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5화 (15/221)

< 015. 오디션 (2) >

“132번 최정아씨! 132번 최정-.”

북적거리는 대기실에서도 신기하게 자신의 이름만큼은 귀에 꽂히듯 들리는 법이다.

“네, 넵!”

바짝 긴장해있던 최정아는 벌떡 일어나 진행요원의 뒤를 따랐다.

대기실에서 오디션장까지 걸어가며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귀에 붙어있는지 의심했다.

그만큼 큰 소리로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후우.”

심호흡···십호흡···.

문을 열어젖히는 진행요원.

안으로 들어가니 비슷한 옷차림의 다른 진행요원이 무선 마이크를 건넸다.

그걸 신줏단지 모시듯 꼭 받아 들고 천천히 걸어갔다. 조명이 무대와 심사위원석만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후아···.”

무대에 오르기 전.

앞에 서서 다시 한번 숨을 골랐다.

그때였다.

“다음!”

누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애써 진정시켰던 심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후으으으···.”

떨리는 입술을 뻐끔거리며.

후다닥 달려가 그대로 허리를 접듯이 숙였다. 앞을 볼 새도 없이.

“아, 안녕하세요!”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심사위원들을 한눈에 담는데, 그중 한 명과 눈이 딱 마주쳤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었다.

어···?

놀랐다.

그걸 숨길 새도 없이, 저 사람이 왜 저기에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

또 우연인가?

그렇다면 참 신기한 우연이라고 최정아는 생각했다.

마주칠 때마다 항상 의외의 상황이었고, 위기의 순간이었으니까.

어느새 심장에서 울리던 북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한다. 거짓말처럼.

최정아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프로듀서 기로’ 라는 글씨를 곱씹었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남자의 얼굴을 봤을 때.

남자의 입가엔 반가움의 미소가 번지고 있었고.

그녀의 MR이 흘러나왔다.

#

‘최정아···최정아.’

채점표에 적혀있는 카페 알바생의 이름을 곱씹었다.

웃음이 났다. 반가워서.

왜 안 그렇겠나.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으니 말이다.

시야에 여전히 당황스러워 보이는 최정아의 얼굴이 걸려있었다.

“엄청 긴장한 거 같은데? 뭐, 일단 얼굴은 지금까지 중에 제일 예쁘네요.”

“몸매도 나쁘지 않은데···? 키가 큰데 바스트도 상당하네.”

보컬 트레이너 이정훈과 안무가 정수연이 옆에서 속닥였다.

적나라한 외모 평가였지만, 저게 저들의 일이었다.

지원자가 TKM의 색에 적합한가를 우리 프로듀서들이 판단하는 거고.

그 사이, 준비된 MR이 흘러나왔다.

어?

들을 필요도 없이 만점을 적을까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가 기울었다.

“또 제인 노래네.”

“벌써 한 스무 번은 들은 거 같은데?”

살짝 진 빠진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

좋은 곡이긴 하다.

밝고, 매력적인 노래지. 제인의 목소리처럼.

그리고 기획사 오디션인 만큼. 해당 기획사 소속 가수의 히트곡을 부르는 게 이상할 건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지.

단지, 저들은 너무 많이 들었기에 살짝 지겨워하는 거였고.

나는 그걸 떠나서······.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최정아가 버스킹에서 불렀던 감성과는 전혀 다른 노래였기 때문에 의아해졌다.

제인의 발랄한 이미지가 그대로 녹아 들어간 곡.

반면, 버스킹에서 봤던 최정아는 뭐랄까. 분명히 더 고혹적인 분위기였다.

제인보다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냥 풍기는 분위기가 더 성숙해 보였고, 나아가 묘한 분위기까지 풍겼었다.

버스킹 때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일까.

당연히 그런 감성의 노래들을 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혹시 모르니 두고 보자.

이런 곡도 잘 어울릴지도 모르잖아.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전주가 끝나고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음색은 여전히 매력 있었다.

음정, 박자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나 스스로 확인해본다.

같은 곡을 불렀던 참가자들이 많은데. 그들과 비교해 최고인가?

확신하기 힘들었다. 애매했다.

그럼 이걸로 합격할 수 있을까?

이것도 판단이 안 선다.

나는 내 능력이 가져다주는 멜로디를 들었고, 버스킹에서도 그녀의 가능성을 똑똑히 확인했지만······.

이 사람들은 그렇지 않잖아?

“어. 잘 들었고.”

젠장. 길성혁이 노래를 잘랐다. 그것도 후렴 중간에.

모든 참가자들에게 계속 이런 식이었지.

“춤 준비한 거 있나?”

“···없습니다.”

목소리가 움츠러들어 있다.

얼굴은 더 하다. 여기서 나가면 그 즉시 울 것만 같았다.

