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8. 곡 좋더만 >
이현과 그 일이 있고서.
정 대리는 내 얘길 찬찬히 듣더니 ‘자존심 상해했단 얘길 듣긴 들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곤 한숨을 뻑뻑 쉬며 사라졌다. 내겐 일단 작업실에서 하고픈 작업을 해도 된다면서.
그 이후로는 연락이 없다. 모르긴 몰라도 팀장과 상의 후 고군분투하고 있지 않을까?
‘내일쯤엔 뭔 얘기가 있겠지.’
여느 회사가 그렇듯, 첫날이라 할 일이 없다.
아, 하나 있긴 했으나 엎어졌지.
그 덕에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장비를 만지고 설치된 가상 악기들을 점검했다.
다행히 내가 쓰던 것도, 안 쓰던 것도, 못 쓰던 것도 전부 여기에 있었다.
한참을 이것저것 만지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불편함의 원인은 잔상처럼 자꾸 떠오르는 멜로디였다.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이현을 만났을 때.
그의 목소리를 비집고 나오던 멜로디.
그게 아직도 선명하다.
“······.”
기록만 해둘까?잊어버릴지도 모르잖아.
그래, 잘 만져서 다른 사람한테 주지 뭐. 멜로디가 아무에게나 막 들리는 것도 아니고, 들릴 때 써먹어야지. 안 그래?
합리화를 마친 나는 녹음 버튼을 누르고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이 두 음 사이엔 이런 노트를 쓰는 게 좋겠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냥 떠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샘솟는다.
어쩌겠나. 기록해야지. 까먹으면 안 되잖아.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 걸 여실히 느낀다.
물꼬를 트니, 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멜로디를 완성해나가고 있었다.
탁.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얗게 불태웠다.
더 이상 태울 불쏘시개가 남아 있지 않다고 판단하며 몸을 뒤로 젖혔을 땐, 이미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가자. 차 끊기겠다.”
중얼거리며 장비들을 모두 끄고 짐을 쌌다. 그래 봤자 혹시 몰라 챙겨온 오선지와 펜, 그걸 담아 온 백팩이 전부였지만.
두꺼운 작업실 문을 열고 나와 하품을 해대며 1층 로비로 내려왔다.
통 유리 너머로 지나가는 저기 저 버스가 오늘의 마지막 버스겠구나!를 깨닫고 얼른 전력 질주해 잡아탔다.
청담에서 집까지.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머리를 메트로놈처럼 흔들어대며 졸았다.
그렇게 원룸에 도착해 침대틀도 없는 매트리스에 풀썩 쓰러졌다.
샤워해야지···.
양치도 하고···.
그래. 일어나자. 일어나는 거야!
“······.”
왜 아침이지?
#
피곤하다.
동네 카페는 왜 11시 오픈일까.
‘커피. 커피.’
작업실 들어가기 전에 커피부터 내리자.
다짐하며 5층에 들어섰다.
그리고 거기서 그리 편하지 않은 얼굴과 마주쳤다.
중앙에 놓인 큰 테이블에 이현이 다릴 꼬고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왠진 몰라도, 다 죽어가는 얼굴로.
‘다크 서클이 턱까지 내려오겠는걸?’
보고 모른 척할 수는 없어서 인사는 했다.
그러나 간 게 있는데, 오는 건 없다.
그냥 빤히 쳐다볼 뿐. 여긴 왜 온 거야?
그래라. 난 커피나 내리련다.
옆을 슥 지나치는데, 그제야 목소리가 들려온다.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곡 들어봤어요.”
갑자기?
“아, 네.”
“불러도 봤고.”
그래서, 뭐? 라는 눈으로 보자 이현의 표정이 아주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꼭 화장실이 급한 사람 마냥 힘겹게 말을 잇는다.
“곡···.”
“?”
“하아. 곡···.”
곡. 뭐?
“···나쁘지 않더라고요.”
