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2. 스위치 (3) >
정말 오랜만이었다.
사람에게서 멜로디를 듣는 건.
언젠가 들릴 때가 되면 들리겠지 하면서도 그게 이런 식일 줄은 몰랐지.
불협이라니.
다행히 눈살을 찌푸리거나 하진 않았다.
실제 소리를 들은 게 아니라서 그런지, 듣고 있는 게 불편하진 않다.
내가 멜로디를 듣고있어도 다른 소리를 듣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눈을 깜빡이며 유지은을 보았다.
어제완 달리 딱 달라붙는 청바지에 하얀 티를 입은 그녀도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옆 사람과 이야기하던 중이라 빨간 입술을 살짝 벌린 채로.
왜 인디 여신이라 불렸는지 충분히 납득이 가는 비주얼.
“어?”
그녀를 시작으로 양옆에 앉아있던 멤버들이 내 존재를 인식했다. 직감적으로 내가 자신들과 이야기 할 사람임을 알았는지 부산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괜찮아요.”
난 그들을 말리며 빠르게 테이블로 다가갔다. 의자를 끌어 앉는 찰나에도 머리가 복잡 복잡했다. 내려올 때만 해도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왜 이런 게 들리는 거지?
“어, 저랑 통화하신 분. 맞죠? 목소리 기억해요.”
유지은이 찡긋거리며 아는 체를 해왔다. 그 발랄함에 어색하게 웃으며 품에 잡히는 명함을 꺼냈다.
“저는 아더 레이블의 장기로라고 합니다.”
유지은이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뜬다. 나를 아는 눈치였다. 음악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나···꽤 유명인이 된 걸지도.
“장기로, 기로? 혹시 ‘기억애’ 작곡하신···?”
얼떨결에 끄덕이자, 유지은이 ‘대박’이라고 여러번 말하며 옆에 파마한 남자를 때렸다.
이병국. 스틱을 화려하게 돌리며 연주하기로 유명한 드러머.
표정을 보니 진짜 아파 보이는데···.
“저 ‘기억애’ 너무 좋아서 매일 한 번씩은 꼭 듣거든요!”
유지은의 호들갑에 정신이 없다.
“최정아님은요? 그분도 아더 레이블이잖아요. 여기 지금 있어요?”
“아직 활동이 바빠서 못 오고 있어요.”
“아쉬워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성격에 당황스러워하는데, 옆에 앉은 키보디스트 기성운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럼, 저희 데모를 들은 것도 피디님이신가요?”
그의 말에 끄덕였다.
“네.”
“전부 다 들어보셨나요?”
어쩐지 의심스러운 눈이다.
“네.”
“세곡 다요?”
재차 끄덕였다.
뭐야, 저 ‘대체 왜요?’라는 질문이 나올 것만 같은 표정은.
세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눈썹을 긁적였다. 여전히 들려오는 불협화음···.
가만, 화음?
지금까지 두 가지 이상의 음이 동시에 들린 적이 있었나?
빠르게 되짚어 보았다. 없었네. 전부 단일 라인이었어.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의문들이 돌돌돌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중 가닥을 잡고서, 세 사람에게 물었다.
“보내주신 데모 세 곡 말이에요.”
“네.”
“각각 느낌이 조금씩 다르던데···.”
“···?”
세 가지 곡이었다.
내 앞에 앉은 멤버들도 세 명.
“세 곡 다 작곡한 사람이 다 다르죠?”
내 말에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커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맞나 보네. 나는 대답을 이미 들은 사람처럼 끄덕이며 귓가에 아른거리는 멜로디에 더 집중했다.
여전한 불협.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하나의 멜로디가 아니니까.
멜로디가 겹쳐, 불협처럼 들리고 있으니까.
나는 들려오는 멜로디를 나눴다. 키(key)를 생각하며 나누면 그리 어렵진 않았다.
‘세 개···.’
그것도 굉장히 익숙한 세 개의 멜로디.
나는 헛헛하게 웃었다.
가뭄이 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머릴 때린다.
멜로디가 세 개나 들리고 있다.
그리고 딱, 눈앞에 세 사람이 앉아있네.
#
아더 레이블을 나서는 유지은이 입을 씰룩거렸다.
그럴 때마다 어떤 계략이나 음모를 꾸미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와 건물 안에 울렸다.
“흐흐.”
