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25화 (25/221)

< 025. 플로라 (3) >

“너······.”

길성혁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다. 구겨진 눈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길성혁의 맞은편 소파로 가, 풀썩 앉았다.

“뭐야, 너. 니가 감히 여길 와?”

“······.”

“이 새끼가 꿀을 먹었나. 야, 내 말 안 들려?”

길성혁을 보면서 생각했다.

최정아의 꿈을 아무렇지 않게 밀어냈던 놈이다. 남의 꿈을 이용할 생각은 왜 안 했겠나.

“저 이번에 플로라 데뷔곡 작업합니다.”

“갑자기 쳐 와서 뭐라는···플로라?”

길성혁의 표정이 묘해졌다. 천천히 담뱃불을 붙인다.

“데뷔도 보류된 애들을 니가 뭔 곡을 줘?”

지가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런가. 확실히 플로라 얘길 꺼내니 대화가 된다. 아니었음 이 새끼, 저 새끼 하면서 성질만 냈을 텐데.

“플로라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뭐?”

“데뷔가 보류된 것도 아시고.”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내가 걔들 월말평가 심사했어. 모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럼 그중 한 멤버가 그만두겠다고 해서 보류된 것도 아시겠네요?”

길성혁의 순식간에 굳는다. 그 변화가 너무 극적이라 무슨 연기를 보는 것 같았다.

“······.”

그의 입이 뻐끔거릴 때, 먼저 입을 열어 싹둑 잘라 버렸다.

“아. 모르실 리가 없나? 그만두라고 한 게 본인이시니까.”

“······!”

입을 열고서 그대로 얼어버린 길성혁. 그리 길지 않은 정적 속에 길성혁이 말꼬리를 올렸다.

“내가?”

굳어있던 표정을 은근히 풀면서.

‘음···.’이란 소리까지 내면서 고민하는 척을 한다.

“내가 그랬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월말평가 때 실력이 너무 지지부진하다거나. 뭐, 그런 거.”

“······.”

그럼 그렇지. 새삼 놀랍지도 않다.

“참···어린년들은 이래서 문제야. 지 생각해서 따끔하게 얘기하면 질질 짜기나 하고, 가서 이르기나 하고.”

혼잣말인 양 중얼거린다. 이젠 은은한 미소까지 짓고선.

“정말 그런 이유로 그만두라고 했다고요?”

“참내, 진짜 그만두라고 그랬겠냐. 나도 사람인지라 그렇게 열심히 안 할 거면 그만두라고 한 거지. 새끼야.”

사람 다 죽었나.

나도 더 참지 않고 물었다.

“이소미란 아이 때문이 아니라요?”

길성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새끼가 어디서 낚시질이야. 이소미? 난 그런 애가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증거를 보면 기억이 나겠습니까?”

“증···거?”

“유하와 소미가 주고받은 메시지가 있더라고요. 거기서 피디님 이름도 있습니다.”

자, 이제 어떤 반응을 보일까.

“흐흐···.”

웃네. 그것도 더럽게 밝게.

“흐하핫. 이 미친 새끼가 난 또 뭐라고. 괜히 쫄았잖아. 야, 그게 증거라고? 난 또 허벅다리 주무르는 사진이라도 찍힌 줄 알았네.”

“······.”

“고작 그딴 거 가지고 나 협박할 생각 하지 마. 먹혀줄 생각 전혀 없으니까.”

연신 연기를 뿜어내며 덧붙인다.

“내가 걔를 건드렸단 거 알려지면, 나는 걔들이 평가 때문에 앙심을 품고 저러는 거라고 발뺌하면 그만이야.”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보기 좋게 일그러트리고 싶을 정도로.

“메시지 가지곤 협박할 생각 없습니다. 애초에 있지도 않은 걸로 뭘···.”

“······뭐?”

벙찐 표정을 감상하며,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협박은 이걸로 하려고요.”

자잘한 파형이 지금 이 순간에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잘 녹음 되고 있구만.

“이···이 미친 새끼가!”

“핸드폰 뺏으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클라우드로 자동 업로드 되게 되어있어서요.”

녹음을 종료하고.

원하는 대로 한껏 일그러진 길성혁의 표정을 보며 연락처를 뒤적거린다.

“아, 그리고 제가 최근에 친해진 기자가 한 명 있습니다. 그분이 뭐랄까······기사 욕심이 커서 이런 거 아주 좋아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길성혁이 지었던 그 어떤 표정보다도 더 비릿하게 웃으려 노력했다. 내 진심이 통했는지 길성혁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꽉 쥔 두 손은 심하게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니 선택하세요. 조용히 회사에서 나가시든지.”