뭔, 당연한 말을.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어지는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러자 이현이 또다시 이마에 핏줄을 세우며 발끈한다.
“자존심 세우는 거 아니고. 진짜 내 스타일은 아니에요.”
알아, 그냥 너무 당연해서 웃었다고.
이현의 스타일은 그에게서 들리는 듬성듬성한 멜로디만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 곡과는 거리가 멀지. 오히려 발라드에 가깝다.
“그리고 데모 부른 사람도···느낌 잘 살리더라고요. 나도 불러봤는데. 밤새 불러봤는데. 결국, 못 냈어요. 그 느낌.”
이건 좀 의외다.
자존심과 독기로 똘똘 뭉친 듯한 이현이.
이렇게 인정하리라 생각하며 들어보라 한 건 아니었는데.
이현이 머뭇거리며 입을 달싹거린다. 한참을.
본론을 꺼내려는 이의 제스쳐였다.
“녹음했어요.”
“네?”
“그 곡 만든 작곡가잖아요. 들으면 알 거 아녜요. 뭐가 문제인지.”
“뭐, 어느 정돈 그렇겠죠?”
“그러니까. 녹음해 왔다고요.”
“아······그걸 들어달라?”
내가 적나라하게 되묻자 이현의 얼굴이 다시 한번 구겨진다. 그래도 꾹꾹 참는 게 보인다.
그걸 보고 있자니 좀, 놀려주고 싶어진다. 나도 착한 놈은 못되지.
“제 곡 부르려고요?”
“···아직 결정 안 했어요.”
“어제 얘기 끝났다면서 나가 놓고선?”
“그땐 곡을 들어보기 전이라···!”
“그러니까. 왜 듣지도 않고 까요.”
빙그레 웃으며 속을 박박 긁었다.
쟤 속을 긁는데 내가 시원하네.
그러다 짐짓 뒷머릴 긁적였다.
“근데 녹음 한 거 안 들어봐도 될 거 같은데요?”
빠직. 기어이 이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어제처럼 날 찌르려는 눈빛으로 올려다본다.
“난 어차피 못 부른다. 지금 그 말이 하고 싶은 거죠?”
“밤새 불러봤다면서요.”
“이···!”
“그럼 자기 문제가 아니란 것쯤은 알아야지.”
학준이 형은 카페 알바생 멜로디 부르자마자 자기 곡 아니란 걸 알던데.
저 알량한 자존심이 문제일 거다.
아이돌. 그 틈에선 뛰어났을 가창력.
세븐트릴을 나오기 전에 누렸던 환호와 인기.
“뭐···요?”
“일어나요. 일단 작업실로 가서 얘기하죠.”
의문이 차오르는 두 눈을 뒤로하고 작업실로 향했다.
장비들을 켜고 어제 작업해둔 파일을 여니 뒤늦게 이현이 쭈뼛거리며 들어온다. 꺼림직한 표정으로.
책상 밑에 들어가 있던 스툴 하나를 쭉 빼서 그쪽으로 밀었다.
“앉아서 들어봐요.”
마우스를 움직였다.
이윽고 모니터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소리.
간단한 피아노 반주에 허밍으로 녹음된 멜로디였다.
습관처럼 같이 듣는 사람을 보았다.
과거에 나는 항상 을이었고, 부르는 이의 눈치를 끊임없이 봐야 했다. 어느 부분에서 눈썹이 꿈틀거리고, 어디서 입꼬리가 올라가는지.
그러나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적어도 지금의 난, 을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남자 놈 얼굴 계속 봐서 뭐하게. 그것도 첫 만남부터 꼬일 대로 꼬였던 이현인데.
“······이건 뭔데요?”
곡이 중반으로 치닫기도 전에 이현이 내게 묻는다. 유순해진 말투로.
트랙을 바라보는 그 멍한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이 곡이 녀석의 뇌리에 확실히 꽂혔다는 걸.
나도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말했다.
“이현씨한테 맞는 옷.”
