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8. 완벽을 뛰어넘는 완벽 >
최정아는 어느새 내가 부른 멜로디를 그대로 따라 흥얼거리고 있었다.
가성으로 아주 작게 부르는데도 벌써 좋다.
크으, 역시 이 곡은 최정아가 불러야 했어!
코드를 슬쩍슬쩍 눌러 주며 최정아를 빤히 보다가 불쑥 물었다.
“이거, 가사. 정아씨가 한 번 써봐요.”
“네?”
최정아가 노랠 멈추고 날 본다. 무슨 못 들을 걸 들은 표정으로.
부드럽게 웃으며 내 생각을 얘기했다.
“정아씨가 부를 곡이잖아요. 전 정아씨 느낌대로 써봤으면 싶은데.”
“제가요?”
여전히 놀란 표정의 최정아.
“정아씨도 느끼고 있겠지만, 이 노랜 완전히 정아씨 감성의 노래예요.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써봐요.”
다독이자 최정아는 느릿하지만, 힘있게 고갤 끄덕였다. 그리곤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프로듀서님.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안 그래도 어색하던 참이라 나도 서슴없이 말을 놓았다.
“그럴까?”
살풋 웃는 최정아를 보며 다시 코드를 짚었다.
“일단은 허밍으로 다시 한번 불러보자.”
그날 이후.
나는 틈틈이 최정아와 합주를 이어갔다.
기대했던 대로 최정아의 가사는 더 손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그녀가 원하는 감성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지.
노래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자신에게서 나온 멜로디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이보다 더 잘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
다음 합주에서 이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더 완벽해졌잖아?’
완벽이란 말이 무색하게. 이미 완성된 멜로디가 새삼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최정아가 부르는 버전은 계속 발전해나갔다.
완벽의 정의를 합주마다 갱신하며.
이러니 점점 더 욕심이 생길 수밖에.
최정아와 이 곡이라면 안 뜨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았다. 어느 누가 이 노랠 듣고 팬이 안 될 수 있겠어. 길성혁 같은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짜장면 왔어. 나와.”
사장님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는 연습을 마무리 짓고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야옹~.
최정아가 손을 살짝 뻗은 채로 망설인다. 코앞에 있는 고양이를 미친 듯이 만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표정.
“그래도 처음 왔을 때처럼 무섭진 않나 봐?”
“네. 자꾸 보다 보니 괜찮아지는 거 같아요. 귀여워요.”
솔직히 둘 다 귀엽······크흠.
“애들이 정아씨 엄청 좋아하네. 쟤네도 보는 눈이 있는 거지.”
사장님이 짜장면을 마구 흔들며 말했다.
“야, 야. 이거 봐라. 이러면 골고루 비벼진다고 티비에서 나왔는데······안 되네. 하여튼 티비는 하등 믿을 게 안 돼.”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장님을 보며 최정아도 나도 한참을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 심각한 표정이던 사장님은 결국, 비닐을 뜯어 젓가락으로 비비기 시작한다.
“아 그리고, 진짜 니 사진 여기다 걸어 놓는다? 히트곡 봄이 올까요의 작곡가! 우리 합주실 출신! 이렇게?”
“히트곡까진···아무튼 그러셔요.”
“나중에 더 유명해진다고 딴소리하지 말라고.”
“에이, 당연하죠.”
후룩. 식사가 시작됐다. 냄새가 진해지니 다른 방에 있던 고양이들이 전부 몰려들었다.
최정아는 탕수육을 오물거리면서도 고양이 쳐다보기에 바쁘다.
“그래서 회사에선 요즘 뭘 하는데?”
“별거 없어요. 어젠 하루 종일 소스 찾아서 비 피디님한테 넘기고.”
“비 피디? 성이 비씨야?”
“프로듀서 네임이 비스트로예요.”
“아아.”
별 관심은 없었는지 후룩거리며 짜장면을 쭉쭉 넘긴다. 서너 번의 젓가락질로 그릇을 비운 사장님이 휴지로 입가를 닦으며 물었다.
“그럼 이분이랑은 뭘 하는 건데? 연습생도 아니고, 여자친구도 아니면.”
옆에서 오물거리던 소리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이어진다.
“가능성이 보여서, 제가 같이 해보자고 졸랐어요.”
“가능성 정도가 아니더만. 밖에서 듣는데 바로 데뷔해도 다 씹어먹겠던데? 아이고, 말 격하게 해서 죄송해요~.”
최정아가 빵빵해진 볼로 웃으며 끄덕거린다.
“근데 명색이 합주실인데 밖에서 들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이거 시설이 영~.”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사장님이 미간을 구기며 최정아에게 말한다.
“가능성 어쩌고 하는 놈들 믿지 마요. 순 다 사기꾼이니까.”
