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1. 노이즈 마케팅 >
종로 어느 골목길에 위치한 카페에 들어서며 내부를 살폈다.
어딘가 약간 촌스러운, 그래서 종로 느낌이 물씬 나는 인테리어.
나무로 된 칸막이에 손님도 방금 나간 이들을 제외하곤 가장 깊숙이에 앉은 여자 한 명이 전부였다.
나는 긴가민가하며 그쪽으로 향했다.
“채 기자님?”
“아, 장기로 프로듀서님?”
멀리서부터 예상은 했지만, 상당한 미인이다.
과장 보태서, 내가 캐스팅 매니저였다면 왜 기자를 하냐고 명함부터 꺼냈을 정도.
“채연주예요. 그냥 연주씨라고 불러주세요. 아직 수습기잔데요 뭘.”
싱긋 웃으며 훅 들어오는 기세가 아찔하다.
오늘, 쉽지 않을지도.
채연주의 명함을 받아들며, 나도 명함을 건넸다.
얼마 전 나온 따끈따끈한 명함,
우리는 통성명을 마치고 커피를 주문했다.
김 올라오는 커피를 사이에 두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모전 발표 난 지가···.”
“일주일 정도 됐습니다.”
“맞다, 그랬죠? 저도 즉시 전속계약이란 조건이 걸려있길래 관심 있게 봤어요. 그런데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거기 수상자가 자기 학원에서 일하시던 분이라 하더라고요.”
그녀의 얘길 들으며 끄덕였다. 커피도 한 입 머금으며.
“이제 갓 입사한 수습 기자라 대단한 기삿거리 잡을 구석도 없고, 그렇다고 놀고만 있을 순 없으니 얼른 친구한테 부탁했죠.”
“아아.”
“헤, 나와주셔서 감사해요. 바쁘실 텐데···.”
“작업 중인 게 있긴 한데, 마무리 단계라 괜찮습니다.”
아주 잠깐. 채연주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은근히 턱을 괴며, 몸의 중심을 앞쪽으로 한다.
“그럼, 공모전 전엔 뭐 하셨어요?”
“군대 다녀왔어요.”
“어머, 그러면 전역하시자마자 바로 TKM과 계약하신 거예요?”
“거의 그렇죠.”
평범한 대화가 이어진다.
어떻게 공모전에 지원할 생각을 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준비했는지.
정말 작곡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보여주면 좋을 법한, 그런 인터뷰였다.
분명한 건,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그럼 작곡가로 데뷔는 언제예요? 공모전 곡으로 하는 거예요?”
적절한 질문이 들어왔을 때.
“아뇨. 다른 곡으로 진행 중입니다. 소속 가수의 복귀곡을 작업하고 있어요.”
미끼를 던진다.
채연주가 이 인터뷰에서 단순 인터뷰 이상의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채연주가 더욱 앞으로 붙는다.
“벌써요? 그거 엄청 대단한 거 아닌가? 신인인데 계약하자마자 가수가 정해진 거잖아요!”
살짝 휘는 눈꼬리가 미소를 더욱 매력적이게 서포트한다.
“그럼 혹시 그 가수가 누군지 물어봐도 돼요?”
그리고 웃음 뒤에 가려져 있던 본론이 훅 들어왔다.
“아···그게.”
“좀 곤란하신가? 하긴, 그쵸···왜 아니겠어요, 기획사는 보안이 생명인데.”
실망한 듯 삐죽거리는 입에 슬쩍 넘어간다. 아니, 넘어가는 척해준다.
“뭐, 어차피 곧 언론에 나갈 내용이니까···.”
확 밝아지는 채연주의 눈에는 아까까진 없던 색이 차올라 있다.
그럼 그렇지.
마침내 확신할 수 있었다. 채연주가 단순히 인터뷰만을 기대하고 오진 않았다는 걸.
설령 그랬더라도, 지금은 아니란 걸.
물론 자신이 아직 정확히 뭘 얻어갈 수 있는지는 모르는 듯하다.
