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49화 (49/221)

< 049. 페스티벌의 제왕 (4) >

“깜짝이야.”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 위로 향했다.

쏟아지는 조명을 받고 있는 세 사람이 하나의 노래를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특히나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일렉 기타를 연주하며 독특한 고음을 쭉쭉 뽑아냈다.

강렬한 첫 음은 그렇게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오프닝 무대인가?”

“그런 얘기 있었어?”

“아니. 근데 깜짝 무대일 수도 있지.”

앞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노란 옷을 입은 여자는 남자 친구의 팔을 잡아 끌었다. 발걸음을 재촉하자 마침내 시야가 탁 트이며 공연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된 무대가 시선에 들어왔다.

‘아직 20분이나 남았는데?’

마이크 앞에 서 있는 게 앤 더글라스가 아니란 걸 확인한 여자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시력을 돋궜다.

“어! 저 여자···.”

여자의 고개가 돌아갔다. 남자 친구도 비슷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

“맞지? 아까 매표소 앞에서.”

“어. 맞는 것 같은데?”

현장구매를 했던 사람들만 볼 수 있었던 진풍경이 있었다.

앤 더글라스의 노래를 하던 밴드와 노래를 듣고 찾아온 원곡 가수.

그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 덕에 저 밴드의 얼굴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입을 벌리며 과장된 표정을 짓는 여자.

남자가 갸웃거리자 자신이 얼핏 들었던 얘기를 설명했다.

“아까 가까이에서 봤다는 사람이 그러긴 하더라고. 앤이 저 밴드한테 오프닝 무대 서줄 수 있냐고 그랬다고.”

“그랬어? 영화야 뭐야. 대박이네.”

“그니까!”

여자가 설레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그나저나, 확실히 이렇게 들어오자마자 노랫소리 나고 그러니까 두근두근하긴 하다. 얼른 가자, 얼른.”

두 사람은 무대 앞으로 빠르게 도착해 공연을 즐겼다. 연신 감탄하면서.

“확실히 잘하긴 잘한다. 버스킹 때랑은 또 다르네.”

“그때 밴드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레드···레드리시?”

“어, 어! 맞아. 그거였던 것 같아.”

여자가 핸드폰을 꺼내 포털 사이트를 켰다. 흰색 화면에서 멈춰 넘어갈 생각을 안 한다. 상단에 뜬 인터넷 상태가 매우 불량했다.

“이따 검색해야겠네···.”

레드리시란 밴드에 대해 검색하려던 여자는 아쉬워하며 핸드폰을 도로 넣었다.

그때 옆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인터넷 안 터지는 거 봐.”

살집이 좀 있는, 통통한 남자가 핸드폰을 툭툭 누르며 구시렁대고 있었다. 옆에 일행으로 보이는 모자 쓴 남자가 슬쩍 보더니 말한다.

“또 SNS 하려고? 공연 봐, 공연.”

“뭔 공연. 아직 앤 더글라스 나오지도 않았는데.”

“아니, 오프닝 공연 보라고.”

“내가 뭐 저 사람들 보러 왔나. 그리고 앤 더글라스 노래는 왜 저렇게 불러? 다른 곡인 줄 알았네.”

“편곡한 거 아냐?”

“야,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냐. 나도 학교에서 밴드 동아리였거든? 근데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원곡을 살리면서 바꿔야지.”

아는 체하는 퉁퉁한 남자를 보며 모자 쓴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밴드 부심은···. 저것도 충분히 원곡 살린 것 같구만 뭘.”

둘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여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까지 와서 꼭 저러는 사람 있다며 남자 친구에게 속삭이자, 남자 친구도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공연에 집중이나 하자.”

앤 더글라스의 음원과는 다른.

어쿠스틱 버스킹 때와도 또 다른.

밴드 버전 편곡.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플은 불쾌함도 잊은 채 노래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리듬을 타며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누가 보면 관객들이 이 밴드를 보기 위해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

그렇게 20여 분이 쏜살같이 지났다.

입장 제한 시간이 되자 열려있던 문들이 모두 닫혔다. 어느덧 오프닝 무대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지막 곡. 앤 더글라스의 곡이 아닌, 레드리시의 곡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이 한 곡으로 사람들의 뇌리엔 레드리시란 이름이 더욱 선명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와···.”

멍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던 모자 쓴 남자가 옆에 있는 통통한 남자에게 툭 내뱉었다.

“야, 솔직히 말해봐. 너 밴드 동아리에서 잘린 거지?”

그 얘길 들은 옆에 커플이 쿡쿡대며 웃었다.

#

무대 뒤로 내려온 레드리시는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무대에 오를 때보다 더. 심지어 유지은마저도 벌건 얼굴이었다.

“어땠어요?”

