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10화 (10/221)

< 010. 해보겠다는 말 >

베이스 녹음을 마치고 불려간 팀장실.

그 안에서 마주한 길성혁의 표정에선 수산시장에 온 것 같은 비릿함이 전해졌다.

안쪽으로 들어가 인사를 했다. 서재원 팀장에게도. 길성혁에게도.

몇 시간 전, 그 사달이 있었지만 그래도.

“녹음 끝났나?”

서재원 팀장이 의자에 기대며 묻는다.

작게 끄덕이자, 길성혁이 하! 소릴 내며 혀를 찼다. ‘뭐 저런 놈이···.’란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짝다리를 짚으며 성난 목소리를 내뱉었다.

“회사 알기를 뭐 같이 아는 놈이야. 그러니 A&R팀 결정에도 못 따르겠다고 저러는 거지.”

서재원 팀장은 말이 없었다.

내게 시선을 주지도 않고, 책상을 톡톡 친다.

그것만으로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지 곡 지가 끌고 가겠다고 나한테 빠락빠락 대들더라고.”

“···.”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서재원 팀장이 생각을 좀처럼 읽기 힘든 얼굴로 끄덕인다.

“차라리 이성원 그 새낀 양반이었지. 진짜 또라인 얘야, 얘. 선배 피디한테 가수랑 쌍으로···하, 아직도 열 뻗치네.”

듣고 있던 서재원 팀장이 고갤 멈췄다. 그리고 길성혁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후배 핸들링 못 한다는 얘기 돌면 네 평판에도 그리 좋지 못해.”

길성혁이 움찔한다. 저 극강의 꼰대라 할 수 있는 길성혁이.

서재원 팀장이 대단하긴 하구나. 둘이 동년배라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나뉘는 위치가 분명해 보였다.

“···어? 아. 그, 그렇긴 하지.”

“거기다 좀 아까 우 팀장한테도 연락 왔었어.”

“뭐? 매니지먼트팀 우 팀장? 거긴 왜?”

“이현한테 지랄병 났다고 했다면서.”

“누가 어린놈 아니랄까봐. 그걸 또 일러바쳤어?”

“문밖에 이현 매니저도 있었다더군.”

“하아, 그 거지 같은 문···그건 내가 흥분해서 말이 막 나가 그런거고.”

당황한 길성혁은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미간에 그려진 내 천자를 더 깊게 만들었다.

반면 서재원 팀장은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장 작가.”

글 쓰는 작가 말고. 노래 쓰는 작가(作歌).

“예.”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한 번 혼자 끌고 가봐, 프로듀싱.”

“서, 서 팀장!”

길성혁의 언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서재원 팀장은 단호했다.

“일단 일 진행이 먼저야. 곡은 예정된 날짜에 나와야 하니까. 대신···.”

따갑다. 시선이.

무슨 얘길 하려고.

“TOP 30 어때?”

“···네?”

“네 길이 맞다고 우기려면 그 정도 성적은 나와줘야지. 그래야 네가 맞았다고 해줄 만하지 않겠어?”

그제야 옆에서 오만상을 찌푸리던 길성혁이 반색했다.

“그럼 못 들면?”

비릿하게 웃으며 묻자, 서재원 팀장이 서늘하게 말했다.

“책임을 져야지. 앞으로 작곡만 하고 프로듀싱 역량은 없는걸로.”

그 대답에 흡족한 얼굴이 되어선 끄덕이는 길성혁.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이 나를 보며 소리 없이 낄낄댄다.

절대 내가 TOP 30에 들어갈 리 없다는 확신과. 그러니 이제 그만 나대고 숙이고 들어오라는 무언의 조롱이 담겨있었다.

“어때, 그래도 할 수 있겠어?”

서재원 팀장이 재차 물어왔다.

“······.”

자, 선택의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이런 상황들은 많았었다.

그리고 그땐 항상 이런 어려운 길 앞에서 지레 겁먹고 숙였었지.

대체 그땐, 왜 그랬을까?

침묵이 길어지자 길성혁이 과장되게 웃는다.

“푸하하. 막상 책임이라고 하니 무섭지? 이제라도 그만 그 알량한 자존심 내려놓는 게···.”

“해보겠습니다.”

“!”

노이즈보다 못한 오디오가 뚝 끊겼다. 좋다. 귀가 리프레시 되는 느낌이네.

서재원 팀장조차도 살짝 놀란 눈빛으로 재차 확인한다.

“정말?”

“네, 해보겠습니다.”

오래전부터, 머릿속으론 많이 되뇌었던 문장인데.

새삼 내 입에서 나오니 낯설다.

해보겠다고.

할 수 있다고.

‘이렇게 내뱉고 보니 참 별거 아닌데.’

10년이면···.

오래도 걸렸다.

#

“······.”

“···왜요?”

비스트로가 자신의 손에 비하면 에스프레소잔으로 보이는 머그컵 하나를 들고 내 작업실로 찾아왔다.

