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5. 차트전쟁 (9) >
“통곡의 아이돌?”
PC방에서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다음 게임을 잡기 위해 기다리며 SNS를 하던 중 발견한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옆에서 웹툰을 쭉 훑으며 ‘볼 게 없다.’라고 투덜거리던 뿔테 안경 쓴 남자가 옆으로 목을 쭉 뺐다. 그리고 영상 속 네 명의 여자 아이돌을 보더니 아는 체를 한다.
“뭐가? 어, 플로라네?”
“누군데? 알아?”
후드가 갸웃거리자 뿔테 안경이 혀를 찼다. 한심한 친구를 보는 애정어린 눈빛으로.
“어떻게 플로라를 모르냐? SNS에 춤도 엄청 올라왔는데.”
“유명해?”
“유명하지, 지금 차트 순위도 꽤 높을걸? 저번에 봤을 때가 6위였었나···어, 3위네? 대박. 실시간 검색어도 1위네? 갑자기 왜지?”
뿔테 안경이 차트를 확인하는 동안, 후드가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재생하며 입을 열었다.
“난 노래 잘 안 들어서. 별로 관심도 없고···근데 얘네 왜 우냐?”
“플로라가 울어?”
다시 머리가 넘어왔다.
“어? 이거 음방인데. 얘네 1위 했구나.”
“아깐 3위라며.”
“야씨. 그건 차트고, 이건 방송에서 1위. 이 새끼 아무리 그래도 차트랑 음방 차이를 모르냐. 허구한 날 게임만 하지 말고 문화생활도 좀 하고 그래, 임마.”
“그게 PC방에서 할 소리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받아친 후드가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파란 정장을 입은 MC가 다가가 마이크를 건네는데 한 멤버는 아예 팔뚝에다 눈을 박고 운다.
MC는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다음 멤버에게 다가가는데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얜 아예 카메라고 뭐고 신경 안 쓰고 목 놓아 운다.
“근데 얘네 진짜 엉엉 운다. 소감 말하라는데 아예 입을 못 떼네. 그나마 옆에 무쌍 여자앤···얼씨구, 마이크 넘겨받자마자 우네. 얘가 더 우는데?”
“푸흐, 성현지란 애야. 귀엽지 않냐?”
“뭐···얘네 다 귀엽네. 우는 게 이 정도면 엄청 예쁜 거 아냐?”
“예쁘지. 여자 아이돌 원탑! 막 이 정도는 아닌데, 아 한유하인가 걘 빼고. 걘 원탑 소리 들을 만하더라.”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정정한 뿔테 안경이 덧붙였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귀염귀염해서 인기 엄청 많아지는 중이야. 근데 그 영상 보니까 더 뜨겠네.”
끄덕이던 후드가 다시 집중했다. 저도 모르게 입꼬릴 올리며.
갑자기 기사를 찾던 뿔테 안경이 낄낄대며 웃었다.
“댓글 반응도 개 웃기네. 노련한 MC도 통곡의 아이돌을 넘지 못했대. 흐끅끅.”
친구의 웃음에도 후드는 아무 말 없이 영상을 넋 놓고 보았다. 그렇게 영상이 끝나자 살짝 아쉽다는 표정까지 지으며 포털 사이트를 켰다.
“얘네 이름이 플로라라고?”
“엉. 왜?”
“아니, 노래나 들어볼까 해서.”
#
“수고하셨어요.”
하서윤이 세트장을 나서며 말했다. 선풍기를 쐬던 피디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히죽 웃었다.
“어, 어. 수고했어. 오늘 녹화 괜찮았던 것 같아. 근데 스케줄이 많이 바쁜가 봐? 중간중간 안색이 좀 안 좋던데?”
“아, 네. 제가 요즘 좀 바쁘네요. 하하···.”
힘없이 웃는 하서윤에게 피디가 끄덕이다 ‘아 참.’이라고 운을 떼며 은근슬쩍 물었다.
“혹시 말이야···.”
“네, 말씀하세요.”
“최정아를 좀 섭외하고 싶은데.”
순간, 하서윤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 것을 피디는 보지 못했다.
“그 친구 요새 너무 바쁘더라고.”
“그으···래서요?”
“아니, 또 같은 TKM 식구고 서윤 씨가 한참 선배니까, 어떻게 다리 좀 놔줄 수 있나 싶어서.”
“글쎄요. 제가 최정아랑은 따로 친분이 없어서.”
“아 그래? 그럼 플로라는 스케줄이······.”
그때 하서윤 옆으로 매니저가 얼른 다가섰다. 정말 죄송하다는 표정을 장착한 채로.
“피디님. 오늘 서윤이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아, 그렇댔지. 맞아···근데.”
