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38화 (38/221)

< 038. 독립레이블 (3) >

TKM 5층 라운지.

테이블 위에 빈 캔이 올려져 있고, 정 대리와 이민주가 따분한 표정으로 각자의 핸드폰을 뒤적였다.

먼저 입을 뗀 건 이민주였다.

“전도유망한 세 프로듀서의 행보가 기대된다······라는 데요?”

“누가?”

“음···채연주 기자가요.”

정 대리가 봉봉에 들어있는 알맹이를 씹으며 묻는다.

“아는 기자야?”

“전혀요? 사운드베리 소속 기자예요.”

그 이름에 불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거기 이현 때랑 그 사건 때, 기사 냈던 곳 아냐?”

단번에 알아들은 이민주가 끄덕인다.

“맞아요.”

“거긴 우리한테 관심이 왜 이렇게 많아?”

“애초에 대중음악 관련 이슈들을 다루는 회사라 그렇겠죠? 다른 소속사 관련 기사도···어후, 끝도 없이 나와요.”

정 대리가 할 말을 잃고 입맛을 다셨다. 그 사이 이민주가 다시 입을 연다.

“그나저나 저도 궁금하네요. 특히 장 피디님 말이에요. 다음엔 어떤 곡을 낼지 기대되지 않아요? 무슨 장르이려나···.”

“너무 부담 주지 말자고. 걔 아직 반년 밖에 안 됐어.”

정 대리는 걱정하는 눈치였다. 직원들의 은근한 기대 때문에.

‘그중 제일은 팀장님이고.’

정 대리가 봤을 때, 서재원 팀장이 장기로에게 거는 기대는 가히 노골적이다. 그만큼 장기로가 능력을 보여주긴 했다만, 그래서 더 걱정이었다.

‘그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을 때, 팀장님이라면······.’

캔을 허공에 휘휘 돌리는 정 대리.

이민주가 턱을 괴며 아쉬운 얼굴로 답한다.

“장 피디님, 이제 회사에도 안 계시는데요 뭘.”

그러던 이민주가 뭔가 생각났단 표정으로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그 곡은 어떻게 된 거예요? 장 피디님이 공모전에 제출하셨던 곡.”

“그건 왜?”

“그 곡도 진짜 좋았는데, 이현이 ‘봄이 올까요’ 부르게 된 이후론 별 얘기가 없길래요.”

“그렇게 주인 못 만나 쌓이는 곡이 그거뿐인가?”

“그래도요, 그거 진짜 좋았는데···.”

늘어지는 이민주의 말끝에 정 대리가 느릿하게 끄덕였다.

“확실히 좋긴 했지···.”

시계를 힐끔 본 정 대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덧붙인다.

“뭐, 알아서 하지 않겠어? 어차피 공모전 곡은 본인한테 권한이 있으니.”

#

“으윽···.”

끝까지 쳐놓지 못한 커튼 탓에 눈이 부셨다.

팔이 갑자기 늘어나지 않는 한, 결국 일어나야 하는데, 그건 또 귀찮네.

그렇게 계속 뒤척이다 아예 잠이 깨버렸다.

그래, 어차피 일어날 때 됐지. 대낮인데.

“후우!”

시원한 냉수 한 잔 마시고 원룸을 내려다봤다.

난장판이었다.

정리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말이지. 이쯤 되면 정리를 안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하는 의심까지 든다.

‘집도 옮기긴 해야 하는데.’

계약 기간도 끝나가겠다, 차라리 회사 근처로 옮길까 생각하는 중이었다.

“한가할 때 좀 알아보러 다녀야겠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느긋하게 청소도 좀 하고, 방치되다 못해 썩어 가는 악기들도 한 번씩 닦아냈다.

그리고 나선 그동안 시간이 없어 듣지 못했던 노래를 쭉 들었다. 어떤 장르 할 것 없이 신곡이란 신곡은 닥치는 대로.

물론 시간 여행자답게, 방금 전 발매됐는데 이미 알고 있는 노래를 찾는 것도 재미가 쏠쏠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시간 맞춰 치킨집으로 향한다.

푹푹 찌는 한여름 밤의.

‘치킨집이란···.’

치킨과 생맥주를 시켜놓고 더위를 날려는 사람들로 와글와글하다.

마침 야외에 한 팀이 일어나길래 얼른 자리를 잡았지.

