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3화 (13/221)

< 013. 제법이잖아? >

TKM 프로덕션 본부의 A&R팀.

길성혁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에 이를 갈며 팀장실로 향했다.

장기로, 그 건방진 놈을 옭아매기 위해 내기 내용을 퍼트린 게 화근이었다.

놈의 곡이 30위 권 안으로 진입하면서 졸지에 신입 길들이려다 역으로 당한 꼴이 돼버린 거다.

“씨부럴.”

부리부리한 눈을 이곳저곳에 쏘아대며 자신을 향한 시선을 차단한 길성혁이 팀장실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렸다.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문을 열어젖히니.

서재원 팀장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옆에 두고 뭔가를 검토하는 중이었다.

길성혁은 한숨을 뻑뻑 내쉬며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쪽팔려서 회사 못 나오겠다.”

서재원 팀장은 말없이 티를 머금었다.

“일이 꼬이려니 이렇게 꼬이냐. 싸가지 없는 새끼 버릇 좀 고치려다 이게 무슨···니미, 갑자기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지질 않나, 그룹 내 왕따 사건이 터져서 여론을 단번에 뒤집어버리지 않나. 아주 지랄이야, 지랄.”

“운이 좋았지.”

잔을 내려놓은 서재원 팀장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길성혁이 길길이 펄쩍 뛴다.

“내 말이! 뭔 이런 좆같은 경우가! 하···이제 어떡할 거야?”

“뭘 어떡하나. 지금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서재원 팀장의 미소가 짙어졌다. 반대로 길성혁의 낯빛은 갈라지다 못해 퍼석거렸다.

“상? 사앙!?”

“본부장님도 오늘 아침에 궁금해하시던데. 어떤 친구냐고.”

“그깟 차트 30위가 무슨 대수라고···!”

“신인 작곡가가 이미지 바닥 친 가수 데리고 오른 순위가 그 정도라면, 얘기가 좀 다르지. 게다가 오늘 보니 곧 20위도 넘겠더만.”

“어쩌다! 어? 어쩌다 운이 좋아 한 번 그런 거지! 에이 씨발. 이번에 주제를 좀 알려줬어야 하는데···얼마나 기고만장해지겠어!”

이젠 거의 뒤 목을 잡고 드러누울 기세인 길성혁.

특유의 덤덤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서재원 팀장이 손에 들린 서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 그건 그렇고. 이번 공채 오디션 일정 확정됐어. 이번에도 심사할 거지?”

“지금 이 상황에? 내가 복도만 지나도 수군거리는데, 나더러 본사에서 하는 오디션 심사를 하라고?”

“좀 그래?”

“당연하지! 심사고 나발이고, 나 오늘부로 당분간 회사 안 온다. 필요한 거 있으면 작업실로 아래 애들 보내.”

“그럼 누구더러 심사하라 하지.”

“노는 놈들 많잖아!”

“별로 없어. 다들 하나 이상씩은 물려있어서.”

“아무튼, 난 안 한다. 젠장.”

그 후로도 길성혁은 10여 분간 끊임없이 툴툴댔다.

하지만 서재원 팀장의 반응이 밋밋하기만 했고, 결국엔 더욱 분통 터져 하며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

서재원 팀장은 그가 나간 자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러고 끝낼 리가 없을 텐데.”

다른 이도 아닌 길성혁이다.

그가 새파랗게 어린 신입을 인정해주고 넘어갈 리 없었다.

끈질기게 괴롭힌다면 모를까.

“흐음.”

젊은 나이에 TKM의 전속 작곡가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장기로.

길성혁의 말처럼 운이 좋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그런 운이 있었어도 곡이 좋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긍정적인 평가가 가득하진 않았을 거다.

“제법이잖아?”

첫 데뷔를 다른 프로듀서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해냈다.

게다가 그 퀄리티. 누가 녀석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마추어였다 생각하겠나.

엔지니어들도 두 손을 다 들 정도였다고 하니, 역시 보통은 아니란 거다.

흥미롭다는 듯 입꼬릴 말아 올린 서재원 팀장이 캐스팅팀에서 보낸 서류를 툭 내려놓았다.

#

나는 구경꾼들 틈 사이에 들어가 섰다.

가까워질수록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귓가 아른거리는 멜로디가 말해주듯.

새하얀 얼굴은 분명 아는 얼굴이었다.

‘카페 알바생···.’

카페에서 보이지 않던 그녀가 분수대에 앉아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순간. 퍼즐이 딱 맞춰진 것처럼 개운했다.

