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29화 (29/221)

< 029. 차트전쟁 (3) >

연락이 끝도 없이 밀려든다.

편협하다 생각했던 인간관계가 새삼 이렇게 넓었나 싶을 정도로.

-야, 그럼 너 저작권료가 대체 얼마 들어오는 거야?

“끊어라.”

-최정아 실제로 봐도 그렇게 예쁘냐?

“끊자.”

대부분이 친구 놈들의 쓸데없는 전화였지만. 아, 이러면 편협한 게 맞는 건가.

덕분에 엉덩이를 몇 번이나 달싹이고서야 제대로 자리에 앉았다. 지글지글 고기가 구워지고 있는 불판 앞에.

“다들 퇴근 안 했으면 팀장님께 회식이라도 하자고 제안하는 건데.”

“내일 하자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한 번 여쭤볼까요?”

정 대리와 비스트로가 고기를 구우며 대화 중이다. 참 신기하지 않나. 이 조합이 라운지 테이블에서 고깃집 테이블로 옮겨질 줄이야.

“그래서. 어때, 1위 찍어본 소감이?”

비스트로가 팔짱을 끼고 허릴 세우며 물었다. 단추 구멍 같은 그의 눈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글쎄요···.”

TOP10에 든 것에 대한 축하를 오늘 아침에 받은 마당에, 별안간 1위라니.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지금까지 몰래카메라였습니다! 하고 이 고깃집이 세트장 철수하듯 움직여도 납득할 것 같아.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도 핸드폰을 켜면 최정아의 이름이 가장 높은 곳에 박혀 있다는 것과 작, 편곡에 기로라는 두 글자가 박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볼 때마다 내가 실실 웃고 있다는 거였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네요.”

차트에 들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방구석 작곡가가, 첫 데뷔곡으로 TOP10을 뚫었고, 두 번째 곡으로 차트 1위에 올라섰다.

밟고 있는게 땅이면 그게 이상한 거지. 엔돌핀이 마구마구 분비되고 있는지 취하지도 않는다. 밤새 마셔도 괜찮을 것 같아.

“흐흐, 대단한 자식.”

말 울음소리처럼 푸르르 웃던 비스트로가 소주를 탁 털어 넣으며 흐뭇하게 바라본다.

뭔가 여러 의미가 담긴 말투였다.

“생 신인을 발굴해내더니 기어이 차트 꼭대기에 걸어버리는구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긴 했지.

“최정아는 어딨어. 얼른 지금 여기로 와야 하는 거 아냐?”

“음악 프로그램 녹화 있었어요. 그쪽 팀이랑 회식한다고 연락 왔고요.”

“에잇, 왜 작곡가는 다들 나 몰라라 인 거야?”

“다들은 아닌가 본데요?”

정 대리가 심혈을 기울여 고기를 굽다가 툭 내뱉었다.

“엉?”

“···?”

나와 비스트로가 의아하게 보는데 우리 둘 사이로 누군가 스윽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오···.”

“흐엄마, 깜짝이야!”

비스트로의 몸이 홱 돌아갔다. 하마터면 드럼통 모양 의자가 그대로 넘어갈 뻔했다.

눈을 끔뻑이며 마스크를 쓴 여자를 보았다.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직 비스트로는 모르는 듯하지만.

“너 회식 중이라며?”

그 메시지가 한 시간 정도 전인 거 같은데?

“헤헤. 좀 있다가 왔죠.”

“거기도 너 1위 했다고 모인 거 아니야?”

“그냥 녹화 끝나고 회식하는 김에···. 근데 괜찮아요. 제가 완전 취한 척 연기하고 빠져나왔거든요.”

“오, 그런 스킬까지 써?”

대화를 지켜보며 누군지 눈치챈 비스트로가 끄덕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의리가 있는 친구네.”

“안녕하세요.”

“으이, 오디션 때 이후로 두 번째지? 반가워.”

“반가워요.”

비스트로와 정 대리가 번갈아 가며 최정아와 인사를 하는 동안, 나는 이 조합이 왠지 모르게 편하단 생각을 하며 술잔을 채웠다. 회사에서 자주 봐서 그런가.

아무튼, 즐거운 분위기였다. 왁작지껄하게 웃고 떠들다가도 문득 1위를 떠올리면 머릿속에 엔돌핀이 마구 분비되더라. 그럼 또 술이 확 깨서 잔을 비웠다.

