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7. 차트전쟁 (1) >
TKM은 지난달, 소일라에 공개되어 SNS를 뒤흔든 일반인이 이번에 가수로서 우리 앞에 설 준비를 마쳤다고 알렸다.
현재 SNS를 통해 디지털 싱글, ‘기억애(愛)’의 트레일러를 공개한 상태이며, 이미 전곡이 소일라에 올라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조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음원은 오는 17일 발매될 예정이며······
-트레일러만으로 소름 돋았어. 너무 기대된다!
-취향 저격···미쳤어.
-‘조회수’입니다. 기자님.
-점점 음압만 높아지는 음원 차트에 단비 같은 노래가 나올 듯.
-트레일러 보고 소름. 소일라 영상 보고 소름. 음원 공개되면 또 얼마나 소름 돋을까?
-왠지 엄마한테 들려주고 싶은 노래···.
└ ㅜㅜ
└ 이게 뭐라고 찡하냐.
“뭐 봐요?”
라운지에 앉아 핸드폰을 하는데, A&R팀 여직원이 은근히 물어왔다.
화면을 기울여 보여줬다.
“정아 기사 댓글이요.”
‘또?’라는 얼굴로 피식 웃은 여직원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갤 젓는다.
“음원 작업 다 끝나셨잖아요? 휴일인데 왜 쉬시지 않고.”
“아, 마무리 점검 좀 하려고요. 완벽하게. 근데···.”
그러고 보니.
“민주씨도 지금 회사잖아요?”
여직원이 엄청난 것을 깨달은 얼굴로 입을 살짝 벌렸다. 나 저거 안다. 슬픈 표정이란 거다.
“그쵸. 그러네요. 그랬네. 나도 회사였어. 집보다 더 오래 있으니 여기가 집인 줄.”
실소를 흘리는데, 정 대리가 바쁜 걸음으로 라운지에 들어왔다. 그러다 날 보더니 눈을 끔뻑이며 손목을 확인한다.
“너 왜 아직 안 가고? 최정아 쇼케이스 가보겠다며? 몇 시간 안 남지 않았어?”
“지금이···벌써 6시네. 이제 가면 되겠네요.”
2시간밖에 안 남았으니 슬슬 움직여야겠다. 주말이라 택시는 안 되겠고, 지하철을 타야겠군.
교통편을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직원이 울상을 지으며 부탁한다.
“실황 찍어 보내줘요. 궁금하니까···.”
그러자 옆에서 정대리도 끄덕거렸다.
“나도 사람들 반응은 좀 궁금하네.”
“그죠? 깜짝 쇼케이스잖아요. 심지어 홍대에서 버스킹으로! 반응 너무 기대돼요.”
솔직히 나도 그렇다. 아직 얼굴조차 공개되지 않은 최정아가 홍대 한복판에서 ‘기억애’를 불렀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홍보팀이 머리 좀 썼어.
꼭 영상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거듭 들으며 회사를 빠져나왔다.
밖은 완연한 봄이다. 오히려 이젠 덥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씨는, 맑음. 세 시간 후엔······역시 맑음. 해가 지면 선선하니, 버스킹 보기 최적이겠다.
‘오케이.’
만족스러운 기상 예보에 기뻐하며 전철역으로 향했다. 한동안 녹음실에 갇혀만 있었는데, 나도 오랜만에 바깥 구경이나 좀 하자.
#
생각을 잘못했다.
사람 구경을 하고 있다.
9번 출구로 올라가는데. 분명히 계단인데.
에스컬레이터마냥 밀려서 올라왔다. 최첨단 기술 뺨치는걸.
출구를 벗어나도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주말인데 날까지 좋으니 사람들이 전부 나온 것 같다. 어쨌든, 우리한텐 희소식이지.
설치가 한창인 무대 앞으로 향했다. 장비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스태프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며 빙 둘러봤다.
규모는 작아도 제대로 갖춰진 무대. 뒤쪽엔 스크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확실히 얼굴은 잘 보이겠네.
그때 최정아로부터 메시지가 들어왔다.
[피디님, 어디쯤이세요?]
[무대 앞이야. 넌 어디야?]
[건너편 카페 2층이요!]
좀 더 둘러보다가 걸음을 돌려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붐빈다. 주말 오후 홍대의 위엄이랄까.
2층으로 올라가자, 맨 끝쪽 자리에 앉아있는 최정아가 보인다. 어쩐지 살짝 굳은 표정의.
“어, 피디님.”
반색하는 최정아에게 다가가 빈자리에 앉았다.
“컨디션은 어때?”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은 것 같기도···.”
창밖으로 향한 시선이 홱홱 돌아간다. 불안한 눈빛이었다. 아무래도 긴장을 한 것 같은데···.
“사람이 많아요.”
작게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래서 떨려?”
“조금···네. 오늘 이거 중요한 무대잖아요.”
