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6화 (16/221)

< 016. 오디션의 결과 >

고개가 돌아갔다.

꼭지도 돈 거 같고.

“피디님은 그러십니까?”

“뭐야?”

“아니, 꼭 그래 본 적 있으신 것처럼 들려서요.”

나도 내 목소리가 낯설 정도로 날 선 목소리였다.

짜증이 치밀었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해대니까.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뭐가 어째? 니가 이딴 식으로 해놓고 계속 이 바닥에서 활동할 수 있을 거 같아!?”

“해야죠. 오래 할 겁니다.”

10년을 돌아와 다시 잡은 꿈인데. 꽉 붙들고 오래오래 해야지.

단호하게 받아치자 길성혁이 이마에 핏대가 불룩 솟았다.

하지만 이내 진정하며 입꼬릴 올린다. 전략을 바꿨나.

“하아,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너 같은 새끼들 내가 잘 알지. 실력도 없는 게 운 좋게 계약하고, 곡 내고. 주변에서 작곡가님, 피디님 하니까 세상 다 니꺼 같지?”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댄다. 비릿한 악담과 함께.

“그게 어디까지 갈 거 같아? 다섯 번째? 열 번째? 지랄. 넌 딱 두 번째에서 꼬꾸라질 새끼야.”

어떻게 저리 확신에 찬 개소리를 할까?

두 가지다.

내가 정말 실력이 없다고 생각해, 다음 프로젝트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자신하거나.

아니면 그렇게 되도록 만들 자신이 있거나.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번들거리는 눈을 보니 후자일 듯싶지만.

“······그렇게 확신하시는 걸 보니, 꼭 성공시키고 싶어지네요. 다음 것도.”

나는 다짐하듯 말했고.

길성혁은 화장실이 떠나가라, 끝까지 비웃었다.

“푸흐, 허세는···그래 어디 해볼 수 있으면 해봐. 나도 궁금하네. 네깟 게 뭘 어디까지 할 수 있나.”

#

패기 넘치는 출근이었다.

가깝고 분명한 목표가 생긴 남자의 비장함이랄까.

조금 일찍 도착해 매니지먼트 본부가 있는 2층에 들렀다.

왼쪽이 캐스팅팀, 오른쪽이 매니지먼트팀. 왼쪽으로 돌아 커다란 사무실로 들어갔다.

인원도 A&R팀의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외출 중인 자리가 태반이니, 모두 합치면 더 차이가 나겠지.

가장 바깥 자리에 앉은 직원 중 아는 남직원의 얼굴을 찾아 슬며시 다가갔다. 준비해온 커피를 건네면서. 회사 라운지에서 내린 거 말고, 무려 프랜차이즈 커피시다.

“유 대리님.”

“···? 아, 네네. 장 피디님.”

“다른 게 아니라, 어제 오디션 말인데요. 결과가 나오면, 제가 확인을 하고 싶어서요.”

“오디션 결과요?”

“네. 제가 심사한 분들이라, 누가 합격할지 너무 궁금해서요.”

직원이 잠깐 생각하는가 싶더니 미소하며 끄덕인다.

“아마 결과가 확정된 후에 보시는 건 상관없을 거예요. 점수까진 좀 힘들겠지만.”

“그럼 언제쯤 나오나요?”

“점수야 다 합치기만 하면 되고, 최종적으로 팀장님 승인만 떨어지면 끝이니까···별 일 없으면 오늘, 내일 중으로 나오겠네요.”

몇 가지를 더 물어보고, 시시콜콜한 근황 얘기도 조금 나누다가 사무실을 나왔다.

‘애매한데···.’

최정아가 합격해서 들어온다 하더라도, 연습생을 거쳐야 했다. 월말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연달아 내고, 회사의 전략과 시기가 맞아야 비로소 데뷔라는 걸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최소 반년이다. 늦어지면 년 단위일 수도 있고.

‘고민 좀 해보자.’

눈썹을 긁적이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향했다. 거기엔 칙칙한 사무실과는 어울리지 않은 여자애들 세 명이 있었다. 저들끼리 꺄르르 거리며.

‘아이돌?’

누군가 싶어. 혹시 내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빤히 봤나 보다.

여자애들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이거 조심해야겠다. 미래에 아는 사람인지 빤히 확인하는 거. 오해하기 딱 좋겠어.

다행히 이상한 사람을 보는 눈은 아니었다. 오히려 밝은 얼굴로 인사해온다.