방아쇠를 넘겨주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니면, 떠들썩하게 매스컴 좀 타보시던지.”

그리고 다시 볼 일 없을 길성혁의 작업실을 훑으며 밖으로 나왔다.

우당탕!

집기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

“으어어. 뒷골 땅겨. 뭐 그딴 새끼가 다 있냐. 연예계 더럽다, 더럽다 하지만 그런 놈이 실제로 있을 줄이야···.”

학준이 형이 술잔을 틀어쥐고 이를 간다.

나는 채워진 잔을 단번에 비웠다.

원래 맥주파인데, 오늘만큼은 소주파다.

안 그래도 입이 써서, 소주가 그리 쓰게 느껴지지가 않아.

“어린 애들이야. 나이보다 더.”

보통 연습생은 원래 나이보다 어리다고 본다. 학교도 자주 빠져가며 하루 종일 연습실에만 있으니까. 우물처럼 자신의 세상이 딱 그 정도로 맞춰져 있다.

그렇기에 그 속에서 강한 사람의 말이 곧 법인 것처럼 느낀다. 이소미도, 한유하도 그랬을 거다. 길성혁은 그걸 이용했고.

“···화가 나.”

“에효. 말로 듣는 나도 빡치는데, 너는 오죽하겠냐.”

“음악은 너무 좋은데, 이 바닥은 점점 싫어지려고 하네. 푸흐, 이제 한 곡 작업해 놓고 좀 웃기긴 하지만.”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겪고, 보았던 일들까지 모두 뒤얽혀, 술기운에 올라온다. 너무 역하다.

학준이 형은 그런 날 가만히 보았다. 착잡한 눈으로. 그러더니 뜬금없는 얘길 꺼냈다.

“너 학교 다닐 때 기억나냐? 내가 비슷한 얘기 한 적 있는데.”

“어?”

“연예계 이렇다, 저렇다. 술자리에서 내가 한참을 떠들었더니, 그때 네가 뭐라 했는지 기억나냐?”

“아니, 전혀···뭐라고 했는데?”

안주로 나온 꼬치를 입에 물고 학준이 형을 봤다. 학준이 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럼 네가 만들겠다고 했어.”

“뭘?”

“기획사를. 접대니, 스폰이니 그런 거 없는 회사 만들어 놓고, 너는 계속 작곡만 할 거라 그랬어. 소속 가수들이 네 곡으로 날개를 다는 걸 보고 싶다고 막 그랬었는데, 갑자기 그게 생각나네.”

“···내가? 많이 취했었나 보네.”

“그치. 많이 취했었지. 근데 그땐 나도 좀 취해 있었는지, 속으로 이 새끼 멋있는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흐흐.”

“······.”

소리 없이 웃었다.

술자리에선 흔한, 이루지도 못할 거창한 꿈 얘기.

내가 만든 기획사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곡을 만들어준다, 라.

상상만 해도 좋긴 하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며 서로의 잔을 채운다. 학준이 형에게서 흘러나오는 여전한 멜로디도 은은하게 귓가를 채웠다.

#

햇살이 눈꺼풀을 쿡쿡 찌르길래 찡그리다, 벌떡 일어났다.

준비를 마치자마자 회사로 향했다. 이제는 겉옷도 필요 없겠다 싶어, 두툼한 후드 하나 뒤집어쓰고.

서울을 가로질러 내려가는 버스에 올라타 구석 자리에 몸을 집어넣었다. 사람들의 옷도 눈에 띄게 얇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A&R팀 직원들을 살폈다. 별다를 거 없는 얼굴들이다.

‘하긴, 아직 10시도 안 됐는데.’

돌아서서 작업실로 가려고 할 때였다. 사무실에서 나온 정 대리가 날 보더니 회의할 내용이 있다며 미팅룸에서 보자는 얘길 했다.

작업실에 텅 비어 왜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는 가방을 내려놓고 커피까지 내려서 미팅룸으로 향했다.

펜대를 굴리던 정 대리가 말했다.

“그래서 일단 싱글 작업을 먼저 해줘야 할 것 같아.”

다음 프로젝트. 최정아에 대한 얘기였다.

이제 막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최정아의 데뷔가 이렇게 빨리 정해진 건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이 적기죠.”

내가 끄덕였다.

소일라 영상 조회수가 어느덧 150만을 넘겼다. 댓글은 5만 개가 넘었고, 그중 대부분이 음원으로 내달라는 얘기들이었다.

회사 입장에선 놓칠 수 없는 적기.

“곡은 그대로 가는 거니까, 여러모로 컨셉 잡기도 쉽고···일단 기한은 2주로 잡았어.”