“얼른 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하며 얼른 하서윤을 데리고 촬영장을 나왔다. 바로 밴에 오른 하서윤은 그대로 차 창문에 머릴 쿵, 하고 박았다. 그리고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쉰다.
“하아······.”
매니저는 백미러를 통해 하서윤의 상태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하서윤이 저렇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최정아에게서 차트 1위를 넘겨받다시피 한 지 일주일 만에 플로라에게 곧바로 자리를 내주게 된 거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이었다.
매니저는 그때 하서윤이 지은 표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멘트까지도.
‘나랑 비슷하게 데뷔시켜서 어떻게 잘 엮어 차트인이라도 시켜보겠다고 그랬어. 홍보팀에서. 근데···이게···이게 말이 돼?!’
안 되지.
근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 버렸고.
그 후부터 하서윤은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표정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니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지난겨울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던 론 스미스가 플로라를 태그해서 극찬했다는 사실 따윈.
언젠가 론 스미스가 K-POP 팬이라며 글을 올렸을 때.
하서윤이 회사에 말해서 연락하려고 했던 게 생각나서.
‘그놈의 빌보드···.’
갔다가 망하고 돌아와, 공백기 덕에 인기까지 팍 식어버려 완전히 새 된 가수들이 어디 한, 둘인가.
매니저가 론 스미스의 태그 소식을 하서윤이 끝끝내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쯤.
한참 동안 가만히 있던 하서윤이 툭 던지듯 말했다.
“내가 저번에 말했던 거 있잖아···.”
힘없는 목소리.
“어, 뭐?”
“빌보드.”
순간 매니저는 가슴이 철렁했다. 눈알을 빠르게 굴려 백미러를 보았다. 창문에 기댄 하서윤의 표정은 한없이 음울했다.
“그거 못들은 걸로 해줘···.”
“어···?”
매니저의 반문에 하서윤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내뱉었다.
“내가 안 하는 거야, 내가.”
#
플로라가 음원차트 1위에 올라 선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에겐 인지도란 게 생겼다. 정확히는 ‘기로’라는 프로듀서 네임이 갖는 인지도.
‘당황스럽네···.’
자신이 덕질하는 무명 아이돌한테 곡 좀 써달라고 이메일이 날아오기 일쑤였다.
자랑하고픈 건 아니지만, 그리고 다른 TKM 작곡가들의 이력을 봐도 자랑할 게 아니지만.
최정아와 플로라.
연속으로 차트 1위 곡을 만든 프로듀서가 된 거다. 거기다 이현까지 포함한다면 3연속으로 TOP10에 골인시킨 게 되는 거고.
최근에 날 잡고 위에 언급한 아이들과 모두 통화를 한 번씩 했었는데, 뿌듯함에 범벅되어 잠을 못 이뤘지.
하지만 한편으론 지금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
아무래도 윤태영에게 자극을 받은 것 때문이겠지.
“좀 쉬엄쉬엄해.”
그래, 저게 어렵다고.
“비 피디님이야말로 너무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쩝. 그러게, 나도 좀 여유롭게 하고 싶은데, 포텐업이 안 도와준다.”
“포텐업은 왜요?”
“멤버 중 하나 작곡하는 아이돌 이미지 만든다고 난리인데, 그거까지 도우려니 정신이 없다. 흐흐.”
실성한 듯 웃던 비스트로가 물었다.
“맞다, 휴가 냈다며?”
“소식 빠르시네요. 역시.”
“당연하지. 어디 해외라도 갔다 오나?”
“아뇨. 그냥 집 내려갔다 오려고요. 부모님이 여수 사세요.”
“여수? 크, 여수도 좋지. 거긴 밤바다가 기가 막히다던데.”
“전혀요. 아무것도 없어요, 거기.”
“그래? 내가 이걸 어디서 들었더라···.”
그렇게 잠시 떠들다가 몇 잔째인지 의문스러운 커피를 들고서 작업실로 향하는 비스트로.
불과 얼마 전의 내 모습이 저랬으리란 생각을 하며, 창밖을 보았다.
도로엔 차들이 빼곡하다.
가려고 마음을 먹으니, 더 가고 싶네.
‘집.’
커피 한잔을 데워 작업실로 들어오자마자, 핸드폰을 들었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아빠?”
-그래. 그래도 내가 네 아빠인 걸 잊지는 않아 다행이다.
“에이 그건 안 잊지. 근데 왜 엄마가 안 받고?”
-야 말도 마라. 니 엄마 바쁘다.
“엄마가? 왜?”
-너 때문이지, 너 때문. 너 자랑하고 다니느라 아주 바빠. 아마 모르긴 몰라도 너만큼 바쁠걸?
