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9화 (9/221)

< 009. 이렇게 될 것 같아서 >

길성혁 프로듀서.

지난주에 소속 가수 앨범 작업을 외부에서 마치고 돌아온,

이번에 내가 작업하는 곡을 도울 인물이었다.

애초에 나도 혼자 프로듀싱을 진행하게 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마추어였던 나에게 앨범 전체를 총괄하는 프로듀서 자릴 온전히 줄 리 만무했다.

도와줄 베테랑 프로듀서 한 명을 붙여주겠단 얘기도 이미 정 대리를 통해 들은 내용이었다.

여기까진 문제랄 게 없었는데.

“흠.”

지금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이 사람의 태도를 보아하니.

“저 녹음 일정은···.”

내가 생각했던 내용을 말하려 하자 ‘어, 그래. 그래.’라고 너스레를 떨며 말을 끊는다.

“녹음 일정은 이렇게 가져가는 게 좋을 거야.”

화이트보드를 끌어다 휘갈기듯 적는 길성혁.

“아 현악기도 있잖아? 그치?”

“패드(pad)였습니다.”

“아, 그래. 패드였지. 근데 난 현악기가 더 나을 거 같은데? 리얼로. 돈 소리 좀 나게.”

“그건 이미 편곡이···.”

“진행하면서 다 바뀌고 그러는 거지.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아, 아마추어가 맞나? 이번 공모전 출신이라며.”

“······.”

눈은 웃고 있다. 때려주고 싶을 만큼 환하게.

“초보 티 너무 내지 말자고. 아무튼 우선 드럼부터 따고서. 날짜는···이쯤에. 오케이?”

쭉 들어보니 ‘뭐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선 음원을 제대로 듣긴 한 건지 의문이 든다.

저 말론 서너 번 들어봤다고.

그거면 싹 파악된다고.

하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꼬인다.

곡에 대해 파악이 덜 된 상태였다.

이래선 뭘 얘기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런데 무턱대고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늘어놓으니 할 말도 없다.

거기다 나와 상의 한마디도 없이 녹음 일정을 툭 툭 잡아버린다.

‘이렇게 하는 건 어때?’ 가 아니라 ‘이렇게 해.’

도우러 온 게 아니라, 시키러 온 건가?

녹음실에서까지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현악기 한 번 고민해 보자고. 요즘은 돈 소리가 좀 나야 해. 짤랑거려 줘야 사람이 몰린다고.”

“그런데 현악기를 넣게 되면···.”

“떽!”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는 눈을 초승달처럼 그리며. 입꼬리는 말아 올린다.

와, 웃네. 웃어.

“초보 티 내지 말 자니까. 모르겠음 그냥 따라와.”

저 웃음에서 나는 어떤 악의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너 따위가 백날 지껄여봐야 자신이 옳다는 듯한 저 자신감.

내 차의 핸들을 빼앗겼는데, 빼앗은 상대는 뭐가 잘 못 된 건지 몰라.

여기가 GTA야?

결국, 나는 내 의견을 한 마디도 피력하지 못한 채 회의를 가장한 설교를 마치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의자에 눕듯이 앉아 눈을 감았다.

“산 너머 산이네.”

쉽지 않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이현과 세븐트릴의 미래나 걱정할 게 아니었다.

그건 내가 알고 있는 미래고.

내가 죽어도 모르는 미래가 나한테 있었다.

이미 선로를 벗어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에, 기억이 소용없는 내 미래.

이현이랑 잘 풀고 괜찮아지나 했더니, 다음 스테이지가 나타나 버렸다. 하하.

‘커피가 필요한 시점이네.’

하루에 이런 시점들이 투성이지.

이러다 카페인에 중독이 될 것 같아.

조만간 혈중 카페인 농도라도 검사해봐야 하나.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커피를 달고 살긴 했지만. 이 정돈 아니었는데.

“작업 잘돼가는···안 되는데?”

청바지에 걸린 체인을 짤랑거리며 거구의 비스트로가 다가왔다. 작은 눈을 끔뻑이며.