어떡할까. 그냥 이렇게 끝내도 될까?

내가 이 채점지에 만점을 주더라도 붙는 걸 확신할 수 없었고.

여전히 귓가를 간질거리는 멜로디가 날 조급하게 만든다.

“그럼 나가봐요.”

길성혁이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동시에 최정아의 시선이 툭 떨어졌다.

누구라도 그럴 거다. 몇 년을 연습하고, 몇 시간을 기다려, 1분 만에 평가가 끝이 난다면.

나는 망설임을 멈추고, 책상 위에 올려진 마이크를 집었다. 오늘 처음으로.

“잠시만요.”

“···?”

“···?”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등을 돌려 나가려던 최정아도 멈춰 서서 날 보고 있다.

“한 곡 더 들어봐도 될까요?”

최정아를 보며 물었다.

옆에서 날 보는 시선들이 따끔거린다. 특히 맨 끝에서 쏘아지는 시선이.

상관없다.

난 내가 만든 곡을 썩히고 싶지도. 가장 잘 불러줄 사람을 두고 다른 이에게 넘기고 싶지도 않으니까.

뭐, 길성혁이 노려보는 건 이미 익숙하기도 하고.

“아···네, 네. 그럼 제가 이번엔 제인의 비커즈···.”

그것도 아니지, 이 친구야.

“아뇨. 제가 듣고 싶은 노래가 따로 있어서요.”

어디선가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볼 필요도 없이 길성혁이었다.

“네?”

“선혜경님의 ‘기억해야 한다면’, 혹시 알아요? 그게 최정아씨 목소리에 잘 어울릴 거 같은데.”

마이크를 양손으로 움켜쥔 최정아가 고개를 파닥인다.

그때 길성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기로. 니가 오디션 처음이라 잘 모르나 본데, MR이 있어야 부르지. 듣고 싶다고 아무거나 얘기하면 어떡해나. 그것도 그 옛날 노랠.”

짜증이 섞인 말투 그 자체.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아니면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

둘 다인 거 같긴 한데···.

뒤이어 ‘무슨 노래방도 아니고.’라는 투덜거림까지 튀어나왔을 때.

“혹시, 반주 없이 불러봐도 되나요···?”

최정아가 불쑥 제안했다.

핸드폰으로라도 틀자고 할지 머릴 굴리다가 최정아를 돌아봤다.

그녀의 시선이 아주 잠깐 나에게 향했다가 스르륵 내려간다.

이쯤 되자 길성혁도 수염이 덥수룩한 턱을 긁으며 마지못해 말했다.

“끙. 해봐, 그럼.”

마이크를 끄고 내려놓자마자, ‘뭔 자신감이야.’라고 중얼거리는 걸 잊지 않았다.

저거 습관인가? 사람 들으라는 듯 한 마디씩 꼬랑지 다는 거.

반주가 없으니 최정아의 숨소리까지 스피커를 통해 나온다.

잠깐의 숨 고르기. 그리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이전 곡과는 많이 다른, 차분한 감성의 노래가.

나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이거지! 저 목소리는 이런 노랠 불러야 해.

“오.”

이정훈이 작게 감탄한다. 그리고 노래가 이어질수록 좀 더 다향한 리액션을 선보였다.

“확 다르네?”

정수연도 몸을 앞으로 하며 의외라는 듯 말꼬릴 올렸다.

비스트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리액션이 좋은 양반이니까.

“크으···.”

한잔 자셨네.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조차도 최정아의 무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만하면 대성공이지.

그렇게 1절 후렴이 진행되는데.

“그만.”

길성혁이 손을 들었다.

그제야 최정아의 목소리가 뚝 멎었다.

“큼······그 정도면 됐어.”

착 가라앉은 말투로 마무리하는 길성혁.

또 저런 식으로 끊는다는 게 퍽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쨌든, 주변의 반응들을 보니 차가운 사이다를 양 것 들이킨 것처럼 속이 시원해진다.

정수연은 진한 화장이 무색하게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이정훈은 근육질 팔로 소심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반응들이었다.

속으로 됐다! 를 외치며 앞을 보았다.

최정아는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후련한 표정으로.

“다음.”

길성혁이 얼른 순서를 넘겼다.

최정아는 ‘감사합니다!’라며 심사위원 개개인을 향해 다섯 번을 꾸벅거리곤, 무대에서 내려갔다.

툭. 비스트로가 내 어깨를 치며 웃는다.

“뭐야? 어떻게 안 거야?”

최정아가 저 노랠 잘 부를지 어떻게 알았냐는 거다.

“그냥, 저런 목소리면 이런 노래에 잘 어울리겠다, 싶어서요.”

그러자 이번엔 이정훈이 말처럼 푸르르 웃으며 말했다.

