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2. 차트전쟁 (6) >
“자기, 혹시 들었어?”
안무가, 정수연은 이 여자가 자신의 사무실로 왜 왔나 싶었다.
전유희. 이번에 ENB 엔터테인먼트에서 스카웃 되어 온 안무가였다.
“뭘요···?”
“이번에 하서윤 안무. 내가 짜주고 있거든.”
“······.”
“하서윤이 딱 날 지목했다더라고. 고마워라.”
왜 왔는지 알 것 같아진 정수연이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공허한 리액션을 했다.
“어머···그거 잘됐네요. 뭔가 두 분이 잘 맞을 것 같아요.”
“그래? 수연씨는 하서윤이랑 작업해 봤어?”
“아뇨.”
정수연은 ‘다행히도’라는 말을 삼켰다. 하서윤은 회사 내에서 까다롭기로 소문이 파다했으니까.
그걸 알 리 없는 전유희는 더욱더 신이나, 입을 놀렸다.
“그럼 제인은?”
“아뇨.”
“퀀텀보이즈는?”
“아직 못 해봤어요.”
“엥 TKM 가수 중에 그 셋 제외하면 전부 잔바리 아닌가? 아, 미안. 미안. 수연씨가 잔바리들이랑 했다는 게 아니라.”
전유희가 손을 팔랑거렸다.
“괜찮아요. 제가 경력이 짧으니 당연한 거죠.”
“수연씨 나랑 경력 별 차이 없잖아? 아 하긴, 이전 회사가 좀 작았다고 했지?”
전유희의 분홍 입술이 넘실거린다.
“그 차이가 있긴 하겠다. 난 ENB였으니까, 경력을 좀 더 높게 쳐주나 봐.”
정수연은 입술을 앙다물고 어색하게 웃었다.
‘찡 박힌 내 파우치가 어딨더라···.’
흉기가 간절한 시점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 전유희가 슬쩍 일어나며 말했다.
“수연씨 바쁠 테니 이제 가야겠다.”
그리고 해맑게 손을 흔들며 나가버렸다.
“아오···!”
인내심 테스트를 거하게 치른 정수연이 무심코 손톱을 물어뜯으려다 멈칫했다. 화려하게 꾸며진 네일아트 때문이었다. 나머지 손가락으로 엄지를 감쌌다. 안 되지, 안돼.
‘어제 한 건데.’
손을 내리고 마우스를 거칠게 눌렀다. 모니터에 파일 하나가 떠올랐다.
“어, 올려주셨네.”
장기로 프로듀서가 공유한 음원.
이전 버전을 듣긴 했지만, 이건 완성본이었다. 물론 아직 플로라 멤버들의 목소리는 입혀지진 않은.
“이전 버전도 좋았는데, 뭐가 변했으려나···?”
딸깍.
음원이 열렸다.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재생되기 시작했고.
정수연은 흘러나오는 노래에 집중했다. 입술이 안 보이도록 음, 하고서. 그러다 어느 지점에선 입을 벌렸다. 감탄이었다.
‘너무 좋은데?’
이전 버전보다도 더.
바뀐 건 약간의 구성과 미묘한 리듬뿐인데, 어떻게 곡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정수연이 상기된 얼굴로 곡을 다시 재생했다.
그리도 또.
또 다시.
연장 5번 정도를 들은 정수연은 꽤나 고심이 깊어진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잘 될 거 같은데?”
노래가 좋은 덕분일까?
머리에 들어있던 전구에 불이 켜진 것처럼.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 노래와 딱 어울리는.
노래만큼이나 중독성 있는,
그런 춤사위가.
#
녹음실.
3인용 소파에 4명이 쪼르르 앉아있다. 굳이?
“그···시야가 답답하니까 따로 앉자. 의자 많아.”
사이드에 낑겨 있던 유예지가 옆에 의자로 옮겼다.
이제 좀 편안-.
“긴장돼?”
“네. 엄청···.”
신소영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한다. 옆에서 성현지가 토닥이고 있고. 한유하는 가사가 적힌 종이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야. 리더인 성현지라도···.
“현지야.”
“네으에?”
“어, 아냐.”
총체적 난국이군.
“일단, 음···패드부터 녹음 좀 따자.”
곡 인트로 부분에 얇은 가성으로 들어갈 코러스 패드(chorus pad).
유예지 담당이었다.
“해볼게요!”