유일하게 내가 본명으로 못 부르는 사람이다. 본명을 되게 싫어해.

“예?”

“얼굴 보니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여기도 궁예가 한 분 있네.

“아, 예.”

“뭐가 문제야? 얘기해봐. 선배로서 조언해주지.”

팔짱까지 끼고 기다린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뗐다.

길성혁. 그 사람에 대해 물어볼 요량으로.

약간 떠벌이 끼가 있는 비스트로이니만큼 정보를 얻기엔 최적이라 생각했다.

“그, 길성혁이란 프로듀서님이 제 곡 프로듀싱을 도와주시는데···.”

“아아. 그분 이번에 프로젝트 하나 끝냈단 얘긴 들었는데, 거기에 매칭됐어?”

끄덕이자, 비스트로가 입맛을 다신다.

“여기, TKM에만 5년 정도 있었던 양반이야. 실력 있는 프로듀서지.”

아?

“뚜렷한 히트곡은 없지만, 꾸준히 중박 이상이었고.”

뒷담의 기본은 상대의 호응인데. 이거 아무래도 글렀다. 커피나 가지고 들어가야···.

“문제는 그게 너무 굳어진 사람이란 거야. 뭐, 회사에선 그 사람을 붙여야 일 처리가 빠르니까 붙여준 거지. 세븐트릴이랑 컴백 안 겹치게 후딱 내는 게 목표라며.”

“···그쵸.”

“근데 넌. 이건 뭔가 잘못됐다 느꼈을 거고.”

하마터면 내 앞섬이 열려있나 확인할 뻔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느낌이라.

독심술 뺨치네. 경험담인가?

“내 얘기 아니고.”

맙소사. 독심술 쪽인가보다.

비스트로가 고갤 돌리더니 복도 가장 앞쪽에 나 있는 문을 보았다.

저기가 누구의 작업실인지 나도 알고 있었다.

천재 프로듀서, 이성원.

“이성원씨요?”

“응. 성원이. 재작년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곡 작업할 때도 똑같이 그 양반이 프로듀싱을 도왔어.”

“그 곡 잘 됐잖아요?”

“곡은 잘 됐지.”

어쩐지 곡만 잘 됐지, 로 들리는걸.

“뭐, 성원이 얘길 내가 디테일하게 하는 건 좀 그렇고. 그냥 그 양반 말에 적당히 따라. 그리고 후딱 프로젝트 끝내. 그게 정신건강에 이로워.”

문득 궁금해졌다. 천재라 불릴 작곡가. 이성원은 어떻게 했을지.

길성혁의 태도가 그때라고 달랐을 것 같진 않은데 말이지.

“성원씨도 그랬나요? 적당히?”

비스트로가 날 빤히 보더니 고갤 저었다.

“그럴 리가.”

“아?”

“그래서 지금도 ‘길’자만 들으면 이를 갈아. 필요 이상으로.”

뒷머릴 벅벅 긁으며 비스트로가 말했다.

“그래서 너한텐 그러지 말라는 거고.”

#

“이 프로 왔어? 아, 이 곡에 뭔가 이 프로가 부족하더라고. 그래서 우리 이 프로 불렀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입엔 담배를 꽂아 넣은.

길성혁이 느물거리며 드러머를 반긴다.

드러머도 익숙한 듯 웃어넘기며 심벌이 든 가방을 내려놨다.

“자, 일단 회의부터 하고 녹음 들어가자고?”

드러머는 소파에 앉아 우리 둘을 번갈아 보았다. 아, 셋이다. 엔지니어까지.

“우리 목표는 빨리 끝내는 거야. 오늘 드럼, 기타, 건반 싹 다.”

“예···?”

놀라서 의문 섞인 물음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길성혁이 눈살을 찌푸린다. 어디선가 ‘초보 티 내지 말자.’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데. 전음(傳音)인가···.

“느긋하게 붙들고 있어서 뭐 할 거야? 내일 현악기도 불렀어.”

