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0. 차트전쟁 (4) >
클럽 빌스의 잼 데이(jam day).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 끼리 모여서 즉흥적으로 공연을 만든다.
자격도 제한도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이날은 관객들의 절반 이상이 연주자들로 채워지곤 한다.
재미난 광경이다. 연주자들이 자신의 악기를 만지작거리며 다른 이의 공연을 보는 건.
예전엔 나도 여러 번 무대에 올랐었다.
입시 곡의 영향으로 한창 재즈에 빠졌던 시기에 말이다.
‘오랜만이네···.’
은은하게 쏟아지는 조명을 받으며 빈 테이블에 앉았다.
몸은 청년인데 머리는 아저씨다. 팔짱을 끼고서 과거의 향수에 벌름거리는.
두리번거리자 점원이 다가온다. 콜라 한 잔 값과 입장료를 지불하고 문이 열릴 때마다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각종 악기를 멘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중에 윤태영이 있나 시각을 곤두세웠다. 10년 전의 얼굴을 내가 맞힐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너무 어두워 잘 모르는걸.
“잼 참가할 거야?”
“할려고 오긴 왔는데, 와씨 막상 이름 적으려니 떨린데?”
기타를 멘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와 카운터 쪽에서 웅성거린다. 잼 데이에 참여하려는 듯 작성표를 들고 망설인다. 나도 처음엔 저랬지.
콜라를 홀짝이며 기다렸다. 자리는 어느새 꽤 채워졌는데 솔직히 못 찾겠다. 너무 무작정 왔나? 싶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여길 매주 제집 드나들 듯했다는 미래 인터뷰 내용에 의존할 수밖에.
이윽고, 이 공연을 주관하는 호스트(host)가 무대로 올라섰다. 손에 작성표를 들고서.
이름과 곡을 호명하자, 아까 몰려서 들어왔던 학생 중 하나가 기타를 들고 쭈뼛쭈뼛 앞으로 나섰다. 엄청 상기된 얼굴이다. 저러다 실수하는 거 아닌가, 몰라.
-이 곡, 피아노 쳐주실 분 계신가요?
언제쯤 오려나, 오긴 하려나?
-없으신가요?
턱을 괴고 멍하니 있다가 호스트와 눈이 마주쳤다. 날 빤히 본다. 꼭 날 알아보는 것 같은···
-오랜만에 오셨죠?
맞네, 이런.
-연주하시는 거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한 곡, 같이 하시죠.
호스트의 말에 주변 테이블에서 작은 박수소리까지 들린다. 윤태영이나 올 것이지.
-이 곡 피아노 없이 가면 너무 아쉬운 곡이라.
에이, 모르겠다.
작은 환호를 뒤로하고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핸드폰을 뒤적거려 코드를 찾았다.
목적을 달성한 호스트는 빙긋이 웃으며 작성표로 시선을 돌린다.
-감사합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베이스 쳐주실 분 혹시······오늘 무슨 날인가요? 베이스도 없는···어? 방금 들어오신 분 손 드신 거죠?
코드만 나와 있는 악보를 보면대에 기대어 놓고 고갤 돌렸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주섬주섬 베이스 기타를 꺼내고 있었다. 친구의 열띤 응원을 받으며.
20대 후반 정도쯤 됐을까?
머리는 언제 잘랐는지 머리가 어깨까지 오는 장발의 남자는 베이스를 들고 무대 위로 올랐다.
나는 무슨 자석 마냥 그 남자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혹시 윤태영인가? 눈이 안 보이니 잘 모르겠는데···.
꺽다리 느낌의 남자가 부산스럽게 베이스를 앰프에 연결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니 조급한가 보다. 뭔가 어설퍼.
-연주 전부터 긴장감을 줄 줄 아시는 분이시네요. 하하.
정적이 뜨는 걸 막기 위해 호스트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제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보던 사람들이 작게나마 웃는다.
-자, 준비가 다 된 것 같으니, 전 내려가 보겠습니다.
호스트가 자연스럽게 내려가고.
우리는 서로를 쳐다봤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 일렉 기타. 네 명이 시선을 빠르게 주고받았다.
나도 모르게 흥이 났다. 생각해 보니, 내가 돌아와서 연주에 집중해본 건 또 처음이네.
손을 들어 손가락을 탁탁 튕겼다.