의외로 벌떡 일어난다. 제일 겁먹지 않을까, 했는데. 성큼성큼 녹음 부스로 향하기까지.
“좋아, 그런 용기!”
문에 기대있던 지영환이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한다.
“소파에 편하게 앉으세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아니, 문이 안 괜찮아서···.”
잘 망가져.
“아, 옙.”
지영환이 얼른 등을 떼며 조심조심 소파에 앉는다.
보통 녹음실에 매니저가 들어오는 일이 흔치는 않지. 관계없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집중도가 떨어지니까.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잖나.
아무래도 위에서 강한 지시가 내려온 것 같다. 플로라뿐만 아니라 어느 그룹이든, 여자든 남자든, 매니저가 밀착해서 딱 붙어있다. 뭐, 충분히 이해가 가는 조치긴 하지.
그러려니 하며 부스로 시선을 돌렸다.
“자, 예지야 잘 들려?”
-네!
“어려운 거 없어. 그냥 가성으로 부드럽게 멜로디를 부르면 돼.”
-아아. 큼큼. 아아.
“그래, 목 충분히 풀고.”
-아아아아!!······.
깜짝이야.
모니터 되어 나오는 소리를 끄고, 커피를 홀짝이며 악보를 살폈다.
뭐 빠트린 건 없겠지? 음···괜찮은 거 같네.
쿵. 쿵.
고갤 들어보니 유예지가 유리에 딱 붙어 날 보고 있었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아, 맞다.
다시 소리를 키우니 유예지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 예지야.”
-저 지금 벌 받아요?
뒤에서 애들이 꺌꺌 대고 난리가 났다.
나도 너털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준비 다 됐어?”
-넵!
우렁찬 대답과 함께 녹음이 시작되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순조로웠다. 나름.
의외로 녹음할 땐 긴장을 안 하네.
“잘했어. 예지는 이제 좀 쉬고. 다음은 현지.”
부스 안 사람이 바뀌고.
-우리가 보느은···흠흠. 준비됐어요.
다시 녹음이 재개됐다.
“···오케이. 두 번째 거 살리면 될 것 같다.”
유예지가 부른 인트로.
성현지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멤버 전원이 함께 들어오는 올 파트.
브릿지에 리프와 함께 들어가는 신소영 파트.
후렴을 제외한 멜로디들이 대부분 플로라의 목소리로 채워져 간다.
그리고 대망의 사비. 후렴이다. 한유하의 멜로디가 뼈대를 이루는 부분.
한유하가 가장 잘 부를 수밖에 없는 파트.
그런데 의외로 여기서 문제가 터졌다.
그것도 꽤 큰 문제가.
-어어, 다시 할게요···.
“그래, 알았어.”
-어, 다시···.
“오케이, 잘하고 있어. 계속해 보자.”
-후프프프···네에.
“음. 다시 해보자.”
-피디님···.
“한 번만 더 해보자!”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후렴을 통째로 불러야 해서 그런 걸까. 자꾸 가사 잊거나 음정 실수가 나온다. 부분부분 잘라서 녹음을 받아도 마찬가지.
너무 긴장했는데?
데뷔. 첫 녹음.
부담감이 애를 누르고 있었다.
자신감도 함께 훅훅 떨어지고 있었고.
녹음했던 것들은 혹시 몰라 지우지 않고 빼놨다. 정 안 되면 써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런 트랙이 20개가 넘어갈 무렵. 이제는 목이 상하겠다, 싶어 녹음을 잠시 중단했다.
“유하야, 잠깐 쉬자.”
-네에···.
풀이 팍 죽어있네.
“괜찮아?”
-왜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연습 땐 잘했는데···.
“알아 잘한 거. 그러니까 녹음도 잘 할 수 있어. 속상해하지 말고.
툭 떨어진 머리통이 올라올 줄을 모른다.
-······죄송해요.
“뭐가 또 죄송해.”
-피디님 곡···제대로 못 부르고 있잖아요. 제가.
저런 생각을 갖고 노래를 했었구나.
“유하야, 그거, 네 곡이야.”
-···네?
한유하는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복잡한 표정이었다.
나는 좀 더 분명하게 말했다.
“내가 너한테서 영감받아 만든, 네 곡이라고. ”
-······.
한유하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까처럼 굳어있진 않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내가 사용해본 방법은 아니지만, 몇 번 본적은 있지. 특히 어릴수록 성공률도 높았고.
