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2화 (12/221)

< 012. 바람은 결국 어디로 부는가 >

-이현 신곡 미쳤음. 노래 잘 부르는 건 알았지만, 이건 생각 이상인데?

-어 TKM 직원 수고하고.

-그냥 흔하디 흔한 발라든데?

-나 이현 팬도 아니고, 세븐트릴 안티도 아닌데 솔직히 흔한 발라드는 아님.

-ㅇㅈ. 피아노 전주 듣자마자 소름 쫙 돋고 노래 끝날 때까지 멍때림.

-노래도 노랜데 곡이 진짜 좋네. 이래서 곡이 중요한가 봄. 세븐트릴 때 이현이랑은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보임.

-노래만 좋으면 인성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부류들 많네. 쯧쯧.

-암만 좋으면 뭐 하나 부른 애가 배신자인데.

-세븐트릴이 이현 찍어누르는 거 보고 싶다. 얼른 컴백했으면. 세븐트릴 파이팅!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채연주 기자가 쏘아 올린 기사 때문에 각종 음악 커뮤니티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자연스레 이현의 곡이 발표되며 감자는 더 뜨겁게, 몸집을 부풀렸다.

원색적인 비난들 속에서 곡이 좋다는 반응들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에 세븐트릴 팬들은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그렇게 비웃었던 곡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니 성이 난 거다.

이쯤 되니 그들을 거북해하는 무리도 생겨났다. 극성이라며, 눈살을 찌푸린다.

그렇게 인터넷이란 외나무다리에서 서로 치고받기에 이르렀다.

앨범 리뷰란은 전쟁터가 된 지 오래였다.

호록.

뜨끈한 커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입안엔 씁쓸함이 남는다.

현 차트 35위.

밤새 두 계단 상승했다.

성공적인 차트 진입이었다.

숫자로만 본다면.

반면, 비스트로를 통해 들은 타 부서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하다고 한다.

애초에 정했던 컨셉과는 너무나 다른 길을 가고 있기에 그들도 당황스러운 거다.

음악에 전념하며, 아이돌이었지만 이젠 진짜 가수.

-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지만, 지금은 온갖 인터넷 싸움을 조장하는 이슈메이커가 돼버린 상황.

‘이제 터져주기만 하면 돼.’

머지않아 터질 폭탄.

이왕이면 너무 늦진 않았음 좋겠다.

날짜를 정확히 모르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가···.

작업실로 들어갈까 해서 몸을 일으키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길성혁과 눈이 마주쳤다.

‘작업실도 따로 있는 양반이 여긴 또 왜 온 거야···?’

성큼 내 앞까지 다가오는 길성혁.

인사를 했으나 당연히 안 받아준다.

자연스러워서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차트 진입 했다더만.”

어디서 들었다는 듯, 별거 아니라는 듯, 전혀 위기의식이 없다는 듯, 툭 내뱉는다. 오히려 입꼬릴 올리며.

유치하지만, 질 순 없지.

나도 덥석 받았다.

“감사합니다.”

“감···사···.”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보기 좋게 일그러지는 얼굴.

“감사 얼어 죽을. 노이즈 잔뜩 묻히고 차트 오르는 게 곡이 대단해서 같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래서 아마추어는 안 되는 거야. 그저 반응 뜨거우면 그게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좋아라 하지.”

하고 싶은 말이 그건가.

네 곡이 대단해서, 네가 프로듀싱을 잘해서 성적이 나온 게 아니라 결국 운이었단 거?

‘글쎄.’

내가 10년을 훌쩍 넘게 음악을 해오면서 느꼈던 건 좀 다르다.

결국, 운도 실력이란 거.

그리고 운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거.

내가 기꺼이 내 곡에 노이즈를 묻힌 것처럼 말이다.

“운이 좋았다, 말씀하러 오신 거면 인정합니다. 운이 좋았네요.”

짙은 눈썹이 요동친다.

“하, 건방진···이게 계속 갈 것 같아? 운 좋게 40위 안에 들어갔지만 잠시뿐이야. 이제 봄에 맞춰 컴백하는 가수들 천지가 될 거고, 30위는커녕 곧 차트 밖으로 쭉쭉 밀려날 텐데.”

잠자코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자 길성혁은 뭐가 그리 맘에 안 드는지 더욱 성질을 부린다. 일그러진 얼굴로.

저거 다 나중에 주름 될 텐데.

“그리고 이현의 가수로서의 생명줄은 끊어지겠지.”

“······.”

내가 멈칫하는 것을 느꼈는지, 그가 신이나 비아냥댔다.

“이현에 대한 이미지는 완전히 굳어져 몇 년 안에 바꾸기 힘들 거고. 마케팅팀도 손을 놓을걸? 걔 아니더라도 이 회사에 신경 써야 할 연예인은 넘치니까.”

