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3. 차트전쟁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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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윤, 컴백한지 한 시간 만에 차트 2위]
[차트 정상, 결국 하서윤에게 넘어갈까?]
[최정아, 5주 연속 차트 1위!]
[TKM, 나란히 1, 2위 점령]
[최정아 6주째 차트 1위. 하서윤도 역부족이었나]
[최정아, 7주 연속 부동의 차트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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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륵.
하서윤이 바닥까지 오는 잠옷 (-이라고 주장하는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길게 늘어트린 벨벳 원단이 새하얀 대리석을 쓸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핸드폰.
꿀꺽. 매니저는 곧 저 핸드폰이 붕 하고 날 것 같다는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뭔가를 던지는 건 하서윤이 노래나 춤만큼 잘하는 것 중 하나였으니까.
“······.”
하서윤은 입을 꾹 닫은 채로 기사를 읽다가, 이내 차트를 확인했다. 자신의 이름이 여전히 2위에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최정아의 이름은 1위에 있었고.
매니저는 의아해졌다.
바로 일그러질 줄 알았던 표정이 오히려 덤덤해지고 있어서.
“이상해.”
“어, 어? 뭐가···?”
“고장 났어. 고장 난 거야. 고장 났네. 그치?”
“무슨 소릴···서윤아?”
“그럼, 그렇지. 이럴 리가 없잖아? 내가 컴백한지 지금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갑자기 현실을 부정해버리는 하서윤.
매니저는 차라리 화를 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게 더 무서우니까.
연신 ‘이상해’를 중얼거리는 하서윤을 보며 땀을 삐질 거리던 매니저가 설명했다.
“그게···최정아가 그제 음악방송에 나와서 심혜경 선생님이랑 듀엣으로 기억애를 부르는 바람에···.”
“심혜경?”
“어, 엉 옛날에 활동하시던 분이신데···.”
“아, 그래서 내가 1위를 못 하고 있다?”
“그, 그렇지!”
하서윤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매니저의 심장도 딱 그만치 쪼그라 들었고.
“그은데, 그래 봤자 곧 내려올 거···.”
“들었던 말.”
“끙, 진짜라니까? 뭐 최정아가 천년만년 차트 1위에 있겠어? 다 시간이 지나며는···.”
“뭐야. 그래서 힘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석 되면 그때 옳다구나 하고 오르라고? 나, 하서윤인데!?”
매니저는 말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애썼으나, 던지는 족족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차라리 가만히 있어야 겠······.
“······.”
“왜 아무 말도 안 해!”
핸드폰이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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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일하는 게 좋아도 그렇지.
내가 쉬어도 될 때, 안 쉬는 놈은 아닌데 말이지···.
주말 아침부터 회사 땅을 밟았다.
원래 계획은 곧바로 윤태영을 만나러 가려 했지만, 데뷔가 코 앞인 플로라가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들렀다.
“안녕하세요!”
“예에, 안녕하세요.”
열심히 부채를 펄럭이던 관리 아저씨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완전히 얼어있으면 어떡하지?
바짝 쫄아 있으면? 그럼 응원을 어떻게 해줘야 하나.
미성년자 아이들이라 그런가···최정아 땐 하지도 않았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문 앞으로 다가서자 네모난 창 너머로 플로라 멤버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얼어있긴 무슨. 들어가지 않아도 안에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걸.
저 열정에 방해될까 싶어 한참을 밖에서 지켜보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온다.
내 노래에 맞춰 춤추는 아이들을 보니 흐뭇해져서.
‘끝났나?’
아이들이 하나, 둘 널브러지는 걸 보고 이때다 싶어 문을 열어젖혔다.
“어, 피디님!”
애들이 먼저 날 발견했고, 뒤이어 정수연도 날 보곤 웃었다. 플로라 애들 못지않게 땀을 뚝뚝 흘리며.
“오셨어요?”
“네, 지나가다 궁금해서요.”
내가 빙긋이 웃으며 말하자, 정수연이 제대로 한 번 보겠냐고 물어왔다. 끌리긴한데···.
“근데 애들이 너무 힘들어 보이는···.”
“아니요! 괜찮은데요!?”
원래 일어나있던 신소영이 양팔을 파닥거리며 포즈를 취한다. 성현지가 시크한 표정으로 스윽 일어나고 유예지와 한유하도 뒤따라 일어났다.
한유하가 날 보며 살포시 웃는다.
“저번에 보셨을 때보다 훨씬 잘해요, 이제.”