그가 완전히 작업실 안으로 들어온 것도 아닌데, 벌써 좁다. 그래서 함께 나왔다.

쪼르르. 커피 한잔 내려 중앙 테이블에 앉았더니 비스트로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날 보았다.

“내가 그렇게 일렀거늘.”

혀를 끌끌 차며 내 머리통만 주먹을 쥐어 보인다.

“이 업계에선 신입의 패기엔 패는 걸로 응수한다는 걸.”

“아직 맞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러면 나중에 얼마나 몰아서 맞겠어.”

“하하···.”

소문이 다 났네.

근원지를 물어보니 웬 다른 팀 직원 이름이 튀어나왔다.

좀 더 들어보니 그 사람은 길성혁한테 들었다고 한다.

이런 입 싼 사람. 서재원 팀장이 했던 얘기가 기억 안 나는 건가?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기 일 텐데.

하긴, 행동거지를 보면 그런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같진 않기도 했다.

오히려 날 비웃기 위해, 일부러 말하고 다니고 있을 거다.

“이제 어쩔 거야?”

비스트로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일단 건반 녹음하고. 그 다음엔 보컬이랑 일렉기타를···.”

“그걸 물어본 건 아니고.”

“그럼요?”

“뭐, 어디 다른 기획사라도 갈 곳이 있는 건가 했지.”

“아하하···.”

“너무 걱정하진 마.”

“···?”

“다른 기획사에 공모전 계획 있는지 물어봐 줄게.”

“끙.”

이 사람이. 꼭 내가 절대 TOP 30에 못 들 것처럼 말하네. 그렇게 어려워 보이나?

“30위에 들면 되지 않겠어요?”

“응. 그럼 되지.”

“···?”

“그게 어려운 거고.”

쏴. 적군이다.

“아직 이현이 부른 버전은 못 들어봤지만, 일단 노랜 좋아. 저번에도 얘기했잖아. 깜짝 놀랐다고.”

당시 비스트로는 천재 작곡가가 이성원 말고도 또 나타났다며 추켜세워줬다.

종종 오바스러운 면모를 보여주는 리액션 좋은 양반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엔 표정이 제법 진지하다.

“근데 그것만으론 부족해. 화제성이 없잖아. 뭐, 작곡가가 무명인 건 좋다 이거야. 유명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곡만 좋으면 사실 큰 상관 없지.”

비스트로가 ‘하지만···.’이라면서 입꼬릴 축 내렸다. 볼살까지 같이 처지며 흡사 불독을 연상케 했다.

“이현한테 씌워진 배신자 프레임은 당장 극복이 힘든 문제야. 마케팅팀 직원한테 슬쩍 물어봤는데, 차곡차곡 노래에만 전념하는 이미지 만드는 게 먼저라면서 홍보를 최대한 자제할 거라더라고. 이 상황에서 괜히 논란되면 역풍 불 테니까. 그걸 길성혁 그 양반도 분명히 알 거고 30위가 어림도 없는 순위라 생각하고 있겠지.”

그게 아쉬운 점이라고.

지금 몸 사리는 것보단 노이즈마케팅이든 뭐든 해야 할 때란 말이지.

그래서 역풍이란 역풍은 다 맞아둬야,

‘사실은 세븐트릴이 나쁜 놈들이었다! 이현은 피해자다!’

-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여론의 움직임이 좀 더 극대화될 테니까.

물론 앞으로 터질 일을 모르는 TKM 입장에선 자연스러운 판단이긴 했다.

“뭐 이미 다 벌어진 일이니, 일단 음원 잘 뽑는데, 집중해. 괜히 딴 거 신경 쓰다가 음원까지 어설프게 뽑히면 그땐 프로듀싱만 못 하게 되진 않을 테니.”

비스트로의 걱정 어린 이야기에도 나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아쉬워서.

“만약에 말이에요. 만약에. 이현이 그 프레임을 벗으면 어떻게 될까요?”

“응? 배신자 프레임을 벗는다? 갑자기?”

“그러니까 만약이죠.”

“흐음···그러면야, 대박이지. 30위 안에 들 가능성이 확 오를 거고. 이미지 그렇게 되기 전까진 나름 인기있던 아이돌이니까. 물론 그래도 쉽진 않을 거야. 요즘 워낙 차트 상단이 치열해서.”

“그래요···?”

“근데 그럴 일 없단다. 세븐트릴이 탑 급 아이돌은 아니지만 팬덤이 얼마나 탄탄한데. 아, 그래도 무조건 음원은 잘 뽑아야 한다?”

“그건 당연하죠.”

“그럼. 그래야 다른 곳에서 받아 줄 일 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지. 흐흐.”

“···충고가 아주 감사하네요.”

당연히 프로듀싱은 최선을 다할 거다. 내 일이니까.

근데 그것만으론 부족하다잖나.

