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39화 (39/221)

< 039. 작곡가는, 곡으로 >

널찍한 작업실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내 앞엔 윤태영이 앉아있다. 오묘한 표정이었다.

얼음을 입에 물고 천천히 녹여가며 그를 기다렸다.

과거로 돌아온 후 내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곡. 윤태영은 이 곡에 대해 어떤 감상을 내놓을까? 궁금해하며.

마침내 곡이 끝나고, 윤태영이 날 돌아봤다.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와···좋은데요?”

“그래요?”

“네, 진짜 좋아요. 이게 피디님 다음 작업이 될 녀석인가요?”

윤태영이 트랙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목소리에서 욕심이 물씬 전해진다.

이 곡에 자신의 베이스를 얹고 싶어 하는 욕심.

하지만 내가 윤태영에게 부탁하고 싶은 트랙은 따로 있지.

별말 없이 씩 웃으며 방금 전 트랙을 뮤트 (-음소거) 시켰다. 그리고 이번엔 다른 트랙을 재생시켰다.

전주가 흘러나오고, 동시에 윤태영의 눈이 가늘어진다.

“같은 곡이네요? 근데······.”

말을 흐려놓고, 한참을 듣기만 한다.

곡의 1절이 끝날 때까지.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곡이 2절로 접어들며 윤태영이 말을 이었다.

“근데, 꽤 많이 달라졌네요?”

나는 옅게 웃으며 끄덕였다.

윤태영은 그런 날 잠시 보더니 다시 집중해서 노랠 들었다.

표정이 다양하게 변한다.

어느 부분에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또 어느 지점에선 날 돌아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윤태영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감상했다.

입안의 얼음이 완전히 녹아 없어질 때까지.

혓바닥이 마취한 것 마냥 얼얼할 때, 딱 노래가 끝났다.

눈을 깜빡이는 윤태영. 난 그게 슬로우모션으로 보였다. 긴장했나 보다.

이건 나와 나를 비교하는 것. 결국, 내 실력이 얼마나 늘었냐의 문제라, 무슨 채점 받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윤태영이 말했다.

“솔직히 전 처음 버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충분히 좋다고 생각했어요. 당장 음원으로 내도 될 만큼.”

처음 들었던 곡에 대한 짧은 평가를 마친 윤태영이 묘한 표정을 띄운다.

“근데, 두 번째 버전을 들으니 반성하게 되네요. 이렇게나 나아질 수 있는데, 처음 걸 충분하다고 생각한 게.”

조명 탓일까. 나는 윤태영의 눈이 번들거린다고 느꼈다. 또 보인다, 욕심. 그리고 그게 기분 좋았다.

이미 이 곡으로 한 사람을 설득한 느낌이랄까.

나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여기에 추가할 아이디어가 있을까요? 펑키한 느낌이라, 그걸 잘 살려줄 베이스가 필요할 것 같은데.”

이 말을 하자마자, 윤태영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로비에 세워둔 베이스를 들고 들어왔다. 욕심이 번들거린다.

#

수년을 꿈꿨지만 결국 포기했다.

노선을 바꾸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그 결정을 위한 고민까지 짧았다고 할 순 없었다.

엄청 고민하고 고민한 선택.

그러니, 앞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 따윈 없을 거라 생각했다. 흔들릴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형이 불러줘라. 이 곡.’

그때 장기로의 제안은 너무 유혹적이었다.

그래서 했다. 명분도 있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친한 동생을 위하여.

‘그래, 음악을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 그냥 데모 녹음을 해주는 것뿐이니까.’

결국, 장기로는 그 곡을 시작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말 좋아하는 동생이자, 후배였으니.

기꺼이 그 길을 응원해줄 수 있었다.

첫 곡이 세상에 나오고, TOP10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을 때까지만 해도.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장기로의 두 번째, 세 번째 곡이 무려 1위를 하고, 기로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알려질수록.

부러워졌다.

‘녀석은 재능이 있었던 거야.’

그렇게 생각할수록 초라해지는 건 자신이었다.

어느 순간, 장기로에게 연락하는 걸 꺼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러움이 질투가 될까 무섭고, 역해서.

죄책감이 가득한 밤이었다.

술을 조금 마셨고, 말짱한 정신으로 전화를 걸었다.

바람 소리 사이로 장기로의 목소리가 들렸고.

사과했다.

