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21화 (21/221)

< 021. 닭 쫓던 개 (3) >

최정아에게 시선을 두고서 석상처럼 굳어버린 박 팀장.

당혹감 섞인 눈초리로 날 노려보는 길성혁.

저 둘이 뭐 좋은 비주얼이라고 이렇게 흐뭇하게 보게 되냐.

“영상···?”

길성혁이 굳어진 표정으로 묻는다.

“아직 못 보셨어요? 소일라라고, SNS 페이지 중 하나인데······.”

조곤조곤 설명하려 하자, 길성혁의 눈살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그러니까···.”

말을 자르며.

가늘어진 시선이 최정아를 향한다.

“쟤가 걔라는 거 아냐? 지금.”

길성혁은 한참 동안 최정아를 노려보다 볼이 움푹 파일 정도로 이를 악물더니 천천히 한숨을 흘렸다.

“후우···니가 데려왔냐?”

“네.”

“쟤가 영상 속 그 여자인 걸 알면서도 데려왔다?”

그 영상을 내가 찍었어, 이 양반아. 내 핸드폰으로.

그걸 알 리 없는 길성혁은 나를 노려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TKM이 오디션에서 떨어뜨린 참가자가 SNS에서 반짝 스타가 됐다고 다시 영입? TKM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근데 듣다 보니 말 이상하게 하시네.

어딜 은근슬쩍 회사의 결정인 것처럼 묻어가려 하나.

“말은 바로 해야죠.”

입꼬릴 살짝 올렸다.

“TKM이 아니라, 길 피디님이 떨어뜨리신 건데.”

“뭐?!”

길성혁의 얼굴이 단박에 일그러진다.

“이 새끼가···이거, 이제 보니 날 엿 맥이려고······.”

“팀장님.”

순간. 뭔가가 울컥하고 올라왔고.

나도 길성혁처럼, 구태여 숨기지 않고 내뱉었다. 떠오르는 그대로.

“전 누구 엿 먹이려고 남의 꿈으로 장난 안 칩니다.”

“···!”

쩍쩍 갈라지는 길성혁의 표정을 보니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사람의 표정이 소화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방금 알았네.

당황한 표정에 대고 한 발자국 더 나가본다.

“혹시 떨어뜨린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고민을 해봤죠.”

안 했지만.

“내 안목이 잘못된 걸 수도 있단 생각도 해봤고요.”

역시 안 했지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워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믿어보기로 했죠. 제 안목을. 그리고······”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화산 같다.

“제가 맞았네요.”

“이 건방진 새끼가···!”

난 지금 저게 칭찬으로 들려. 길성혁에게 건방지게 군다는 건 그만큼 사람 됨됨이가 된 거 아닐까?

활화산마냥 곧 터질 듯한 길성혁에게 박 팀장이 나지막하게 주의를 줬다.

“여기 회사 복도야. 조용히 좀 해.”

“지금 조용히 하게 생겼······.”

홱 돌아보는 길성혁. 그러나 박 팀장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쌔 함을 느낀 길성혁이 주변을 둘러본다.

라운지 쪽에 서너 명.

복도 끝에 또 서너 명.

문을 열고 나온 직원들까지.

시선이 모여들고 있다는 걸 이제야 확인한 길성혁이 볼이 불룩 솟을 정도로 이를 악물며 부들댔다.

반면 박 팀장은 이 상황이 부담스러운 듯, 주변을 훑으며 길성혁을 잡아끌었다.

“내려가, 내려가.”

“저 새끼 냅두고 이렇게 그냥요?!”

“그럼, 뭐? 쟤랑 여기서 끝까지 가보기라도 하려고? 다 보는 앞에서?”

미간을 잔뜩 구긴 박 팀장의 말에 길성혁이 입을 뻐끔거리다 마지못해 몸을 돌린다.

뒤이어 박 팀장도 몹시 탐탁지 않은 눈으로 날 노려보더니 이내 길성혁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둘이 사라진 방향을 흐뭇하게 보다가.

“아.”

정신을 차리고 최정아를 확인했다.

나야 탄산으로 샤워를 한 것 같은 기분이지만 최정아에겐 살얼음판이나 마찬가지였을 텐데, 괜찮으려나?

그런데, 돌아보니 도리어 최정아가 날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고 있다.

“괜찮으세요? 저분들, 피디님한테 많이 화난 거 같은데···.”

내심 최정아의 이런 변화가 반갑다. 너무 자신감이 없어서 이 바닥과 어울리지 않은 게 사실이었는데. 이 상황에 날 걱정하는 거 보니, 이젠 한시름 놓아도 될지도···?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진심이었다. 왜냐면 저 사람들,

“당분간은 그럴 정신 없을 거거든.”

#

캐스팅팀 팀장실.

소파에 몸을 파묻은 박 팀장이 고개만 살짝 든 채로 길성혁을 흘겼다.

“뭐? 올드 해? 사이즈가 안 나와? 내가 떨어뜨리라고 결정한 애를 내가 참 열심히도 찾고 있었다. 그치?”