“다음부터 홍대 가서 연습하자. 여기 못 다니겠네.”
“풉.”
얼굴을 가리고 끅끅대며 웃는 최정아.
콜라를 따라 최정아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아.”
그런 우릴 빤히 보고 있던 사장님이 대뜸 물었다.
“그래서 어디에 올라갈 거라고?”
“SNS 페이지요. ‘소일라’라고.”
“소일라?”
“소름 돋는 일반인 라이브에 줄임말이에요.”
“참 내 하다 하다 별걸 다 줄이네.”
“아재요······.”
“뭐 임마?”
그릇을 포개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연습하자.”
“네!”
“저런······.”
장기로와 최정아가 연습한다며 들어가고.
서비스로 온 군만두에 단무지를 얹어 으적거리던 합주실 사장은 이내 너털웃음을 지었다.
“반응이 어떨지 기대되네······노래 진짜 좋던데.”
엄청 재밌는 대작 영화를 미리 본 것 같은 기분이랄까.
반응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분명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질 테니까.
#
기어이. 마침내. 드디어.
‘봄이 올까요’가 TOP10 끝자리에 올라탔다.
아침부터 줄곧 찌뿌둥하던 몸이 이제는 솜털 같다. 엘리베이터 따위. 그냥 계단으로 올라가도 될 것 같다.
물론 진짜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장 피디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로비에서 만난 직원이 인사를 건네길래 밝게 화답했다.
차트 최상단에 곡을 올린 이의 여유랄까?
요즘 회사보다 방송국을 훨씬 더 자주 드나든다는 이현도 이러려나?
좀 전에 통화했는데 엄청 들떠있더만.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아예 없진 않다. 그래프를 보면 성장세가 확 더뎌졌거든.
마지막 힘까지 짜내서 10위에 안착한 거다. 아무래도 더 올라가는 건 힘들 듯했다.
‘다음엔 더 높이···!’
다짐하며 서재원 팀장이 말했던 선물 얘길 떠올렸다.
내가 원하는 가수를 지목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었지.
그래, 그거나 좀 생각해보자. 누구와 작업하는 게 더 나을지.
최정아를 비장의 카드로 키우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내 사람이 되어줄 이들이 더 많아져야 하고, 그들의 힘 또한 커야 한다.
‘이왕이면 아이돌이 좋겠는데···.’
그들에겐 팬덤이란 큰 영향력이 있으니까.
회사 안에서 아직 길성혁의 입김을 이겨낼 수 없다면 그 힘을 밖에서 끌어오면 되는 거다.
즉시 떠오르는 건 역시 TKM 간판 아이돌 퀀텀보이즈.
하지만 거긴 컴백한 지 얼마 안 되었을뿐더러 설령 컴백 시기였다 해도, 러브콜을 받아줄 가능성이 희박했다.
서재원 실장도 설득은 내 몫이라 했으니···.
그렇담 또 누가 있을까···?
TKM이 원래 아이돌이 많은 회사가 아니다. 이 시기에 성공하는 아이돌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이 정도면 없다고 봐야겠지.
그냥 솔로 가수를 찾아봐야 하나?
누가 가까운 미래에 확 뜨더라···?
“어, 장 피디님.”
양손 가득 편의점 봉다리를 들고, 회전문 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며 날 부르는 남자.
오디션 일로 캐스팅팀에 갔을 때 만났던 걸그룹 매니저였다.
이름이······.
“지영환 매니저님?”
“하하, 맞습니다.”
안색이 거무죽죽해진 거 같은데?
뭐, 사실 그때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지.
“오늘 아침에 TOP10 드셨던데요. 축하드립니다.”
내심 놀랐다. 오늘 내 첫 축하를 매니저에게 받게 될 줄이야. 매니저들도 차트를 즐겨보는구나.
“감사합니다.”
미소를 지으며 감사 인사를 하고,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올라탔다.
지영환은 타지 않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안 타세요?”
“저는 안무실로 가야 해서요.”
아-. 안무실이 지하에 있단 사실을 떠올리며 끄덕였다. 그리고 옅게 웃으며 인사했다.
“수고하세요.”
“옙. 피디님도요.”
지영환 피디가 문틈으로 사라진다. 마지막에 굉장히 씁쓸하게 웃는 것 같았는데 말이지.
지난번 그 플로라라는 걸그룹 여자애들의 반응도 그렇고, 무슨 일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걸그룹.’
그러네. 저기도 아이돌이긴 하네.
아직 데뷔는 못 한 것 같지만.
사실 그게 문제 되진 않는다.
이름까지 나온 걸로 보아 곧 데뷔할 거고.
