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20화 (20/221)

< 020. 닭 쫓던 개 (2) >

-미치겠습니다. 전화가 오전에만 수십 통이 왔다니까요!

소일라 페이지 관리자의 흥분한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울렸다.

그럴 만도 하지. 영상 하나로 페이지가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으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굳이 기획사 이름을 쭉 읊는다. 대한민국 기획사가 다 모인 거 같다. 뭐 끝도 없이 나와.

그 중엔 당연히 TKM 캐스팅팀도 있었다. 발 빠르게 움직였네. 비록 헛발질이지만.

-저 근데 후속 영상은 언제쯤 공개할 계획이신가요?

안 찍었는데?

“아. 글쎄요. 일단 지금 회사라, 회의 들어가 봐야 해서···다음에 연락드릴게요.”

-네? 아, 아니. 그럼 제가 언제쯤 연락드릴···.

“수고하세요.”

뚝.

전화를 끊고 기분 좋게 걸음을 옮겼다.

내가 만든 배가 목적지까지 순항 중인 기분이랄까.

이제 목적지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확인해야 했다.

확실히 해야지.

최정아가 왜 떨어졌는지.

패를 쥔 이의 발걸음이라 그런가. 너무 가볍잖아.

이리저리. 왔다 갔다. 굉장히 바빠 보이는 직원들 틈에서 유 대리를 찾았다. 다가가자, 경황없는 얼굴이 날 맞이했다.

“어,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무슨 일로···?”

나는 고갤 돌려 시선을 사무실 가장 안쪽, 팀장실에 두었다.

“팀장님 좀 뵙고 싶어서요.”

“지금 안에 길 피디님이 오셔서···일단 한 번 여쭤볼까요?”

작업실도 밖에 있는 양반이 회사에서 참 자주 보인다. 사실 그리 자주 본 건 아니지만 더 안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예 안 보면 더 좋고.

물론, 오늘은 잘 됐지 싶다.

“네. 부탁드려요.”

#

“후우···페이지 관리자도, 합주실 사장도 입을 꾹 닫고 있댄다.”

금반지가 번쩍이는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박 팀장은 풀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앞에 있는 상대를 봤다.

길성혁이 커피를 홀짝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지금 SNS 영상 속 여자 애 하나 찾으려고 이 난리예요?”

“여자애 하나? 너 영상 아직 안 봤지? 함 봐봐라. 얼굴만 반반하면 제2의 제인도 될 수 있을 것 같다니까? 느낌은 좀 다르지만.”

“아니 뭐 계집애 하나 못 데려온다고 회사 망하나?”

“끙.”

“아. 하나가 아니라 그런가? 팀장님이 요즘 계속 놓치시긴 했지.”

길성혁이 연거푸 낄낄댄다. 박 팀장이 가자미눈을 뜨고 비죽댔다.

“속 뒤집으려고 왔냐. 아니, 근데 넌 그걸 또 어떻게 알아?”

“이 바닥 소문에 발이 없잖아요. 어디가 어디한테 뭘 뺏겼다. 이런 소문은 기가 막히게 잘 돌지.”

“하, 젠장······벌써 어디 기획사 하나 붙어서 연락 막고 있는 거 아냐?”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을 떠올리며, 짜증이 잔뜩 묻은 채로 말꼬리를 올리는데 팀장실 문이 두드려졌다. 유 대리였다.

“왜?”

“저, 장기로 피디님이 뵈러 왔다고 해서요.”

박 팀장의 이맛살이 겹겹이 구겨졌다. 얼굴은 본 적 없지만 아는 이름이었다. 나름 유명하잖아. 길성혁과의 한판승으로.

고개를 돌려 길성혁을 봤다. 만만치 않게 불편한 얼굴이었다.

“그 새끼가 왜?”

날 선 중얼거림.

박 팀장이 얼마 없는 머릴 긁적이며 물었다.

“들어와 보라 한다?”

“왜 왔는지 들어나 보죠, 뭐”

이윽고, 유리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지며 다시 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프로듀서 장기로입니다.”

#

상석에 앉은 박 팀장이 목을 벅벅 긁다가 비스듬히 날 바라본다.

건너편에 앉은 길성혁은 늘 그랬듯, 날 탐탁지 않은 눈으로 노려본다.

“물어보고 싶은 게 뭔데?”

박 팀장에게서 불쑥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나름 정리해온 말들을 다시 한번 곱씹고, 입을 뗐다.

“오디션 말입니다.”

하하. 대번에 찌푸려지는 저 얼굴들을 보라. 솔직히 이 정도만 해도 확인하고 싶은 건 다 확인한 셈이다.