#
톡. 톡.
서재원 팀장이 자신의 검은 책상을 두드린다. 뭔가 고민하는 듯한 얼굴로. 불안하게.
내 옆에는 정 대리가 서재원 팀장의 눈치를 보며 서 있고, 내 앞엔 이현이 쥐죽은 듯이 앉아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낮은 탁자엔 내 핸드폰이 제단 위의 제물 마냥 올라가 있다.
마침 화면이 꺼진다. 노래가 끝나 자동 잠금이 활성화된 거다.
“······.”
서재원 팀장의 침묵으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진짜 공기의 무게가 느껴질 정도였다.
상황이 애매해지긴 했다.
공모전 당선 곡을 소속 가수에게 줬더니, 그건 까고 다음날 다른 곡 하겠다고 들고 왔으니.
절대 흔한 경우는 아니지.
“정 대리.”
서재원 팀장이 입을 열었다. 여전히 목소린 좋고.
“네.”
“자네 생각은 어때?”
“문제 될 건 없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본부장님 컨펌이 나야겠지만, 애초에 현이에게 공모전 곡을 매칭한 것도 저희 쪽이고. 아직 일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가수가 더 잘 부를 수 있는 곡이 생겨 바꾸는 거니까요.”
천천히 끄덕이는 서재원 팀장.
그 시선이 이번엔 이현에게로 향했다.
“그쪽 본부엔 내가 말할 테니 mr 받아서 가녹음부터 해. 본부장님을 설득할만한지 보자고.”
“예.”
그리고 시선이 내게로 옮겨지는가 싶더니 스치듯 지나간다.
“다들 나가봐. 장기로씬 나랑 얘기 좀 더 하고.”
정 대리와 이현이 나가고.
넓은 실장실에 서재원 팀장과 나만 남겨졌다.
숨이 턱턱 막히네. 처음 회의실에서 만났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위축되진 않았다.
실제 이 나이 때의 나였다면 콩벌레마냥 쭈그러들었겠지만, 지금의 난 서재원 팀장만큼 닳고 닳은 사람이다.
물론 어느 위치에서 닳았는지는 좀 다르겠지.
“장기로씨. 앞으론 이렇게 얘기할 일이 많아질 테니 지금부턴 그냥 말 편히 할게요.”
내가 동의하자 그가 대뜸 물어왔다.
“이전에 만들어 뒀던 곡인가?”
“아닙니다.”
“그럼?”
“어제 만들었습니다.”
서재원 팀장이 잠시 주억거리더니 옅은 미소를 띠었다.
“이현을 설득하려고?”
네? 어···그런 건 아닌데?
사실, 이현이 찾아와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나도 선뜻 꺼내지 않았을 거다.
이현에게 딱 맞는 곡이지만, 그와 비슷한 스타일의 가수 중 누가 불러도 좋을 곡이었다. 아쉬울 게 없었지.
지레짐작한 서재원 팀장이 말을 이어갔다. 좀 더 나긋해진 목소리로.
“곡이 까였으면 기분 나쁠 법도 한데, 하루만에 마음을 돌릴 곡을 만들었군. 기특하네.”
기특까지 나와버렸다.
이거 이미 솔직해지긴 글렀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감사합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요.
“근데 말이야. 가수 입맛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을 할 땐 마케팅팀 생각도 해야 해. 각 가수의 컨셉은 이미 거기서 굳히고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십수 명의 직원들이 세운 전략을 엎을 순 없잖아? 뭐, 이현 같은 경우는 얼추 맞아 떨어져 다행이지만.”
그의 말이 맞다.
다행이지.
내 공모전 곡은 미디엄 템포의 적당히 신나는, 발라드도 댄스도 아닌 곡이다.
반면 이현을 통해 만든 곡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발라드다. 그것도 아주 느린 템포의.
그런데 어떻게 다행이냐고?
‘이현에게 정해진 컨셉이 가창력을 보여주는 거였으니까.’