그래서 메뉴를 설명해줬다.
“이현이요.”
“세븐트릴에 있었던 그 이현이요!?”
놀라는 건가. 기뻐하는 건가.
그 애매한 표정을 보며 나는 속으로 웃었다.
이제야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신입 작곡가 인터뷰 말고.
사람들이 관심 가지고 왈가왈부할 만한 그런 기사.
TKM와 이현은 역풍이 두려워 얌전히 갈 준비를 하고 있지만, 나는 역풍을 조장 하려고 한다.
우릴 향해 거세게 불도록 말이다.
그래야 세븐트릴의 민낯이 까발려졌을 때, 더 큰 시너지가 생길 테니까.
이현을 향한 동정 여론이 솟구쳐 오를 테니까.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채연주는 생각지도 못한 소득을 얻은 얼굴이 되었다.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려는 채연주를 보며 나는 슬며시 말을 꺼냈다.
“제가 어쩌다 보니 기사가 나면 안 되는 내용들까지 다 얘기해버린 것 같은데···.”
“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친구가 소개해준 분인걸요. 제가 기사 쓸 때 정말 조심, 또 조심할게요. 헤헤.”
진심일까?
상관없지.
“아, 그럴까 봐서요.”
“네?”
지금 내가 조금 사악하게 웃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껏 말씀드렸는데, 필터링하실까 봐.”
#
“······.”
“······.”
퀭한 눈들이 날 향해있다.
왠지 클래식 지휘자가 된 기분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시선들이 향한 곳이 내 손이 아닌, 입에 있다는 것.
나는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제야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흐아···!”
“끝났다!”
“여보세요. 아빠야. 어, 저녁 뭐 먹고 싶어? 치킨 먹을까?”
후반 작업을 도와준 엔지니어들이 늘어진다. 소파에, 의자에, 심지어는 테이블에.
“정말 고생하셨어요, 다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엔지니어가 의자에서 일어나 바지를 추켜올렸다.
길성혁과 마찰이 있었을 당시, 옆에 있던 엔지니어였다.
“장 피디도 수고했어.”
그가 주름이 깊게 파일 정도로 웃으며 다가왔다.
마주 웃자, 고갤 내저으며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시작한다.
“내가 나이 가지고 판단하는 뭐 그런 꼰대는 절대 아닌데 말이야···장 피디 올해 스물다섯이랬지? 참내, 이게 말이 되냐고. 무슨 10년 이상은 한 프로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스물다섯이라니. 난 저 때 뭐했더라···.”
민망하게 웃으며 물었다.
“제가 좀 까다로웠죠?”
제 발 저려서.
좀 까다롭게 하긴 했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지금 꽤 절박한지라.
“아냐, 아냐. 장 피디랑 일 해보니 오히려 없던 의욕이 생기더라고 욕심나더라니까? 본인이 솔선수범하잖아.”
“맞아요, 한 시간 간격으로 불쑥, 불쑥 찾아와선, 이거 아니야. 그거 아니야. 이러는 피디도 있는데 뭘. 악기를 대충 녹음하질 말던가. 우리가 무슨 베토벤이야?”
“누군지 확 알겠네.”
“쉿. 조심해야 해. 여기 방음이 잘 안 되거든. 그 누가 문을 망가트려서.”
웃음소리가 커진다.
그 모습을 미소를 띤 채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에 채연주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기사 띄웠어요~ (이모티콘)]
곰돌이가 풀밭을 뛰어다닌다.
“저 먼저 가볼게요.”
“어, 장 피디 고생했어요!”
“고생했어!”
녹음실을 나와 곧장 5층으로 향했다.
거기서 정 대리를 마주쳤다.
여기 곰돌인 세상 심각한 표정이다.
“어, 기로씨. 마침 연락하려 했는데···. 지금 아주 난리 났어. 기사 하나가 올라왔는데, 이게, 이거 봐봐.”