지친 줄 알았던 아이들이 오히려 신나서 대형을 맞추니 나도 기꺼이 관객석으로 향했다.
“한번 볼까?”
느긋하게 보는데, 마냥 웃음기 가득했던 얼굴들이 노래에 맞춰 확 변한다.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멋진데?
맑은 목소리와 어우러지는 안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다니.
저걸 숨차서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음정이 틀리지도 않네.
공연이 이어질수록 나는 이미 한 감탄도 다시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춤 쪽엔 문외한이지만.
그래서 평가하는 게 웃길 수도 있지만.
‘너무 잘하는 거 같은데···?’
키도, 체형도 다른 아이들이 하나로 보일 정도면 대단한 거 아닌가?
중독성 강한 춤이 착착착 이어진다.
그렇게 아이들의 춤이 끝났다.
와, 이건 큰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지.
“애들 진짜 딱딱 맞네요?”
정수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전히 진한 화장 너머로 뿌듯한 얼굴이 비친다.
“애들 진짜 열심히 연습했거든요.”
그러면서 정수연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정아가 아직도 1위더라고요.”
끄덕이며 웃었다.
“덕분에 꼴 보기 싫은 년 하나가 아주 울상으로 다녀요. 달달 볶이느라.”
무슨 년···?
누굴 얘기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니 뭐···.
고소한 깨를 한 입 머금은 표정이던 정수연이 불쑥 물어왔다.
“피디님은 몇 위 예상하세요?”
차트 얘기겠지. 어느새 저들끼리 장난치고 있는 플로라 멤버들을 슬쩍 보았다. 그리고 웃음을 흘리며.
“글쎄요. 오늘 와보니 생각이 좀 달라져서.”
“그래요? 그렇게 말하니 더 궁금한데.”
“수연씨는요? 몇 위 생각하고 계세요?”
“음, 저는···에잇. TOP10?”
순간 어느새 조용해져 있던 아이들이 동시에 우릴 홱 돌아본다. 무슨 미어캣인 줄.
안 듣는 척 다 듣고 있었구만.
“그래서 피디님은요?”
재촉하는 정수연에게 대답했다. 시선은 아이들에게 고정한 채로.
“1위?”
“···?”
미어캣들이 허황한 얘길 들은 양, 당황스러운 눈을 끔뻑였다.
말도 안 된다며 웃을 줄 알았던 정수연이 갑자기 눈을 빛낸다. 어쩐지 전투력이 상승한 것만 같은 표정이다. 내가 기름을 들이부은 건가.
‘그럼 더 울상이 되겠네, 흐흐.’라고 중얼거린다. 누군지 몰라도 단단히 찍혔나 본데.
서늘함에 몸서릴 치다가 ‘에구구’ 소릴 내는 성현지와 눈이 마주쳤다.
쌍꺼풀 없는 눈이 호를 그리며.
“얘들아, 우리 쉬지 말래.”
“엉?”
유예지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갤 들었고.
“그치?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구나.”
신소영이 벌떡 일어난다.
“그래. 연습하자. 연습.”
뒤이어 일어난 한유하가 유예지를 잡아 일으켰다.
본의 아니게 꿀같은 휴식을 방해했구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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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을 격려하고.
정수연한테도 잘 부탁한다 말하고.
역으로 향해 지하철에 올라탔다.
주말이라 그런가. 애매한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네. 그나마 사람이 가장 적은 끝쪽 문으로 가서 기대었다.
“흐음.”
머릿속을 정리해본다.
최정아는 이제 신경 쓸 것도 없다. 혼자서 너무 잘하고 있어서. 이제 1위에서 내려온다면 그건 누군가에게 밀려서가 아닌, 시간이 그렇게 돼서일 뿐일 거다.
그렇담, 플로라.
오지 않을 것 같던 플로라의 데뷔가 성큼 다가왔다. 시간이 빠르긴 하네. 그런데 사실 오늘 보니 얘들도 크게 걱정할 게 없어 보였다. 다들 너무 열심이고, 그만한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젠 응원만 하면 되겠지.
‘그러면···.’
다음은 뭘까. 누구에게서 멜로디가 들릴까? 아직 들리는 사람이 없으니 괜히 신경 쓰인다. 이정표가 없어진 기분이랄까.
고민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내려야 할 때였다.
핸드폰을 지도 삼아 윤태영의 작업실로 향했다.
쿵. 쿵.