두 곡은 완전 다르지만, 유사한 음역대를 갖고 있어 가창력을 보여주자는 마케팅팀의 의도엔 적합하다.
괜한 이슈만 늘려서 아이돌 이미지도 못 버리고, 노이즈 마케팅으로 욕만 먹다 사라지기보단.
자신만의 음악을 말없이 해나가는 탈 아이돌.
그게 핵심인 거지.
오히려 느린 곡이 그런 면에선 나을걸?
“명심하겠습니다.”
“명심까진 할 필요 없고. 참고만 해. 그렇다고 또 좋은 곡을 흘려보낼 필요는 없으니까. 곡도 회처럼 때가 있는 거야. 오래되면 맛이 변해. 그러니까 헷갈릴 땐 나나 정 대리에게 상의 먼저 해달라고.”
“네.”
“잔소린 여기까지 할게. 나가서 작업해. 이현한테 mr부터 보내주고. 수고했어.”
넓은데 답답한,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실장실을 나섰다.
비로소 묘한 성취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쩌다 보니 첫 단추는 잘 끼워진 것 같다. 물론 가장 좋은 건 곡이 컨펌 나고, 순탄하게 진행되어 빵! 음원 차트 상단에 자리 잡는 거겠지.
“푸흐.”
분명 신인 작곡가에겐 과분한 기대일 것이다.
가창자도 문제.
신인이 아니긴 하다만, 어제 잠시 검색해보니 여전히 욕을 많이 먹고 있었다. 배신자 소리까지 들으면서.
이에 맞서는 팬들도 있었지만, 일 당 백을 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시간이 문제지. 시간.’
지금은 이현이 욕을 먹고 있지만, 머지않아 전세는 역전된다.
문제는 ‘머지않아’가 언제인지 모른다는 점.
안타깝게도 내 기억력의 한계다.
하지만 곧 터지는 것만큼은 확실하지.
그때가 되면 세븐트릴의 민낯이 까발려지고 이현의 이미지가 반등할 거다. 그러면 곡도 그 물살을 타겠지.
‘일단, 녹음부터 잘 해내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은 내 일을 잘 해낼 때였다.
궁예질을 하며 요행을 바랄 게 아니라.
“흐아아아.”
기지개를 펴며 작업실로 향했다.
아, 그전에.
제발 커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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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성 없는 누군가 지구의 시간을 3, 4배속으로 바꿔놨는지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가녹음 버전을 들고 본부장실로 간 서재원 팀장이 곡을 승인받았고, 본격적으로 음원 작업 준비가 시작되었다.
전문 작사가가 가사를 썼고, 미디 완성본을 이현에게 넘겼다. 그리고 틈틈이 이현에게 가 노래를 확인했다.
내가 원한 게 아닌, 이현의 요청이었다.
“이제 나도 녹음 준비해야 하니까.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
“알겠어요.”
“잘하고 있어, 너. 적어도 노래로는 깔 게 없을 만큼.”
이현이 내 칭찬에 낮게 웃었다.
지난 보름 동안 꽤 편해져 있었다.
직전의 관계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
“괜히 인터뷰 같은 거 찾아보면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네.”
손을 흔들며 연습실을 나왔다.
곧바로 작업실로 향하려는데 정 대리가 카페테리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웬 남자와 함께.
나이는 서른 중후반 정도?
대략 나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인다.
알이 작은 반무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 너머로 보이는 눈이 나를 향해 번들거리고 있었다.
누구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 대리가 그를 소개했다.
“그때 얘기했지? 기로씨 도울 프로듀서님 있다고.”
“아.”
잠시 정 대리를 보다가 다시 남자를 본다.
여전히 번들거리는 눈빛에서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그 아래.
남자의 자색 섞인 입술이 벌어지며.
“반가워.”
입매가 시소처럼 기울었다.
“곡 좋더만.”
< 008. 곡 좋더만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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