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7화 (7/221)

< 007. 안 부르는 게 아니라, 못 부르는 것 >

5층에서 정 대리를 만나자마자 한 건, 여느 회사의 첫날이 그렇듯 ‘인사’였다.

쭉 돌아가며.

“오, 반가워요. 비스트로에요.”

큼지막한 손을 내미는 거구의 남자.

단추 구멍처럼 작은 눈에 머리를 빡빡 밀었다.

프로듀서 네임, 비스트로.

외모만 봐도 힙합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것처럼, 실제로 그런 곡을 많이 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나중에 방송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준연예인이 된다.

잠깐 얘길 나눠보니 확실히 성격은 좋은 느낌이었다. 말도 많고. 이 방에서만 20분을 있었어···.

그다음으로 찾은 작업실엔 내 또래 남자가 앉아있었다.

하얀 얼굴에 어딘가 무뚝뚝해 보이는. 세상일에 관심 없는 듯한 표정.

“이성원입니다.”

말투조차도 ‘나는 너에게 별 관심 없어요.’를 내비치는 듯했다.

‘이 사람은 이때부터 이런 캐릭터였구나.’

이 사람도 익히 내가 알고 있던 프로듀서다.

훗날 ‘Daylight’를 작곡할 천재 프로듀서, 이성원.

지금은 TKM 소속이지만 몇 년 후 ‘Daylight’로 초대박을 터트린 후 독립하여 자신의 레이블을 갖게 되는, ‘사장님’이 될 상이다. 그리고 예정대로라면 20대 후반이 된 나의 데모 곡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이번엔 그럴 일이 없겠네.’

새삼 내 상황이 많이 변했다고 흐뭇해하며 작업실을 나섰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하나같이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봤던, 이름있는 프로듀서들.

물론 모두와 인사를 나눌 순 없었다.

녹음 때문에 자리에 없는 이들도 있었고, 아예 자기 작업실을 따로 갖고 활동하는 이도 있었다. 당연히 네임드가 득실거리는 이 안에서도 탑 급인 프로듀서들이었다.

‘언젠간 나도.’

큰 다짐을 작게 하고 있을 때.

정 대리가 순회 인사를 마친 날 불렀다.

“기로씨.”

그의 부름을 받고 간 곳은 복도 끝이었다.

“여기가 앞으로 기로씨가 작업할 작업실.”

3평 남짓의 작은 방.

노란 조명이 어둑한 조도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슬쩍 손을 뻗어 벽을 만졌다. 감격이다. 무려 목재가 섞여 있는 방음벽이라니···.

하지만 절정은 새하얀 테이블 위에 있다.

매끈한 디자인의 일체형 컴퓨터와 거기에 연결된 베이비페이스(-오디오 인터페이스).

오인페엔 콘덴서 마이크가 연결되어 있었고, 책상 아래엔 노드(nord)사의 건반이 슬라이드 형식으로 들어가 있었다.

저게 다 얼마야···.

“일단, 기본적인 장비에요. 기로씨가 건반으로 작곡하는 편이라 들어서, 건반만 좀 좋은 거 요청했어요. 나머진···매년 장비 업그레이드를 하니까 그때 필요한 거 신청하시면 될 것 같네요.”

어제 내 구 작업실에 있는 장비를 어떻게 여기로 옮길까, 진짜 고민했는데. 괜한 고민이었네.

‘여기 가져왔으면 진짜···민망해질 뻔했어.’

다행이다.

눈이 휘둥그레진 날 웃으며 보던 정 대리가 자신의 손목을 확인하더니 몸을 돌렸다.

“그럼 장비 확인하고 있어요. 전 회의 다녀올게요.”

“아, 예.”

물어볼 게 있었다는 걸 지금 기억해 냈다. 내가 작업하게 될 가수에 대해 물어보려 했는데···이미 정 대리는 눈앞에서 사라진 후였다.

“곧 알게 되겠지 뭐.”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 앉았다. 의자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안 나니 어색하다. 편하다, 편해.

의자를 끌어당겨 가장 손에 익은 로직을 켰다.

‘그럼, 얼마나 좋은지 성능 좀 볼까?’