그래도 좀 더 건드려보자.

“결과 발표 난 거 봤습니다. 제가 눈여겨본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떨어졌더라고요.”

“근데?”

표정만큼이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툭 하고 튀어나온다. 그리고 내가 뭐라 말을 더 이어가기도 전에.

“뭐야, 내가 괜찮게 봤는데 왜 떨어트렸냐. 이걸 따지러 온 거야? 지금 팀장님한테?”

길성혁이 끼어들었다. 합공인가. 근데 난 싸우러 온 게 아닌데.

“아뇨, 떨어졌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너스레를 떨며 캐스팅 팀장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지 몹시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이유는 알고 싶어서요. 그냥 프로듀서로서의 궁금증 정도예요. 앞으로 제 안목을 키우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배움을 청한다는 말투로 물었다.

박 팀장의 표정이 아주 조금 풀린다.

“간단한 거 아냐? TKM에 오기에 실력이 부족했나 보지. 안 그래, 길 피디?”

박 팀장이 길성혁에게 물었고, 길성혁은 당연하다는 듯이 끄덕이며 이죽거렸다.

“어후, 많이 부족했죠. 야, 장기로. 여기가 학교야? 그런 거 일일이 알려주게? 아마추어티 내지 말고 얼른 나가. 안 그래도 팀장님 머리 복잡하시니까.”

애초에 뭔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나오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도 뭔가 나름의 이유라도 갖다 붙일 줄 알았는데······.

확인할 필요도 없었겠네.

“왜 그러고 앉았어? 얼른 안 나가?”

당장이라도 욕을 퍼부을 것 같은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는 길성혁을 보며.

“그렇단 말이죠···. 예, 알겠습니다.”

미련 없이 일어났다.

돌아서자 등 뒤로 따가운 시선들이 콱 박히는 게 느껴질 정도다.

길성혁 특유의 비아냥거림이 들려온다.

“지 일이나 제대로 할 것이지. 꼭 능력 없는 것들이 저러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지.”

놈의 말을 사뿐히 지르밟고 팀장실을 나왔다.

한결 상쾌하다. 공기가 다르네.

그 길로 사무실을 나가려는데 유 대리가 물어왔다.

“얘긴 잘 끝나셨어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넵.”

진심이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한 방 먹이고 싶었는데. 여긴 길성혁 말마따나 학교가 아닌, 회사잖아.

그래서 한참 고민을 했지. 쥐고 있는 패를 어떻게 쓸지. 그런데 이젠 그런 고민이 말끔히 사라진 것 같다.

피식.

궁금하네. 자신이 애타게 찾던 보석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버린 돌멩이란 걸 알았을 때, 박 팀장의 표정이.

곧장 5층으로 올라왔다. 이번 목적지는 A&R팀 사무실이었다. 내가 지금부터 할 행동에 힘을 실어줄 조력자를 구하기 위해.

지나가던 여직원이 나를 보더니 반겼다.

“노래 잘 듣고 있어요! 매일 반복재생으로 듣는데도 질리질 않더라구요.”

감사 인사를 하며 웃는데 여직원이 뒤쪽을 슥 돌아보더니 내게 알려줬다.

“정 대리님 미팅 가셨는데.”

“아. 오늘은 팀장님 뵈려고요.”

“아~.”

빙긋이 웃으며 끄덕이는 여직원을 뒤로하고, 팀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내가 먼저 찾아온 건 처음인 것 같은데?

‘평소에 좀 친해져 둘 걸 그랬나?’

근데 어떻게? 피식 웃으며 문을 두드렸다. 나란 걸 밝히자, 들어오란 응답이 들렸고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문틈이 벌어지며 서재원 팀장의 모습이 보였다. 하늘색 셔츠를 입고 소파에 앉아,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누구와는 참 다른 광경이지.

“어, 앉아.”

“네.”

무심한 눈으로 서류를 보던 서재원 팀장이 툭, 서류를 내려놨다. 그리고 피곤한 듯 눈을 깜빡이며 안경을 뺀다.

“무슨 일이지?”

부드럽지만. 그래서 전혀 고압적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듯한 말투다. 격이란 게 눈에 보여.

“의논 드릴 게 있습니다.”

살짝 뒤로 기댄 서재원 팀장이 날 보며 끄덕였다. 말해보란 것.

이번만큼은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아, 내 능력 얘기만 빼고.

최정아란 오디션 참가자에게서 가능성을 봤고. 떨어진 걸 알고서는 그녀를 키워보리라 결심했고. 그 후엔 영상을 올려 지금 엄청난 화제를 몰게 된 것까지.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서재원 팀장의 덤덤했던 얼굴에도 여러 표정이 스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모든 얘길 끝냈을 때.