직접적인 공격이 먹히지 않으니 옆구릴 친다. 이현. 녀석에 대한 말이 먹히는 듯하니 그쪽을 공략해 악담을 퍼붓는 거다.

“운? 그 운이 이현의 숨통을 조일 텐데 운은 지랄.”

비웃음의 농도가 짙어지고.

평정을 유지하던 나조차도 울컥하고 뭔가 올라올 때쯤.

정 대리가 나타났다. 거의 뛰어오다시피.

“기로씨! 아···길 프로듀서님도 계셨구나.”

“어, 정 대리. 뭐가 그렇게 급해? 차트 순위가 벌써 곤두박질치고 있나? 아니면 이현에 대해 뭐가 더 터질 게 남았어?”

길성혁의 조롱에 가까운 한마디 한마디가 비릿하다. 생선을 날로 씹어먹은 것처럼.

“아, 저 그게······.”

“무슨 일이에요?”

이쯤 되니 나도 철렁했다.

뭐가 문제길래 저렇게···.

정 대리가 날 보며 말했다.

“터졌어.”

“···?”

“푸핫! 뭐가 또 터졌나 보지? 이번엔 뭐야? 설마 여자 문제? 하긴, 그래도 이상할 게 없긴 하지. 어린놈의 자식이 발랑 까져 가지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지 나와 길성혁을 번갈아 보던 정 대리가 말을 이었다.

“터지긴 터졌는데 이현 쪽이 아니라···.”

설마.

“세븐트릴이에요.”

“뭐······?”

어리둥절해진 길성혁.

그러거나 말거나, 핸드폰을 꺼내 얼른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거기서 세븐트릴 멤버인 최성우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마냥 활력이 돌았다.

드디어 터졌구나!

기사 제목을 눌러 들어갔다.

sns를 캡쳐한 사진 하나가 떠오른다.

초점이 나간 흑백사진과 구구절절한 글.

-

분위기 때문이었다.

나도 동참하지 않으면, 똑같이 당할 것 같은 분위기.

그땐 몰랐다. 네가 나가버린 후 괴롭힘이 나에게 향할 줄은.

당해보니 알겠더라. 네가 얼마나 힘들게 버텼을지.

나는 못 버티겠다. 미안하고, 네가 잘 됐으면 좋겠다.

-

뭔가가 듬성듬성 빠진, SNS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는 글이었지만 읽는 이들을 이해시키기엔 충분해 보였다.

“그 기사가 사실이었나 보네요.”

“그게 뭔···.”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길성혁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내.

“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꿈틀댔다.

#

-헐. 세븐트릴이 이현을 왕따시켰던 거임?

-기사 내용만 보면 그런데? 그리고 이현 나가니까 이젠 최성우를 괴롭힌 거고.

-미쳤네, 세븐트릴.

-젠장, 우리 현, 믿고 있었다구!

-이현이 왕따 당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잖음?

-아, 그럼 최성우도 당할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고? 이야, 이게 쉴드가 된다고 보냐?

-세븐트릴 팬들 뇌절ㅋㅋㅋㅋ

-피아식별 안 되기 시작ㅋㅋ

-전 이만 이현 신곡 들으러 갑니다.

-노래 진짜 좋음. 안 들어보셨으면 다들 들어보세요. 개 쩜!

이 아름다운 댓글창을 보라.

우릴 향해 매섭게 불어오던 바람이 방향을 바꿨다.

댓글 중 누군가의 말마따나.

역의 역풍이었다.

길성혁은 얼굴이 벌게져선 돌아갔다.

꼭 부글부글 끓는 주전자 같았달까?

음, 커피 맛있어.

“일이 잘 되려니 이럴 수도 있구나. 근 5년 간 내가 본 타이밍 중 가장 절묘했다, 진짜. 가만, 지금 차트 몇 위지?”

어느새 작업실에서 나와 한 자리 차지한 비스트로가 말했다.

마지막 말에 정 대리와 내가 돌아봤다.

씨익. 비스트로가 본인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웃고 있었다.

“32위.”

“일 터지고 한 시간 만에 세 계단이 올랐네···.”

정 대리가 얼떨떨하다는 듯 말했다.

비스트로가 낄낄거리며 등을 친다. 솥뚜껑만한 손바닥이라 무지 아프다. 그런데도 웃음이 나온다. 기분 째진다.

“키야, 인터넷 반응은 점점 더 뜨거워지는데? 이 기세면 곧 30위 안에 드는 거 아냐?”

감탄하던 비스트로가 아쉽다는 듯 테이블을 쳤다.