#

새삼 장비에 감탄하며, 돈의 위력에 감탄하며 이것저것 만지고 있는데, 한 시간쯤 지나서 정 대리가 돌아왔다.

그리곤 만날 사람이 있다며 어디론가 이끌었다.

“기로씨가 낸 곡, 부를 가수가 정해졌다고 했었죠?”

“예.”

“지금, 그 가수 만나러 가는 거예요. 어때요, 설레죠?”

“하하, 그러네요. 그런데 혹시 가수 이름이···?”

“이현이라고 알아요?”

이현?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멈칫했다.

설마 그 이현? 그 사람 원래 스타원 엔터 소속 아이돌···.

“세븐트릴이란 그룹에 있었던.”

맞다. 거기.

“네···알고 있어요.”

고갤 끄덕였다.

머릿속으론 빠르게 기억을 더듬거렸다.

세븐트릴이란 그룹의 이현이란 멤버가 그룹을 탈퇴했고, 그 일로 엄청난 질타를 받았으며, 그 후엔 어떻게 되었는지까지.

그 사이, 정 대리는 다행이라며 말을 이었다.

“좀 복잡하긴 한데, 결과적으론 이현이 욕심부리다 그룹에서 나와버린 게 팩트처럼 되어서 욕 많이 먹고 있어요.”

“그렇군요.”

“그래서 만나면 성격이 좀···예민할 수도 있어요. 아무튼, 만나서 얘기 잘 해봅시다. 곡 작업 잘 돼서 팡, 뜨면 기로씨도 좋고, 이현이도 좋고 윈-윈이니까.”

기분이 묘하다.

TKM에서 첫 작업이라서도 그렇겠지만.

이현이라···.

정 대리의 안내를 받아 3층 빈 회의실에 도착했다.

여긴 처음 방문했을 때 올라갔던 6층과도, A&R팀과 작업실들이 있는 5층과도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여기는 방송국보다 더 방송국 같다.

티비에서 보던 연예인들이 심심치 않게 지나다녀. 그냥 티비 보는 것 같네.

TKM 간판 가수들은 없나? 제인이라던가···.

그때, 회의실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한,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와, 잘생겼네.’

T자 존이라 하나? 눈썹과 코로 이어지는 구간 말이다. 그게 아주 선명하다. 무슨 깎아놓은 것처럼.

그가 회의실 쪽으로 다가선다. 이현이다. 얼굴을 보니 확실히 이현인데.

‘가죽 자켓···.’

아는 옷이다.

다시 얼굴을 본다.

잘생긴 얼굴. 저기에 검은 마스크를 씌우면 딱 그 사람이네.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독이 잔뜩 올라있던 연예인.

‘그게 내 얘기였어···?’

남자도 날 본다. 화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무표정으로.

나는 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인사했다.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안녕하세요.”

이현이 관심 없다는 태도로 시선조차 애매한 곳을 바라보며 인사한다. 옛다, 인사 같은 느낌.

어쨌든, 목소리까지 일치한다. 확실히 마스크, 그 남자다.

무엇보다 똑같은 멜로디가 들리잖아.

“······.”

날 못 알아보는 눈치인데?

황당하다. 첫 출근, 첫 작업부터 일이 이렇게 꼬이나. 윈-윈은 개뿔. 졸지에 내 욕을 하던 사람과 작업하게 생겼다.

“그, 아침에 뵀죠?”

그냥 넘어갈 순 없지.

무성의의 끝을 보여주던 남자의 시선이 그제야 날 향했다. 살짝 커지는 눈.

“어? 둘이 봤었어?”

정 대리가 물었고, 이현은 말이 없었다.

할 말 없으면 내가 답할게?

“네. 출근하다 엘리베이터에서.”

“오 첫 출근에 자기 곡을 불러줄 아티스트를 딱 만나다니. 이거 진짜 인연 아닌가? 하하!”

“······.”

“하하···. 흠. 둘이 얘기 좀 나누고 있어 봐. 내가 마실 것 좀 챙겨 올 테니.”

반응이 없자 헛기침을 한 정 대리가 슬그머니 회의실을 나가고.

나와 남겨진 이현은 매우 불편한 모양새가 되었다.