질투가 될 것만 같은 부러움에 대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장기로가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평소처럼 시덥잖은 농담을 하다 오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녀석은 대뜸 말했다. 음악 하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떻게 포기했는데.

어떻게···이렇게 쉽게 또 흔들리나.

그래서 더 단호하게 거절했지.

잘했다. 잘 한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나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형.”

“······.”

“형?”

“어? 어, 어.”

소파에 앉아있던 김학준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자, 그의 두 살 터울 동생이 걱정하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있어.”

“아, 그게···하. 아냐.”

김학준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하품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건 분명 백수라는 직종에 몸담은 베테랑이다, 라고 생각할 정도의 몰골.

“으휴, 치킨 사 왔어. 먹자.”

“또 치킨···?”

“어? 언제 먹었는데?”

“아, 아니다. 먹자. 치킨에 어제, 오늘이 어딨겠냐. 치킨은 치킨이지.”

플라스틱 소재의 작은 탁상에 둘이 마주 앉았다. 포장을 열던 동생이 김학준의 안색을 살폈다.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주말인데 운동도 좀 하고 그래.”

“운동이라니. 그게 치킨 먹기 전에 할 소리냐. 그리고 너도 직장 다녀봐라. 그게 되나.”

“난 새벽같이 일찍 나가서 헬스장 갔다가 출근할 건데?”

“흐흐, 퍽이나.”

노릇노릇한 다리를 입안에 넣은 김학준을 빤히 보던 동생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 어제 기로 형 만났다며?”

“그런데?”

“뭐야, 그 영문 모르겠단 얼굴은. 플로라 싸인 씨디를 부탁한 동생의 억장이 무너지게.”

“아···미안하다. 다음에, 다음에 만나면 얘기해줄게.”

“언제 또 보기로 했는데?”

“어? 그, 글쎄.”

“이봐, 이봐.”

닭다리를 들고 혀를 차던 동생은 한 입 먹더니 ‘존맛이다.’라며 입꼬릴 올렸다.

김학준도 허허 웃으며 날개 하나를 뜯는다.

그렇게 식사가 이어지던 도중, 동생이 불쑥 말을 꺼냈다.

“기로 형, 레이블도 만들었다던데.”

“···근데?”

“혹시 형한테 뭐 같이 하잔 말은 없어?”

장난기 어린 표정. 하지만 김학준은 그걸 장난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레이블이 걔 거냐. 그냥 소속 프로듀서지.”

“그래도, 무려 producer잖아.”

버터 향 물씬 나게 굴린다. 적어도 영어 공부는 열심히 하고있나 보다.

김학준은 쓰게 웃었다.

“뭐, 하자고 하긴 하더라.”

탕. 닭다리가 탁상을 쳤다.

“같이 음악 하자고?!”

“엉.”

“그, 근데?”

“거절했지. 당연히.”

“다, 당연은 얼어 죽을, 그걸 왜 거절해!”

어이없어하는 동생에게 김학준이 설명했다.

“야, 내가 꿈 포기하는 데 몇 년이 걸렸는데···다시 그 꿈 가지면···.”

“뭐! 또 포기하게 될까 봐?”

“그것도 그렇고, 창피하기도 하고···.”

장기로에게 전화 걸었던 것에 대해 풀어 놓았다. 그러자 동생은 더욱 어이없다는 얼굴이 되어선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뭐가 창피해? 형처럼 직접 전화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거의 없어. 엄청 용기 있는 일이라고.”

“뭐래···술 마셨냐?”

“아씨, 진짜. 빨리 기로 형한테 연락해. 말이 헛나왔다고. 하겠다고.”

“됐어.”

“아님, 내가 한다?”

손이 쑥 나타나 치킨 무 옆에 있던 핸드폰을 가로챘다. 당황한 김학준은 벌떡 일어났고.

그때였다. 동생이 새끼손가락으로 핸드폰을 톡톡 치다, 멈칫한 것은.

“어? 기로 형한테 메시지 왔다.”

“뭐? 무, 뭐라는···데?”

동생은 김학준을 향해 고갤 저었다.

“아무 말도. 그냥 음원 파일을 보냈는데?”

#

윤태영은 삼 일 뒤에 다시 오겠다며 사무실을 나섰다.

그땐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되겠지.

든든하다. 지우가 전설의 포켓몬을 잡았을 때, 이런 느낌이려나. 근데 지우가 잡은 적은 있나? 무능한 놈.