3층에 올라 철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잠시 기다려달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후. 경첩이 녹슨 소릴 내며 문이 열렸다. 문틈으로 보이는 여전한 더벅머리.
“오셨어요?”
“네.”
환하게 웃으며 윤태영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음, 뭐랄까.
빨강, 노랑, 초록.
꼭 무슨 레게 바에 온 것 같네.
“너무 정신없죠? 청소도 좀 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어제 과외가 너무 늦게 끝나서···.”
“아뇨, 괜찮은데요? 딱 아티스트 작업실 같네요.”
빙그레 웃으며 구경했다. 그러다 작은 책상 위, 모니터에 시선이 꽂혔다.
녹음 프로그램이 켜져 있었다. 한창 녹음 중이었는지 베이스도 그 옆에 세워져 있고.
“녹음하는 중이었어요?”
“아 저건 그냥, 제 연주 다시 들어보고 확인하는 용도에요. 항상 녹음해두거든요.”
“와, 그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걸···.”
학교 다닐 때, 교수님들 잔소리 레파토리에 꼭 들어가지만, 그 누구도 지키지 않는다는 그거.
역시 연주자들은 독한 면이 있어.
감탄 아닌 감탄을 하는 사이, 윤태영이 의자를 하나 가져다줬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핸드폰을 건넸다.
“완성본 가져왔어요.”
윤태영이 내 손을 보며 눈을 반짝인다.
어지간히도 듣고 싶었나 보네.
“안 그래도 엄청 궁금했는데.”
“그럴까 봐 제가 가져왔죠. 태영씨도 참여한 곡인데, 당연히 먼저 들을 자격 있으니까.”
너스레를 떨며 핸드폰을 건넸다. 윤태영은 얼른 스피커와 연결해 플로라의 음원을 쭉 듣기 시작했다. 내 시선에 걸린 윤태영의 입꼬리가 점점 진하게 올라간다.
‘만족스러운가 보네.’
예상대로 음원이 끝나자마자 날 보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솔직히 반신반의했었거든요. 아이돌 노래에 내 베이스를? 뭔가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라···.”
“그런데요?”
“들어보니 알겠네요. 왜 저한테 이 곡 베이스를 녹음해달라 하셨는지.”
윤태영이 음미하듯 끄덕였다. 그리고 굉장히 묘한 얼굴로 날 본다.
“피디님, 천재네요.”
“네?”
“내 연주 한 번 보고, 곡에 어울리겠다 판단하시다니. 어떤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그럴 수 있는지 진짜 놀라워요.”
“······.”
그런가?
아니지, 뭐가 그래.
우선 나는 윤태영의 연주를 수백 번은 들었던 미래에서 온 사람이고.
플로라 곡에 딱 윤태영의 베이스가 필요하다고 느낀 건······그러게, 왜지?
‘단순히 많이 들어서?’
당황스러워하는 내 표정이 쑥스러움이라 생각했는지 윤태영이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가 마실 것 좀 사 올게요. 손님 오시는데 그런 준비도 못 했네요.”
“네? 아니, 괜찮은···.”
“어차피 마실 물도 다 떨어져서요. 편하게 드시고 싶으신 거 말씀하세요.”
“아, 그럼 콜라로 할게요.”
“넵, 얼른 다녀올게요-.”
활기차게 돌아서는 윤태영에게 얼른 물었다.
“혹시 이거 듣고 있어도 되나요?”
모니터를 가리켰다. 정확히는 베이스 트랙.
“네? 아, 네. 당연하죠. 연습 삼아 친 거라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민망하게 웃어 보인 윤태영이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허락을 맡은 난 바로 트랙을 재생했고.
스피커에서 둥둥거리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딱 윤태영의 베이스, 그 자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연습 삼아 친 거라고?
놀랐다.
왠지 서늘해졌고, 입안에 쓴맛이 감긴다.
누군가는 작업실에서 묵묵히 이런 라인을 뽑아내는데.
나는 멜로디가 어디서 들려오지 않을까, 그걸 기대하고 있었단 사실이 떠올라서.
당목에 한 대 맞은 종처럼, 정신이 퍼뜩 드는 것 같다.
헛헛한 웃음 사이로 베이스 라인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윤태영은 역시 최고의 연주자가 될 수밖에 없구나. 해외의 유명 프로듀서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그런 뮤즈.
“피디님, 오래 기다리셨죠?”
“아뇨.”
오래 봅시다.
< 033. 차트전쟁 (7)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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