그렇게 술자리가 계속되었다. 최정아가 마스크를 벗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항정살을 오물거리다, 사람들 눈에 띄어 술집 전체가 웅성대기 전까진.

하는 수 없이, 적당히 마무리짓고 밖으로 나왔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니, 배불렀어. 괜찮아, 괜찮아.”

“내일 출근하려면 딱 이 정도가 적당해요.”

안절부절못하는 최정아에게 비스트로와 정 대리는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즐거웠다며 택시를 잡기 위해 대로변으로 향했다.

최정아에게 ‘넌 어떻게 가?’라고 물으려다 옆에 밴이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피식 웃었다.

“이제 진짜 연예인이야.”

“흐아. 적응이 안 돼요. 좀 전에도 아무 생각 없이 고기 먹다가···.”

“푸흐.”

“감사해요.”

“몇 번째 감사 인사야.”

“몰라요. 근데 만날 때마다 하려고요.”

“낯간지럽다. 매니저님 기다리셔, 얼른 들어가.”

환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하고는, 비척비척 밴에 올라타는 최정아.

내려간 창문을 통해 매니저와도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

밴이 떠났다. 뭔가 묘하네.

내 가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내 곡이 최정아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사실이었다. 뿌듯함과 고양감이 범벅되어 입꼬릴 잡아당긴다.

아무래도,

이렇게 계속 실실거리며 집까지 갈 것 같았다.

#

다음날, 여느 때처럼 출근했다.

1위를 한 다음이라고 해서 별다를 건 없었다. 사람들의 축하가 좀 격해지고, 더 많아진 정도? 그리고 평소 눈인사만 하던 직원들도 한 마디씩 걸어온 정도?

물론 지금은 그걸 느낄 새도 없이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다.

플로라 곡 작업이 한창이다.

한유하를 설득하기 위해 만들었던 음원과 골조는 같지만, 편곡 방향이라던가, 악기군들이 조금씩 바뀌었다.

“흐음.”

그럼에도 어딘가 마음에 들질 않는다.

뭐가 문제지? 멜로디도 잘 뽑혔고, 리프도 중독성 있고, 전체적인 느낌도 플로라랑 잘 어우러지는데?

‘가만···.’

마우스 휠을 긁어가며 한참을 살폈다. 난잡한 트랙들을 부분 음소거 시키기도 하고,

전체를 함께 틀기도 하고.

책상 위에 올라있는 2조의 스피커를 번갈아 들어보며 음역대도 체크하고.

그러다 보니 내가 뭘 아쉬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비트. 아니, 엄밀히는 비트가 아니라···.

‘베이스.’

댄스곡이다 보니 세 개의 베이스 소리를 적절히 레이어했다. 그런데 맛이 안 난다. 아무리 건드려봐도 내가 원하는 느낌이 나질 않는다.

‘키보드로 찍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겠는 걸.’

원하는 느낌은 어렴풋이 있는데, 가상악기로는 도저히 구현되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A&R팀에 실연주자 요청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베이스···베이스라.

기타리스트.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지금이나, 미래에서나.

드러머도 기타 정도는 아니지만, 꽤 많은 이름이 떠오른다. 업계에서 유명했던 연주자들.

그런데 베이시스트는 사실 앞선 두 악기만큼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단 한 명을 제외한다면 말이지.

‘그 사람이 녹음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비단 이번 작업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일들에서도 큰 도움이 될 사람이었다.

문제는···.

인터넷창을 띄워 검색해본다. 역시 아직은 제대로 활동하기 전.

머리가 뱅글뱅글 돌았다. 뭔가 떠올릴만한 게 있나 해서. 다행히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하나가 떠올랐다.

‘확인해보자.’

얼른 핸드폰을 들어 대학교 친구 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독 길게 느껴지던 연결음이 멈춘다.

-여보세요? 장기로, 네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한창 바쁘다고 그러지 않았어?

“어, 나 뭐 좀 물어보려고. 클럽 빌스 있잖아······거기 잼 데이(Jam day)가 언제였지?”

#

시간 맞춰 홍보팀에 들렀다.

플로라 곡의 소개 글 때문이었다. 이현이나 최정아땐 그냥 내 생각 그대로 적어 주면 살짝 수정만 해서 올렸었는데, 이번엔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한가 보다. 소개 글에서 아이돌 느낌이 나야 한다는데, 그것부터가 뭔 얘긴지 감을 못 잡겠어.