이번엔 내가 먼저 물었다. 참을 수가 없어서. 환호성 만으로도 이 건물을 진동시키는 사람들 앞에 선 기분은 어떤 걸지.

“최고였어요···.”

“그게 끝이에요?”

“네.”

이런 기분이구나. 다음에 유지은이 물어보면 좀 성의있게 대답해야겠네.

유지은은 진이 빠져 목각 인형처럼 걸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무대 위에서 그렇게 날아다녔으니 지칠 만도 하지. 막상 끝나고 나니 내가 뭘 한 건가 싶기도 할 거고.

내가 수고했다며 다독이려 할 때, 뒤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가까워졌다. 이젠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다.

“퍼펙트한 공연이었어요!”

주황빛 수염을 나부끼며 나타난 앤은 레드리시 멤버들에게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짧지만 완성도 있는 공연.

앤은 감사 인사까지 하며 레드리시를 띄워주었다. 얼떨떨한 표정이던 레드리시의 얼굴에도 웃음이 핀다.

“자, 그럼 이제. 내 차례!”

본 공연 시작을 앞두고, 스태프들이 한층 더 바빠진다. 이윽고 앤이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한 발자국 올라선 그가 홱 돌아보며 웃었다.

“당신들이 올려놓은 열기에 누가 안 되게 할게요.”

묵직한 걸음으로 누구보다 가볍게 무대 위로 오르는 앤.

이윽고 함성이 터져 나온다.

레드리시 때만 해도 엄청나다 생각했는데, 이건 더하다. 세 배는 되겠는걸?

그렇다고 아쉽다거나 하진 않았다.

‘레드리시도 머지않아 저런 환호를 받게 될 테니.’

그래야지. 그렇게 만들려고 내가 여기에 왔으니까.

나는 턴투더 레이블의 CEO, 브랜을 떠올리며 몸을 돌렸다.

마침 앤의 공연이 제대로 시작된 걸 확인한 브랜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혹시 다음 일정이 있나요?”

“아뇨.”

턱을 매만지던 브랜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내려가서 앤의 공연을 보고 가는 건 어때요? 앤도 그러길 바라는 것 같고, 저 친구들도···.”

나는 뒤를 돌아봤다. 미어캣 마냥 목을 쭉 빼고 무대를 훔쳐보는 레드리시 멤버들이 보인다.

“그게 좋겠네요.”

줄곧 무뚝뚝한 표정이던 브랜도 피식 웃었다.

몸을 돌려 레드리시에게 이 소식을 말하려는데, 브랜이 다시 입을 뗐다.

“아, 그리고.”

그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프로듀서라고 하셨죠? 저 밴드를 담당하는.”

나는 올 것이 온 건가.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얘길 좀 하고 싶네요.”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러죠.”

#

나는 브랜과 충분한 대화를 나눴다.

굉장히 긍정적인 주제를 가지고서.

고민하는 게 있길래 그것에 대한 해답도 은근슬쩍 밀어 넣었다.

미래에 대한 힌트랄까.

레드리시 활용법이랄까.

앞으로 예정된 일이지만, 빠를 수록 좋으니까.

그리고서 뒤늦게 레드리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신이나 방방 뛰는 유지은과 이병국. 저럴 때 보면 꼭 남매 같네.

기성운은 여기서도 팔짱을 끼고 관망하는 자세다. 중간중간, 목과 무릎 관절을 까딱까딱하긴 하는데, 그 이상의 큰 율동은 없었다.

그리고, 난···.

연신 감탄 중이다.

무려 페스티벌의 제왕이라 불리는 뮤지션의 무대에.

가창력이나, 무대 매너, 관중을 사로잡는 힘까지 나무랄 데 하나 없었다. 아니 판단하는 게 미안할 정도.

나는 그가 싱어송라이터라는 것에 집중했다.

자신이 부를 곡을 만드는 작곡가. 동시에, 자신이 뭘 불러야 하는지 아는 작곡가였다.

몇 번째인지 모를 곡을 마치고, 무대 위의 앤이 입을 열었다.

“전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제가 만든 곡으로 노래를 부르죠.”

관심 확 쏠리는 주제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러했다.

자신의 자작곡들은, 항상 자신을 위해서 쓴 곡이라고.

신나는 노래든, 파격적인 노래든, 음울한 노래든 상관없이.

모두 자신을 위로하는 노래라고.

그 얘기만으로도, 나는 이 공연을 남아서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관객으로서도,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공연이었기에.

2시간을 훌쩍 넘긴 공연이 끝이 났다.

무대를 내려가는 앤을 보며 박수에 동참했다. 오늘로썬 저 뒷모습이 앤의 마지막 모습일 거다. 그는 다음 공연을 위해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야 하니.

