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4. 차트전쟁 (8) >
-자, 다음은···아, 이거. 정아씨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언급하시는 인물이 있더라고요.
-네?
-바로 이번에 ‘기억애’를 작곡하신 기로 프로듀서님.
-아. 맞아요, 제가 항상 얘기하죠. 너무 감사해서.
-알아보니 이 기로 프로듀서님이란 분이 또 지난달에 저희 프로그램에 나오셨던 현씨, 이현씨의 ‘봄이 올까요’도 작곡하셨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올해 제 최애곡 두 개를 모두 작곡하신 분이라니.
화면 속 최정아가 밝게 웃는다.
MC는 특유의 잇몸을 과시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저도 작곡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는데. 지금 이분은 뭐 하고 계시나요?
-아, 촬영 들어오기 전에 연락 드렸는데···.
-드렸는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시더라고요.
-네? 아니, 갑자기 무슨 연유로?
-마스터링 끝나셨다고···.
-푸하하핫. 저 그거 뭔지 알아요. 사실 저도 그러거든요. 막 억압돼서 작업하다가 끝나면 그렇게 표출을 하게 돼요. 그분 뭔가 저랑 잘 맞을 것 같은데.
지금 난 매트리스 위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고 있다. 고로 저건 녹화방송이다.
저땐···.
전화가 받아진 줄도 모르고, 끝났다고 소리를 질러댔지.
쩝. 이제 내일이면 A&R팀 전체가 알게 되겠구만.
-마스터링이 끝나셨다는 건, 그분이 또 새로운 곡을 쓰셨다는 얘긴데요.
-네, 맞아요. 플로라라고, 26일에 데뷔하는 친구들이에요. 이거 방영일이 언제죠?
-아마 25일일 거예요. 딱 전날.
-어? 이런 우연이. 그럼 이 방송 보시고 바로 들어가셔서 보시면 되겠네요.
-연기를 생각보다 너무 못하시는데···.
자연스레 시계로 눈이 갔다.
곧 방송이 끝날 거고, 그러면 12시.
음원 사이트에 플로라의 데뷔곡이 공개된다.
[피디님, 애들 방금 숙소로 돌아와서 소영이랑 예지는 뻗었고, 나머지 둘은 노트북 앞에 앉아있습니다. 저도 숙소에서 1시간만 확인하고 가려고요.]
지영환에게 들어온 메시지를 확인하며 몸을 일으켰다. 작은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더 꺼내 자리로 돌아왔다.
이런 게 하고 싶었다.
맥주 마시며 차트 확인하기.
최정아가 '기억애'를 부르며 방송이 끝났다. 시계는 어느새 11시 50분쯤을 가리키고 있었고.
한쪽에 던져놨던 노트북을 무릎 위에 얹어 반응을 살폈다.
평소 들어가던 곳이 아닌 아이돌을 타켓으로 하는 갤러리.
들어가보니 올라오는 반응이 꽤 있다. 오늘 한 쇼케이스 얘기도 있고, 최정아 얘기와 함께 언급되기도 하고.
-플로라 티져 보고 왔는데, 비주얼 다들 괜찮네요.
-나도 봤는데, 별로던데.
-그냥 요즘 아이돌 복사 붙여넣기 느낌 아님?
-솔직히 노래도 이상할 듯. ‘봄이 올까요’, ‘기억애’는 완전 발라드 느낌이잖음. 그런 사람이 아이돌 노래라···?
-그냥 비주얼만 괜찮네.
-기다리자, 까보면 알겠지. 덕질 할만한지.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올라오는 게시글들을 확인하고 있다. 최정아 덕분에 관심도는 확실히 오른 것 같은데. 그렇다고 반응이 마냥 좋진 않다.
‘아직 음원도, 뮤비도 공개 안 됐잖아.’
마른 침을 삼키며, 캔을 집어 들었다.
10년 동안 작곡 밥 먹은 스타 프로듀서도 이 순간만큼은 항상 떨린다던데, 백번 공감이 가네.
그 순간, 화면 아래의 숫자가 바뀐다.
12시 정각.
핸드폰으로 들어간 앨범 리뷰란에 하나, 둘 댓글이 달리고.
갤러리에도 플로라에 대한 게시물이 갑자기 확 늘어난다.
-까봤다. 좋았다. 덕질하러 간다. 수고해라.
-비주얼만 괜찮네라고 한 놈 나와라.
-뮤비 미쳤다. 이게 TKM의 자본력인가···.
-춤 뭐임? 개 간단한데, 개좋음.
-후렴에 노래 누가 부르는 거임? 소름 돋았음.
-한유하라는 멤버인 듯. 단발머리 미친 비주얼.
-오바들 쩌네.
-너지 비주얼만 괜찮네라고 한 놈.
-세븐트릴 덕질하다 상처받은 마음을 왠 여자 아이돌에서 치유 받은 느낌. 여자가 여 아이돌 덕질하는 거 어떤가요?
-가자, 음원총공!