“원래는 오늘 드럼, 베이스고. 내일 기타랑···그리고 생각해봤는데 현악기는 안 넣기로···.”

“할 수 있음 다 하는 거지 뭔 말이 많아.”

“아니, 저랑 상의도 없이 진행하시니까···.”

“상의?”

정말 궁금한 표정이다, 저건.

미친.

“누구랑? 너랑?”

“제가 작곡했으니까-.”

길성혁이 손을 들어 내 말을 막았다. 그 눈빛이 변했다. 짙은 눈썹이 꿈틀거리고 있다.

“야, 너 몇 살이랬지?”

“네?”

“몇 살이냐고.”

“스물 다섯입니다.”

“너 성원이랑 동갑이지? 하, 그때 뭐 마가 꼈었나. 태어나는 애들마다 이 모양이네.”

들린다. 소리가.

아, 멜로디 말고.

내 이성의 끈이 뜨드득, 하며 끊어지려는 소리가.

“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잘 될 줄 아나. 이성원 그 새끼도 너처럼 지 곡이니 뭐니 지랄 생쇼를 했었어. 근데 곡 잘 됐지? 내가 고치라는 거 결국 다 고쳤거든.”

“······.”

“너도 내 말대로 해. 괜히 곤조 부리지 말고. 자, 회의 끝. 다들 각자 자리로.”

드러머가 눈치를 보며 일어난다.

머리가 살짝 벗겨진 엔지니어도 내 쪽을 슬쩍 보더니 의자 바퀴를 굴려 믹서(mixer) 앞으로 향한다.

“이 프로.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번 녹음 할 거야. 그러고 나서 얘기하자고, 우리.”

-예. 알겠습니다.

드러머가 대답하며 심벌즈를 교체한다.

드르륵, 의자를 끌어 길성혁 옆으로 움직였다. 놈이 날 보더니 조소 섞인 웃음소리를 냈다. ‘어차피 말, 들을 거면서.’라고 중얼거리며.

“시작하자고.”

길성혁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불빛이 반짝이며 모니터 스피커로 드럼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냥 저거 써도 되겠는데? 더 녹음할 거 없이?”

낄낄거리는 길성혁.

나는 준비해온 악보가 구겨질 정도로 꽉 잡았다.

내가 그렸던 그림이 달라진다.

코앞에서 내 곡에 칼을 대고 있어.

어쩌지···.

이러면 부려야겠는데. 곤조.

드럼 녹음이 끝나고, 다음은 베이스였다.

이 프로 다음, 최 프로.

밖에서 들으면 골프 대횐 줄 알겠어.

“여, 최 프로. 역시 깔끔해. 좋아 아주~.”

생선 뼈를 닮은 파형이 멎고, 길성혁이 박수를 쳤다.

“······.”

“된 거 같은데? 최 프로 나와도 돼.”

-벌써요?

“어. 됐다니까? 완벽해. 나와, 놔와.”

-아, 예.

얼떨떨한 베이시스트, 최 프로의 눈이 나랑 마주쳤다.

저쪽도 내 눈치를 본다. 이 상황이 얼마나 기형적인지 아는 거다.

손을 쭉 뻗었다. 녹음 부스와 소통을 시켜주는 토크백 박스(talk-back  box)로. 그리고 베이시스트를 응시하며 빨간 버튼을 눌렀다.

“아뇨. 12번 마디랑 32, 33번 마디. 재녹음 해야 할 것 같아요.”

길성혁이 휙 내쪽을 바라본다.

“야, 너 뭐 하는···!”

“버징이 좀 과했어요.”

무덤덤하게 설명했다.

그게 길성혁을 흉흉하게 만들었고.

“하, 이것도 진짜 꼴통이네. 임마, 요즘 버징 있는 게 추세야. 몰라도 너무 모르네. 이래서 공모전 출신들이 기본이 안 돼 있단 얘길 듣는 거야.”

“의도한 거면 모를까. 전 곡 쓸 때 깔끔한 베이스를 생각했습니다.”