그녀도 노랠 한다는 사실에.

내 능력의 윤곽이 어렴풋이나마 완성된 것 같았다.

학준이 형도, 이현도, 카페 알바생도. 모두 노래를 한다. 그리고 난 그들에게서 멜로디를 듣는다.

그들이 불러주었을 때, 가장 시너지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그들을 위한 멜로디를.

여전히 누구한테 들리고, 안 들리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바로 다음 곡을 시작하네?’

알바생이 멘트도 없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기타 줄을 살짝 튕겨보고, 몸을 숙여 앰프를 만지작거리다 다시 자세를 잡는다.

하얀 손에 쥐어진 분홍색 피크가 여섯 개의 줄을 쓸고 내려가며 전주가 시작되었다.

‘무슨 노랠 부르려나?’

메인 요리를 보며 포크를 드는 미식가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했다.

전주가 이어지며 어떤 곡을 부를지 눈치 챘을 땐.

너무 의외라 고개가 나도 모르게 기울어졌다.

서운한 바람? 선혜경의?

기껏 해 봐야 이현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이는데. 이게 대체 언제 적 노래야?

놀라는 사이, 앰프에서 맑고 매력적인 음색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황당한 웃음을 흘렸다.

20대 초반의 여자가.

대부분 20대가 주를 이루는 번화가에서.

20년도 더 된 노래를 하고 있다.

이 광경이 굉장히 이질적일 법도 한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 이렇게 어울리는 건데?’

신기하고, 또 좋아서 입이 안 다물어진다.

속으론 이미 박수를 백번쯤 쳤다. 기립은 애초부터 하고 있고.

다음 곡도, 그 다음 곡도.

선혜경, 주용석, 차지운을 아우르는 7080의 감성이었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노랠 들었던 나조차도 정말 오랜만에 듣는 곡들.

“아는 노래가 하나도 없네.”

“그러게, 가자. 춥다.”

생소하다 보니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던 반면.

“무슨 노랜진 모르겠는데, 듣긴 좋다.”

“이거 되게 옛날 노래 아냐?”

“그런 거 같아. 엄마가 흥얼거리는 거 들은 적 있는 거 같은데.”

아는 곡이 아니더라도 듣기 좋다며, 따라서 흥얼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확실히 옛날 멜로디가 따라부르긴 쉬운, 그런 건 있지.

‘근데 또 그대로 부르진 않네.’

약간의 편곡이 되어있다.

스스로 멜로디를 변형시킨 거다.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한 시대에 스며든 곡들이었지만 지금 듣기엔 다소 고루할 수 있으니.

그걸 과하지 않게, 필요한 부분에서만 슬쩍슬쩍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분들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감사합니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는 사이, 곡이 끝났다.

마지막 곡이었기 때문인지 짧은 멘트가 있었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됐다. 하지만 당장 돌아서서 약속 장소로 가긴 싫었다.

말이라도 붙여볼까?

한동안 정신이 없어 카페 갈 일이 없었지만 그 전엔 자주 갔었고,

JME 기획사의 노랑머리 일까지 있었으니 그래도 알아보지 않을까?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명분이 없잖아.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을 리 없는 TKM 신입 작곡가. 그게 나다.

주고 싶은 곡도, 불러야 할 사람도 있는데, 아직 난 뭐가 없어도 너무 없다.

위치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내가 필요한 사람을 언제든 회사로 데려올 수 있는 그런 위치.

그러기 위해선 내 이름으로 된 히트곡들이 몇 개나 필요할까?

그때. 옆쪽에서 혀 구부려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앙코오르. 아앙코올.”

공연이 끝나 돌아서는 사람들 속에서 한 아저씨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앵콜인지 알콜인지 모를 단어를 외치며.

그러더니 알바생 쪽으로 다가간다.

당연히 이를 확인한 알바생의 얼굴은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겁에 질릴 수밖에.

‘어디서 본 듯한 상황인데···.’

비슷한 상황에, 앞으로 나서는 나까지도.

나는 보폭을 넓혀 알바생과 취객 사이로 성큼 끼어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노래 잘 들었어요.”

“예···?”

흔들리던 동공이 내 앞에서 멎었다.

다행히 나를 기억하는 것 같았다.

확인차 스윽 돌아본다.

비틀거리며 거침없이 다가오던 아저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참내.

다시 앞을 보았다.

알바생은 안도하는 눈빛을 마구 뿜어내며 내게 꾸벅 인사했다.

“가, 감사합니다! 또요···.”