-엄청 독특하다, 노래. 이걸 누가 '기억애' 작곡가라고 생각하겠어?
-작곡 스펙트럼 무엇.
실시간으로 반응이 변하기 시작했다.
흐뭇하게 쭉 읽어내려가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지영환 매니저였다.
“예, 매니저님.”
-피디님, 반응 보고 계세요?
“보고 있습니다. 좋은데요?”
-그렇죠? 흐으. 이거 이러다 정말로 차트인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 피디님. 유하가 바꿔 달라네요.
“네, 그러세요.”
곧바로 한유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피디님!
“왜?”
-하나, 둘.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여러 개다. 전부 다 깼나 본데.
나는 피식 웃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감사 인사는 5분 뒤에 받자.”
-네? 아, 시간이 벌써···!
스피커 폰을 켜서 내려놓고, 노트북을 들여다봤다.
점점 더 시끌시끌해진다. 오늘 쇼케이스에 왔던 사람들의 후기나, 춤에 관한 얘기까지 올라오며 새로고침할 때마다 한 페이지씩 넘어갈 지경이다.
그리고 대망의 오전 1시.
차트가 재정렬 되었다.
나는 확인하자마자 핸드폰에 대고 애들을 불렀다.
“여보세요?”
-네, 네? 피, 피디님···.
몹시 떨리는 목소리에 대고 말했다.
축하한다고.
76위.
핸드폰 너머에서 비명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
TKM 홍보팀 사무실.
한 모니터에 세 직원이 몰려들어 있다.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춤, 그리고 영상미까지 모두 잡은 뮤직비디오, 플로라의 ‘Don't Tell Me’>
<‘Don't Tell Me’ 춤을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들>
<‘Don't Tell Me’ 열흘 만에 33위,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화면을 가득 메운 헤드라인.
“플로라의 상승세가 정말 엄청나요.”
단발머리 여직원 한 명이 말했다. 그러자 말총머리를 한 여직원도 끄덕였다.
“진짜, 진짜. 생각지도 못했는데···다들 포텐업 2집에 공들이고 있었잖아요.”
“그니까요. 이번엔 차트인만이라도 해서 얼굴도장 제대로 찍고, 미니앨범이나 정규에서 힘을 주면 되겠다고 회의했었는데···.”
연신 감탄하던 단발머리 여직원이 불쑥 얘길 꺼냈다.
“그러고 보면, 장 피디님 좀 대단한 것 같지 않아요?”
그러자 지금까지 단발머리 여직원을 힐끔거리던 남직원이 무심하게 답했다.
“뭐, 그렇긴 한데···그게 또 TKM에선 엄청난 정도는 아니라. 사실 이성원 피디님만 해도 오신지 2년도 안 돼서, 1위 두 번에 TOP10은 셀 수도 없을 정도잖아.”
“아, 아뇨. 음원 성적 말고요.”
“어?”
남직원의 얼굴이 벙쪘다.
“왜 저번에 모 음악방송에서 최정아랑 심혜경 선생님이 같이 듀엣 했었잖아요.”
“어, 어···그거 반응 엄청 좋았잖아.”
“그니까요. 근데 그거 장 피디님 아이디어래요.”
벙찐 얼굴이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이에 작게 웃는 여직원들.
“그래서 팀장님이 장 피디님만 만나면 홍보팀 올 생각 없냐고 장난치신다더라구요.”
“난 그거 팀장님 아이디어인 줄 알고 있었는데···.”
남직원이 배신당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흘리자, 말총머리 여직원이 갑자기 손뼉을 쳤다.
“아, 최정아도 장 피디님이 캐스팅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무슨 캐스팅디렉터야, 마케터야, 프로듀서야? 완전 만능이신데?”
쭉 늘어놓던 말총머리 여직원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러다 독립하시겠다고 하는 건 아닌가 몰라.”
#
윤태영의 작업실.
어쿠스틱 기타를 튕기다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제 손가락이 왜 이런 거죠?”
흡사 의사 선생님을 마주한 환자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윤태영이고, 내가 환자.
병명은, 기타에 젬병.
“원래 처음엔 다 그래요. 피아노 처음 치셨을 때 생각해봐요.”
“너무 오래된 얘긴데···.”
“에이, 아무리 오래됐어도 26년 아닙니까.”
36년이야.
“다시 해볼게요.”
파, 라, 도. 이것만 누르면 되는 그 간단한 F코드가 기타에선 뭐 이리 어려운지.
기타 줄을 쓸어내리니 청아와는 거리가 먼 소리가 먹먹하게 울렸다.
가만히 듣고 있던 윤태영이 물어왔다.
“근데, 갑자기 기타는 왜 배우시려는 거예요?”
F코드를 잡기 위해 손가락을 떨며 답했다.
“여러 가지로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악기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작곡할 때도 그렇고요.”
피아노로 작곡하는 것과 기타로 작곡하는 건 결과물에서 꽤 큰 차이가 난다. 두 악기가 서로 넘볼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있달까.