‘원, 투, 쓰리···.’
-!
내 신호를 시작으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나는 가벼운 컴핑(comping)으로 일렉 기타를 도왔다. 드럼이 박자를 잘게 쪼개다 드디어 킥을 밟았다.
동시에 베이스 소리가 앰프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 뭐지···?
#
윤태영은 버징마저도 음악으로 만든다.
훗날 미국 최고의 프로듀서 데일비스가 인터뷰에서 할 말이다.
빌보드 차트 1위의 기염을 토했던 싱어송라이터 에릭은 윤태영과 작업을 위해 앨범을 3달이나 미룬다고 한다.
그리고 난 플로라 곡에 어울리는 쫀득한 베이스를 위해 여기까지 왔고. ···위의 두 명과 비교해 초라한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어쨌든. 그가 그렇게 대단했던 이유는 그의 연주가 독보적이었기에 가능했다.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박자감. 그게 곡 전체의 그루브를 좌지우지했기에.
‘어, 뭐지···?’
나는 내 연주를 하며 베이스 치는 장발을 관찰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그렇다.
기본 실력도 평범하고 실수도 많다.
베이스가 쳐지기 시작하니 곡 전체가 느물느물해진다.
고갤 돌렸다. 사람들의 표정에 실망감이 어리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글쎄. 절반 이상이 전공자이거나, 그에 준하는 연주자들이니 내가 제대로 본 걸 거다.
가볍게, 가볍게. 컴핑만 누르던 나는 호스트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리고 뭐라도 해보라는 눈빛을 받아버렸다.
‘쩝.’
나도 무대에 오른 이상, 공연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
‘오.’
호스트는 팔짱을 풀었다. 자신도 모르게.
좀 더 화려하게 연주해주길 바랬다. 베이스의 부족함이 곡 전체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있었으니까.
드럼으론 힘들어 보였다. 기타로도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피아노였다.
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건 기껏해야 2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 예전에 꽤 자주 왔던, 기억 속에선 그럭저럭 쳤었던···.
저 청년이 뭔가를 해줄 수 있을까? 혹시나 해서 바라봤다. 청년도 자신의 그런 표정을 본 듯했고.
이윽고 청년의 얼굴에 난감해하는 기색이 스쳤다.
‘역시 안되겠지···?’
한 악기의 실수를 덮으며 곡을 끌고 가는 일이다. 실력만으로는 안 된다. 경험이 필요한 일이지.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어?’
체념하며 눈을 감는데, 갑자기 청년의 연주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감질나게 컴핑만 쳐대던 연주가 갑자기 돌변한 거다. 마치 독주회 마냥.
원래대로라면 매너없는 행동이지. 하지만 지금은 저게 구원의 손길처럼 보인다.
‘뭐야, 쟤. 안 보이던 동안에 밥 먹고 피아노만 쳤나?’
베이스의 모자람을 덮는다. 왼손으로 부족하면 오른손까지 동원해서. 청년은 열심을 다 해 덮고 있었다.
얼른 무대 아래쪽을 보았다.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이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가려운 곳을 누가 긁어주고 있는 양 흥분한 얼굴들이다.
심지어 몇몇은 흥이 나는지 발로 박자를 맞추며 들썩거리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안심이지.’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곡이 끝났다. 마지막 화음이 터져 나오며.
이어서 여운을 집어삼킨 이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고.
호스트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이크를 들고 다시 무대에 올랐다.
-아, 연주 너무 좋았습니다. 솔직히 소름 돋지 않았어요?
진심이었다. 제대로 된 애다. 어디 학교에 다니는 애일까. 졸업은 했을지도?
흐뭇하게 피아노를 친 청년을 돌아봤다. 마이크를 입에서 살짝 띄우며.
“다음 곡도 해줄래요?”
청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됐고. 자, 이제 문제는, 베이스인데···.
다행히 이번에 베이스를 쳤던 장발의 남자는 무대를 진즉에 내려갔다. 딱 죽을 쑨 얼굴로. 같이 온 친구의 위로를 받으며.
-자, 그리고 베이스는 혹시···어? 아···이번엔 친구분이 하시겠다고요?
공연을 망친 친구를 덤덤하게 위로하던 남자가 손을 든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윽···.’
