요. 근데 나보고 큰 바이올린 켜니까 자꾸 알려달라고 보채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풉, 큰 바이올린이요?”
어린애가 보기엔 확실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네.
줄도 네 개고, 생긴 것도 비슷하고.
그러고 보니 기억애 때 쓴 기타나 첼로나 바이올린이나 다 현악기다.
진짜 바이올린, 큰 바이올린, 더 큰 바이올린, 현악 3중주나 다름 없······.
“어.”
갑자기 바이올린 활이 머리를 세게 긁고 지나갔다.
찾은 것 같다.
저 멜로디를 풍성하게 채우면서도 최정아와 어울릴만한 악기군.
“······왜 그러세요?”
“방금 말씀하신 거. 좀 통 크게 부르죠.”
“뭐를요? 악기요?”
“네, 한 2, 30명 쯤?”
“그게 무슨···.”
윤태영의 멍한 눈이 홱 바뀐다. 저건 설마하는 표정이다.
그 설마가 맞을 것 같은데.
“오케스트라?”
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