<전 소속사와 멤버들의 무시 속에서 꿋꿋이 버텼던 이현, TKM에서 꽃 피우나? 복귀 임박!>
아래 내용까지 쭉 살피고, 이에 대한 반응도 살폈다.
이쪽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올린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럼 이현이 전 소속사랑 세븐트릴한테 은근히 무시당해 왔다는 소리? 노래 파트를 의도적으로 줄였다는 것도 사실이고?
-딱 봐도 TKM이 노이즈마케팅 하는 거 같은데? 세븐트릴 물고 늘어져서 관심 끌려는 거잖아.
-그런 듯. 각자의 길을 간다고, 응원한다는 기사까지 났었는데, 이제 와서? 대형 기획사의 횡포임 이건.
-세븐트릴 소속사도 꽤 크지 않나?
-아님. 아무튼 아님.
-어쨌든 보기 안 좋네. 쿨한 척 나오더니 컴백 할 때 되니까 급했나 봐.
-배신자가 그렇지 뭐.
-이현 세븐트릴 아니면 어쩔 뻔했냐. 필요할 때마다 써먹네.
-징하다, 진짜.
-세븐트릴 더 이상 상처 안 받길···.
-세븐트릴 꽃길만 걷자!
-댓글 꿀 잼이네. 이현, 곡 나오면 앨범 리뷰란도 볼만 할 듯. 기대.
내릴수록 세븐트릴에 대한 응원과, 이현에 대한 심한 욕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거 터지고 지금 세븐트릴 소속사까지 연락 와서 다 지난 일 이런 식으로 할 거냐고 난리 치고, 우리 측 보도자료 아니라고 해명하고 아주 난리란다. 사운드베리 쪽은 아예 의도적으로 전화를 안 받는다더만.”
“그래요?”
“하, 노이즈마케팅이 이래서 위험한 건데. 바로 역풍 불잖아. 이현은 괜찮나 모르겠네?”
“···제가 전화 한 번 해볼게요.”
“그래, 그래. 걔가 요즘 기로씨 많이 따르는 거 같더만. 잘 달래봐.”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그러다 정 대리와 눈이 마주쳤다.
“아, 기로씨도 속이 속이 아니겠네. 본인 데뷔곡인데···.”
“괜찮아요.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겠어요.”
“그래도 기로씨에겐 여러모로 중요한 곡이었잖아.”
정 대리가 걱정스러운 눈초릴 보냈다. 서재원 팀장과 했던 약속 때문인 것 같았다.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가만 보면 멘탈이 아주 수준급이야. 신입이라고 안 믿어질 정도로.”
나는 작게 웃었다.
그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랍니다.
그걸 알 리 없는 정 대리가 도톰한 손을 내 어깨에 올린다.
“그리고 설사 이번에 TOP 30에 못 들더라도 너무 걱정하진 마. 서 팀장님이 말씀은 강하게 하셨어도 진짜 앞으로 계속 프로듀싱에서 제외하거나 그러실 것 같진 않으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 서재원 팀장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었는데 말이지.
“길 피디님도 있으니 중재하려고 일부러 세게 제안하셨던 것 같아. 근데 너가 덥석 받을 줄은 모르셨던 거지.”
아···?
“오히려 재밌는 친구가 들어왔다고 웃으시던데? 그러니 너무 걱정은 말라고.”
몇 번 더 토닥이던 정 대리가 수고하란 말을 남기고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
음원 발매 전날은 사실상 발매 당일이나 마찬가지다.
자정에 발매가 되기 때문.
음원 작업도 완전히 끝났겠다,
작업실에서 습작을 만들다가 시간 맞춰 회사 근처에 있는 술집을 찾았다.
‘여긴, 뭐 죄다 탕 밖에 없냐.’
메뉴판을 받아서 펼쳤는데 넘겨도 넘겨도 죄다 물에 빠진 생선, 고기다.
고기는 구워야 제맛 아닌가?
“형.”
부르는 소리에 고갤 들었다.
마스크를 벗으며 룸으로 들어오는 이현.
다행히 한결 가벼워진 표정이다.