박 팀장 입에서 한 마디씩 나올수록 길성혁의 얼굴은 썩어들어갔다. 꿀 먹은 벙어리인 양 입을 꾹 닫고서.

“젠장. 완전히 닭 쫓던 개 꼴이네.”

자조 섞인 말투로 말하다 답답했는지 단추를 하나 더 풀고, 목을 젖혀 소파에 기댄다. 그러다 또 벌떡 일어나 길성혁에게 물었다.

“너 솔직히 말해. 장기로 쟤 맥이려고 나한테 와서 약 친 거지?”

“치긴 뭘 칩니까. 그리고 너무 걱정 마시라니까. 어차피 잠깐이에요. SNS 스타 어쩌구 하던 애들, 전부 이 바닥 오면 고꾸라집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돼요.”

“그러다 대박 나면?”

“그럴 일 없다니까요?”

길성혁의 자신감에 박 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최정아의 노래를 떠올리며.

“그럴 일 없긴. 영상만 봐도 이건 되겠다 싶던데. 심지어 넌 오디션장에서 봤잖아? 정말 걔가 별로였으면 너 내가 봤을 땐, 나이 먹어서 감 떨어진 거야.”

“그건 그 새끼가 아니꼬워서···!”

길성혁이 멈칫하자, 박 팀장이 혀를 찼다.

“이봐, 이봐. 널 믿은 내가 등신이지.”

“그게 아니라···.”

“간다며. 안 가냐? 머리 아프니까 눈앞에 있지 마.”

표정을 일그러트린 길성혁이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둘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박 팀장님. 서재원입니다.”

#

“더 구경할래?”

연예인 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회사 정수기까지도 신기한 눈으로 보는 최정아에게 넌지시 물었다.

계약팀에서 준 사탕을 입에 물고 오물거리던 최정아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고개를 젓는다.

“괜찮아요. 이제 자주 올 텐데요 뭘.”

“자주? 데뷔 전까진 매일 오게 될걸?”

“더 좋죠?”

“힘들 건데.”

“그래도 좋은데요?”

최정아가 밝게 웃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 길로 건물을 빠져나와 큰 길가로 향했다. 안쪽 골목은 영 택시가 안 잡혀서.

작업이 늦게 끝날 때면 항상 택시를 잡던 곳에 멈춰 서서, 고개를 쭉 뺐다.

저기 횡단보도 너머에 회색 택시 한 대가 보이는 것 같네.

혹시나 지나칠까, 보도블록 끄트머리에 서는데, 최정아가 옆으로 붙으며 수줍게 말을 꺼냈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아니, 오늘만이 아니라 그냥 다 감사해요. 피디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푸흐.”

민망함에 웃음을 흘리며, 마침 신호를 받아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조심히 가고.”

“넵!”

최정아를 택시 태워 보내고. 다시 골목길로 들어왔다.

오늘 있었던 일을 곱씹으니 발걸음이 겅중겅중해진다. 이런 거 보면 나도 그리 착한 놈은 아니다. 뒤끝도 진하고.

걸음 때문인지 평소보다 빠르게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 꺄르르 하는 소리에 뒤쪽에서 들려왔다.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 여자애들이었다. 손에 커피를 한 잔씩 들고있는.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걔네네.

오디션 다음날,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던 그 걸그룹.

‘플로라라고 했었지.’

지영환 매니저가 담당이고.

“어! 피디님!”

그중 하나가 날 보더니 아는 체하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가위바위보에서 져, 내게 먼저 말을 걸었던, 그발랄한 여자애였다.

뒤이어 웃음소리가 크던 멤버도. 똥 머리 멤버도 인사를 해왔다.

그리고 그들을 뒤따라 오는, 전엔 본적 없던 멤버가 한 명 더 있었다.

내가 그쪽에 시선을 멈추자 발랄한 여자애가 얼른 입을 연다.

“아 유하는 그때 없었지. 유하야. 장 피디님이셔. 이번에 이현 선배님 곡 만드신 분! 봄이 올까요 알지? 노래 진짜 좋잖아!”

그러자 유하라는 여자애가 날 슬쩍 올려다보며 인사했다. 어쩐지 경계심 가득한 눈이었다. 왜지?

“아···안녕하세요.”

“···!”

"···?"

깜짝이야.

순간, 정신이 출타를 했다가 빠르게 돌아왔다.

일단 분위기 이상해지기 전에 얼른 입을 열자.

“안녕하세요.”

옆에 있던 발랄한 여자애가 손을 팔랑인다.

“에이, 피디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소영아. 피디님 불편하시게 그러지 좀 마.”

“내가 뭘······피디님이랑 친해지려는 건데. 나중에 같이 작업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치, 유하야?”

“어? 으, 응······.”

볼멘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나는 유하라는 여자애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에게서 들리는 멜로디였기에.

< 021. 닭 쫓던 개 (3) > 끝

ⓒ 나일함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