옆에 있던 이병국이 질색을 하며 말한다.
“넌 왜 그렇게 웃냐.”
“뭐, 내 웃는 소리야. 신경 꺼.”
새침하게 대답하던 유지은이 갑자기 표정을 풀었다. 이병국은 흠칫했고.
“아, 맞다. 여기 1층 카페 커피 맛있어. 데모 돌릴 때 마셔봤는데 고소하더라.”
“······.”
“안 들리냐.”
“어? 아, 신경을 꺼서.”
이병국이 귀까지 파자 유지은이 자신이 제대로 뚫어주겠다며 다가갔다.
“오지 마. 그리고 사달라고 해봤자 나도 돈 없어.”
“내 소중한 만원이를 데려 가놓고 돈이 없으시다?”
“그걸론 아까 담배 샀지.”
“···만원이로···담배를 샀어? 근데 이렇게 당당해?”
“내 돈인데?”
티격태격거리는 둘 사이로 기성운이 은근슬쩍 다가섰다.
“이제 소속도 생겼는데, 싸울 거야?”
둘이 멈칫한다.
먼저 입꼬릴 올린 건 유지은이었다.
“흐흐흐!”
이어서 이병국도 낄낄대기 시작했다.
“야, 다시 말해봐. 우리 뭐 생겼다고?”
유지은이 마이크를 손에 쥔 것처럼 둥글게 만든 손을 기성운의 입 쪽으로 가져갔다. 대답은 이병국에게서 나왔다.
“소속!”
“어디 소속?”
“아더!”
“아더는 어디 꺼?”
“TKM!”
“TKM은 어떤 기획사!”
“대형 기획사!”
언제 티격태격했냐는 듯이 쿵 짝이 맞는 둘을 보며 피식 웃던 기성운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어떻게 알았을까?”
“응?”
두 사람이 의문을 표하자 기성운은 손가락으로 콕콕 찝었다.
“우리가 각자 하나씩 작곡한 거.”
네 개의 눈이 깜빡거린다.
“그러게?”
“우린 그거 꼭 1집에 다 넣자고 나름 주제까지 맞췄잖아. 근데 그게 티가 나나?”
“그러게···역시 프로듀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
유지은이 작게 감탄하자, 잠깐 사이 핸드폰을 검색해본 이병국이 말했다.
“게다가 그냥 프로듀서도 아니잖아. 최근 몇 달 만에 히트곡이 세 개네. 세 개 발매했는데. 타율 100%잖아?”
세 명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였다. 납득했다는 듯이.
“우리 진짜 성공하나?”
“음원도 내고.”
“공연도 하고.”
“그것도 큰 공연장에서.”
“지은이는 인디 여신이 되고!”
“팬클럽도 생기고!”
이번엔 기성운과 이병국이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 사이에서 신이 난 유지은이 외쳤다.
“꿈에 그리던 페스티벌에도 서고! 야, 기분이다. 오늘은 누나가 커피 사줄게.”
긴 다리로 도도하게 걸어 나간다.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뒤에선 기성운과 이병국이 슬며시 하이파이브를 쳤다.
#
-곡 소개 쓰시는 게 점점 느시는 것 같은데요? 고칠 게 전혀 없어요. 처음엔 오글거려 하시더니.
칭찬인가.
지금은 오글거리게 쓴단 얘긴가.
홍보팀 여직원의 전화였다. 내가 보낸 곡 소개에 만족했다며 연신 칭찬 세례 중이다.
“하하, 그런가요?”
-네, 이대로 앨범에 실으셔도 되겠어요.
이제 끝났나 싶었는데, 여직원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체크하실 것들이 좀 있어서요. 보도자료 관련해서 인터뷰도 해야 하고요. 혹시 언제가 편하세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 싹 해버리자.
“제가 오늘 퍼블리싱 관련해서 본사를 들릴 거 같은데, 간 김에 가능한가요?”
-아, 그럼요! 잘됐네요. 그럼 몇 시쯤에 오실까요?
홍보팀 직원과 시간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학준이 형의 음원은 완성이 코앞이었지만 부가적인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프로듀서와 작곡가의 차이 같은 거다.
작곡가라면 곡만 주고 끝이겠지만, 프로듀서는 전반적인 모든 것에 신경을 써야 하니까.
그래도 곡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 다른 것들에 대해선 부담이 덜하다.