치킨도 미리 시켜놓고, 학준이 형을 기다린다.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토록 편한 학준이 형을 만나는데, 무슨 면접, 미팅, 뭐 그런 거라도 하는 것처럼 긴장이 되다니.

마침내 내 긴장감의 원인이 저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새하얀 반 팔 셔츠를 펄럭이며.

“치킨은?”

“시켜놨지.”

흡족하게 웃어 보인 학준이 형이 팔을 휘적였다.

“이모, 여기 맥주 500이요!”

사장님의 까랑까랑한 대답을 들은 학준이 형이 자리에 앉는다.

“진짜 덥다. 이런 날엔 역시 닭을 먹어 줘야 해. 몸보신으로.”

그게 튀긴 닭은 아닐 텐데 말이지.

“근데, 웬일이야? 요즘 레이블이다 뭐다, 해서 바쁠 때 아닌가?”

“오히려 그래서 한가해. 공사도 한창이고.”

“오, 어떻게 해놨는지 궁금한데? 솔직히 TKM은 그냥 회사. 딱 그 느낌이더라고.”

“어? 와봤어?”

“가봤겠냐. 인터넷에서 봤지.”

“푸흐, 언제든 놀러 와.”

학준이 형은 여수에서의 통화를 잊은 듯 원래의 학준이 형이었다.

별거 없는, 평소 그대로.

하지만 내 머릿속은 표면장력을 실험할 때 마냥 위태롭게 흔들렸다.

왜···?

의문이 샘솟는다.

귀가 너무 허전해서.

플로라 때와는 다르다. 그건 멤버들이 모두 모여야만 했기에 한유하 혼자선 들리지 않았던 거고.

‘소리가 옅어져 있어···.’

지난번 봤을 때만 해도 귀 안에 초소형 스피커를 넣어 틀어놓은 것처럼 뚜렷했는데.

지금은 갖은 집중을 해야 제대로 들릴 정도로 미약하게 들린다. 학준이 형의 멜로디가.

“오, 이거지. 야, 얼른 먹자.”

얼려둔 잔에 담긴 맥주가 나오고, 기름이 좔좔 흐르는 치킨이 나왔다.

나는 애써 혼란스러움을 감췄다. 내 상황을 알 리 없는 학준이 형은 치킨 발골 작업에 박차를 가했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이 어두워지고, 조명이 전부 켜졌을 때쯤, 학준이 형이 접시와 맥주잔을 오가던 고갤 내 쪽으로 들었다.

“그래서. 갑자기 부른 이유는?”

“어···?”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지난번엔 그 개자식 때문이었고. 이번엔 언놈이야?”

머릿속을 다 정리하고 온 건데.

확신에 차서 왔는데.

설득도 하려고 해둘 말도 정했는데.

멜로디에 대한 생각 하나로 우르르 넘어져 버렸다.

도미노야, 뭐야.

그래도 하려던 말은 해야겠다 싶어 입을 뗐다.

“형.”

“엉? 나?”

벙찐 표정을 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 음악 하고 싶지?”

도미노 더미 속을 뒤져 내가 하고픈 말을 꺼냈다. 이대로 읊기만 하면 돼.

“해보자. 내가······.”

“싫어.”

대답은 엇박자로 훅 치고 들어왔다.

단호하다 못해 딱딱한 대답이었다.

나는 학준이 형을 유심히 살폈다. 대답만큼이나 장난기 쫙 빠진 얼굴.

내가 실수 한 건가···?

-라고 생각할 뻔했지.

내 귀가 간질거리지 않았더라면.

이상한 일이다. 학준이 형의 멜로디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잠깐 사이, 몇 가지 생각이 내 머릴 스쳤다.

‘설마······.’

나는 그대로 준비된 말들을 도미노 속으로 내던졌다.

지금은 일단 형의 말에 맞춰 끄덕이는 거로 충분할 것 같았으니까.

#

‘강한 부정은 긍정이랬나.’

싫다는 형의 대답에서, 멜로디는 오히려 커졌다.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근접하게까지.

뭘까. 이게 뭘 뜻할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릴 굴려봤다. 그리고 나온 결과.

멜로디가 들리는 건 상대의 의지도 있다는 것.

학준이 형은 의지가 꺾였던 거다. 아마 그 시점은 여수에서의 통화였겠지.

한유하도 음악을 관두려 했지만, 엄밀히 다른 케이스고···.

걘 의지가 없진 않았어.

“하하.”