좌뇌 우뇌를 넘나드는 잡념 속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 테이블에 앉았다.

“······.”

다시 일어났다. 테이블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

안락의자에도 앉아본다. 안락하지가 않아.

다시 일어나서 서성였다.

종이컵을 우그러트리며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비스트로가 사놓은 캔맥주 하나를 꺼냈다.

“뭔가 답답한데.”

순간 이 건물 옥상이 꽤 괜찮다는 말이 떠올라 계단을 올랐다.

이제 구색을 거의 갖춘 듯한 3층과 4층을 지나 옥상 문을 열어젖히자, 시야가 확 트인다.

작은 텃밭과 목재로 된 가림막 사이로 휘적휘적 걸었다. 난간까지 다가서자 고만고만한 크기의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는 게 보인다. 그 너머에 보이는 청담 사거리와 큰 빌딩들도.

“여수 밤바다가 다른 건 몰라도 바람은 확실히 시원했네.”

그런 생각을 하며 맥주를 홀짝였다. 씁쓰름하다, 역시.

쩝. 입맛을 다시는데, 손아귀가 간질거린다. 캔맥주를 든 손 말고, 핸드폰을 들고 있는 반대 손이.

누구의 전화인지 확인하자마자, 얼른 귀에 가져다 댔다.

잠시 기다리자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기로야.

핸드폰을 통해 듣는 목소리라 멜로디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알 수 없었다. 형의 생각을.

-네가 보낸 음원 들어봤어.

“어? 어···.”

-좋더라. 더 좋아졌더라.

앞에 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유일하게 형 목소리만 그대로야.”

-그러게. 오랜만에 들었는데···잘 부르네. 새끼.

“그니까.”

다시 정적.

애간장이 탄다는 말이 뭔지 알겠다. 지금 아예 잿가루가 돼서 흩날리고 있다.

그때 형의 물음이 들려왔다.

-내가 해도 되겠냐? 이 곡 정말 될 곡 같은데. 푸흐.

꼭, 어디선가 들어봤던 말 같네.

“어.”

그래서 나도 어디선가 했던 말을 했다.

“형이 불러줘라, 이 곡.”

-······.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빙긋이 웃으며 맥주를 쭉 들이켰다.

탄산이 목구멍에 닿을 때마다 팍팍 터진다.

역시, 맥주는 이래야 제맛이다.

#

<‘아더(Ardour)’의 선발주자, 기로 프로듀서의 곡!>

<이현, 최정아, 플로라를 이을 다음 아티스트는?>

출근길, 폭염과 함께 기사가 쏟아진다.

우리 쪽에선 아무런 보도자료를 낸 게 없는데 말이지.

TKM이 움직였다는 합리적인 추측을 이어가는데, 메시지가 들어왔다.

[야 씨, 이거 뭐냐 기사들···.]

문자에서부터 느껴지는 부담감. 학준이 형이었다.

“푸흐.”

그날, 옥상에서 통화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학준이 형은 아직도 꼬박꼬박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 인수인계를 위해서.

그만두겠다고 말한 날, 그 회사 과장이란 사람이 학준이 형에게 뭐라 그랬다더라.

그 쓸모없는 전공 가지고, 다른 회사에서 받아주겠냐고···했댔지.

그 개소리에 대고 학준이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대신 말해주려고.

아니, 보여주려고.

‘우리 회사가 모셨다고.’

제대로 성공시켜 보자.

멜로디든. 내 기억이든.

아니면, 조금씩 늘고 있는 내 실력이든.

그걸 믿고.

나를 믿고.

“어서 오세요.”

가벼운 듯 무거운 발걸음으로 1층 카페 문을 열었다.

여기가 건물주의 가게인가.

시원한 공기가 땀에 살짝 젖어있던 피부에 철썩 달라붙는다. 역시 빵빵한 에어컨.

달달한 프라프치노를 하나 주문했다.

팔짱을 끼고 카페에 흘러나오는 노랠 흥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직장인들 사이로 유독 눈에 띄는 비주얼.

새빨간 원피스에···기타를 등에 메고 있네? 이건 무슨 조합···.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점원의 외침에 여자가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다들 시선이 쭉 따라가는 걸 보면 나만 특이하게 생각한 건 아닌가 보네.

여자가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당당하게 걷는다.

건물 입구 쪽으로···.

< 039. 작곡가는, 곡으로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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