“안녕하세요, 플로라입니다!”

처음 듣는 그룹이었다. 얼굴도 전부 생소하다. 적어도 10년 안엔 크게 뜨지 못하는 그룹이란 건데···.

“네, 안녕하세요.”

이런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여자애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니가 말해봐.”

“아 왜-. 너가 말해.”

“가위바위보 하자.”

“그래! 가이바이···.”

속닥거림에 뭐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여자애 한 명이 스리슬쩍 다가왔다. 양손을 고양이 마냥 앞에 모으고 총총거리며.

아담하고, 귀여운 얼굴이었다.

“저기···혹시 매니저님이세요?”

“···?”

“아닌가···.”

뒤쪽에서 다른 여자애가 답답하다는 듯 속닥인다.

“바보야, 캐스팅팀에서 나오셨잖아.”

“아! 그, 그럼 직원이시긴 한 거죠?”

직원? 그렇···긴하지.

“네.”

내 대답에 반색하더니 소심하게 매니지먼트팀 사무실 앞에 쪼르르 있는 미팅룸을 가리킨다.

“혹시 저기에 한유하라고 똑 단발에 어엄청 이쁘게 생긴···아무튼, 저희 멤버거든요. 걔 저기 있는지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돼요?”

“왜 직접 안 보고요?”

“그게······.”

뒤쪽에서 ‘어휴’ 한숨이 들리더니 이번엔 다른 여자애가 다가왔다.

머리를 돌돌 말아 똥머리를 한, 단정한 이미지였다.

“저희가 출입금지를 당했어요.”

“어딜요? 저길요?”

“네. 하도 들락날락 거린다고 매니저님이···.”

“아?”

“사실 여기도 있으면 안 되는···.”

처음 다가왔던 여자애가 고개를 파닥이며 술술 분다.

“바보야, 다 말하면 어떡해!”

똥머리 여자애가 말리고.

홀로 뒤에 있던 여자애는 숨넘어가라 웃고.

반대쪽에 엘리베이터는 언제 도착했었는지 닫히고 있고.

대환장 파티네.

그때 매니지먼트팀 안쪽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화들짝 놀란 여자애들이 내가 다시 눌러둔 엘리베이터 버튼을 연타한다. 그런다고 빨리 올까.

“너네 여기 왜 있어.”

몹시 피곤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여자애들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시, 실장니임···유하는 뭐래요···?”

“너네 여기 금지라니······.”

그 눈이 나를 향한 채 멈췄다.

“장 피디님?”

날 아네?

“아, 예.”

세상 피곤을 홀로 겪고 있는 듯했던 얼굴이 반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맞으시죠? 역시! 안녕하세요. 매니지먼트팀 지영환이라고 합니다.”

“프로듀서 장기로입니다.”

“흐끄?”

딸꾹질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돌아보니 다들 눈을 두 배쯤 크게 뜨고서 날 보고 있었다.

지영환이란 매니저가 여자애들에게 물었다.

“니네 프로듀서님께 인사했어?”

“예···니요.”

예니요?

“저한테 인사했잖아요?”

“근데, 그땐 프로듀서님이신지 모르고···.”

“프로듀서면 뭐가 달라져요?”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그럼 인사받은 거네요.”

지영환이라는 매니저를 보며 말했다.

그는 내게 서글서글한 미소를 흘리다가 여자애들에게 시선을 가져가며 다시 원래의 엄한 표정으로 변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올라타자, 다시 인사가 쏟아졌다.

지영환도 꾸벅 인사한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네엡.”

마주 인사하자 문이 스르륵 닫힌다.

‘정신이 없네.’

그렇게 시끌벅적했던 아침을 뒤로하고, 향한 작업실.

컴퓨터가 켜지는 사이 가방과 겉옷을 걸고 의자에 앉는다.

“······.”

조용해지니 다시 고민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지.

근데 뭘 하지?

예전에 작업하던 최정아의 멜로디를 계속 발전시켜야 하나?

아니면 다른 습작?

“으아, 정신 차리자.”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래, 당장은 정해진 게 없으니.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하자.

아직 ‘봄이 올까요’가 차트에서 선전 중이었다. 어제는 기어이 앞자리가 1로 바뀌었지. 그리고 지금은 무려 17위다.

이렇듯 풍악을 울려도 모자랄 판에 벌써 다음 곡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니.

이게 다 길성혁, 그 양반 때문이지.

‘기본적인 것부터 준비하자, 기본적인 것부터.’