안도하며 메뉴판을 내려놨다. 못 고르겠어.
“일단, 뭐 먹을래?”
메뉴판을 쭉 밀었다.
“오뎅탕. 콜?”
“그래, 그거 시키자.”
소주와 맥주도 한 병씩 시켰다.
버너와 주류가 먼저 서빙되어오고.
맥주부터 한 잔 따라 쭉 들이켰다.
크으, 시원해라.
“뭐 하다 왔어?”
“마케팅팀이랑 보도자료로 낼 인터뷰도 좀 하고, 어떤 프로그램 나갈지 회의도 하고.”
“프로그램 나가?”
“예능 같은 거 말고요. 교양 채널 음악프로그램 위주로.”
끄덕이며 정말 묻고 싶은 걸 물었다.
“어때, 좀 괜찮아?”
“어때 보여요?”
“괜찮아 보여. 연기면 배우 쪽도 생각해보자.”
“하하, 그럼 좋겠는데 연기 아녜요. 그날 형 전화 받고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형 말대로 차라리 잘 됐다 싶더라고요. 후련하고. 까놓고 그 기사 내용 다 맞는 말이잖아요?”
“그래? 난 잘 모르지. 네가 얘기한 적 없으니까.”
“아······.”
이현의 입이 달싹인다.
이내 녀석의 이야길 들을 수 있었다.
훗날 기사로 봤던 내용 말고.
이현에게 직접 듣는 자신의 이야기.
멤버들의 무시와 이에 동조하는 소속사.
그리고 은근한 따돌림과 괴롭힘.
결국, 못 참고 몸싸움까지 했던 이야기까지.
철 지난, 하지만 이현에겐 아직 선명한 기억을 들으며 잔을 비우고, 채웠다.
첫 만남의 뾰족뾰족 모나있던 전 아이돌 이현도,
곡에 욕심을 부리던 가수 이현도 아니었다.
그냥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된, 어린 애일 뿐.
모든 얘길 듣고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런 그룹은 어차피 저 혼자 무너지게 되어있어.”
“정말···그럴까요?”
되묻는 이현에게 확신에 찬 표정을 보여주었다.
그게 먹혔는지, 이현이 씨익 웃었다.
“그렇게 웃지 마. 상대적 박탈감 느끼니까. 잇몸을 드러내는데 어떻게 잘생길 수 있지?”
“형도 나쁘지 않아요.”
“어디가.”
“······나이가?”
“그래, 고오맙다. 뭐 더 처먹을래?”
그렇게 한결 가벼워진 술자리가 이어진다.
시간은 어느새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곡이 올라왔을 시간이었다.
“몇 위로 올라가려나.”
내 말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이현이 상기된 얼굴로 고갤 든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는다.
“난 마음 비웠어요. 그냥 차트 안에만 들어도 기적이겠다 싶은데···.”
그런 녀석이 뭔 핸드폰을 그렇게 쪼물딱거리나.
“야, 그럼 난 어떡하라고. 30위 안에 들어야 하는데.”
“그러게 왜 무모한 도전을···.”
“무모하다고 생각 안 하니까.”
진심이었다.
단 한 번도 안 될 거라 생각한 적 없었다.
지금 내겐 10년의 기억, 경험, 그리고 능력이 든든히 뒷받침해주고 있으니까.
기분 좋은 웃음 뒤로 결전의 한 시간이 흐르고.
“고마어요, 혀어엉.”
만취 상태가 된 이현이 흐물흐물거린다. 잘 마신다고 허세를 그렇게 부리더니.
녀석은 꾸벅꾸벅 졸게 내버려 두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튜너’를 켜두고 잠시 고민했다.
곡을 검색할까, 아니면 쪼듯이 차트를 볼까?
그때였다.
미친 듯이 메시지가 들어온 것은.
어?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언뜻 보인 숫자에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얼른 차트를 켠다.
딱 한 번. 엄지손가락을 위로 밀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37위. 봄이 올까요 - 이현>
< 011. 노이즈 마케팅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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