오히려 이미 몸집이 큰 아이돌보다 나을 수도 있지. 성공만 시킨다면 내 공로가 더 커지는 거니 말이다.
문제는, 미래에 저런 아이돌이 있단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숱한 그룹 중 하나였단 뜻이기도 했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데뷔 자체가 무산됐었거나.’
#
지영환은 플로라가 있는 안무실에 들어갔다.
안무실에서 안무는 안 하고 죽상인 아이들이 보였다. 지영환도 딱히 그런 의욕없는 모습을 나무라지 않았다.
“편의점 싹 긁어왔어. 다들 그러고 있지 말고 와서 좀 먹어.”
곳곳에 찌그러진 것처럼 앉아있던 여자애들이 티비 속에서 나오는 귀신마냥 기어왔다.
지영환은 과자 봉지를 뜯으며 의기소침한 멤버들을 훑었다.
발랄하고 덤벙대는 신소영.
고만고만한 나이임에도 어른스러운 성현지.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은 유예지.
그리고.
끼익. 안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유하.
“유하야!”
“한유하!”
“······.”
반기는 외침들에도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 한유하가 쭈뼛쭈뼛 다가와 앉았다.
얼른 한유하에게 붙어 재잘대는 신소영과 유예지.
그리고 이 상황이 못마땅한 듯 지영환을 바라보는 성현지.
지영환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일단, 유하는 당장 나가진 않고, 일주일 정도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 말에 나머지 모두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지, 진짜야? 잘 생각했어! 우리 오늘 맛있는 거 먹을까? 너 좋아하는 참치···는 비싸니까, 어떻게 연어라도···.”
“연어도 맛있지! 그치? 유하 연어도 좋아해.”
아예 한유하 쪽으로 몸을 돌려 물어보는 신소영과 유예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성현지가 지영환에게 물었다.
“그럼, 일주일 뒤에도 유하가 나가겠다고 하면요?”
지영환은 잠시 한유하 쪽을 보다가 애써 담담하게 답했다.
“그땐 정말 나가는 걸로.”
“······.”
그 말을 들은 유예지가 금세 훌쩍인다.
신소영은 한유하의 옷자락을 흔들며 징징댔다.
“흐잉···그냥 참치 먹자. 참치 먹어 우리···.”
지영환은 골이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지난 3년간 연습생으로 그 고생을 했으면서 대체 왜 갑자기 그만두겠다는 걸까?
입을 꾹 닫고 말을 안 하니 이유도 모른다.
이럴 땐 대체 어떡해야 하나.
이제 정말 데뷔만 남았는데···.
#
MR소리가 잘 들어가되, 목소리보단 작게.
얼굴은 안 나오게.
고양인 나오게.
나는 버튼을 터치하며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이윽고 MR이 나오기 시작한다.
행여 조금이라도 소리가 날까, 어정쩡한 자세로 앉았다. 이 순간만큼은 관객의 마음으로 노래를 감상하기 위해 준비했다.
드디어 기타 선율 위로 자연스럽게 얹어지는 최정아의 목소리.
힘없이 부르는 것 같지만 귓가에 선명히 꽂힌다. 뭐랄까. 받침을 굴리는 느낌으로. 이거 진짜 어려운 건데.
서서히 곡이 절정으로 치달으며 최정아의 목소리에도 딱 필요한 만큼의 힘이 전달 되는 순간. 쇳소리가 난다.
허스키한 게 아닌, 듣기에 전혀 거북함 없는 쇳소리. 그게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리고 그때, 거칠게 치고 들어오는 첼로와 최정아의 목소리가 만나며 스파크가 튀었다.
전신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미친.’
하하. 이러니 내가 멜로디를 듣는 능력에 집착하지 않을 수가 있나. 가창자와 곡이 완벽히 들어맞을 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동영상 촬영을 멈추는 소리가 울렸을 때.
최정아는 무슨 숙제를 검사 맡는 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완벽을 뛰어넘는, 완벽한 노래를 들려주고선.
방금 자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도 모르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웃자, 그제야 최정아도 살풋 미소짓는다.
“물 좀 마시고 올게.”
목 탄다, 목타.
손에 땀을 쥐는 영화를 보고 나온 기분.
이중 문을 열고 나오자 사장님이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로 앉아있었다. 멍한 표정을 띄우고.
“어땠어요?”
내 쪽으로 고갤 돌린 사장님은 자신의 팔뚝을 쓸어내리며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어떠냐고?”
너털웃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합주실에서 저런 걸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후, 소름 돋아···저런데 오디션에서 떨어졌다고? 뭐 TKM엔 저런 인재들이 쌔고 쌨냐?”
“아뇨.”
“엉?”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그러니 떨어트린 놈 눈이 삔 거죠.”
< 018. 완벽을 뛰어넘는 완벽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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