나도 푸근하게 웃으며 마주 인사했다.

“이런 상황에서만 보는 거 같아요.”

“아···아닌데. 자주 오셨는데. 머리 막 짧으셨을 때.”

전역 직후를 얘기하는 거구나.

사실 여전히 짧다. 언제 기냐···.

“깜짝 놀랐어요. 여기서 버스킹 하는 걸 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헤에···원래는 다른 데서 했었는데, 자리 경쟁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요.”

배시시 웃으며 수줍게 이야기하는 알바생.

나는 끄덕이며 선 정리를 도왔다.

“아녜요! 안 도와주셔도 되는데!”

“저 양반이 언제 또 이리로 올지 모르잖아요.”

옆 골목을 향해 턱짓했다.

거기엔 아까 그 취객이 여전히 몸을 가누지 못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가끔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가며.

“아···.”

그녀처럼 쭈그려 앉아, 기타 선과 마이크 선을 앰프에서 뽑았다.

“원래 음악 했었어요?”

“네? 네. 학교를 다니 거나 한 건 아닌데, 노래하고 싶어서 알바 하면서 과외도 다니고 그랬었어요.”

얘길 듣는데 또 어쩐지 학준이 형과 이현 생각이 났다. 노래를 좋아한다는 점이 닮아서.

“노래 잘하시던데요?”

“아하하. 감사합니다아.”

민망한지 얼굴을 푹 숙이며 마이크 선을 돌돌돌 빠르게 만다.

“아, 카페 알바 그만두셨다던데.”

무심코 물었다.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꼭 가서 물어본 것 같잖아. 물어본 거 맞지만.

다행이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 네. 연습에 더 집중하려고···.”

“오.”

대신, 대단하다는 듯 바라보자 다시 한번 고개가 푹 내려갔다.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으며 앰프 가방을 벌렸다.

그나저나, 앰프 EQ가 왜 이렇게 되어있지?

이거 좀 만져주면 더 괜찮을 거 같은데···.

“제가 꼭 가고 싶은 기획사가 있는데 오디션···.”

“네?”

“아, 아녜요. 뭘 그렇게 보고 계세요?”

“이거 EQ 보시면 하이가 조금 올라가 있는데, 아까 부른 곡들은 사실 고음이 날카로울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멍.

-이란 글자가 머리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표정이다.

“제가 어마무시한 기계치에다 이 앰프가 친구 거라···그런데 혹시 음악 하세요?”

내가 그렇다고 말하려는 순간. 양쪽 모두 엇비슷한 타이밍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 이런···.

서로 어색하게 웃으며 각자의 전화를 받았다.

“어.”

-작곡가님~. 어디시냐. 걸어서 오는 놈이 왜 제일 늦으시냐. 성공했다 이거냐!?

아오, 귀야.

얼른 버튼을 눌러 불륨을 줄였다.

“뭐래, 거의 다 왔어. 금방 갈 게.”

-금방 어디!

“분수대야, 분수대.”

그 사이 알바생은 ‘알겠어. 아까 내렸던 데로 갈게.’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마쳤다.

“저, 친구가 데리러 와서요.”

“들어드릴게요. 앰프.”

“아뇨, 아뇨! 괜찮아요. 아까도 들고 왔는걸요. 그리고 친구 차가 저기 길가로 올 거라 괜찮아요!”

손을 빠르게 내저으며 한사코 괜찮다는데 어쩌겠나.

데리러 온 친구가 남자 친구일 수도 있는 거고.

“그럼, 조심히 가세요.”

“네에.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기타를 등에 메고, 앰프 가방을 양손에 들고 종종 걸음으로 멀어진다.

그리고 손에 쥔 핸드폰은 여전히 통화 중이고. 젠장.

-야, 야 뭐냐?

“어. 안 끊었냐?”

-여자 목소리 뭐냐고. 이 쉑···늦은 이유가 여자 만나느라였어!

친구 놈의 말에 핸드폰 너머로 나머지 놈들이 난리가 났다.

성공하니 변했다는 둥, 배신자라는 둥, 오면 죄를 묻자는 둥.

볼륨을 더 줄여도 귀가 아파 핸드폰을 볼에서 뗐다.

저 멀리. 어느새 손바닥만 해진 알바생의 뒷모습이 보인다.

소속이 생기니 이런 점은 아쉽네.

곡에 딱 맞는 가수를 앞에 두고도 마음대로 주질 못하니.

“······.”

방법이 없을까?

< 013. 제법이잖아?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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