‘일단, 학준이 형 관련해선 이렇게 진행하면 되고···.’
한 가지 생각을 박스에 담아 치우니, 다음 생각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화면에 가득 찬 파형들.
그걸 보자 피식 웃음이 났다.
‘보여주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으면···.’
세 곡 다 10분이 넘냐. 클래식도 아니고···.
중간중간 악장으로 분리해도 될 정도다.
다시 들어보려는데 엄두가 안 나네.
곡 하나 듣는 게 이토록 큰맘을 먹을 일인가.
나는 의자에 축 늘어진 채로 세 개의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후렴 부분의 멜로디를 땄다.
‘여기서 어프로치 노트(approach note) 같은 걸 걷어내면···.’
조금은 밋밋하고 단조로워진 멜로디가 남았다.
아까 레드리시 멤버들에게 들은 멜로디와 매우 흡사한···.
결국, 내가 들은 건, 미래의 레드리시를 있게 해줄 멜로디였던 거다.
#
“어, 장 피디님!”
오랜만에 사옥에 들어서자 얼굴 정도만 익혔던 직원들이 인사를 해왔다. 그들에게 인사하며 회사 이곳저곳을 누볐다. 퍼블리싱팀, 홍보팀, 계약팀. 그리고 마지막으로 5층, A&R팀으로 향했다.
미팅룸으로 들어가자 정 대리와 이민주가 펜 꽂은 손을 흔든다.
자리에 앉자마자 근황토크를 풀어놓을 줄 알았던 두 사람은 의외로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아마도 오늘 내가 한 계약 때문인 것 같네.
“내가 좀 찾아봤어.”
정 대리가 넌지시 말을 꺼낸다.
“공연 영상이 몇 개 나오긴 하더라고.”
펜대를 돌리며 주억거리는 정 대리.
레드리시에 대한 이야기란 걸 알아 챈 나는 가만히 들었다.
“······뭐, 노랜 독특하고 시원시원하더라.”
여기까지 말하고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나를 보며,
“이미 계약은 했다고 들었는데, 맞지?”
“네.”
“뭐, 레이블 내의 작업에 한해선 전권이 있으니 그건 그렇다 치고···근데 난 아무리 봐도 대중한테 먹힐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정 대리의 말에 옆에서 지켜보던 이민주가 동조하듯 끄덕인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정 대리는 내가 이해를 못 했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의 걱정 어린 얼굴은 더더욱 짙어졌다.
이윽고 설득의 장이 열린다.
“공모전 곡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 건 좀···솔직히 말할게. 무리수 같아.”
예상했던 반응.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으니까.
“다른 장르도 아니고 밴드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 먹히는.”
이민주도 거들었다.
“유일하게 빛을 보는 쪽이 페스티벌 등의 공연인데, 사실상 이것도 그들만의 문화라는 인식이 있고요. 사실상 음원 차트는 애초에 포기하고 간다고 봐도 무방해요.”
“맞아, 그렇다니까.”
둘의 의견에 나는 잠자코 고갤 끄덕였다.
다 맞는 말이다. 반박의 여지도 없고.
내가 미래를 몰랐다면, 여기서 바로 알겠다고 답했겠지. 아니, 애초에 이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거다.
정 대리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듯, 이런 방법도 있다는 듯,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여자 보컬만 따로 데뷔시켜서 앨범을 낸다거나···그런 건 좀 가능성이 있을 것도 같은데, 어때?”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세션 쪽으로 돌려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밴드인데요. 밴드로 성공시켜야죠.”
“끙···.”
정 대리가 이마에 손을 얹는다. 그 상태로 내게 물어왔다.
“아니면 뭐, 어떤 식으로 성공시키겠다는 계획이 있는 거야?”
이민주도 눈을 빛내며 날 본다. 정확히는 내 입을 보고 있었다.
계획이라···.
자연스레 미래의 기억들이 스친다.
애초에 성공하는 걸 알고 데려온 밴드.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결과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성공하냐겠지.
그 틀에서 벗어나면 미래를 아는 게 소용없게 되니까.
나는 둘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있죠.”
성공시킬 방법.
근데, 그게 정 대리와 이민주가 생각하는 성공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레드리시는 한국에서 성공한 적이 없거든.
< 042. 스위치 (3) > 끝
ⓒ 나일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