곡의 스펙트럼을 더욱 늘리기 위한 방편이었다.
내 말을 단번에 이해한 듯, 윤태영이 끄덕인다.
“역시 피디님이랑 친하게 지내야겠네요.”
그거야, 바라던 바지.
내가 곧바로 끄덕이자 윤태영이 웃으며 덧붙였다.
“연주자는 어떤 프로듀서랑 친하냐가 되게 중요하다더라고요.”
“그럼, 전 합격인건가요?”
“아휴, 당연하죠.”
그렇게 잠깐 웃으며 수다를 떨다가.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났다는 걸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가봐야겠네요.”
“아, 오늘 플로라 음악방송 가신다고 하셨었죠?”
“네.”
“지금 차트 순위가···.”
차트를 확인한 윤태영이 바람 빠지는 소릴 내었다.
“와아···쭉쭉 올라가네요.”
어느새 TOP10을 목전에 두고 있었으니까.
나는 데뷔 직전에 응원차 안무실에 들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내가 그랬었지. 1위가 목표라고.
웃음을 흘렸다.
“그러게요.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1위.”
#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려 있었다.
연예인 얼굴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을까, 목을 쭉 빼놓고 서성이는 사람들.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이 덕질하는 그룹 얘길 하는 사람들까지.
우리는 곧장 방송국 안으로 향했다. 혼자 출발한 내가 왜 우리가 됐냐면······.
“비 피디님은 도저히 시간이 안 되신다고 하더라구요. 포텐업 작업하느라.”
A&R팀 이민주가 총총거리며 따라온다. 그 옆엔 서글서글하게 웃는 정 대리가 있었다.
한번 와야지, 와야지 하다가 모두 시간이 맞았다. 게다가 이번 주는 무려 1위 후보에 올랐으니 타이밍이 좋았지.
신인이 음악방송 1위 후보라니.
물론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다. 심지어 덜컥 1위까지 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나 지금처럼 유명 아이돌 컴백이 전무하긴 시기엔 더더욱.
하지만 그렇다고 폄하될 것도 아니지.
지난 몇 달간 수십 팀의 신인 아이돌이 데뷔했지만, 어떤 팀도 플로라 만큼 뜨진 못했으니까.
‘내친김에 음방 1위도 하면 좋겠는데.’
친한 지인들에겐 모두 투표를 독려했다. 그들이 과연 진짜 해줄진 의문이지만.
우선 대기실부터 들렀다.
반색하는 플로라 멤버들에게 응원도 북돋아 주고, 간식거리도 좀 전달하고, 한유하가 노래를 부르던 참치를 사주겠단 약속까지.
그러고선 우린 우리 대로 적당한 자리를 찾아다녔다. 카메라 사각지대. 무대 아래쪽 구석에 자릴 잡고 서자 무대가 웬만큼은 보였다.
그곳에 서서 여러 아이돌과 가수들의 무대를 반강제적으로 봤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을 잡담으로 채웠지.
“근데 하서윤은 왜 음방 안 나가겠다는 걸까요? 딱히 투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민주의 물음에 정 대리가 피식 웃었다.
“제인 때문이지 뭐.”
“···?”
“제인이 음방 안 나가잖아. 그래서 똑같이 안 나가는 거야.”
“와, 자격지심이 어마무시하네요. 근데 그러면 차트에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
“당연히 있지. 그런데도 곧 죽어도 싫다는 거고.”
처음 듣는 얘기다.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하서윤이 제인을 의식한단 얘기를 회사 내 풍문으로 듣긴 했는데, 그래서 음악방송까지 거를 줄은 생각도 못 했지. 참 뭐랄까. 유치한 성격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 어! 애들 올라온다.”
이민주의 말을 듣고 돌아보니 어둑어둑한 조명 아래에 움직이는 익숙한 실루엣들이 보였다.
순간, 핀 조명들이 한곳을 바라보며 빛을 뿜었고, 어둠 속에서 플로라가 확 나타났다.
이어지는 칼군무에.
카메라에 담기는 귀엽고 예쁜 비주얼.
그리고 AR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노래.
환호가 커다란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이전의 어떤 무대보다도 더 큰 소리였다.
이런 기분이구나. 이렇게 큰 공간에 내 곡이 울려 퍼진다는 건.
새삼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미소를 머금었다. 주먹엔 살짝 힘이 더 들어간다. 음원차트 1위도 좋지만, 오늘은 다른 게 목표였다.
“오늘 진짜 느낌 좋은데요?”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이민주.
“그러게요.”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난 좀 다르다. 그냥 느낌만이 아니거든. 차라리 확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공연이 끝나고, MC들이 준비된 멘트를 읊어댄다. 모든 가수들이 무대 위로 올라서서 발표를 기다렸다.
무게 추는 점점 더 기울어져 간다.
확신으로.
그리고 마침내 꽃가루가 팟, 하고 터지는 순간,
확신은 현실이 되었다.
< 034. 차트전쟁 (8)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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