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9화 (19/221)

< 019. 닭 쫓던 개 (1) >

소일라.

일명, ‘소름 돋는 일반인 라이브’의 관리자, 김성한.

잡지사에서 대중음악평론가로 일하다 업계가 팍 죽자 SNS 활동을 시작한 그는, 소일라 페이지의 성공에 꽤나 고무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으아, 어떻게 쓸 게 이렇게도 없냐···.”

제보 영상들은 끝도 없이 밀려들었지만.

정작 쓸 건 없는 상황.

“레전드? 레전드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 정도 부르는 애들은 고등학교 축제만 가도 널렸겠다!”

귀에서 이어폰을 후두둑 뽑으며.

의자에 걸린 빨래인 양 아래로 쑥 꺼졌다.

영상도 꺼버렸다.

그리고 고갤 돌리며.

“너도 없지?”

옆에서 영상을 검토 중인 후배 녀석에게 물었다. 녀석도 끄덕인다.

“영 아니올시단데요?”

“그치? 아주 노답이야, 노답. 오늘 하루 종일 내가 열어본 영상이···이거 봐. 젠장. 2백 개가 넘어. 이럴 수 있는 거냐?”

“···기준을 낮춰야 할까요?”

“하아, 안돼. 그건 안돼.”

김성한이 세차게 고갤 저었다. 담배를 꺼내 물며.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답시고 영상 막 올리다가 훅 갈지도 몰라. 이미 우리 따라 하는 페이지들이 얼마나 많냐. 퀄리티 떨어지면 바로 치고 올라와 그 새끼들.”

“에고······.”

후배가 끄덕이며 다음 영상을 튼다.

“일단 좀 더 찾아볼게요.”

“그려, 찾자. 찾아야지.”

김성한도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았다.

“후우우우···.”

뿌연 연기 속에서 선별작업이 이어진다.

뭔가 애매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평균은 된다 싶은 영상들을 따로 빼 다른 폴더에 분류했다. 젠장. 이 폴더만 점점 쌓인다.

그때였다.

후배 녀석이 손을 파닥거리며 김성한을 부른 건.

“선배. 잠시만요.”

“어?”

“이거······이거 좀 들어봐요.”

“뭔데? 무슨 노랜데?”

“모, 몰라요. 처음 듣는 노랜데···.”

김성한은 혹시나 싶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한쪽 이어폰을 건네받아 귀에 꽂고 어정쩡한 자세로 선다. 그러자 후배가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재생시켰다.

화면에는 여자가 앉아있었다. 앵글에 얼굴은 담겨있지 않았고. 대신 한쪽에 그루밍 중인 하얀 고양이가 시선을 강탈한다.

‘고양이 귀엽···크흠, 그림은 좋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MR이 들렸고.

뒤이어 화면에 담긴 여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까지 흘러나오자.

뭐지, 이건?

김성한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내 참지 못하고 영상을 정지시켰다.

“···?”

“야. 이거···이거, 스피커로 틀어봐.”

“네? 아, 네!”

후배가 소리의 출력을 스피커로 돌렸다.

다시 재생되는 영상.

얼마나 지났을까?

김성한이 후배를 툭 치며 물었다.

“야.”

“···네?”

“무슨 생각해?”

후배는 장난기 한점 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MP3로 변환해서 퇴근하면서 들어야겠단 생각···?”

원했던 대답인 듯, 김성한의 입이 쭉 찢어졌다.

“흐흐흐···미치겠네, 진짜.”

말 그대로 였다. 미쳤다. 페이지를 시작한 이래, 최고의 영상이 눈앞에 띄워져 있다. 페이지 이름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반인의 라이브? 이게 어딜 봐서 일반인이야. 웬만한 가수는 벽 보고 반성해야 할 판인데.

게다가 이 노래는 또 뭐고?

“이 곡 처음 듣지?”

“전혀 생소해요.”

“설마 자작곡인가?”

“글쎄요. 만약에 진짜 자작곡이면 이거 여기 보낼 게 아니라 기획사로 보냈어야 하는 거 같은데···.”

“왜? 우리가 어때서.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단 연락 한 번 해봐. ···아니다. 연락은 내가 할게. 너는-.”

입술을 질겅이며 머릴 굴리던 김성한이 손가락을 탁, 튕겼다.

“레전드 영상 하나 푼다고 게시글 올려서 밑밥 좀 깔아놔.”

“그럼 어그로 끈다고 욕먹지 않을까요?”

“좀 먹지 뭐. 쫄 필요 있어? 영상이 없으면 모를까, 이 미친 영상이 우리 손에 있는데?”

그리고 자리로 돌아온 김성한은 음흉하게 웃으며 영상을 보낸 사람의 번호를 찾았다.