“헐. 뭐, 엄청 대단한 거라고 자랑까지···.”
-대단한 거지. 우리나라 1등 곡을 두 개나 만든 건데!
들떠있는 아버지의 목소릴 들으며 한참을 통화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날 응원하고 있는지.
심지어 이현, 최정아, 플로라가 나오는 방송은 모두 챙겨본다고 한다. 그러면서 걔네들을 나 보듯이 한다고.
무슨 방송에서 게임 같은 걸 하는데 지면, 그렇게 맘이 아프다고 하신다.
‘대체 왜?’
순간 멍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본론을 꺼냈다.
“저 이번에 휴가 냈어요. 다음 주에 내려갈게요.”
-엇, 진짜냐?
“네. 좀 쉬고 싶어서.”
-그래, 사람이 일 그만치 했으면 쉬기도 하고 그래야지. 이걸 얼른 니 엄마가 알아야 할 텐데. 네가 전화할래? 핸드폰으로 하면 받을 건데.
“알겠어요. 제가 할게요.”
웃으며 아버지와 통화를 끝내고, 이번엔 집 전화가 아닌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엄마와 통화하나 싶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과 통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연예인이 된 거면 그러려니 하겠는데···이렇게 민망할 수가 없네.
어렴풋이 기억나는 분들부터 생면부지의 아주머니들까지도 모두 응대하고, 그제야 엄마한테도 내가 내려갈 거란 소식을 알렸다.
기뻐하는 엄마와 좀 더 얘기하다 전화를 마치고, 의자에 몸을 푹 묻었다.
“어후.”
피곤해라.
고개를 내저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래도 집에 갈 생각에 들뜬다.
‘이제 일 좀 해볼까?’
고갤 드니 현실이 보인다.
빼곡한 트랙들.
모두 탑라인(Topline)이었다.
피아노를 치면서, 그리고 떠듬떠듬 기타를 잡으며 흥얼거려본 멜로디들.
누군가에게서 들은 게 아닌, 내가 생각해서 만든 멜로디들이었다.
근래 들어 멜로디에 이렇게 집중해 본 적이 있나 싶네.
‘제법 괜찮은 멜로디도 있는 것 같은데?’
들리는 걸 발전시킨 그동안의 멜로디와 비교하면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퀄리티다.
몇 개 뽑아서, 평소 하던 대로 발전을 시켜볼······.
똑. 똑.
마우스에 손을 가져가려는데 작업실로 누군가 찾아왔다. 문을 열어보니 이민주였고, 용무는 팀장실의 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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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반년이지?”
느긋한 표정으로 묻는 서재원 팀장을 보며 고갤 끄덕였다.
“네.”
“근데 그런 것 같지가 않네.”
방금 말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실 나도 그렇다. 그간 겪은 일만 긁어모아도 책 한 권은 거뜬히 쓸 수 있을 것 같아.
서재원 팀장이 날 보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꽤 괜찮게 해왔어.”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중간 결산에 살짝 어리둥절해져 서재원 팀장을 살폈다.
서재원 팀장은 여전히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툭 툭 던지는 말들이 다행히 칭찬에 가까웠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말을 하려 부른 것 같진 않아 의아해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이제 뭐가 하고 싶지?”
불쑥 다가온 질문에 순간 멍해졌다.
그 사이, 뒷말이 이어졌고.
“지금까진 항상 하고 싶은 게 있었잖아.”
그랬지. 이현에게 다른 곡을 밀었고, 최정아는 아예 밖에서 데리고 들어왔다. 데뷔가 무산될 뻔한 플로라를 기어이 데뷔시켰고.
이젠 뭐가 하고싶냐라······사실 쉬고 싶다. 그래서 휴가까지 냈다고. 집 가서 엄마 밥 먹으며 하루 종일 잠만 자려고.
근데 이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아직은 정한 건 없습니다.”
“그래?”
“네.”
내 대답에 서재원 팀장이 끄덕였다. 느릿하게. 그리고 입술을 혀로 쓸더니 불쑥 물어왔다.
“휴가 간다며?”
“아, 네.”
대답하기 무섭게 서재원 팀장이 지긋이 날 바라봤다. 여전히 옅은 미소를 띤 채로.
“그럼 생각해볼 시간은 충분하겠네.”
고개를 기울였다.
어떤 걸 생각해볼 시간이 충분하다는 건지 감을 못 잡아서.
그때 서재원 팀장이 답을 내놓았다.
“이번에 위에서 독립레이블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데···.”
부드럽지만 나긋하진 않은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자네도 추천했거든.”
< 035. 차트전쟁 (9)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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