“그치. 네 데뷔를 알리는 무대니까.”
“그러니까요, 근데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단 말투다. 녹음도 그렇게 잘 해놓고서.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끝을 올렸다.
“난 알겠는데?”
“네?”
“녹음실 엔지니어분들 얼마나 깐깐한지 알지? 그분들이 네 노래 듣고 뒤집어졌어. 그거에 비하면 이런 무대는 아무것도 아니지.”
창밖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돌아온다. 조금은 긴장을 덜어낸 표정으로.
조금 오글거려도, 이럴 땐 확신에 찬 말을 해줘야겠다.
“사람들한테 보여주자. 네가 누군지.”
최정아는 날 빤히 보다가 피식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네.”
잠시 후, 전화를 받으러 나갔던 최정아의 매니저가 돌아왔다.
이제 리허설을 시작할 때라면서.
밖으로 나와 최정아는 무대 위로 올랐다. 나는 무대 멀찍이 떨어져 팔짱을 끼고 주변을 관찰했고.
바 테이블처럼 높은 의자에 앉은 최정아가 무대 위를 부산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기타 줄을 튕겼다.
길을 지나던 사람들은 뭔가 싶어 힐끔거리면서도 발걸음을 재촉한다.
슬쩍 시계를 봤다. 예정된 공연 시간까진···.
‘30분 정도 남았고.’
조명들이 하나둘 켜지며 어둑어둑해진 주변을 밝히기 시작한다.
최정아는 작게 목을 풀고선, 예열용으로 준비한 곡들을 한 소절씩 불렀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포크 기반의 팝송과 국내 곡. 그 사이, 사람들이 꽤 많이 몰려들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최정아의 얼굴을 살폈다. 아주 평온하네. 문제없겠어.
다시 한번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곧 8시다.
#
“홍대는 저런 게 문제야.”
옷을 고르던 남자가 소란스러운 소리에 밖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남자 몸에 여러 옷을 이리저리 대 보던 여자가 따라서 밖을 보더니 물었다.
“버스킹?”
“어. 솔직히 우리 귀도 생각해줘야 하는 거 아냐? 겁나 잘 부르면 몰라.”
“왜? 엄청 잘 부를 수도 있잖아. 특히 저 무대는 좀 제대로 만들어 놓은 거 같은데?”
“뭐 행사 같은 거 하나 본데, 누구 오는지도 안 쓰여 있으면 뻔하지. 취미로 노래하는 애들 몇 팀 와서 유명한 곡 부르고 가는 거.”
“그런가···?”
그때 안쪽에서 사이즈에 맞는 옷을 가져 나온 옷집 주인도 거들었다.
“아이고, 말도 마요. 저런 거 한다고 허구한 날 시끄럽게 해대서 귀가 아파. 귀가. 그래도 옛날엔 홍대 음악가들이 좀 노래 다운 노랠 했었는데. 지금은 소리가 크면 좋은 줄 알고 볼륨만 높여대서.”
여자는 투덜대는 둘이 참 닮았단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남자가 옷을 피팅해 보는 동안 밖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조명들이 예쁘게 설치되어 있어 보기에는 좋았다.
잠시 후. 무대에 오른 여가수가 리허설인지 짧게 짧게 노랠 불렀다. 순간 깜짝 놀랐다.
‘어? 노래 엄청 잘하는 거 같은데?’
갑자기 기대가 확 됐다. 짧은 순간에 ‘이건 들어야 해!’라는 생각이 들어 몇 걸음 더 밖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짧은 인사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팝송인지 영어였다. 굉장히 익숙한. 하지만 그래서 더 돋보이는.
‘이 곡이 이렇게 좋은 노래였나···.’
빨려든다.
맑지만 어딘가 음울한, 두 가지 매력이 동시에 풍기는 목소리에 마른 침을 삼켰다. 그렇게 첫 곡이 끝났을 땐 작게나마 손뼉을 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엄청 몰렸네.’
모두 같은 마음인 양 멈춰 서서 무대를 바라본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몇 배는 돼 보였다.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다음 곡을 기다렸다. 그녀의 바람대로 별 멘트 없이 두 번째 곡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것도 들어본 적은 있어.’
언제였더라? 예전에 부모님이랑 여행 갈 때였던 것 같은데. 차에서 카세트 테이프로 들었던 노래 중 하나인 것 같아.
어쩐지 코끝이 찡해질 때쯤. 노래가 끝났다.
이번엔 더 커진 박수 소리. 그만큼 사람들도 많아졌다. 누가 보면 유명 연예인이 게릴라 데이트를 하는 줄 알 정도로.
빨리 세 번째 곡이 듣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무대 위의 여가수가 노래 대신 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순간, 무대 위쪽에 걸려 있던 스크린에 여가수의 얼굴이 비친다.
‘와···예쁘다.’