이 영상은 분명히 뜬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겠지. 영상 속 인물의 정보를 캐기 위해.

그러니 전화를 걸어 아주 사소한 거래를 해볼 생각이었다. 자신도 좋고, 상대도 좋은. 그런 거래.

뚜르르, 하는 벨소리가 두어 번쯤 울리고.

웬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소일라에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김성한의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 남자가 놀라거나 기뻐하는 리액션이 없었기에.

하다못해 신기해하는 내색조차 전혀 없었다. 마치 당연한 연락을 받은 듯이.

“연락드린 이유는. 아시겠지만, 제보자님이 보낸 영상을 저희가 페이지에 올리려고 하는데.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김성한은 남자에게 영상 속 여자와의 관계. 곡이 자작곡인지 등을 물어봤다. 남자는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원하는 바를 모두 확인하고. 김성한은 입꼬릴 씰룩거리며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그러면 말이에요. 이게 아시다시피 저희가 곧 100만이 코 앞인 페이지란 말이에요? 그만큼 파급력이 대단하단 얘기죠.”

“그래서요?”

“아는 동생분 실력이 워낙 좋으셔서 아마 기획사에서 연락이 많이 올 것 같은데······ .”

천천히 본론을 드러낸다.

“저희가 기획사에 연락처를 줘도 될까 해서요.”

애초에 익명성을 전제로 하는 페이지다만.

기획사가 어디 그런 거 지키는 애들인가. 될성부를 떡잎이다 싶으면 득달같이 달려든다. 연락처를 손에 쥔 자신에게로. 거기서 얻는 콩고물이 꽤나 쏠쏠했다.

물론 상대 동의는 필수였다. 대부분 뜨고 싶어 안달 난 애들이라 조금만 구슬려도 동의를 받아낼 자신이 있었······.

“아니요. 기획사 쪽엔 연락처가 넘어가는 일 없도록 해주세요.”

“네?”

하마터면 ‘니가 뭔데?’라는 말이 튀어나갈 뻔했다.

“이건 제보자분이 아니라, 영상 속 여성분이 판단하실 사항입니다. 그분 연락처 주시면 제가 한 번···.”

“지금 옆에 있습니다. 그리고 싫다네요?”

“네? 아하하···좀 당황스럽네요. 이게 그분한테 굉장한 기회일 텐데.”

단칼에 거절당하자 김성한도 짜증이 조금 올라왔다. 누가 나만 좋자고 이러나? 다 같이 좋을 수 있는 방향이잖아.

“영상은 언제쯤 올라오나요?”

이 상황에 뻔뻔하게 묻는 남자. 김성한은 짐짓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글쎄요. 저희도 영상이 워낙 많이 들어오는지라······이거 올리는 건, 저희 선택인 거 아시죠?”

약간의 협박을 섞어서.

“······.”

남자가 침묵하자 김성한은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협상을 시도하려 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그럼 다른데 보내야겠네요.”

“예?”

“비슷한 페이지 많더라고요.”

김성한은 순간 입을 벌린 채로 뻐끔거렸다. 그런 그에게 남자의 사뭇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아직은 가장 큰 페이지라 보냈는데. 아쉽네요.”

아직은. 이 세 글자가 김성한에게 푹 박혔다.

“저···잠시만요. 이게···.”

“후속 영상까지 보내드렸으면 큰일 날 뻔 했-.”

후속 영상이란 말까지 들으니 김성한도 더이상 머릴 굴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걸 느낀 거다.

“수요일이요! 수요일!”

“······.”

“하아···수요일에 올라갑니다. 당연히 연락처 다른 곳에 넘기는 일도 없을 거고요.”

잠깐 마가 뜨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까지 얘기하신다면야.”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와 같은 목소리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한.

‘하! 이거 완전히 말려버렸네.’

완벽하게 졌다.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김성한이었다.

#

“저희 영상 더 찍어요?”

최정아가 방금 내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건네며 묻는다.

나는 빨대로 한 모금 쭉 빨고, 키야 소릴 내며 말했다.

“아니?”

“엥? 방금 전에 후속 영상이라고.”

“거짓말인데?”

최정아가 입을 벌리며 날 본다.

“헐. 피디님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실실 웃다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정말 괜찮겠어? TKM 보다 더 큰 기획사에서 연락 올지도 모르는데?”

“네! 괜찮아요.”

“이러다 TKM에서 관심 1도 없으면 땅을 치고 후회하려고?”

눈을 천천히 끔뻑이다,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짓는 최정아.

“그, 그러면 안 되는데.”

얼음이 담긴 플라스틱 잔을 흔들며 피식 웃었다. 반응이 재밌어. 놀릴 맛이 나.