“빠듯하네요.”

“그치. 영상팀은 아주 배째라더라. 근데 방법이 없으니 잘 달래 봐야지.”

“하루가 지날수록 효과는 뚝뚝 떨어질 테니까요.”

“그니까.”

끄덕거리던 정 대리가 펜을 탁 내려놓는다. 눈앞의 서류를 한데 모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 참! 그리고.”

탁탁 서류를 책상에 치며.

“아까 팀장님이 오시더니 길 피디님 사표 냈다고 하시더라.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지···.”

신기하다는 듯 말한다. 물론 그 속에 아쉬움 따위는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선택을 했구나.’

끝까지 이글이글 타오르던 눈빛이 무색하게, 허무하고 빠른 결정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훨씬 겁쟁이였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협박이 먹혀들어 가서. 이걸로 한유하와 했던 약속은 지킨 셈이다.

물론 나는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짓을 했는데, 고작 사표로 끝내줄 순 없지.’

죗값은 치워야 하지 않겠나.

정 대리와 길성혁 소식에 대해 좀 더 얘길 나누고 미팅룸을 나왔다. 아직은 조용한 라운지를 지나 내 작업실로 향했다.

5층이 시끌시끌해진 건, 오후가 되어서였다.

점심시간이 지나며 소문이 날 대로 다 난 거다.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라운지에 삼삼오오 모인 직원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전부 길성혁이 갑자기 왜 관뒀을까, 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TKM에서 가장 오래 일한 프로듀서 중 한 명이었기에 나오는 얘기도 각양각색이었다.

‘좀 들어볼까?’

창밖을 보는 척하며 슬쩍슬쩍 들었다.

길성혁이 서재원 팀장과 싸웠다는 추측부터. 은근히 돌고 있는 최정아 오디션 얘기도 나왔다. 쪽팔려서 그만뒀다는 거다.

사실은 아닌, 하지만 충분히 그럴 법한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 쪼갰다.

그때 핸드폰이 지이잉 울린다. 발신자는 지영환 매니저. 라운지를 빠져나오며 귀에 가져다 댔다.

받자마자, 들뜨다 못해 훨훨 날아갈 것 같은 목소리가 쏟아졌다.

-피디님, 유하가 하겠답니다! 마음을 바꿔먹었어요!

“그래요?”

-네, 아주 장 피디님 노래 부르고 싶었다고, 근데 못 부를 줄 알았다고 엉엉 울면서······하하 유하야, 그렇게 노려볼 거까지야.

아무래도 같이 있나 보네.

-알겠어, 알겠어. 얘기 안 해.

‘이미 다 했잖아요!’라는 외침이 어렴풋이 들려오고.

-그, 그랬나? 미안 내가 너무 기뻐서 그만···아, 바꿔 달라고? 피디님, 유하가 통화하고 싶다는데 괜찮으실까요?

“네, 바꿔주세요.”

이윽고 핸드폰 너머의 공기가 변했다. 지영환과는 숨소리부터가 다른 느낌이랄까.

‘야 어디가, 피디님이랑 무슨 얘길 하려고.’ 라는 말소리가 멀어진다.

철컥, 하는 문이 닫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주변이 조용해졌다.

-피디님. 얘기 들었어요.

눈치껏 알아듣고 답했다.

“약속은 지켰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정말로···.

어, 어. 또 우나?

난생처음···아니, 두 번째로 겪는 상황에 머리가 빙빙 돌고 있는데, 다행히도 한유하는 금세 진정이 되었다.

“이건 제 감사고······소미도 전해달라고 했어요, 정말 감사하다고.”

“소미랑 연락 계속하고 있었어?”

“네. 아까 통화했는데, 소미 목소리가 확 밝아지더라구요. 그래서···.”

또다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덜 당황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지도 않는다. 오히려 차분해진다.

“···유하야. 소미한테 내 말 좀 전해줄래?”

다시 전화를 바꾼 지영환에게 A&R팀과 얘기해보겠단 얘길 전했다. 통화를 마치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갑자기 뭐랄까···.

새삼 작업실이 새롭게 느껴진다.

화면엔 늘 그랬듯, DAW가 틀어져 있고.

트랙들도 끝도 없이 쌓여있고,

트랙 색상은···정리 좀 해놔야겠다.

문득 어제 술자리에서의 기억이 스친다. 곰곰이 곱씹다가 이내 고개를 털어냈다. 말도 안 되는 일로 치부하려는 건 아니고. 우선은 해야 할 게 있으니까.

최정아, 플로라.

나는 그들의 멜로디를 들었고.

끝내 그들이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지금 당장은.

< 025. 플로라 (3)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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