3층에서 내려 홍보팀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표독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왜 그 사진을 보내요. 저 왼쪽 얼굴이 더 예쁜 거 지난번에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음. 이따 다시 올까?

누군지 알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유리 문 너머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하서윤이 보였다.

첫인상이 그래서 그런가, 들어가기가 싫네.

“어, 장 피디님 오셨어요?”

하지만 홍보팀 직원이 날 발견해버렸다. 가볍게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저 멀리서 시선이 콱 꽂히는 게 느껴진다. 쩝.

“차트 1위 축하드려요.”

오늘 하루 숱하게 받은 칭찬이지만 들을 때마다 기분은 좋다. 멀찍이서 쏘아져 오는 서슬 퍼런 눈빛만 아니었어도 더 좋았을 텐데.

“저희가 소개글 훑어봤는데요. 이 문장 다음엔 ’각자의 색을 이 한 곡에 녹여내‘ 이런 말이 있었으면 좋겠어서요.”

“그것도 괜찮은 것 같네요.”

“그러면 이건 이렇게 가고······.”

수정할 부분들을 체크하는 중에 그럴듯한 단어를 고심하느라 문득 고갤 들었는데. 그러다 하서윤과 눈이 딱 마주쳐 버렸다. 얼른 종이로 시선을 내렸지만 이미 늦어버렸나. 갑자기 하서윤이 뚜벅뚜벅 다가온다.

또 왜 와?

“장 피디님. 맞으시죠?”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고 하서윤인 줄 모르고 들었다면 감탄했을 법한.

다시 고갤 들어 하서윤을 보았다. 지금은 웃고 있다. 어젠 웃기지도 않는다더니.

“아, 예.”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제가 해외에 있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더라구요. 최정아도 직접 데려오셨다면서요? 지금 차트 1위까지 했던데, 너무 축하드려요.”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 어제랑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께름칙함을 숨기며 허허실실 웃었다.

“감사합니다.”

“에이, 감사는 뭘. 전 미안해서 그러죠.”

“네?”

“제 복귀가 원래 예정되어있던 날짜로 확정되었거든요. 근데, 제가 컴백을 하면 아무래도 피디님 곡은 1등에서 내려올 테니까···.”

이게 진심이었구나.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이 흘렀다.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귀동냥 한 게 좀 있지.

“하하.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하서윤씨 컴백이 예정대로 진행되는 게, 저희가 차트 1위를 생각보다 너무 빨리해 버려서 라고 하시더라고요. 굳이 늦출 필요가 없어져서.”

“아···?”

멈칫하는 하서윤. 찌푸려지는 얼굴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초인적인 미소를 짓는다. 그러더니 살짝 눈인사를 하며 얼른 뒤돌아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돌아보니 직원이 쿡쿡대며 웃고 있었다. 고개까지 내저으며.

“장 피디님도 장난 아니시네요.”

“네? 제가요?”

“천하의 하서윤이 도망을 갔잖아요. 피디님이 이기셨어요.”

“에이, 이기긴 무슨. 전 평화주의자인 걸요.”

직원의 표정이 요상하다. 대단히 재밌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는다. 얼굴엔 내가 널 아는데? 라고 쓰여있달까.

다른 건 몰라도, 이현의 복귀 때 내가 길성혁과 부딪힌 사건은 회사 내에서 꽤 유명해졌다. 아는 사람만 알던 이야기가 길성혁이 나가면서 쫙 퍼진 거다.

“아무튼, 저희가 이러고 살아요. 사실 하서윤만도 아니에요. 여기 와서 이런 거 저런 거 체크하는 연예인들 엄청 많죠.”

처량한 웃음을 흘리며 몇몇 연예인들의 이름을 읊길래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 주었다.

그렇게 소개 글 수정까지 마치고서.

작업실로 다시 올라가는 대신 아예 회사 밖으로 나와 버렸다.

전철역으로 걸음을 옮기며 한 사람의 이름을 곱씹었다.

윤태영.

훗날 장르를 불문하고 국내외 수많은 유명 가수들과 작업하게 되는 천재 베이시스트.

그를 찾기 위해 홍대로 향했다.

< 029. 차트전쟁 (3)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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