내 밑천이 바닥나지 않도록.

예컨대 갑자기 멜로디가 안 들릴 수도 있는 거니까.

설령 그런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애초에 이런 능력이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잖아.

‘대비해야지.’

운동선수가 코어 근육을 단련하듯이.

딸깍. 컴퓨터가 켜지자마자 인터넷에 접속했다.

즐겨찾기에 등록된 각종 사이트들을 하나씩 방문하고 새로 업데이트된 자료들을 확인했다. 거기서 괜찮다 싶은 소스가 보이면 로직으로 끌고 와 만져보기도 했다.

흔히 디깅(digging)이라 불리는 일종의 자료조사.

레퍼런스를 모으는 거다. 크게는 곡 전체에서부터 작게는 드럼의 킥. 그 하나에 집중해서, 디테일하게.

‘이건 어택은 센데 저음부는 빈약하고···.’

‘이건 저음부가 괜찮은데 어택이 없어.’

이 두 가질 이런 식으로 합치면? 따단-. 문제점들이 해결된다.

서로의 장점은 유지한 채로 단점은 보완하는 거다.

추가로 적절한 값들이 입력하면 이건 나만의 소스가 된다.

‘이건 댄스곡 쪽에 활용하면 좋겠네.’

계속되는 비교와 실험의 연속.

소스와 함께 차곡차곡 쌓이는 건, 듣는 귀와 어떤 걸 섞어야 더 나은 소리가 나올지 판단하는 센스였다.

인풋에 의한 아웃풋이랄까.

고민들은 미뤄두고, 그렇게 한참을 작업했다.

탄약을 쟁여두는 사수의 마음으로.

#

다음날.

어제처럼 조금 일찍 회사에 도착해 캐스팅팀으로 향했다. 오디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애써 기대감을 누르며 2층에 내렸다. 그리고 왼쪽으로 꺾는 순간.

“······.”

또 보기 싫은 인간을 소중한 내 눈에 담아버렸다. 이거 어떻게, 어디다 버리지.

“안녕히 가세요-.”

“어, 수고.”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나오는 길성혁. 내 쪽으로 꽂힌 안경알 너머 두 눈이 오늘따라 뱀같이 느껴진다.

“장기로.”

“······.”

“이제 인사도 안 해?”

“안녕하세요.”

인사하자 길성혁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푸흐흐. 그래 안녕하다. 아주 좋은 아침이야.”

저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니, 내가 다 찜찜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확신을 심어주듯.

쿡 찔러 들어왔다.

“공모전 결과 보러 온 거지? 궁금해했다며.”

저릿하다.

찜찜함이 단전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와 위화감으로 번진다.

“결과 나왔으니 가서 확인해봐.”

조소를 있는 대로 뿌리고, 휘파람까지 불며 스쳐 지나간다.

“······.”

나는 곧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자리로 다가가자 유 대리가 마침 잘 왔다며 프린트 한 장을 건넸다.

종이를 받자마자 빠르게 훑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최정아란 이름은 없었다.

“방금 팀장님이 최종적으로 검토하셨어요.”

“팀장님이요···.”

시선이 안쪽, 팀장실로 향했다.

캐스팅팀 팀장 이름이 뭐였더라······.

“혹시 방금 전에 길 피디님, 팀장실에 계셨었나요?”

“네. 한, 한 시간 정도? 커피 마시고 가셨네요. 왜요?”

“아, 아녜요. 감사합니다.”

너무 뻔한······그건데.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상황.

“점수를 확인할 순 없겠죠?”

“그것까진 어려울 거 같아요. 팀장님 권한이라······.”

“그렇군요.”

안 된다는데 어쩌겠나. 보는 눈도 많고.

캐스팅팀 사무실을 나왔다.

발걸음이 무겁다. 머릿속이 얹힌 것 같다.

설마하니 대형 기획사 프로듀서가 팀장이랑 싸바싸바해서 고작 그런 장난질을 쳤을까?

어. 그럴 거 같아. 캐스팅팀 팀장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길성혁은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잖아. 그간의 행태에 대한 고찰이니 아마 확실할 거다.

“하핫.”

혀에 씁쓸함이 감겼다.

내 곡을 지켜냈고, 차트 30위는 가볍게 넘기며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파도에 밀려 다시 원점에 선 느낌.

딱히 내가 직접적인 방해를 받은 것도 아닌데.

이거···.

‘진짜 별로네.’

< 016. 오디션의 결과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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