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36화 (36/221)

< 036. 독립레이블 (1) >

서재원 팀장의 목소리가 아직도 뇌리에 콱 박혀있다.

‘일단은 프로젝트성이야.’

‘지켜본다는 거지.’

‘이 채널이 과연 지속 할 만한지.’

‘괜히 다른 레이블에 밀리면 회사 체면만 구기니까.’

독립레이블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상 산하레이블이란 표현이 맞다. TKM의 지원을 통해 움직이는 레이블이니까.

어떻게 보면 이건 투자고. 투자대비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언제든 폭파 시키겠다는 조건을 건 거다.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그리고 그 다음은?

만약 패배한 원정군이 된다면?

묘하다. 이게 기회인지, 아닌지 모호할 정도로. 그러니 고민할 시간을 준 건가?

날 보는 서재원 팀장의 눈빛 ‘안 하고는 못 배기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말이지.

멜로디에 의존하던 나였더라면 옳다구나 했을 거다.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테니까. 예를 들면 캐스팅이라던가.

하지만 지금은 왠지 그런 권한들이 내가 져야할 책임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고민이 되는 거고.

“후아!”

렌트한 차에서 내렸다.

크게 숨을 들이쉬며 발이 푹푹 빠지는 해변으로 내려서자 공기가 확 달라진다.

짠내가 짙어지고 시원한 바람이 피부를 쓸고 지나간다.

어둑한 해변을 정처 없이 걸었다. 머릿속에 든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해보면서.

휴가 와서까지 일 생각 하는 게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빨리 정리를 해둬야 남은 시간이라도 편하게 보낼 것 같았다.

서울에서 온 아들놈이 거실 소파에 앉아 하루 종일 고민을 되새김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으니.

그런데 늘어지는 고민을 주머니 속 진동이 싹둑 잘랐다.

학준이 형.

-작곡가님?

모처럼 듣는 목소리다. 길성혁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이후로는 연락이 뜸했었지. 차트 1위 때마다 축하 문자는 꼬박꼬박 주고받았지만.

“어, 형.”

-아이고, 우리 작곡가님.

평소 말투와 조금 다르다. 여기서 평소라 함은 술을 자시지 않았을 때를 뜻하고.

“술 마셨어?”

-어케 알았냐. 티 날 정도로 마시진 않았는데.

“같이 마신 세월이 얼만데.”

-푸흐, 그런가? 하긴 우리가 군대다 뭐다 뜸할 땐 있었어도 학생 땐 진짜 매일 붙어 다니며 마셨었지.

“······.”

순간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만 치쯤은 된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확 벌어지는 느낌이랄까.

나에게 학준이 형은 15년을 본 사람이지 않나.

그동안 마신 술병을 늘어세우면 이 해변을 두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근데 진짜 별로 안 마셨어. 딱 소주 한 병.

“왜? 전 여친 생각나서?”

내가 한창 바쁜 사이에 결국 헤어졌다.

딱 내가 기억하는 대로 여자 쪽이 환승 열차에 올라타셨다.

잘된 일이지. 그 덕에 곧 진짜 형수님이 될 사람을 만나게 될 테니.

-푸흐, 그런 거 아냐.

“에이.”

-진짜 아니야, 임마.

핸드폰 너머로 변하는 온도를 느끼며 물었다.

“그러면?”

-이게······.

말꼬리가 늘어진다.

나는 해변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 기다렸다.

이윽고 들려온 말이 여수의 거친 모래보다도 날카롭게 들렸다.

-이게 절대 질투는 아니거든?

#

고민 위에 전혀 다른 고민이 덮였다. 그 상태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가꾸는 작은 텃밭을 지나 계단을 올랐고, 녹슨 문고릴 잡아당겼다.

“나 왔어요.”

존재를 알리며 원목 옷걸이에 얇은 카디건을 걸고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안방에서 나오는 아버지.

“오랜만에 가보니 어떠냐, 바다.”

이미 봤지만, 또 봐도 웃음이 나는 젊은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여전히 암 것도 없더만 거긴. 근데 엄마는요?”

“저녁거리 사러 마트에.”

얼른 일어나려 하자, 아버지가 손을 휘저었다.

“내가 데리러 가기로 했어. 넌 이제 다른 처자 알아봐라.”

씩 웃으며 밖으로 나가는 아버지.

홀로 남겨진 난 집 안을 다시 한번 훑었다.

모든 게 10년 전으로 되돌려졌는데,

심지어 부모님의 주름마저도 그랬는데.

유일하게 여기만 10년 후랑 차이가 없네.

