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0. 스위치 (1) >
“프라프치노 나왔습니다!”
시간이 꽤 지나고서야 음료를 받을 수 있었다.
도톰한 빨대를 쭉 빨며 밖으로 나왔다.
‘오 맛있어.’
단골이 될 것 같은 맛. 입안을 가득 채운 살얼음을 만끽하며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한쪽 벽에 설치된 우편함이 혓바닥을 내밀고 있었다. 봉투들이 툭툭 튀어나와 그렇게 보였다.
확인해보니 고지서도 있고, 안에 딱딱한 게 잡히는 봉투들도 있었다. 단번에 데모 CD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수히 보내본 놈이라 척하면 척.
CD롬이 없어져 가는 추세지만, 이메일은 당연히 읽지 않을 거란 생각에 이렇게 현물로 보내는 거다.
‘그만큼 간절한 거지.’
한 손으로 움큼 집어 빼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빨대에 입을 붙인 채로.
문이 열리며 은은한 향기가 났다. 이윽고 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선글라스에 비친.
아까 그 새빨간 원피스 여자였다.
‘뭐지?’
우리 사무실이 1층을 제외한 이 건물 전체를 쓰고 있으니, 사무실 손님인가?
의아해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도 배인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사무실로 들어가자 윤태영이 보였다.
“어, 오셨어요?”
입에 고무줄을 물고 머리를 묶으며 반색한다.
“아, 네. 근데···누구 오셨었죠?”
“방금 나갔어요. 빨간 원피스에 기타 메신···.”
“저도 올라오다 봤어요.”
“되게 독특하신 분이던데···갑자기 들어와서 음악 한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이걸 주고 가셨어요.”
작은 박스다. 흔들어보니 소리가 난다. 이건 과자인데?
“하하.”
웃음이 났다.
언젠가 이런 얘기가 돈 적이 있긴 하지.
과자 소리가 나면 음반사 직원들이 우선순위로 열어본다고.
윤태영이 덧붙인다.
“데모 CD를 우편함에 넣어놓은 적은 있어도, 직접 문 열고 들어가서 준 적은 없었는데···암튼, 신기한 분이었어요.”
그러게. 비주얼부터가 신기하긴 했지.
여자가 주고 간 봉투까지 받아서 작업실로 들어왔다. 따라 들어온 윤태영의 손엔 베이스 기타가 들려있었다.
“계속 고민 중이셨어요?”
베이스 트랙만 한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학준이 형에게 완성된 음원을 보내줬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끝이다, 라고 생각하고 후반 작업에 더 치중했겠지. 하지만 이번에 확실히 봤잖나.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걸.
멜로디는 정답에 가깝지만, 정답은 아닌 거다. 그걸 최대한 정답에 가깝게 가져가는 건 결국 내 몫이고.
“이번에 동기(리듬)를 좀 이런 식으로···이렇게 넣어보면 어떨까요?”
윤태영은···내가 좀 덜어줬지. 내 몫을.
그렇게 한참 동안 곡의 자잘한 수정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회전교차로와 U턴이 난무하는, 길고 긴 토론이었다.
#
“장 작가.”
목소리가 굉장히 친근해서 하마터면 내가 만나러 온 상대가 서재원 팀장이란 걸 잊을 뻔했다.
대로변에 크게 지어진 갈빗집.
서재원 팀장이 손을 들어 음식을 주문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차분히 기다리자 서재원 팀장이 입을 연다.
“아더 레이블의 첫 신호탄을 쏘는 기분이 어때?”
“적당히 부담되고, 그렇습니다.”
“그래? 적당한 부담은 작곡에 도움이 된다더라고.”
끄덕이며 웃던 서재원 팀장이 말을 이어간다.
“곡 작업 안 될 땐 호텔 하루 잡아서 들어가 있고 그래.”
“네?”
“그러면 갑자기 안 나오던 영감이 나온다는 작가들도 많으니까.”
“아, 예.”
반 우스개 소리로 들리지만, 실제로 많은 작곡가들이 효과를 본 방법이긴 하다.
뭐, 호텔에 있다고 나처럼 멜로디가 들려오거나 하진 않겠지만 말이지.
가볍게 웃다가, 나도 준비해온 얘길 꺼냈다.
“아, 그리고 감사합니다.”
“뭐가?”
“이번에 회사 안에서 얘기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서재원 팀장이 덤덤하게 묻는다.
“가이드 보컬···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그 데모곡 친구?”
