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28화 (28/221)

< 028. 차트전쟁 (2) >

매니지먼트팀 사무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한 여자가 들어왔다.

급하게 들어오며 어깨가 문을 쳐 덜컹거렸다.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었고.

“에이씨···.”

여자도 아프긴 한지, 어깨를 만지작거리며 사무실 중앙을 가로질렀다. 굵은 컬이 들어간 머리를 흩날리며. 손에 무기만 들려준다면 영락없는 여전사의 느낌.

벌컥. 팀장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안에서 커피를 내리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 심장 부근을 부여잡았다.

“아, 깜짝이야. 뭐야, 하서윤. 너, 노크 몰라?”

“임 팀장님은 순서 몰라요?”

말이 쏘아나가자마자 받아쳐 졌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임 팀장이 드립 포트를 내려놓고 하서윤을 보았다.

그 사이, 열을 식히려는 듯 한숨을 푹 내쉰 하서윤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고.

“또 왜, 왜 그러는데. 어메리카까지 가서 녹음 잘하고 와 놓고.”

“그니까. 녹음이 그렇게 잘 됐는데 왜 미뤄요?”

“어? 아니 그건 다 이유가···.”

하서윤이 임 팀장의 말을 자르며 소릴 빽 질렀다.

“그 말도 안 되는 이유 말고 진짜 이유! 최정아인지 뭔지 걔 때문 아니에요?”

“어? 갑자기 그게 무슨···.”

“내 이럴 줄 알았어!”

표독스럽게 일렁이는 눈빛에 임 팀장이 낭패라는 듯 고갤 돌렸다. 그리곤 하서윤 매니저 이름을 중얼거리며 입을 비죽였다.

하서윤은 그런 거 아랑곳 안 하고 임 팀장을 더욱 몰아세웠다.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인 애랑 웬 생짜 작곡가랑···그런 애들이 낸 곡 하나 때문에 내 컴백이 밀린다는 게 말이 돼요?!”

“아니, 꼭 걔 때문이라기보단···.”

“맞잖아!”

임 팀장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만 보면 담배 연기가 나올 것 같았다. 물론 하서윤이 못 보게 고갤 틀은 상태였다.

그렇게 아주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진정된 얼굴로 하서윤을 돌아보며 차분히 설명한다. 방법을 바꿨다. 솔직함으로.

“봐봐라, 서윤아. 걔들이 낸 곡이 지금 반응이 꽤 좋아. 잘만 하면 1위도 노려볼 수 있을 거 같단 말이지. 근데 슈퍼스타인 네가 딱 컴백해버리면, 어떻게 되겠냐. 당연히 네가 1위에 떡하니 앉아버릴 거 아냐···.”

“당연하죠.”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 않냐는 말투.

임 팀장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회사 차원의 결정임을 강조하려 했다.

“그게 회사 입장에선 사실 손해라, 본부장님이···.”

“번호 줘요.”

“···어?”

“본부장님 번호요. 달라고요. 제가 통화해 볼게요.”

이것마저 안 먹힐 줄은 몰랐지.

벙찌는 임 팀장.

“아니···.”

“지금 올라가요? 본부장실로?”

“미쳤어?!”

“뭐가요! 제가 제인이여도 이게 미친 짓이에요? 하긴, 걔였으면 본부장님이 내려왔겠지. 그러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굉장히 히스테릭한 표정을 짓던 하서윤이 한참을 씩씩대다가 저 멋대로 도장을 쾅 찍었다.

“저, 일정대로 컴백해요.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그리고선 구둣발을 찍으며 팀장실을 나가버렸다.

“야, 야! 서윤아! 하서윤!”

뒤에선 임 팀장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

5층에 들어서며,

나는 하룻밤 새 변화를 실감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현 때도 축하를 많이 받긴 했지만, 지금은 또 다르네.

하루 만에 TOP10에 진입한 거니까. 사람들의 반응도 거기에 맞춰 진화했다.

프로듀서들이건 직원들이건 한 마디씩 건네오니 새삼 으쓱하다. 뭔가 내 커리어가 쌓이는 만큼 회사 내의 존재감도 진해지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기분 좋다.

곧장 A&R팀에 들러 정 대리와 몇 가지 얘기를 나눴다.

곡의 컨셉이나, 추가적인 편곡 방향, 영상팀과 상의해야 할 것들.

플로라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다.

20분 정도 회의를 하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2층을 누르며 지영환한테 전화를 걸었다. 약속은 이미 되어있으니, 바로 가도 되겠지.

-네, 피디님!

“저 지금 내려가는 중입니다.”