끼리끼리 논다고, 호스트는 그가 올라오는 게 불안하기만 했다.
#
“멋있었어요.”
다음 곡을 핸드폰으로 찾는데, 덥수룩한 머리의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장발 옆에 있던 친구다.
빙글빙글 웃는 남자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러자 ‘이번 곡도 잘 해봐요, 우리.’라는 말을 남기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아, 근데 이거 앰프가···처음 보는 거라···.”
흠. 장발보다 더 어설프면 어설펐지 나아 보이진 않는다. 심지어 좀 전에 베이스를 쳤던 장발이 올라와 도와준다.
그 모습을 보는 호스트의 얼굴은 점점 잿빛이다. 날 자꾸 쳐다보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
솔직히 두 번은 좀······.
지잉.
때마침 작동한 앰프에서 베이스 소리가 울렸다. 멈칫하며 더벅머리를 봤다. 그는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즐길 준비가 된 사람처럼.
나는 더벅머리의 얼굴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았다.
“······.”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 소름이 돋았다. 흥분감을 주체 못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참 내. 내가 살다, 살다···.
‘윤태영하고 공연을 해보네.’
#
-프로듀서야, 캐스팅 디렉터야?
공연이 끝나고.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정 대리의 의문 섞인 말투에 피식 웃었다.
프로듀서가 실연자를 직접 컨택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찾아다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그래서 정 대리도 저렇게 말하는 거고.
-아무튼, 찾는다던 사람을 찾긴 했고?
계단 앞에서 통화하다가, 클럽 안쪽을 슬쩍 보았다. 장발과 윤태영이 한쪽 구석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네, 찾았어요.”
-뭐, 일단 데려 와봐. 최정아 때도 그렇고···네 안목이 믿을 만은 하니까.
“잘 꼬셔볼게요.”
-아, 또 꼬시기까지 해야 해? 확실히 넌 캐스팅 디렉터가 맞는 것 같은데?
어처구니없어하는 정 대리와 통화를 마치고, 다시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윤태영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랬는데, 갑자기 너무 긴장이 돼서······어, 오셨네.”
장발이 자신의 공연에 대해 실수했던 것들을 떠들다가 내가 온 걸 보더니 손짓했다.
윤태영은 생각보다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대신 장발이 떠벌이였다. 맥주 세잔 째에 이미 조금 취했는지 점점 더 말이 많아져.
“윤태영이 이 녀석, 베이스 졸라 잘 치지 않습니까?”
“네, 대단하더라고요.”
“그니까요. 진짜 내가 아는 베이시스트 중에서 최고로 독특하게 잘 치는데, 왜 아직도 무명인지 모르겠다니까요?”
장발의 말에 윤태영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잘랐다.
“지금 니 말에 답이 있네. 독특해서.”
“독특한 게 어때서! 아까 듣는데 좋기만 하대. 아, 물론······.”
“장기로입니다.”
“예, 기로씨도 엄청 잘 치셨죠···이거, 생각해 보니 나만 못 쳤네···.”
급하게 우울해지는 장발을 보며 차마, 아니에요, 잘 치셨습니다는 말치레는 못하겠다.
장발은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갤 휘저었다.
“아무튼, 참 아까워요. 내 친구···나이 서른이 다 돼가는데, 맨날 알바만 하고.”
“너랑 같이하잖아, 임마.”
“아···저 여기, 맥주 한 잔 더요! 기로씨도 더 마셔요.”
“전 이거면 됩니다.”
반쯤 남은 콜라를 흔들었다.
“돌아가 일을 마저 해야 해서.”
“엥? 지금 시간에요? 무슨 일 하시길래···.”
탄산을 넘기며 대답했다.
“작곡이요.”
내 대답에 장발이 반쯤 가려진 눈을 반짝인다. 그러더니 부탁 아닌 부탁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 작곡! 이야, 작곡가님. 얼른 성공해서 얘 좀 써줘요. 녹음 같은 거 할 때요.”
“야, 취했냐 벌써.”
덕분에 옆에 있던 윤태영은 황당해하며 말렸고.
나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게요.”
“제 친구가 좀 취한 것···이게 뭐예요?”
난처해 하는 윤태영에게 슥 내밀었다.
“제 명함이요.”
< 030. 차트전쟁 (4) > 끝
ⓒ 나일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