“네.”
학준이 형은 인지도 ‘0’의 일반인이다. 이 바닥에서 전공자인 건 큰 의미 없으니까. 앞으로 더 그렇게 변해갈 거고.
어쨌든, 그런 학준이 형과 곡 작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당연히 TKM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레이블의 표면적인 목적이 ‘다양한 색’에 있더라도 어디까지나 회사고, 그걸 위한 실적이 있어야 하니까.
그걸 위해 회사에서도 인지도가 생긴 최정아를 시험 삼아 보낸 거고.
아무리 ‘독립’ 레이블이라 해도, 결국 TKM 산하.
설득이 필요했다. 당사자인 내 말엔 힘이 없으니, 서재원 팀장이 대변해주었지.
“난 그냥 장 작가 말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인데?”
서재원 팀장이 옅게 웃었다.
보고서를 올릴 때 구구절절 설명해서 보내긴 했다.
첫 타자로 그림이 괜찮을 거라고.
기존의 레이블들이 이미 인지도 있는 스타들만 앞세웠고, 그래서 사실상 레이블의 존재 이유를 의아해하고 비난하는 여론도 많으니까.
친절히 비유까지 해줬다.
대형마트가 슈퍼까지 내는 것처럼 보인다고. 파는 건 똑같으면서.
그런데 아더는 최정아가 아닌 웬 일반인을 데뷔시킨다? 화제도 되고, 리스너들에겐 환호를 받을 구석도 생길 거라고, 그랬었지.
“그래도, 이번엔 좀 의외였어.”
“···?”
“공모전 곡을 다시 꺼낼 줄은 몰랐거든.”
묘하게 전해지는 부담.
“자신의 예전 곡들을 자꾸 끄집어내려 하는 작가들이 있긴 하지. 뭐 향수라도 있는 것처럼.”
그게 나란 소린가? 뭔가를 추궁한다기엔 애매했다. 그렇다고 충고라기에도 모호하고. 그 사이 어딘가.
적당한 부담감이 좋다던 양반이···.
“근데 그게 대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못하지.”
예전에 서재원 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곡도 회랑 같아서 오래되면 맛이 변한다고 했었지.
“회처럼, 말이죠?”
“내가 장 작가에게도 얘길 했었나 보네.”
“네. 아직도 기억날 만큼 좋은 얘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이번 건······.”
눈을 살짝 찡그리다가 단어를 생각해냈다.
“숙성 회 같은 겁니다.”
잠깐 멍한 표정을 짓던 서재원 팀장이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흘린다.
내가 덧붙였다.
“요리사도 그때보다 나아졌으니, 전혀 다른 맛이 나겠죠.”
서재원 팀장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어쩐지 ‘그게 맛있어야 할 텐데.’라는 표정 같았다.
#
멜로디는 상대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 되어 주는가?
이응.
멜로디는 성공을 보장하는가?
흠···.
그건 모르겠다. 지금까진 그렇게 보였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그리고 지금은 그 기로에 서 있는 기분이다.
내 첫 번째 멜로디가 녹음실 모니터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부스 안에는 퇴근하고 온 학준이 형이 콘덴서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고.
“형, 방금 꺼 킵(Keep) 할게. 조금 앞부분부터 한 번 더 불러줘.”
-오케이!
예전처럼 흥 담긴 목소리가 들려오고, 노래가 다시 이어진다.
엔지니어가 바퀴를 굴려 슬쩍 옆으로 붙는다. 머리가 벗겨진 엔지니어. 이현과 최정아 작업을 함께한, TKM에서 이번에 지원 온 인력 중 한 명이었다.
다가온 그가 복화술이라도 할 것처럼 은근히 묻는다.
“장 피디. 이번 건 진짜로 킵 할까?”
“아뇨. 안 하셔도 돼요.”
단호하게 고갤 젓자 엔지니어가 이해가 안 간다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아니, 나만 괜찮은 거야? 나만 좋아? 난 너무 좋은데?”
“저도 좋아요.”
“근데? 보통 킵을 한다고 해놓고 안 하는 건 보컬 기죽지 말라고, 멘탈 관리 때문에 그냥 하는 말이잖아. 근데 지금 잘만 부르는데 대체 왜 킵이야?”
“더 좋아질 거라서요.”
“으잉?”
킵 한다고 했던 부분이 다가왔다.
뭐라 더 물어보려 하는 눈치던 엔지니어도 고갤 정면으로 돌렸다.