-어. 피디님이요? 제가 올라가려고 했는데···!

라운지에서 만나자는 얘길 짤막하게 나누고 전활 끊었다. 타이밍 좋게 2층에서 멈춰서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매니지먼트팀 직원 한 명이 반색했다. 오며 가며 인사 정도는 했던 직원이었다.

“어! 장 피디님. TOP10 축하드려요.”

나도 환하게 웃으며 감사하다 답했다. 그리고 몸을 돌리는데.

“···?”

내가 잘못 봤나?

하서윤이 걸어오고 있다.

바닥에 족적을 남길 기세로.

두 눈을 일렁이며.

‘나, 나한테 오는 거야?’

접촉 사고가 날 것 같아 얼른 옆으로 돌았다. 하서윤의 시선이 함께 돈다. 나 노려보는 거 맞잖아!

영문을 몰라 살짝 목인사를 했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에 오른 하서윤에게서 돌아온 건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TOP10? 웃기지도 않아, 정말.’

나는 멍하니 문이 닫히는 걸 보기만 했다. 나한테 한 말 맞지? 황당하네···.

‘저런 이미지였나?’

내 기억 속의 하서윤은 뭐랄까. 음악적인 욕심도 크고 도전적이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인간적인 이미지였는데 말이지.

물론 내가 소문으로만 들어 제대로 모르고 있었거나, 아니면 5년 뒤에 그렇게 되고서 바뀐 걸 수도 있겠다···지만.

그래도 왜 저런 소릴 한 건진 전혀 모르겠는걸?

의아해하며 몸을 돌리자, 사무실 문 쪽에 서 있는 지영환이 보였다. 좀 전 상황을 다 봤는지, 매우 어색한 표정을 하고 있다.

#

“파트 분배에 관해선 저희 쪽도 대만족입니다. 사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속으로 이건 소영이가, 이건 예지가 이러면서 들었거든요. 너무 확실하게 구분 지어 만들어 주셔서.”

애초에 플로라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 그렇다. 한유하야 멜로디가 들렸으니, 당연한 거고. 나머지 멤버들도 각자의 이미지에 맞게 멜로디를 썼다.

지영환이 수첩을 확인하다가 물어왔다.

“아 그리고 곡 소개는 피디님이 직접 쓰시나요?”

“그건 제가 홍보팀으로 넘겼습니다. 완성본 나오면 보내드릴게요.”

“넵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번에 여쭤보신 거 있잖아요? 그거 아직 팀장님께 확인을 못 받았어요. 아침에 난리가 나서···.”

“무슨 일 있어요?”

“하서윤이 왔다 갔거든요.”

아침에 눈에서 불길을 뿜어내는 듯했던 하서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건 피디님이랑도 연관이 있겠네요.”

“···?”

내 의아한 표정에 지영환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하서윤이 왜 난리를 치고 갔는지. 팀장실에서 최정아 이름이 왜 나왔는지.

얘기를 듣고 나니 왜 나랑도 연관이 있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서윤이 날 그렇게 노려보고 입을 삐죽댄 것도 이해가 갔다. 기분 나쁠 만은 했네.

그렇다고 나나 최정아한테 그래도 된다는 건 아니고.

어쨌든, 쭉 듣다 보니 결국 하서윤이 곧 컴백할 확률이 높다는 얘긴데. 그게 딱히 아쉽다거나, 불편하진 않았다.

내 기억상, 이번 하서윤의 노래는 분명 좋은 곡이었으니까.

최정아가 밀린다면, 그게 오롯이 인지도 때문인 건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왠지···

‘질 것 같지도 않단 말이지.’

몇 가지 이야길 더 마무리 짓고 지영환과 헤어졌다. 다시 5층으로 올라와 최정아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음악 프로그램 공연장 사진이었다. 그 아래엔 녹화가 이제 들어간다며, 잘 부르고 오겠단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잘하고 있구만.”

솔직히. 이대로 최정아의 성공을 여유롭게 지켜보고픈 마음이 있다. 차트 등반을 지켜보며 캔맥주를 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번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엔 네 명이나 되고, 여자애들이다.

여유는 무슨. 녹음 준비를 얼른 시작해야 한다. 여름이 오기 전엔 음원이 나와야 하니까. 만만치가 않네. 비스트로는 한 번에 3개씩도 하던데. 이름값을 하는 괴물이었어.

‘체력도 좀 길러야지···.’

작곡가의 수명이 짧다는데. 그 대세에 따르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지는 생각을 부여잡고, 작업실로 향했다.

할 일이 산더미다.

#

“서윤아 그거 58도야···.”