“지랄하네. 진짜.”

분위기가 급격히 험악해져 간다.

최 프로도. 엔지니어도 놀란 얼굴이 돼서 날 바라본다.

왜, 이성원도 이러진 않았나 보지?

“야, 너 내가 가만히 따라오랬지? 왜 말을 안 듣냐? 자꾸 토를 달아.”

“따라 갈만한 길을 따라가야죠.”

“뭐, 뭐? 이 새끼가!”

탁. 두툼한 악보를 내려놨다.

거기엔 내가 적어놓은 메모가 빽빽했다.

몇 날 며칠을 밤 세서 만든, 내 길이었다.

“길은 제가 만들어 놨고요. 재녹음 할 부분들 내일 다 다시 할 겁니다. 현악기는 안 넣을 거니까. 그분들껜 죄송하다고 전해주시고요.”

길성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다.

“이거 미친놈 아냐? 안 되겠네. 서 팀장이랑 얘길 해봐야겠어. 어딜 세상 물정 모르고 나대?”

“안 그래도 저도 서재원 팀장님께 말씀드리러 가려 했습니다. 제 곡, 제가 끌고 가겠다고.”

“하! 나를 빼보겠다? 그게 가능할 것 같아? 설사 서 팀장도 미쳐서 오케이를 하더라도, 이현 쪽에서 가만히 안 있을걸? 걔 팬들한테 욕 많이 먹어서 지랄병 걸렸다며. 신인 작곡가한테 곡 받기도 싫어하던 놈이 디렉까지 너한테 맡길 리가-.”

끼익. 그때 문이 열렸다. 문틈으로 보인 얼굴에서 잘생김이 묻어난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여기 문 다시 시공해야겠어요. 방음이 영···시원찮네.”

문을 슥 매만지며 들어오는 이현.

“···!”

나는 느긋하게 녀석을 보며 물었다.

“왜 왔어?”

“아, 궁금하잖아요. 녹음은 잘 되고 있는지. 뭐 문제는 없는지.”

“어때 보여?”

이현이 뭐라 말하려는데 길성혁이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벌떡 일어나 이현에게 다가선다. 그러더니.

“야, 너 내가 곡 하나 줄게.”

“갑자기요?”

황당한 얼굴로 되묻는 이현.

“그래.”

유치하게 뭐 하는 거야.

이거 줄 테니 쟤랑 놀지 마.

뭐, 그런 거야?

“싫은데요.”

“그래. 저런 새끼 곡 내봤자 차트 상단은커녕······뭐? 뭐라고 했어, 방금?”

“싫다고요.”

“왜, 왜?”

“몰라요. 왜 싫지?”

이현이 미간을 좁히며 고민하더니 입꼬리를 한쪽만 올리며 말했다.

“지랄병이라도 났나 보죠, 뭐.”

길성혁의 얼굴이 공허해진다. 그리고 곧 뭔가로 가득 찬다.

아마 분노라고 불리는 것일 거다. 쪽팔림도 좀 끼어 있을 거고.

홱. 홱. 나와 이현을 빠르게 번갈아 본, 길성혁이 버럭 소릴 질렀다.

“이, 이 미친 새끼들이!”

그리곤 쾅! 문이 부서져라, 닫으며 나가버린다. 힘도 좋네. 저 무거운걸.

“저래서 망가졌구나.”

이현이 중얼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

“······.”

엔지니어와 최 프로가 여전히 얼빠진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근데, 왜 오라고 했어요?”

아. 맞다. 내가 불렀지.

이현이 테이블에 놓여있던 과자 봉지를 뜯으며 물었고.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내가 간단히 답했다.

그리고 겉으론 최대한 태연하게 악보를 집어 들며 물었다.

“녹음 마저 할까요? 적어놓은 게 많은데.”

하던 일은 마무리 지어야 하니까.

카메라처럼 미동도 없던 엔지니어와 최 프로의 얼굴이 점점 더 다채로운 색을 냈다.

< 009. 이렇게 될 것 같아서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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