여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감탄사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이번에 부를 곡은 오늘 자정에 발매될 제 데뷔곡입니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간다.
-제가 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해준 곡이자, 최고의 작곡가님이 만들어주신 노래입니다.
‘뭐가 저렇게 거창해?’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앞선 두 곡이 너무 좋았기에 여자는 기대감을 가지고 차분히 기다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불러보는 건 처음인데, 열심히 한 번 불러보겠습니다.
다소 뜬금없었던 멘트 때문인지 미적지근한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주변이 조용해진다. 그리고 홍대 밤거리에 기타 선율이 울려 퍼지자.
“어?”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여자도 눈을 끔뻑였다.
‘이거···어디서 들어봤더라?’
“어! 이 노래!”
누군가가 외쳤다.
“이거, 그거잖아!? 소일라!”
그 외침이 무슨 도미노처럼 사람들을 움직였다.
“어? 어! 진짜 그러네. 뭐야 이게 데뷔곡이면, 설마···?”
“헐, 진짜?!”
“뭐야, 못생겼을 거라 하던 사람 다 어디 갔어. 완전 존예잖아!”
“소름이다 진짜. 야, 얼른 찍어. 이건 찍어야 돼!”
어쩐지 선선하던 날씨가 춥게 느껴졌다. 소름이 돋아서.
여자는 팔뚝을 쓸며 화면에 떠오른 여가수를 보았다.
‘저 여자가···그 영상의 주인공?’
놀람도 잠시.
곡은 서서히 클라이막스로 향하고 있었고. 그 몰입도가 사람들의 멱살을 잡고 충격에서 끌어냈다.
웅성거림은 완벽하게 멎었다.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음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모두가 숨을 멈추고 집중하고 있었다.
여자는 생각했다.
소일라에 올라온 영상을 봤을 때만 해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라이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노래가 끝났다. 마가 잠시 떴다. 그리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홍대 거리가 진동할 정도로.
여자는 울컥하며 고갤 돌렸다.
“······.”
벙찐 표정의 옷집 사장님과 옷을 잔뜩 품에 안은 채로 울먹이는 남자가 보였다.
*
그날 밤. 최정아의 기사가 도배 되는 가운데, 그녀의 싱글이 공개되었다.
13위.
불과 한 시간 만에 그녀의 이름이 그곳에 올랐다.
#
“어, 최작.”
비스트로다. 날 부르고 있고.
“최고의 작곡가. 최작.”
설명 하지마···.
괜히 머릴 긁적이며 같이 로비를 걸었다.
“반응 엄청 좋던데?”
맞다. 차트 13위인 걸 확인하고 잤는데 일어나보니 9위다. TOP10에 훅 진입해버린 거다. 리뷰란엔 죄다 'ㅜㅜ' 뿐이었고.
“역시 곡 잘 뽑았어, 최작.”
“그 최작은 좀 빼주세요.”
“왜? 최작 좋은데. 최작. 입에 착착 달라붙어.”
쩝. 고갤 내저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근데 비스트로의 보폭이 어찌나 넓은지 금세 따라잡혔다. 다리 길이의 문제겠지. 갑자기 우울하네.
“어?”
날 앞지를 기세로 걷던 비스트로가 갑자기 멈춰섰다. 나도 따라서 멈췄다. 뭔가 싶어서.
또각. 또각.
구두 소리다. 왜인지 섬뜩한.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자가 대차게 걸어오고 있다. 대리석 바닥을 찍듯이.
“하서윤?”
내가 놀라서 말했고, 그게 들렸는지 여자의 시선이 날 향했다. 불타오르는 듯한 눈길이 날 훑고, 옆에 있는 비스트로에게 옮겨지더니 고개를 까딱한다.
“어, 어.”
비스트로는 어색하게 손을 휘적거렸다.
다시 전투적인 구두 소리가 울리며, 하서윤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마침 문이 열리고···.
“다음 거 타자.”
“넵.”
나도 모르게 끄덕였다. 하서윤에게서 나오는 아우라가 왠지 흉흉해서.
하서윤이 탄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걸 확인한 비스트로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왜 저렇게 꼬라지가 나 있지? 무섭게.”
그러면서 짧게 자란 수염을 만지작대며 덧붙였다.
“미국에서 앨범 작업 한다고 들었었는데 말이지.”
“아 그랬어요?”
“엉···근데 돌아온 걸 보니, 곧 컴백하나 본데?”
비스트로의 말을 들으며 하서윤을 떠올렸다.
지금도 TKM의 간판이지만, 앞으로가 더 대단해지는 아티스트.
내는 앨범마다 차트에 줄을 세우고, 그게 중국에서까지 터지며, 한류스타에 걸어 다니는 1인 기획사란 소리까지 듣게 되는.
물론, 그것도···
‘앞으로 5년까지지만.’
< 027. 차트전쟁 (1)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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