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4화 (14/221)

< 014. 오디션 (1) >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주말 사이, 차트는 수차례 몸살을 앓았다.

봄을 앞두고 신곡들이 쏟아지며 내려가는 곡, 끼어드는 곡, 올라가는 곡들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이 치열한 틈바구니 속에서 ‘봄이 올까요’는 잘 버텨냈지. 그리고 오히려 꾸준히 상승했고.

21위.

곧 앞자리가 바뀌기 직전이었다.

“···?”

TKM 사옥 앞 카페에서 차트를 보고 있던 나는 매장 내의 바뀐 노래에 고갤 들었다.

‘봄이 올까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분 진짜 묘하네.’

차트 상단에 오르니, 이런 상황도 생기는구나.

뒤쪽에서 여태껏 퀀텀보이즈에 대한 이야기를 꽃피우던 여자들도 노래에 반응했다.

“어? 이현 노래다.”

“누구?”

“이현. 그 세븐트릴에 있던 아이돌.”

“아, 아. 지난주에 왕따다 뭐다 난리 났었던?”

“응, 그거 터지고 세븐트릴, 걔네 컴백 무기한 연기 했다며.”

“맞아, 그렇다더라. 퀀텀보이즈는 그런 일 없어야 할 텐데···근데 이 노래 진짜 좋네?”

“그치? 처음엔 왕따 사건 터지고 궁금해서 들어봤는데 좋더라고. 얼굴도 잘생겼던데, 어떻게, 이쪽도 한 번 덕질 해볼까?”

“하나나 잘하세요. 이번엔 콘서트 티켓 예매 부디 꼭 성공해주시구요.”

“에이, 걱정 말라니까. 이번엔 성능 개쩌는 피씨방 알아놨어.”

남 얘기 엿듣는 취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라면 취미가 될 것도 같다.

내 노래가 좋다는 댓글은 봐도 봐도 질리지를 않는데, 이것도 그럴 것 같거든.

심지어 이건 리얼. 현실. 오프라인이잖아.

이러다 쉴 때마다 카페를 돌아다니며 내 노래가 나오나, 안 나오나 그거 듣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흐흐.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커피잔을 들었다.

커피가 반 정도 남았길래 주문대로 다가가 테이크아웃을 요청했다.

그리고 한쪽 벽에 기대어 후렴구를 흥얼거리는데.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녀의 대화가 들린다.

그들의 주제도 이현이었다.

“세상일 진짜 모르는 거다 진짜. 이현 배신자 이미지가 한순간에 씻겨나갈 줄 누가 알았겠어?”

“운이 좋았지. 한창 뚜드려맞다가 갑자기 세븐트릴 쪽이 터지면서 동정 여론이 엄청 커졌잖아. 인생은 타이밍이야.”

“그러게. 근데 그 운을 뒷받침할만한 실력도 괜찮긴 했어. 특히 곡은 이현한테 딱 맞게 잘 뽑았구. 신입 프로듀서가 한 건 했지.”

내용을 들어보니 TKM 직원인 듯했다.

직장 동료한테 듣는 칭찬은 또 느낌이 다르···.

“근데 작곡가 걔. 어린애가 좀 싸가지가 없는 거 같지 않아?”

..네?

남직원의 말에 헛기침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왜?”

그래, 왜?

“길성혁 피디님이랑 대판 했잖아. 누가 디렉하냐 문제로.”

“아, 얘기 들었어.”

“사실 신입 작곡가가 그게 말이 되냐고. 안 되잖아.”

“그렇긴 한데······.”

여직원의 목소리가 확 작아진다.

“길성혁 피디님 원래 아랫사람한테 막 대하는 걸로 유명하잖아. 다들 내색은 못 해도 쌤통이라는 반응이던데?”

“밑에 사람들이야 그렇지. 근데 팀장급들 생각도 그럴까? 아무리 그래도 신입 프로듀서가 까마득한 선배한테 그러는 건 아니지. 까놓고 길성혁 피디가 디렉 봤으면 더 좋았을 줄 누가 알겠어.”

“······.”

“누군 성질 없어서 굽실거리고 사나. 결과가 좋으니 천만다행이지 아니었어 봐. 걔 하나 때문에···아. 왜?”

“······.”

남직원은 자신을 쿡쿡 찌르는 여자를 돌아봤고.

여직원은 커피를 받아 돌아선 날 보며 입을 네모로 벌렸다.

결국, 의아해하던 남직원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내 쪽을 보았다.

“아.”

‘아’ 는 무슨.

심지어 아는 얼굴들이다. 오다가다 자주 봤던 마케팅팀 직원들.

정 대리의 소개로 인사도 한 적 있는.

“안녕하세요.”

가볍게 웃으며 인사했다.

좀 전 얘기 전혀 못 들었다는 듯이.

물론 귀가 안 들리지 않는 이상, 그럴 리는 거리와 목소리 크기였지.

