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2. 왜 안 들리지? >
같은 시각, 캐스팅팀 팀장실.
서재원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길성혁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할 말이 아주 많은 표정으로.
“마침 잘 왔네.”
그런 길성혁을 박 팀장이 황당한 얼굴로 보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사이, 서재원 팀장은 가볍게 목인사를 하며 빈 소파 자리에 앉았다.
길성혁은 팔짱을 끼고선 따지듯 물었다.
“장기로, 그 새끼 어떡할 거야? 저렇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데. 아니 지가 왜 캐스팅팀이 할 일을 해? 그것도 캐스팅팀이 못해서 빌빌거리고 있는······크, 크흠.”
박 팀장의 눈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실수했단 걸 깨달은 길성혁이 팀장실을 훑으며 딴청을 피운다.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차던 박 팀장이 서재원 팀장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왔어?”
쌀쌀맞은 말투였지만 서재원 팀장은 입가에 옅게 깔린 미소를 잃지 않았다.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게 있어서요.”
서재원 팀장의 말에 박 팀장이 눈썹을 찡그린다.
“뭘?”
서재원 팀장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천천히 입을 뗀다.
“장기로에게 이번 일로 문제 삼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뭐? 지금 뭐라는 거야? 갈아 마셔도 모자랄 판에, 문제 삼는 일은 없으면 해!?”
옆에서 길성혁이 펄쩍 뛰었고, 박 팀장도 불편한 기색을 그대로 내비치며 물었다.
“왜 그래야 하지?”
서재원 팀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별일 아닌 듯이 말한다.
“본부장님이 이번 일에 관심을 두고 있으니까요. 박 팀장님은 아실 텐데요?”
본부장이란 단어가 나오자 박 팀장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본부장에게 최정아의 존재를 알린 게 그였다. 그러니 모를 수가 없지.
그날 본부장은 영상을 보며 묘한 미소를 띄웠었다. 그리고 반드시 영입하란 말도 덧붙였지.
“끙······.”
서재원이 빙긋이 웃는다.
“본부장님이 영입하라 한 아티스트가 알고보니 캐스팅 팀이 놓쳤던 원석이고, 그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어 온 피디가 있다고 하면 그림은 참 재밌겠네요.”
물론, 전속 작곡가가 밖에서 다른 사람에게 곡을 준 건 분명히 문제가 될 일이다.
그러나 금전적인 거래가 없었고, 결국 이렇게 TKM 품으로 들어왔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니, 문제를 삼기엔 SNS 통해 퍼진 엄청난 홍보 효과가 회사에겐 너무나 달콤했다. 무엇이 이득인지 분명하니까.
서재원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반면 박 팀장은 이를 갈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똑바로 말해.”
“아까 말했습니다만. 장기로 안 건드시는 게 좋겠다고.”
서재원 팀장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본부장님 성격 잘 아시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일이 커지면, 박 팀장님도, 길 피디도 그리 좋을 게 없지 않겠습니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시죠.”
“······.”
“······.”
쥐죽은 듯 조용한 팀장실 안.
박 팀장은 축 처진 볼살을 더욱 늘어트리며 침음성을 삼켰고, 길성혁은 갑자기 뭔 생각이 그리 많아졌는지 심각한 얼굴로 다리를 떤다.
서재원 팀장은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보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인 장기로를 떠올리며 입꼬릴 올렸다.
이현때도 그랬지만···참 신기한 녀석이다.
수년을 가르친 선생도, 어느 연습생이 성공할지 반신반의하는데. 녀석은 최정아의 성공을 확신하는 듯 일을 벌였다.
‘그리고 이렇게 성공시켜 데려왔지.’
이게 만약 운이 아니라면.
진짜 실력이고, 안목이라면.
키워봐야겠네.
‘제대로.’
#
플로라와 작별하고, 곧장 A&R팀 사무실로 직행했다. 날 보자마자 정 대리가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너 이씨!”
항상 기로씨, 기로씨 하던 정 대리의 입에서 너가 나왔다. 편하게 부르라고 그렇게 얘기할 땐 안 고쳐지더니 사고 치니까 바로 나오네.
“도대체 뭔데? 어떻게 된 건데?”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적당히 대답하고 나서야, 나도 내가 묻고 싶었던 걸 꺼낼 수 있었다.
“혹시 플로라라고 아세요?”
“플로라? 알지. 이번에 우리 쪽에 리스트업 됐었으니까.”
A&R팀에 리스트업 되었단 건, 음원 작업이 임박했단 뜻 얘기였다.
나는 살짝 걱정하며 물었다.
“그거 담당 정해졌어요?”
“아니?”
예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건 내가 해야만 한다. 꼭 해야 해, 라며 의욕을 태우는데, 정 대리가 찬물을 끼얹었다.
“플로라, 걔네. 지금 홀딩 된 상태야.”
홀딩? 계속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정 대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거기 메인보컬인 멤버가 그만두겠다고 했다나 봐.”
“전담 매니저도 있고, 그룹명까지 다 받아놓고요?”
그룹명을 받았다는 건 데뷔가 임박했다는 뜻이다. 수년을 바쳐 노력한 연습생이 그런 기회 앞에서 갑자기 포기한다고?