매니저의 염려 섞인 말에 하서윤은 입매를 비틀었다. 잔을 들어 올리고, 노려본다.

“그래서? 내가 못 마실 거 같아? 나 미국에서 왔어.”

매니저는 그게 무슨 상관인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손목이 경쾌한 스냅을 만들며 꺾인다. 미모까지 합쳐져 한 편의 광고였다. 하서윤의 입꼬리가 징징이마냥 쳐지기 전까진.

“으윽. 목이 타는 거 같아.”

“······.”

하서윤이 다시 잔을 채운다. 수백 가지 잔소리가 떠올랐지만 죄다 마음속 쓰레기통에 처박는 매니저였다.

“1위? 치. 신인이 무슨 1위를 한다고 그래. 어제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던 애가. 안 그래?”

“그렇지. 말이 안 되지. SNS빨로 6위까지 올라간 것뿐이야.”

그러자 하서윤이 도끼눈을 뜨며 잔을 '탁' 쳤다. 적갈색 액체가 출렁였다.

“6위라고? 9위가 아니라!?”

“어? 어어. 그게 그새 올랐더라고.”

“아으, 짜증나! 그딴 시골 냄새나는 노래, 뭐가 좋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곧 거품 빠지고 가라앉을 거니까. 내일이면 금세 10위권 밖으로 가 있을걸?”

일그러져있던 하서윤의 표정이 그제야 풀린다.

“나 걱정 안 했어. 고작 신인한테 걱정 안 하지, 내가.”

청포도를 톡 떼어내어 도도하게 오물거렸다. 언제 성질을 부렸냐는 듯이.

“작곡가도 완전 맹하게 생겼더만. 뭐, 곡 퀄리티는 나쁘진 않던데, 그래도 내가 미국까지 가서 녹음한 거랑은 비교가 안 되지.”

그렇게 한참을 중얼거리던 하서윤이 갑자기 손뼉을 치며 눈을 빛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단 말이야?”

“뭐를?”

“어떻게 해야 제인을 이길 수 있을지.”

TKM에서 독보적인 인지도와 평가를 자랑하는 제인. 하서윤은 거기에 대한 불만을 가감 없이 표출하는 편이었다. 자격지심이랄까.

매니저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시작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청포도를 톡톡 따서 하서윤 앞에 내려놓았다.

“하나, 둘······다섯 개만 먹을 거야. 딱.”

“그래, 그래.”

“아무튼. 이번에 깨달았어.”

“어떤 걸?”

“내 감성은 미국에 더 가깝구나.”

남은 과일을 입에 넣던 매니저가 우뚝 멈췄다. 맙소사. 느낌이 쌔 하다.

“발라드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선 안 돼. 흔해 빠진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마냥 별별 처량한 티 다 내면서 노래 부르는 제인을 절대 못 이겨.”

활활 타오른다. 하서윤의 눈과 매니저의 속이.

“나 성공할 거야.”

“서윤아 너 이미 충분히 성공했어. 너 우리나라 여자가수 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하지만 하서윤에겐 이미 안 들리나 보다.

그녀는 청포도를 툭툭 치면서 숫자를 세고 있었다.

“2년, 3년···은 너무 짧나. 그럼 5년. 내가 5년 뒤엔 이름을 올릴 거야.”

매니저는 제발 아니길 바라며 물었다.

“···어, 어디에?”

은은한 조명에 비춰진 하서윤의 눈이 반짝였다.

“빌보드.”

#

몸이 힘들지언정 머리는 일할수록 맑아진다. 즐기고 있으니까.

곡은 조금씩 건들 때마다 점점 좋아지고. 그러면 또 시간도 잊은 채 신나게 작업하게 된다.

세공 작업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카페인을 끊임없이 보충하며 갈고, 또 닦는데, 10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잔뜩 상기된 표정의 정 대리가 서 있었다. 어째 나보다 문을 연 사람이 더 놀란 표정인걸.

동시에 책상 위에서 진동하기 시작하는 핸드폰.

전화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메시지가 계속 들어오느라 진동이 끊기질 않고 있었다.

순간 심상치 않은 기분을 집어먹고 정 대리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표정만으론 짐작하기 어려웠다.

“아직 확인 못 했구나!”

“네? 뭘?”

뭘 확인 못 했다는 거지?

이현? 최정아? 플로라? 길성혁?

여러 이름이 스친다. 아니면, 음원에 무슨 문제가 있나? 아니지. 그렇게 확인했는데, 문제 있을 리가.

심각한 일은 아니겠······.

“지금, 차트 1위야.”

< 028. 차트전쟁 (2)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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