“안녕하세요, 장 피디님···.”

“···크, 크흠.”

남직원은 낭패라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만 까딱 거리더니 눈을 돌린다.

나는 어색하게 날 보며 웃는 여직원에게 한 번 더 눈짓으로 인사한 후 카페를 나왔다.

‘뭐 이런 반응도 있을 거라 예상했잖아?’

회사가 이렇게 큰데. 이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는 거지.

툭툭 털어버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이제 올라가서······.

띵! 2층에서 문이 열리며 정 대리가 나타났다.

서류 더미가 가득 담긴 박스들을 들고서.

“대리님.”

“어, 어 기로씨.”

“저 주세요.”

“오 땡큐, 땡큐.”

박스를 나눠 들고 5층에서 내렸다. 이제 다시 줘도 된다는 정 대리의 말에 고갤 저으며 A&R팀까지 박스를 옮겨 주었다.

“고마워. 뭐라도 좀 줘야 하는데······알로에 주스 마실래?”

아니요.

됐다며 나가려는데, 문이 열리며 서재원 팀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와 정 대리를 비롯한 A&R팀 직원들이 서재원 팀장에게 인사했다.

끄덕이며 지나가던 그가 날 보곤 뭔가 생각났다는 듯 내 앞에서 멈춰섰다.

빙그레 웃는다.

“차트에서 꾸준히 오르고 있던데?”

그러자 옆에 있던 정 대리가 말을 받았다.

“그래프 추이 보면 앞자리 1로 바뀌는 것도 금세겠더라고요. 잘하면 TOP 10에도 들겠던데요?”

그 얘길 듣자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올 뻔했다.

TOP 10이라니! 차트 인조차 해본 적이 없던 나에겐 구름에 가려진 빌딩 꼭대기 같은 곳이었다.

그런 곳을 이젠 ‘잘하면’ 들 정도가 된 거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진심으로.

서재원 팀장이 여전히 옅은 미소를 머금고선 말한다.

“TOP 10에 들면 선물 하나 하지. 뭐가 필요한지 잘 생각해봐. 장비도 괜찮고, 아니면 다음에 누구와 작업해보고 싶은지도 괜찮고.”

놀란 표정을 본 그가 걸음을 옮기며 말을 덧붙인다.

“물론 우린 매칭을 해줄 뿐. 설득은 네 몫이고.”

‘이현 때처럼.’이란 뒷말이 이어져 들리는 것 같았다.

“넵.”

목소리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다.

서재원 팀장은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할 얘기가 더 남았나?

그가 ‘그건 그렇고···.’라며 말끝을 늘인다.

그러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

“혹시 오디션 심사 같은 거 해볼 생각 있어?”

#

“후우우우우···.”

겨울의 끝자락이 덜미를 딱 잡혔다.

꽃샘추위다.

오늘도 핸드폰 가게들은 스피커 자랑에 여념이 없다.

그 고막 테러 구역을 지나 분수대 앞에 도착했다.

“······.”

하지만 기대하던 얼굴은 없었다.

누군갈 기다리는 듯한 사람들만 잔뜩 걸터앉아 있을 뿐.

그래도 기다려 볼 겸.

분수대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서재원 팀장의 물음에 나는 고민도 없이 하겠다고 대답했다. 옆에서 정대리가 예스맨이냐며 킬킬댔고.

사실 내겐 기회였다. 잠깐이나마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기회.

그 기회를 덥썩 움켜쥐고서 여기로 왔다.

카페 알바생에게 TKM 오디션에 나올 생각 없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혹시나 거절할까, 어떻게 설득할지까지 고민하며 왔는데······.

시간이 지나도 카페 알바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쩝. 나름 일찍 퇴근했는데 말이지.

툭. 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좀 더 일찍 와 봐야겠어.’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맘대로, 계획대로 되나.

결국, 오디션 전날까지도 카페 알바생과 만나는 일은 없었다.

#

오디션 당일.

종로에 있는 코스아트센터로 향했다.

이곳이 TKM 공채 오디션의 서울 제3 오디션장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제2 오디션장이 끝이었는데, 이번에 지원자가 많이 몰려 서울에만 3개로 늘렸다고.

그렇게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입구부터 사람들이 엄청 많다.

나이를 불문하고 상기된 표정의 지원자들과 그들과 함께 온 부모, 친구, 학원 선생님들.

한쪽엔 현장 접수대가 있었는데 그곳 또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빙 돌아서 오디션이 치러질 강당으로 들어섰다.

“어, 왔어?”

비스트로가 찡 박힌 캡 모자를 흔들었다.

옆에 있던 붉은 스웨터 입은 여자와 덩치 좋은 남자가 내 쪽을 돌아봤다.

“장 피디님? 맞죠?”

붉은 스웨터 여자가 물어왔다.

“예.”

“반가워요. 정수연이에요.”