지영환 매니저의 어두운 얼굴이 이거 때문이었나?
“간혹 그런 애들 있어. 막상 데뷔할 때 되니 겁나서 못 하겠다고 하는.”
정 대리의 설명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했지만, 그럼에도 의문이었다.
머릿속으로 쭉 떠올려봤는데, 딱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 멤버는······한 명 있긴 했다. 멜로디가 들리는 유하라는 아이. 2층에서 만났을 때도, 나머지 멤버들이 걜 찾고 있었지.
뭔가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멤버들끼리 불화인 것 같진 않았는데 말이지.
“아예, 이쪽 일을 그만두겠다는 거래요?”
“나도 거기까진 모르겠네? 뭐, 아무튼 매니지먼트팀도 그 문제로 골치가 아픈가 보더라고. 지금은 어떻게 얘기가 되고 있는진 몰라도 일단은 홀딩 상태야.”
정말 얘네, 데뷔 자체를 못 했었던 건가?
“왜? 아이돌이랑 작업 해보고 싶어? 그런 거면 포텐업은 어때? 거긴 지금 정규다 보니 곡 한두 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일단 다 받겠다는 분위기던데.”
“일단···일단 좀 더 생각해볼게요.”
터덜터덜.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고민했다.
내려갈까, 말까.
“어쩔까···.”
길어지는 고민 끝에.
이렇게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시간이면 충분히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 지영환 매니저를 만나고도 남았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얼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모르겠다.’
일단 얘기나 해보자. 데뷔가 무산되는 게 확실한 것도 아니거니와, 유하라는 애가 솔로로 활동하게 될지도 모르니.
2층 라운지에 앉은 지 1분이 채 되기도 전에 매니지먼트팀 문이 열린다.
“장 피디님!”
세상 근심, 걱정을 저 홀로 안고 있는 듯한 얼굴이 나타났다. 지영환이었다. 나날이 안색이 안 좋아지는데?
그래도 웃는 낯으로 인사하며 내 앞에 앉는다. 그러더니 자신의 품을 뒤져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
“다음부턴 전화로 말씀하시면 제가 5층으로 올라가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하하, 괜찮습니다.”
웃으며 나도 내 명함을 주었다. 짧은 명함 교환식이 끝나고, 얼굴에 ‘근데 왜 오셨어요?’라는 질문이 쓰여있는 지영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플로라요.”
“네, 네.”
“이번에 데뷔곡을 제가 한 번 맡아 보고 싶어서요.”
“네? 아······.”
놀라 올라갔던 목소리가 이내 흐릿해진다. 이유는 이미 정 대리에게 듣고 왔지.
“저희가 사실···지금 데뷔가 보류되어서요.”
“유하라는 친구 때문인가요?”
“어? 그걸 어떻게···.”
놀라는 지영환에게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시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지영환이 잠깐 망설였다. 어딘가 회의적인 표정이 되어선. 이윽고 그가 입을 뗐다.
“그걸 제가 모르니 참 답답합니다.”
“이유를 몰라요?”
“네. 입을 꾹 닫고 말을 안 하니···원래 바로 그만둔다는 거 겨우 일주일 붙잡아 두긴 했는데, 사실 마음은 진작에 굳힌 것 같더라고요. 데뷔를 엄청 하고 싶어 했던 앤데, 왜 갑자기 그러는지도 모르고···.”
“아···.”
지영환의 표정에 먹구름이 드리워진다. 가장 곁에서 지켜본 매니저가 이런 반응이란 건 솔직히 결과가 정해져 있단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군요.”
나도 마음을 살짝 내려놓으며 끄덕이는데 지영환이 불쑥 물어왔다.
“애들 지금 안무실에 있을 것 같은데, 같이 한번 가보실래요?”
지영환을 따라 플로라가 연습한다는 안무실에 도착했다. 마룻바닥 위에 유하라는 애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지영환이 두리번거리며 묻는다.
“유하야. 다른 애들은 어디 갔어?”
“소영이가 떡볶이 먹고 싶다고 해서 다들 먹으러 갔어요.”
“이 녀석들이···근데 넌 왜 안 가고?”
“그냥요···.”
“너도 가서 같이 먹지 그랬어.”
“괜찮아요.”
연신 시무룩해 보이는 유하란 아이와 살갑게 어르고 달래보려는 지영환 사이에서 나는 뻘쭘하게 서 있었다. 그러다.
뭐야.
이상한 점을 느끼곤 그대로 굳었다.
뭐지? 왜···?
이해할 수 없었다. 지구는 둥글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사실은 네모였어. 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어버린 기분이랄까.
그만큼 놀라서 유하란 아일 빤히 쳐다보았다. 내 시선을 느낀 유하도 날 돌아본다.
“어, 이 분은···.”
“알아요. 장 피디님.”
“어? 알고 있었어?”
“아까 회사 앞에서 뵀었어요.”
묘하다. 묘해···. 정말 미세하게 서늘한 목소리란 말이지. 그것도 지영환 말고 나한테만.
근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뭐냐고. 분명히 아까 전엔 들렸었는데······
‘안 들린다.’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봐도, 유하란 아일 빤히 봐봐도. 지금은 전혀 안 들린다.
< 022. 왜 안 들리지?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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