그런 점이 묘하게 안정감을 준다.

“좋네.”

겹겹이 쌓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 있지만, 그래도 웃게 되네. 휴가가 좋긴 좋아. 며칠 더 달라고 졸라볼 걸 그랬나?

‘어차피 거절당했겠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정 대리가 그려진다.

잠시 후, 아버지가 양손에 비닐봉지를 한가득 들고 들어왔다. 뒤엔 엄마가 파 한 대를 들고 종종 따라 들어왔고.

“메뉴가 뭔데?”

“닭볶음탕.”

“역시!”

손뼉을 치며 일어났다.

“뭐 도와드려?”

“야, 야. 요리 망치지 말고 이리 와서 이거나 도와.”

“응?”

아버지의 부름에 따라 방으로 들어가니 텅 빈 책장이 보인다.

“이거 옮기려고요?”

“어. 이거 옆방으로 옮기려 하는데···.”

자잘하게 긁혀있는 바닥. 이미 혼자 몇 번이나 시도했었나 본데···.

“수건 가져와 봐라.”

“넵.”

바닥에 수건을 끼워 함께 낑낑대며 책장을 옮겼다.

그렇게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식탁 앞에 앉았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닭볶음탕 앞에 앉아 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비스듬히 앉아 배를 두들기는데, 아버지가 맥주잔을 꼴깍 넘기며 물어왔다.

“그래서, 현이는 잘 지내고?”

“현이?”

“이현이.”

“······.”

난 또. 누군가 했네.

“걘 요즘 통 TV에 안 나와.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아···공연 다니느라 그래요. 엄청 바빠.”

내 말에 이번엔 엄마가 관심을 가지며 입을 연다.

“그래? 정아나 로라는 아주 틀면 나오더만.”

로라···.

“그, 뭐. 그쵸.”

당황스럽다. 모니터링을 하고 계시다니.

여기가 집인지 TKM 홍보팀인지 헷갈릴 때쯤, 엄마가 신난 목소리를 냈다.

“내일은 엄마랑 장 좀 같이 보러 가자?”

아버지의 고개가 홱 돌아간다.

“왜, 동네방네 자랑하려고?”

“당신도 같이 갈래요?”

“엉.”

부모님의 대화에 낄낄대며 웃고, 설거지까지 돕고서 생각했다.

그래, 지금은 그냥 쉬자. 대견스러워하는 부모님 장단에 맞추면서 말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못 했을 효도란 걸 좀 해보자.

고민들을 미뤘다.

3박 4일의 휴가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수 집의 넷째 날.

나는 그제야 묵혀뒀던 하얀 봉투를 꺼네 부모님께 드릴 수 있었다. 36살의 내가 건넸던 용돈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또 올게요.”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 후, 렌트한 차를 반납하고, 기차에 올랐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출발하기 무섭게, 고민들이 밀려온다.

차창 밖 풍경은 빠르게 슥슥 지나가고.

저렇게 넘기고 싶다, 이 고민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큰 고민인 줄 알았던 게 학준이 형과 통화한 후 작아졌다는 거다. 그래서 결정이 쉬웠지.

해보자, 독립레이블.

설령, 패배한 원정군이 되더라도.

결심하며 몸을 좌석에 더욱 깊게 묻었다.

그리고 고민을 한참 동안 이어갔다. 계속 이어폰을 꽂은 채로.

서울까지 가는 내내, 나는 한곡만 반복해서 들었다.

학준이 형의 목소리가 얹어진, 나의 첫 멜로디를.

#

<솔라톤, ENB, 터닝 등에 뒤이어 TKM도 ‘작은 시장’을 노린다···>

<대형 기획사들이 앞 다투어 독립레이블을 준비하는 이유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화살을 시위에 쟀는데, 거기서 ‘이걸 왜 쏴야 하지?’라고 의문을 품는 순간,

절대 목표물에 집중하지 못할 테니.

그래서 싹 지웠다. 의문 같은 거.

대신 목표만 바라봤다.

‘아티스트를 내 곡으로 빛나게 해보자.’

내가 가장 바랐던 일이잖아.

그래서 여기에 앉아있지. 미팅룸.

내 옆에는 비스트로가 피곤한지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고.

건너편엔 무표정을 한 이성원이 눈알을 굴리고 있다. 반년 동안 저 외의 표정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네.

“포텐업은 잘 마무리되세요?”

“흐으엄, 그럭저럭. 그래도 나가기 전에 마지막 작업이라 신경 좀 쓰고 있지.”