함께 심사할 사람들에 대해선 익히 들었다.

정수연이라면 안무가였다.

그렇담···.

“전 이정훈입니다. 하하.”

해맑게 웃으며 다부진 손을 내미는 남자는 보컬 트레이너겠고.

솔직히 헬스 트레이너가 더 어울리는 것 같지만.

내가 이들과 간단한 얘길 나누는 사이, 스태프들이 긴 책상을 이어붙여 심사위원석 세팅을 마쳤다.

자리에 앉자 비스트로가 생수에 비타민을 타서 건넨다.

“마셔둬, 마셔둬. 그래야 버틴다.”

“그 정도에요?”

“당연하지. 지원자들이야 준비해온 거 하나하고 가지만 우린 그거 수백 개를 주구장창 봐야 하잖아. 이따 두, 세 시쯤 되면 말도 안 되는 게 괜찮아 보이고 그런다니까.”

고개를 내젓던 비스트로가 어느새 노래진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나도 따라서 한 모금 머금었다.

윽, 시다. 셔.

입맛을 다시며 옆에 있는 채점지를 끌어왔다.

나눠진 항목별로 최고점은 10.

노래, 춤, 스타성 총 30점.

단, 노래만 준비해온 참가자에 한해선 춤은 공란으로 둬도 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렇게 채점표에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

스태프가 종이를 접어 만든 명패를 각 자리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내 앞에도 ‘프로듀서 기로’라고 적힌 명패가 올려졌다.

괜히 뿌듯하네.

만지작거리며 웃음 짓는데 스태프가 의자 하날 더 가져온다.

“···?”

누가 더 오나? 내가 알기론 이렇게 네명이 전부인데?

-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영 보기 싫은 사람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왜? 왜 온 거지?

이번 오디션엔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던 길성혁이 팔자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어? 피디님. 안 오신다더니···.”

붉은 스웨터. 그러니까 안무가 정수연이 일어나며 물었다.

비스트로와 이정훈도 따라 일어난다.

나도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걱정돼서 왔지. 걱정돼서.”

“네?”

“무슨 깜냥도 안되는 게 심사를 한다니까.”

누가 봐도 나를 향한 말이었다.

저 양반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온 건지 의문이다.

진짜로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게 짜증나서? 괴롭히려고?

그럼 진짜 미친놈인데···.

“······.”

순식간에 싸해진 분위기.

다른 사람들은 괜히 내 눈치만 볼뿐이었다.

그딴 거 신경 안 쓰는 마이웨이 길성혁 피디는 ‘아이고, 힘들다.’라고 앓는 소릴 하며 남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곤 생수 뚜껑을 따며 말했다.

“빨리 끝내자고. 오늘.”

잠시 후, 검은 패딩조끼를 입은 스태프가 앞으로 나와 시작을 알렸다.

“참가자들 한 명씩 들어올 거예요!”

얼마 있지 않아, 첫 번째 참가자가 우리 앞으로 달려와 섰다. 바짝 언 표정으로.

“노래 들어볼게요.”

길성혁이 착 가라앉은, 세상 무성의한 말투로 말했다.

“예, 옙!”

참가자가 목을 가다듬더니 준비된 MR에 맞춰 노랠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길성혁이 마이크를 집어들었다.

“네, 잘 들었어요.”

순간, MR이 뚝 끊어졌다.

“아···.”

“춤 준비했어요?”

“아, 아뇨. 노래만···.”

“네, 그럼 나가셔도 좋아요.”

끝? 이렇게?

“굳이 볼 필요 없는 애들은 바로바로 넘길게.”

그렇게 말하곤 스태프들에게 손을 휘휘 저으며 진행하란 신호를 보내는 길성혁.

그 다음부턴.

“자, 다음.”

“네. 다음.”

“잘 들었어요. 다음.”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아? 조금 더 들어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들었지만 이미 참가자는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들어올 때보다 축 처진 등을 보이며.

“다음.”

이번에도 길성혁의 신호에 따라 스탭이 머리에 찬 마이크에 대고 뭐라 하자 한 여자가 강당 안으로 들어왔다.

떨리는지 잠시 멈춰서서 가슴 쪽에 손을 얹고선 심호흡을 한다.

그러나 그걸 기다려 줄 길성혁이 아니지.

“다음!”

높아진 언성에 깜짝 놀란 여자가 후다닥 우리 앞에 섰다.

“아, 안녕하세요!”

우리에게 머리를 바닥에 찧을 기세로 인사하고, 다시 펴지는 허리.

상기된 시선이 나와 정면으로 부딪히며 여자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변한다.

그리고.

나도 저런 비슷한 표정일지도 모르겠다.

느낌은 많이 다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만큼 놀랐으니까.

“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럴만하잖아.

‘그렇게 분수대를 서성였는데, 한번을 못 보다가······.’

여기서 보게 됐으니.

< 014. 오디션 (1)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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