그렇게 앤의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연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우릴 알아보기 전까진.

“아까 무대에서 진짜 멋있었어요!”

“언니 진짜 예뻐요!”

칭찬에 환하게 미소 짓는 유지은.

“와, 근래 본 너의 미소 중에 가장 가식적이···흐극.”

이병국이 장렬히 쓰러진다. 2인조도 나쁘지 않지.

이마저도 좋은지 꺄르르 웃던 여학생이 불쑥 물어왔다.

“근데 아까 그 자작곡이 아무리 검색해봐도 안 나와요.”

핸드폰까지 내밀며 [검색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여학생. 유지은이 날 돌아본다.

“다음 달쯤···?”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병국이 쓰러지는 걸 봐서 그런가.

“그렇다네요. 호호.”

“대박, 꼭 들을게요!”

“전 아이돌보다 밴드가 더 좋아요!”

“언니 이뻐요! 오빠들도 멋져요! 매니저님은······안녕히가세요!.”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여고생들.

뭔데. 왜 말을 하다 말아.

“풉, 매니저님이래.”

유지은이 입을 막고 웃는다.

“아이고, 매니저님.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얼른 갑시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아직 열기가 식지 않아서일까, 그렇게 춥다고 느끼진 못했다.

팬(?)과의 대화로 신이 난 유지은이 긴 다리를 쭉쭉 뻗다가 갑자기 멈춰섰다. 입을 삐죽거리며.

“인사를 못 해서 아쉬워요. 공연 잘 봤다고 전해주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일정이 빠듯하다니까.”

“그래도···.”

나는 작게 웃었다.

곧 다시 보게 될 거란 말을 삼키며.

“브랜한테 전해달라고 할게요.”

내 말에 세 사람이 홱 나를 돌아봤다.

“브랜?”

“그 깐깐하게 생긴 아저씨?”

“번호 땄어요?”

번호를 주고받은 거지.

빙긋이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급격히 피곤함이 몰려온다.

‘후우. 그래도 결국 해냈네.’

미래대로. 아니, 어쩌면 더 나은 방향으로.

‘브랜이 내 얘길 귀담아들었으려나···.’

눈을 슬며시 감는데, 유지은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피디님.”

“네···?”

“이 말을 할까, 말까 정말 고민했어요.”

“···?”

“오늘은 해도 될 것 같네요.”

유지은이 씩 웃었다.

“소고기 사주세요.”

#

“론의 말이 맞았어.”

빠르게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앤이 웃음 지었다.

“나도 오늘 공연이 최고의 공연 중 하나가 될 것 같아. 들었지? 이 먼 나라의 사람들이 내 노랠 전부 외우고 있는 거.”

밴이 마지못해 하는 눈치로 끄덕거렸다.

그 모습에 껄껄거리며 웃던 앤은 차창 밖을보며 중얼거렸다. 아기자기하게 예쁜 도시라며. 그러다 돌연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근데 레드리시라는 밴드 말이야. 정말 괜찮지 않아?”

브랜이 살짝 움찔거렸다. 그걸 눈치 못 챈 앤이 말을 잇는다.

“이번 투어 중에 저런 밴드를 만날 줄은 몰랐어. 자신들 색깔이 뚜렷하더라고.”

“글쎄. 나는 듣는 귀가 없어서.”

브랜의 말에 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그 말 때문에 꽁해있는 거야?”

“사실인걸.”

어깨를 으쓱해 보인 브랜이 덧붙였다.

“대신 난 보는 눈이 좋지. 이 눈으로 앤 더글라스를 발굴했으니까.”

그 말에 앤이 배를 잡고 웃어댔다.

브랜도 피식 웃으며 의자를 뒤로 젖혔다.

“공항 갈 때까지만 좀 자자.”

그리고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은 안 오고 그 한국인 프로듀서와 나눴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레드리시를 미국으로 보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했었지.

당연히 놀라 자빠질 줄 알았는데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리액션이 없었다. 덤덤했달까.

어쨌든, 대화는 꽤 순조로웠다. 애초에 미국 진출을 염두하고 있었던 것처럼 프로듀서는 많은 것에 대해 꿰고 있었다.

그렇게 꽤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고 간 후, 말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테스트는 필요합니다.’

갸웃거리는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미국에서 정말로 먹힐지 말이죠.’

그러자 프로듀서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지.

‘그 테스트, 페스티벌에서 하는 게 어떨까요?’

페스티벌이라···.

눈을 뜨며 허리를 세웠다.

“지금 LA 몇 시지?”

“음···7시쯤 됐겠네요.”

“그래···?”

직원의 대답에 브랜은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생겼기에.

‘코첼라 라인업에 빈자리가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네.’

< 049. 페스티벌의 제왕 (4)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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