“아, 아까 성원이 데리고 나와서 그 양반 표정을 봤어야 하는 건데!”

아쉬워하는 비스트로.

정 대리는 서 팀장님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기대된다며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그건 나도 좀 궁금한데?

잠깐 사이, 메시지들이 말 그대로 쏟아지고 있었다.

한 1년쯤 꺼놨다가 킨 것처럼.

그 중엔 채연주 기자의 메시지도 끼어 있었다.

[기로씨 최성우 SNS 봤어요? 완전 대박났던데···기로씨, 혹시···]

읽기 겁난다. 설마 이럴 걸 알고 있었냐고 추궁할 것 같아서.

학준이 형의 메시지도 있었다.

튜너 사이트에 들어가 상세정보를 캡쳐 해서 보냈다.

작, 편곡에 내 이름에서 성만 뚝 떼어낸 ‘기로’라는 프로듀싱 네임이 박혀있었다. 나다, 나.

다음으론···강병식. 아, 맞다. 물어봐 준다 했었지.

“대리님. 혹시 TKM에 오디션 계획 나온 거 있어요?”

“당연히 있지. 그거 이미 작년 말에 년 계획으로 다 짜여서 나오는데.”

“언제에요?”

“왜, 누구 아는 사람 지원한데?”

“아뇨. 친···동기가 학원에서 일하는데 궁금해 하더라고요.”

“친동기는 뭐야. 친한 동기인가. 아무튼, 다음 달에 하나 있어. 아마 이번 주 중으로 공지 나갈걸?”

“아.”

끄덕이자 정 대리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너 친한 동기라고 거기다 정보 퍼다 주면 안 된다?”

친한 동기 아니고.

퍼다 줄 생각도 전혀 없고요.

결정적으로.

“아는 게 없는데요?”

“사실 나도. 하하.”

정 대리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같은 프로덕션 부서라 해도 A&R팀이 캐스팅팀의 모든 준비 과정을 알 순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친척 동생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음 메시지로 넘어가려는 때였다.

“어? 와아···.”

비스트로가 놀라는 소릴 내더니 이어서 낮게 감탄했다.

그쪽을 돌아보자 비스트로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

“이현 실검 1위 찍었다.”

“···!”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아주 가볍게 차트 30위를 돌파했다.

#

골목길이 온통 붉다.

해가 지는 걸 보는 게 낯서네.

줄곧, 아침에 출근하면 깜깜해져 퇴근이었으니까.

TKM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주말 같은 주말이었다.

습관처럼 차트를 확인한다.

25위에 올라있는 ‘봄이 올까요’. 아까 전까지만 해도 26위였는데, 또 한 계단 올랐다.

길성혁 번호만 있다면 캡쳐해서 보내주고 싶네.

“따듯한 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 할게요.”

집 앞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키고, 기다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멜로디가 들리던 카페 알바생이 보이지 않았다. 일 관뒀나?

내가 오랜만에 오긴 했나 보다.

“커피 나왔습니다.”

바뀐 알바생이 주는 커피를 받아들며 조심스레 물었다.

“원래 계시던 분은 안 보이시네요?”

알바생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리고 한숨.

“일 관뒀어요.”

귀찮다는 듯, 짜증 섞인 말투였다.

돌아서서 앞치마를 털며 ‘대체 몇 명째야···.’라고 작게 투덜댄다.

그 알바생의 인기를 생각하면 바뀐 알바생이 저러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 때문에 카페에 오는 이들이 꽤 많았으니까 오죽 물어봐 댔을까.

“수고하세요.”

카페를 나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내 쪽으로 향한다.

이윽고 나름 번화가라 할 수 있는 거리에 도착했다.

매장 앞에 스피커를 가져다 놓고 볼륨 경쟁에 한창인 핸드폰 가게들.

온갖 댄스곡들이 겹쳐져 뭐가 뭔 노랜지도 분간이 안 갈 지경이다.

그 와중에 분수대 쪽에선 누군가 어쿠스틱 기타를 튕기며 버스킹에 한창이다.

나도 대학생 때 저런 적 있지. 건전지로 구동하는 JUNO-D 건반에 큐브 앰프 들고 학준이 형과 오들오들 떨면서 버스킹을 했었다.

‘약속 시간 좀 남았으니, 노래나 듣다 갈까?’

옛 생각에 미소지으며 분수대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워지며 노래가 들린다.

주변 소음 때문에 버스커가 정확히 뭘 부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신,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틈으로 버스커의 새하얀 얼굴이 언뜻 보였다.

아직은 멀어서, 긴 머리와 스타일 때문에 여자라는 것만 간신히 알 수 있는 정도.

“······.”

그럼에도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난 듯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 012. 바람은 결국 어디로 부는가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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