“······.”
“······.”
“···이, 이것도 킵 하지마?”
“네.”
“···이것도?”
“흐음.”
“장 피디도 슬슬 쫄리지?”
“크, 크흠. 그럼 이건 킵을 좀 해둘까요?”
“그러자. 나 지금 소름이 두피에도 돋았으니까. 쭈뼛쭈뼛 선다고.”
그럼 인정이지. 킵 해야지.
그렇게 다섯 개 정도 킵 했을까.
결국, 우리는 킵을 모두 버리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에 부른 게, 최고였기에.
뒤에 녹음이 남았고, 목이 상할까 걱정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하루 온종일 부르게 시켰을지도.
다음 파트. 그 다음 파트로 넘어가선 엔지니어도 아예 팔짱을 끼고 앉았다. 킵을 하자는 얘긴 꺼내지도 않는다. 연신 감탄사만 내뱉고.
그러다 불쑥 얘길 꺼냈다.
“처음엔 노래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점점 더 잘 어울려져. 나 원 참, MR이 변했을 리는 없고. 이건···보컬이 계속 늘고 있다는 것밖엔···그찮아?”
처음 보는 일 인양 신기해하는 표정이었다.
실제로 녹음을 하는 도중 느는 경우야 많다. 감을 잡았다고 하지. 하지만 실력 자체가 눈에 띄게 느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나도 최정아와 합주실에서 연습할 때 처음 봤다. 이런 광경을.
확신에 확신을 더한 말투로 답했다.
“재능이 있었던 거죠. 애초에.”
학준이 형만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멜로디가 들리는 사람 모두를 향한 내 확신.
그런데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엔지니어.
“재능···그래 재능도 재능이지만, 난 노래 역할이 오히려 더 큰 것 같은걸?”
“···?”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는 노랠 부르니, 자신이 이제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알아가는 느낌이야.”
대단한 얘긴 아니었지만, 나는 꽤 놀랐다.
어···?
정말 그런가?
#
작업실로 돌아와 학준이 형의 보컬 트랙을 연거푸 들었다.
그리고 이전 공모전 때의 보컬 트랙을 찾아 들었다.
확연한 차이.
‘이건 말할 것도 없고.’
이번엔 최정아.
소일라 영상에서부터 최근 방송에 나와 부른 것까지. 꼭 ‘기억애’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다른 노래를 불렀던 것까지 모두 찾아 들었다.
다음.
이현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한유하까지도.
모두 눈에 띄게 늘고 있었다. 단순히 노래 실력뿐만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깔을 잡아가는 느낌?
내가 작업한 나름의 내 가수들이라 틈틈이 모니터링을 해왔다. 그러면서 언뜻언뜻 느끼긴 했었다. 그리고 당연히 난 그게 숨겨진 재능 때문일 거라 생각했었고.
숨겨진 재능 맞지. 맞는데···.
‘멜로디가 숨겨진 재능을 찾아 준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메마름을 넘어 가뭄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새로운 멜로디는 전혀 안 들리고 있는데.
오히려 멜로디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가는 기분이라.
어쨌든.
‘가뭄은 가뭄이고.’
나는 가뭄에서도 물을 긷는 법을 배워야지.
멜로디를 외면할 생각은 없지만, 거기에 목맬 생각은 더욱 없었다.
새로운 소스가 있나 살펴도 보고, 레퍼런스도 훑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훅훅 간다.
그러다 조금 지쳐 고개를 뒤로 젖히는데, 선반 위에 올려둔 봉투들이 보였다. 아침에 우체통에서 빼 왔던.
손을 뻗어 책상 앞에 펼쳤다. 뜯어 보니 USB부터 CD까지 구성들이 아주 다양하다.
많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만, 이메일은······.”
맙소사. 이게 대체 몇 개냐.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끝이 없었다. 보내는 처지일 땐, ‘읽지 않음’ 표시에 너무하다며 마른안주 씹듯 씹어댔는데···.
막상 입장이 바뀌니 내가 잘못 했네.
하하. 이거 다 확인하려면 오늘도 여기서 자야 할 판인데?
그래도 정성스럽게 데모 만들어 보냈던 내 모습이 생각나, 그길로 커피 한 잔을 내려왔다.
맑은 정신을 가장한 카페인으로.
‘모조리 들어주지.’
또 모르잖아.
이 속에서 훗날 대박을 터트릴 인재를 발견하게 될지도.
< 040. 스위치 (1)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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