“오,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합류가 좀 늦어질 듯싶다. 한···2, 3주 정도?”

“그 정도면 뭐, 녹음실 공사까지 다 끝나면 얼추 맞겠네요.”

TKM 사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무실이 구해졌다. 작업실은 물론이고 연습실에 녹음실까지 들어갈 예정이었다. 지금 한창 공사 중이라지.

무려 8개나 만들 녹음실 얘기로 한창 떠드는데, 문소리가 나며 서재원 팀장이 들어왔다.

나포함 셋의 시선이 서재원 팀장을 따라갔다. 자리에 앉은 그는 그런 우릴 쭉 훑었고.

“모아놓고 보니···.”

보니?

“좋네. 독특한 느낌도 나고.”

칭찬인지 모를 말을 던지고선 빙그레 웃는다. 여전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리송한 사람이다. 서재원 팀장은.

“회의 결과부터 얘기하지.”

손깍지를 낀 채로 팔꿈치를 책상 위에 얹는다. 시선은 계속 바꾸되 급하지 않게, 천천히.

“일단 프로젝트 성으로 진행되는 건 동일해.”

저건 이미 보도 자료까지 나간 마당에 바뀔 리가 없고.

“빠르면 반년. 늦어도 1년 안에는 유의미한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보더군.”

잠자코 듣고 있던 비스트로가 물었다.

“성과란 건 어떤 기준입니까?”

그러게. 성과라면 모름지기 돈이지 않을까?

혹은 음악 레이블이니만큼 음원 성적이라던가.

근데, 또 생각해보면 독립레이블이 당장의 돈을 위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

결국, 앞으로 ‘작은 시장’들로 스며들 수 있느냐가 레이블의 존재 이유를 대변하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다른 대형 기획사들의 레이블과 경쟁해서 살아남느냐.”

무심코 던진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날 향했다.

“일까요···?”

특히나 서재원 팀장의 시선이 새삼 부담스럽다. 저 옅은 웃음까지도.

“장 작가, 여기 오기 전에 사회생활 해본 적 있나?”

“예···? 아뇨.”

내 대답에 순순히 끄덕인다.

“그치. 일 벌이는 거 보면 분명히 아닌데, 또 그게 아닌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서 말이야.”

“···?”

“아냐.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얘기마저 하지.”

서재원 팀장이 입꼬릴 원래대로 내리며 말을 이었다.

그의 입에서 국내 다섯 손가락의 거대 기획사와 그들 산하의 레이블 이름들이 읊어진다.

그리고.

“이들하고 경쟁할 정도는 돼야 해.”

주어진 시간은 1년.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

서재원이 말을 마치며 웃었다. 처음이었다. 저런 표정은.

뭐랄까···.

몹시 기대하는 표정?

#

“어색하네.”

그런 출근길이다.

TKM에서 차로 10분 거리도 안 되는 5층짜리 빌딩.

1층에는 꽤 큰 개인 카페가 있었다. 건물주가 하는 거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입구부터 어수선했다. 아직 연습실과 녹음실이 들어갈 3, 4층이 공사 중이라 그렇다고.

그래도 2층으로 올라가니 여긴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인테리어도 끝났고, 장비도 거진 다 들어온 상태.

드르륵거리며 커피가 내려진다. 한 잔 들고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좋긴 좋네.

안쪽으로 들어가자 라운지이자 필요에 따라 회의실로도 쓰일 법한 긴 테이블이 보였다.

그곳에 앉아 도넛을 우물거리는 이성원도.

비스트로가 포텐업 때문에 바쁜 지금, 이 넓은 사무실을 쓰는 인원은 나와 이성원뿐이었다. 어색하게도.

서로 말없이 꾸벅 인사하고서, 나는 괜히 요상한 추임새를 넣으며 창가 쪽으로 붙었다.

‘말이라도 걸어야 하나? 뭐라고 걸지? 도넛 어디서 사왔······아, 이건 너무 달라는 거 같고.’

어색한 기류를 참지 못하고 몸서리치는데, 건물 쪽으로 익숙한 차 한 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검정색 지프.

오디션 때 한 번 타봤던 비스트로의 애마.

검은 차 안에 탄 거구의 남자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커피를 홀짝이며 몸을 돌릴 때였다.

어?

‘내가 잘 못 봤나?’

스치듯 보인 머리카락에 의아해졌다.

‘분명히······.’

잠시 후, 예상했던 대로 비스트로가 성큼성큼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로 설마 했던 얼굴이 보였다.

“피디님!”

환하게 웃는 최정아였다.

< 036. 독립레이블 (1)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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