“고작 1분 정도 들어놓고? 장 피디님 안목이 대단한데요?”

“크흠!”

길성혁의 헛기침이 파고든다.

이정훈은 눈치를 보며 자세를 원래대로 돌렸다.

푸흐.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채점지에 점수를 적어 내려갔다.

마지막에 코멘트란이 있었다.

글쎄. 뭐라고 쓰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 펜을 움직였다.

-지금 TKM엔 없는 새로운 색.

#

최정아의 오디션 이후로,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하고픈 말이 있으면 했다.

길성혁이 뭐라고 하든.

길성혁에 대한 반항 같은 게 아니라.

정말 간절해서 온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 생각해서.

가끔 자작곡을 준비해온 참가자에겐 이런 저런 조언을 길게 늘어놓기도 했다.

옆에서 비스트로가 도와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길성혁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고.

그러게 왜 왔어, 이 양반아.

마침내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오디션이 끝났다.

“하아아암. 수고하셨습니다아.”

근육질 팔뚝이 초라해질 정도로 축 처진 이정훈이 펜을 내려놓으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정수연도 자신의 목덜미를 반죽하듯 조몰락거리며 같은 소릴 했다.

“수고하셨어요.”

옆에선 비스트로가 내 상태에 낄낄대며 말했다.

“수고했어, 수고했어.”

대답할 힘도 없어 ‘느에’라는 요상한 긍정어를 날리고 의자에 축 널브러졌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하루 온종일 가만히 앉아서 춤 보고, 노래듣고···.

어쩐지 목까지 칼칼한 것 같아 생수병 뚜껑을 열어 입안에 부었다.

“이번엔 서울을 세 군데로 쪼갰는데도 이렇게나 많이 왔네요.”

정수연이 하소연하듯 말하자 이정훈이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만큼 노래를 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많아지고 있나 봐요.”

“노래는 무슨. 다들 공부는 하기 싫고, 마땅히 할 건 없고. 근데 연예인은 저들이 보기엔 잘 먹고 잘사는 것 같으니 간이나 보는 거지. 한심한 새끼들 천지였어.”

길성혁이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품에서 담배곽을 꺼내며 유유히 건물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쪽을 보다가 이정훈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다부진 어깨를 으쓱거린다.

“예민 보스시네 아주.”

웃음으로 화답했다. 무언의 동의랄까.

“장 피디님이 눈엣가시 같은 거지. 저럴 거면 왜 왔나 몰라.”

정수연이 겉옷을 주섬주섬 챙기며 거들었다.

“그나저나 오늘 장 피디님 처음이신데 정말 잘하셨어요. 매년 해온 저희보다 낫던데요?”

“맞소. 맞소. 중간중간 작곡자의 관점으로 조언하는 거 너무 좋았어요. 특히 곡 바꿔서 불러보라 할 땐, 크 진짜 멋있었지. 솔직히 좀 사이다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길성혁이 들어 올까 눈치를 보는 이정훈.

비스트로가 내게 어깨동무하며 껄껄거린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잘 할 거라니까.”

“비 피디가 오히려 더 걱정하시지 않았나?”

“그러게요. 중간에 쓰러질까 겁난다고 하셔놓고.”

“···헛, 허허. 내가 그랬나? 자, 자. 얼른 가자고. 피곤해 죽겠어.”

비스트로도 잠시 벗어두었던 찡 모자를 다시 쓰며 일어나 커다란 패딩을 몸에 둘렀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여전히 뒷정리가 한창인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며 로비로 나왔다.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때리니 정신이 좀 든다.

“장기로, 버스 타고 왔지? 집까지 데려다줄게.”

평소 같으면 괜찮았다 했겠지만. 지금은 몸이 너무 영 아니올시다.

그럼, 사양 않고···.

“저 그럼,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커피를 리터 단위로 마신 것 같으니 만일을 대비해야지. 남의 차 타는데.

다시 뒤쪽으로 돌아 화장실로 들어갔다.

볼일도 보고, 손도 씻고, 뻑뻑한 눈에 물을 적시고.

그러고 돌아서는데 하필, 이 타이밍에. 젠장.

길성혁이 들어왔다. 담배 냄새 풀풀 풍기며.

“하, 어딜 가나 있구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옆으로 비켜서며 지나치길 기다렸다.

길성혁은 끝까지 날 노려보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건방진 새끼.”

“······.”

가자. 그냥.

정말 얼른 나가려 했다.

뒤에서 중얼거리는 개소리만 아니었어도.

“회사에 도움 될만한 애를 뽑아야지. 지 취향을 뽑고 앉았어. 연습생 만들어서 뭐 어떻게 해보려는 거야 뭐야. 니미.”

< 015. 오디션 (2)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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