“농담이야. 그럴 일 없을 거고. 정 안 풀리면······내가 기획사 하나 차려서 너 데려갈게.”

그러자 최정아가 언제 불안해했냐는 듯, 빙긋이 웃는다.

“그럼 꼭 TKM이 아니어도 좋아요.”

약속했던 대로 수요일이 되자 소일라 페이지에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그동안 꼭꼭 숨겨뒀던 레전드 영상 공개!>

누르지 않곤 배기지 못할 제목으로 올라와 순식간에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이미 조회수가 10만을 넘겼다.

반응도 역시나,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제목 어그로 너무 심하다 생각하고 들어왔는데···진짜였다니.

-이걸 공개 안 하고 숨긴 페이지 관리자가 진심 인내력 천재. 얼마나 근질근질했을까.

-조회수 미친 듯이 올라가네. 이건 일주일 안에 100만 찍을 듯.

-노래 너무 좋다······음원으로 내주세요. 제발!

-그래서 저 여성분 누군가요? 일반인 맞나요? 데뷔 하시죠 현기증 날 거 같으니까.

-오바는. 얼굴도 안 나오는 영상 가지고 데뷔? 엄청 못생겼을지도 모르는데?

-딱 보면 모름? 엄청 예쁠 거 같은데.

-노래를 저렇게 하는데 뭔 얼굴 타령.

-일반인이란 게 안 믿겨 짐. 기획사들 뭐하냐! 일 안 함?

-기획사들 이미 난리 났을 듯!

이 정도면 충분히 TKM 캐스팅팀까지 번지겠네.

처음 그렸던 그림대로,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 하는 최정아에게 축하한단 메시지를 남기고. 매트리스에 벌러덩 누웠다.

오늘은 오랜만에 꿀잠 좀 지겠다.

#

반쯤 벗겨진 머리에 처진 입꼬리를 가진 TKM 캐스팅 팀장 박용환.

그가 자신의 앞에서 빠짝 굳어있는 캐스팅디렉터를 보며 얼굴을 구겼다.

“어디라고?”

“JME···.”

“그놈들이 물밑작업 열심히 하는 동안, 너는 뭐했고?”

“저희도 최대한 공 들여서···.”

“공을 들여서 뺏겼다? 공을 어떻게 들이면 그렇게 뺏기냐? 이 새끼야, 나랑 장난쳐?”

“죄송합니다.”

“석 달을 공들인 애를 3일 만에 홀라당 뺏긴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본부장님이 아시면 뭐라고 하실 것 같아!”

“······.”

“흐아. 진짜 속 터진다. 대안은···당연히 없는 표정이네? 이 새끼가 진짜···!”

그때 누군가 팀장실로 다가와 문을 두드렸다. 유 대리였다.

“왜?”

흉악한 팀장실 분위기를 알면서도 문을 두드린 유 대리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박용환의 책상 위로 패드가 올려졌다.

“뭔데?”

“어젯밤에 소일라에 올라온 영상입니다.”

“소일라? 그 일반인들 노래 부르는 거 올리는?”

“예.”

이미 거기서 꽤 많은 가수들이 배출되었단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박용환도 흥미가 동했다.

“그래서. 될 만한 애야?”

그가 입에 달고 사는, 단골 멘트였다.

유 대리는 얼른 고갤 끄덕였다.

“이미 반응이 엄청 뜨겁습니다. 조회수도 벌써 30만을 넘겼고요.”

“흐음······.”

입꼬릴 더욱 아래로 내리며 턱을 문지르던 박용환이 패드를 눌러 영상을 재생시켰다.

영상을 쭉 보다가, 이내 고갤 들었다.

완전히 누그러진 표정으로.

“좋네. 좋아. 얜 꼭 데려와야겠는데? JME에 뺏긴 애새끼보다 훨씬 나아.”

언제 성을 냈냐는 듯 웃기까지 한다. 그 모습이 더 서늘했지만.

그의 시선이 유 대리에게서 캐스팅디렉터로 옮겨갔다.

움찔.

“얜 데려와야지?”

“···옙.”

“꼭 데려오자? 응? 열심히 하는 거 아는데. 그 전에 잘 해야지. 알겠어?”

“알겠습니다.”

“으이. 다들 나가봐.”

박용환이 손을 휘휘 흔들자 캐스팅디렉터와 유 대리가 팀장실을 나갔다.

홀로 남은 박용환이 패드 화면에 떠올라있는 영상을 보며 느긋이 끄덕였다.

이 정도 떡잎이면 충분히 본부장 앞에서 면이 서고도 남겠다 생각하며.

< 019. 닭 쫓던 개 (1)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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