‘자, 내 일은 끝!’ 하고선 물 떠놓고 기도만 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머리를 골똘히 굴리고 있는데, 비스트로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든다.

“여, 이성원!”

돌아보니 이성원이 초췌한 얼굴로 방에서 나왔다.

한 손엔 텀블러가 들려있다.

여기 아주 카페인 중독자들 천지구만.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고.

“야 소식 들었어?”

“뭘요?”

“얘 곡 길성혁 프로듀서가 프로듀싱 맡았었는데.”

멈칫. 텀블러가 큰 탓에 기울여서 커피를 받고 있던 이성원이 내 쪽을 돌아본다.

“그래서요···?”

“얘가 깠어.”

“···네?”

“내 곡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늙다린 참견 말라고 확 까버렸다니까? 흐흐.”

“아니 제가 언제 늙다리란 말을···.”

“그래도 뉘앙스는 비슷하지?”

“전혀요.”

“······.”

유언비어 확산을 막는 사이, 이성원의 시선이 잠시 내게 머물렀다. 조금 묘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평소처럼 무관심한 얼굴로 변한다.

“···그래요?”

“아하하, 제가 뭐에 꽂히면 앞뒤 잘 안 가리는 성격이라···.”

“아. 그러시구나.”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느무적느무적 작업실로 돌아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텀블러를 들고선.

“······.”

비스트로가 옆에서 혀를 찬다.

“너네 동갑이라며. 언제 친해질래?”

“피디님은 친하세요?”

“아니.”

그러면서 작게 중얼거린다.

“그러게. 난 언제 친해지지.”

그 모습을 보며 한참을 피식대며 웃었다.

#

길성혁이 빠진 곡 작업은 순탄히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실연 녹음은 완전히 마쳤고, 이현의 목소리가 그 위에 입혀졌다.

현장에서 일어나 박수 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는데, 옆에 있던 엔니지어가 벌떡 일어나 곡에 어울리는 완벽한 목소리라며 박수 치더라.

믹싱도 빠르게, 하지만 정성적으로 진행했다. 이젠 사실상 마스터링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주 다행히도, A&R팀에서 정한 날짜에 딱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의외의 사람한테 전화가 왔다.

핸드폰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왜?’라고 육성으로 말했을 정도.

동기, 강병식이 부원장으로 있는 실용음악 학원의 실장이었다.

“여보세요?”

-아, 기로씨!

“네, 실장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예, 잘 지내죠. 그런데 무슨 일로···.”

-갑자기 전화해서 당황하셨구나? 죄송해요. 사실 다른 건 아니고······.

실장의 친구가 사운드베리라는 인터넷뉴스 기자인데, 우연히 카페에서 얘기하다 TKM 소속인 내 얘길 하게 되었고, 기자가 인터뷰 좀 하고 싶다고 부탁했다는 이야기였다.

-근데 부담가지실 필요 없이, 바쁘시면 바쁘다고 얘기하시면 돼요. 하도 물어봐 달라길래 안부 차 전화 한 번 드린 거니까······.

“할게요.”

-네? 정말요?

“네. 그분 전화번호 주시면 제가 연락 드릴게요.”

-에고, 고마워요. 덕분에 친구한테 밥 한 끼 얻어먹을 수 있겠네요.

그때 작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장님. 혹시 기로예요?

-아···네.

-저 잠시만 바꿔주세요.

-네? 아···저 기로씨, 부원장님이 바꿔달라시는데···.

뭐지.

“아, 네.”

-어, 기로야. 잘 지냈어?

핸드폰 너머로 목소리가 바뀌었다. 강병식이다.

“잘 지내긴 했지. 근데 갑자기 왜?”

-아, 저 그게···있잖아. 혹시 TKM에서 공채 오디션 계획 나온 거 없어? 할 때가 된 거 같은데.

요시키. 이게 목적이었구나.

“그런 거 원래 얘기 못 하게 되어있어.”

“아, 알지. 아는데 그냥 혹시나 해서···.”

알긴 뭘 알아. 나도 잘 모르는데.

“일단 한 번 알아는 볼게.”

-진짜? 야, 고맙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지는 강병식을 바쁘단 말로 차단하며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잠시 멍하니 책상 위를 보았다.

모니터 스피커 옆에 올려둔 달력이 거기에 있었다.

빨간색으로 체크해 둔 음원 공개일. 정말 코 앞이다. 작곡가로서의 데뷔가 머지않았다.

“흐음.”

30위 안에 들어야 한다는 불안감은 없었다.

오히려 나도 모르는 새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지잉-. 마침 들고 있던 핸드폰에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 실장이 보낸, 기자 친구란 사람의 번호.

나는 곧바로 그 번호에 메시지를 넣었다.

[기자님, 장기로라고 합니다.]

역시. 물 떠놓고 기도만 하고 있진 못하겠다.

< 010. 해보겠다는 말 > 끝

ⓒ 나일함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