능력이 생긴 지 반년이 됐는데, 아직도 새로운 게 나올 줄이야.

깔끔하게 정리된 집에 앉아 연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자, 이제 어쩐다.’

학준이 형은 분명히 거절했는데, 어쩐지 거절당한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충분히 흔들리고 있는 게 보여서.

조금 느긋해진 마음으로 머리를 굴린다.

어떻게 형의 마음을 확실히 돌릴까?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날이 밝자마자 작업실로 향했다.

#

귀가 간지럽다.

금속과 금속이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문 열리는 소리?’

어, 코끝도 간지러운걸?

고소하고 달달한 게 꼭···.

‘도넛 냄새.’

눈을 떴다.

거의 눕다시피 앉아있던 안락의자에서.

집···일리는 없지. 그 비좁은 곳에 안락의자가 웬 말인가.

곰곰이 되짚었다.

그래, 나 출근했었지. 비몽사몽인 상태로. 그리고 잠깐 의자에 앉았는데 그대로 잠들어 버렸나 보다.

아직 묵직한 눈꺼풀을 비비는데, 이제 막 출근한 듯 코너를 돌며 나타난 이성원이 날 보더니 멈칫했다.

“······.”

“안녕하세요.”

상체를 곧게 세우며 목인사 하자, 이성원도 똑같이 인사를 해왔다.

한 손엔 녹색 종이 박스가 들려있다.

“······.”

“······.”

“···도넛 좀 드실래요?”

곧장 방으로 들어갈 줄 알았던 이성원이 테이블에 도넛을 툭 내려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절대 배고파서 그러는 거고.

“흣짜. 그럼, 커피는 제가 내려드릴게요.”

웃으며 얼른 커피 두 잔을 내려왔다.

종이 박스를 열자 확 피어오르는 열기.

간판에 불 들어오자마자 바로 사 왔나 본데?

“잘 먹을게요.”

“네.”

솔직히 이렇게 둘이서 테이블에 앉아 뭘 먹는 게 어색하긴 하다.

먹다 체하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하지만 막상 먹으니 좋은 점도 있네.

‘말을 걸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 괜찮은걸?’

속으로 낄낄대며 도넛을 야금야금 베어 물었다.

그때 이성원이 커피로 입가심을 하며 입을 열었다.

“···다음 작업 생각해둔 사람 있어요?”

이성원이 말을 먼저 걸다니.

그것도 의문문으로.

이거 회사 입사 이례로 처음 아닌가?

놀라 하며 끄덕였다.

“네 있죠.”

누구냐면···.

“아, 네.”

딱 한 번 끄덕인 이성원이 다시 도넛을 오물거린다. 그러다 커피도 한 모금 머금고.

뭐야, 그게 끝? 이럴 거면 질문을 왜 한 거지?

약간의 오기랄까. 그런 게 생겨 이번엔 내 쪽에서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이성원은 TKM에 영입되기 전에 프리랜서였지.

“이 피디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네. 그러세요.”

“같이 작업하고픈 가창자가 생겼는데, 그 사람이 싫대요. 그럼 뭐라고 설득할 거예요?”

갸웃거리는 이성원.

“설득···?”

점점 더 기묘해지던 이성원이 엄지와 검지에 묻은 설탕을 핥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안 해요, 전. 그런 거.”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했다. 이성원답달까.

이어지는 말은 더 무심했다.

“결국, 작곡가는 곡으로 설득하는 거죠. 말에다가 미사여구 붙여봤자···전 소용 없다고 생각해요.”

이성원이 도넛이 하나 남은 박스를 내 쪽으로 스윽 밀었다. 그러더니 ‘전 이만.’이라고 살짝 인사하며 자신의 작업실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테이블에 남아, 남은 도넛과 커피를 먹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맞는 말이네.

역시···.

“잘 먹었다.”

자리를 치우고 일어났다.

뭘 해야 하는 지가 명확해진 기분으로.

오랜만에, 의지가 샘솟는다.

작곡가답게, 곡으로.

이미 학준이 형의 멜로디로 한 번 발전 시켰었던 곡이다. 공모전에 당선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던. 아니, 높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이번에 수백, 수천 번은 들었더니 부족한 점들이 툭툭 걸려 견디기 힘들더라.

그 사이, 내 실력도 그만큼 성장한 거려나.

시험 해볼 수 있겠다.

내가 얼마나 늘었는지.

< 038. 독립레이블 (3)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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