서재원 팀장은 웃고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진하게.

그리고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물어본다.

“그럼 이제. 니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들어볼까?”

“···!”

#

“이제 저 갈랍니다.”

버르장머릴 고쳐야 한다느니.

다음 곡은 무조건 망하게 될 거라느니.

제대로 짓밟아 줘야 한다느니.

한참을 장기로 욕으로 오디오를 채우던 길성혁이 주섬주섬 외투를 걸쳤다.

박 팀장은 그런 길성혁에게 넌지시 물었다.

“근데 말이야. 니가 떨어트려야 한다던 애. 진짜 별로였던 거 맞아?”

“누구요? 설마, 장기로 그 새끼가 와서 말한 애요?”

“어.”

길성혁이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그 새끼 안목을 믿는 겁니까?”

“아오. 귀청이야. 아니 누가 걔 말 믿는데? 니가 하도 그 앤 아니라고, 별로라고 해서 점수가 높은데도 떨궜잖아. 근데 정작 나도 이유는 제대로 못 들은 거 같아서 그러지.”

“너무 올드 했다니까요?”

“그러니까, 뭐가 올드······잠만.”

박 팀장의 품에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한 박 팀장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JME, 최 팀장.

며칠 전, 매스컴에서 댄스 신동으로 유명해진 아일 홀라당 뺏어가 버린 옛 동기였다.

“이 새낀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싶어 그러나······여보세요.”

-어, 박 팀장.

“니가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긴. 소식 듣고 축하해주려고 전화했지. 발 빠르던데? 역시 TKM이야?

“뭐? 뭐가 발이 빨라. 지금 비꼬냐?”

-뭘 비꽈 내가. 그 여자애 너희 쪽에서 데려간다며.

“어···?”

-에이씨 왜 모른 척이야. 내가 듣는 귀가 몇 갠데. 그 있잖아. SNS 페이지에 올라와서 빵 뜬 여자애. 걔 너희가 도장 찍는다며.

박 팀장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그게···그게 뭔 소리야?”

-뭐야. 너 몰라? 난 네가 데려간 줄 알았는데?

“알아듣게 얘기해. 대체 무슨 소린데, 그게.”

-그 여자애 지금 니네 계약팀에 가 있다던데? 니네 팀에서 캐스팅한 거 아냐?

순간 박 팀장의 얼굴이 벙쪘다. 나갈 준비를 하던 길성혁도 무슨 일인가 싶어 다시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일단 끊어봐.”

전화를 끊은 박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길성혁의 고개가 따라 올라간다.

“왜 그래요?”

“나도 몰라. 일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그러더니 팀장실을 박차고 나가는 박 팀장. 길성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따라 나가며 물었다.

“어, 어디 가요?”

“계약팀.”

“갑자기 거긴 왜···.”

엘리베이터도 못 기다리겠다는 듯, 비상계단으로 올라간다. 길성혁도 어기적어기적 따라갔다. 뭔 일이 난 것 같으니 궁금한 거다.

3층에 올라 홱홱 주변을 돌아보던 박 팀장이 계약팀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대체 무슨 일인데요?”

“모른다고! 모르니까 가지.”

“왜 성질은···.”

박 팀장에게 투덜거리던 길성혁이 계약팀 앞 복도에 스치는 얼굴을 보고 인상을 팍 구겼다.

“저 새낀 또 왜 여기 와있어?”

장기로였다.

그 옆엔 웬 여자가···.

“어? 쟤···.”

눈을 가늘게 뜬 길성혁이 이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야, 너 뭐야? 얘 니가 데려왔어? 이 새끼 진짜 또라이네. 쟬 여기가 어디라고 데려와?!”

“···길 피디.”

“왜요?”

길성혁이 휙 돌아봤다. 박 팀장이 설핏 굳은 얼굴로 여자의 손에 들린 봉투를 보고 있었다. TKM 로고가 박혀있는. 계약서를 담기에 적당한 봉투.

“뭔···.”

박 팀장이 여자의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가, 장기로를 보았다.

장기로가 ‘아 참’이라고 운을 떼며 말했다.

“정아야. 캐스팅 팀장님이셔. 팀장님. 최정아라고 합니다.”

꾸벅 인사하는 여자를 보며 박 팀장은 설마 설마 했다.

도장을 찍듯. 장기로가 묘하게 웃었다.

“영상으로 보셨었죠?”

< 020. 닭 쫓던 개 (2)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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