“일단 연습을 좀 해볼까? 편하게 연습하다가 괜찮아지면 다시 녹음해보자.”
-네···.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기대어 한유하를 지켜보았다.
후렴 루프가 돌면서,
한유하가 천천히 노랠 부르기 시작한다.
부담감이 걷히고 점점 편한 목소리가 드러났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돌아왔네.’
자신에게 딱 맞는 멜로디를 부르는 한유하의 진짜 실력이.
이미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을 멤버들마저도 뒤에서 연신 감탄하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웃으며 토크백 버튼을 눌렀다.
“유하야, 이제 나오자.”
-네? 저요? 저···연습하는 건 괜찮지 않았어요?
“어. 괜찮았어. 그러니까 나와도 돼.”
알쏭달쏭한 얼굴.
몰래카메라를 이 맛에 하는 건가.
나는 빙그레 웃으며 진실을 밝혔다.
“녹음 이미 다 됐으니까.”
#
“그럼 하서윤 컴백하고, 그다음이 플로라. 그리고 포텐업 정규까지. 정말 쉴 새 없이 출격이네요?”
A&R팀 여직원, 이민주가 정 대리에게 말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니까. 올여름 휴가는 다 갔어. 포텐업 뮤비 감독은 뭐래?”
“어휴, 말도 마요. 무슨 영화감독인 줄.”
“영화감독?”
“무슨 해외 로케이션 얘기를 하더라고요. 돈도 돈이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고 그랬더니, 무슨 당일치기 어쩌고. 하아.”
“그니까 그냥 양 감독으로 가자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결과물이 괜찮으니까 그랬죠···.”
이런저런 업무 얘길 주고받으며 걷던 이민주가 ‘어?’ 소리를 내며 제2 녹음실을 보았다. 문 옆에 불이 켜져 있었다.
“와···설마 했는데, 진짜 아직도 작업하시나?”
“왜? 누군데?”
“장 피디님이요. 후반 작업하신다고 들어가셨는데, 그게 어제에요. 근데 아직도 불이 들어와 있네.”
“걘 진짜···이성원보다 더한 놈이야.”
정 대리가 녹음실을 지나치다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멈춰 섰다.
“왜요?”
“궁금하잖아. 노래 어떻게 뽑혔나.”
정 대리의 의도를 읽은 이민주가 재밌겠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둘은 조심스레 다가가 문고릴 잡아당겼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장기로의 뒷모습이 보인다.
“혼자 계시네요?”
“엔지니어들도 잠은 자야지. 안 자는 쟤가 이상한 거고. 저 집중하는 거 봐.”
“진짜···가만 보면 노력하는 천재가 저런 거구나 싶어요.”
“노력하는 천재? 그럴듯하네.”
정 대리가 끄덕이다 뭔가가 생각난 듯 귀를 기울였다.
“참 내. 다르네, 달라.”
“뭐가요?”
“그 왜, 베이시스트 한 명 데려왔었잖아. 나랑 팀장님은 솔직히 실연까지 필요할까 싶었거든. 그런데 들어보니 확실히 다르네.”
“그래요? 전 이전 버전을 아직 못 들어봐서···그건 그렇고, 플로라 애들 왜 이렇게 잘 불러요? 노래가 좋아서 그런가? 너무 좋은데요?”
“그러게. 노래도 노래지만 확실히 각자 보컬 음색도 매력 있고 잘 부르네.”
“그쵸? 이거 이러다 플로라 대박 나는 거 아닌지 몰라.”
“그럴지······.”
정 대리가 뭐라 답하려다 멈칫했다. 갑자기 장기로가 노래를 끈 거다.
속닥거리던 소리가 들렸나 싶어 문을 슬며시 닫으려 하는데, 갑자기 장기로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으아아아아! 끝났다!”
녹음실이 떠내려가라 소릴 지르기 시작했다.
이민주가 벙찐 표정으로 정 대릴 돌아봤다.
“장 피디님···원래 저런 성격이었어요?”
“아닐걸. 뭐, 흔한 일이지.”
“네?”
정 대리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만세를 하고 있는 장기로를 바라봤다.
“녹음실에 혼자 있다 보면 원래 다 저렇게 미쳐가. 가자.”
“왜요? 끝난 거 같은데, 들어가서 얘기 좀 하고 가죠?”
“저럴 땐 못 본 척해주는 거야.”
“아하.”
정 대리가 살며시 문을 닫았다.
< 032. 차트전쟁 (6)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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