잠시 침묵하던 이현이 살짝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말문을 열었다.

“오늘 아침엔 미안했어요.”

“아뇨, 괜찮-.”

“솔직히 말할게요. 제가 좀 급하거든요.”

말이 싹뚝, 잘렸다. 하하···.

“아시는진 모르겠지만, 제가 원래 있던 그룹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왔어요. 싸웠거든요. 다른 멤버들하고.”

“······.”

“왕따 비스무리한 거였는데 뭐, 그건 아실 거 없고. 그래서 이번에 낼 싱글, 진짜 잘돼야 해요. 그 새끼들 코 납작하게 해줄 정도로.”

“······.”

“근데 사실 그쪽···아마추어잖아요. 공모전으로 뽑힌. 그래서 제가 못 하겠다 했어요. 아마 그렇게 결정 날 거고요. 내가 아무리 이미지가 나빠졌어도, 아직 그만한 위치는 되거든요.”

“······.”

“그러니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요. 나중에 경력 쌓고 잘 되면 그땐 제가 불러드릴 테니.”

멍하다. 한 대 맞은 것 같다. 사과로 시작하는 듯싶더니 뒤통수를 때려버리네. 얼얼해.

“아니······들어는 보셨어요? 제 곡?”

“아뇨.”

와 당당해.

“뭐, 평타는 치겠죠. 공모전에서 뽑힌 곡이니까요. 하지만 그래 봤자 공모전 곡이잖아요. 제가 그거 부른다 하면 세븐트릴 새끼들이 비웃을걸요?”

지금 머리가 두 개로 나뉜 느낌이다.

이해는 가. 신인 가수도 아니고, 그룹에서 나와 욕받이가 된 케이스라 뭔가 임팩트있는 복귀를 보여줘야 한단 강박이 있는 건 알겠는데···.

나도 그냥 기분이 상한다. 어쩔 수 없다. 나와 학준이 형이 고생해서 뽑은 곡인데. 사실 학준이 형에게 갔어야 할, 그 형에게서 들린 멜로디인데···.

“저기, 이현씨?”

“네.”

“제가요···그 곡 데모를 아는 형한테 부탁했었거든요.”

“···?”

“정말 기깔나게 불러줬어요. 그 형이.”

“갑자기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예요?”

“전 이현씨 노래 실력 잘 몰라요. 근데 이건 압니다. 그 형만큼 못 부를 거란 거.”

“지금 무슨···.”

“안 부를 때 안 부르더라도, 곡 한 번 들어보세요.”

“하?”

“그러면 알 게 될 겁니다. 이건 내가 안 부르는 게 아니라, 못 부르겠구나.”

이현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핏대가 불룩 솟아 올라온다. 내가 화나게 했구나? 성공이네.

마침, 타이밍 좋게(?) 정 대리가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알로에 주스 두 병을 가지고.

“자, 우리 마시면서 얘기 나눕시다. 마시면서.”

“······.”

“······.”

“···무슨 일 있었어요?”

정 대리의 눈이 획획 돌아가며.

무슨 낌새를 눈치챈 듯 묻는다.

동시에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꿰뚫을 듯이 노려보며.

“대리님. 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응? 아니···앨범 얘기해야지?”

“얘기 다 끝난 것 같네요.”

그리곤 휙 나가버렸다.

“야, 야!”

앞 전의 상황을 모르는 정 대리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입을 벌린 채로 날 본다.

“무슨 일이에요?”

“그게···.”

“···?”

“아마추어 곡은 안 부르겠다던데요?”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나도 피해자라는 듯이 황당한 척을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

-세븐트릴! 정말 오랜만이에요.

밝은 미소를 장착한 리포터가 땀 범벅이 된 남자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하하, 오랜만이에요. 누나.

-누나라고 말.했.다. 여러분 들으셨어요? 세븐트릴이 저한테 누나라고 하는 거? 제가 누나 팬인 거 어떻게 알고. 이렇게 땀에 젖은 남자의 모습으로···!

“저거 물 뿌린 건데.”

이현은 자기 집 소파에 앉아, 혼잣말을 했다.

-세븐트릴은 점점 더 멋있어지는 것 같아요.

-누나도 더 이뻐지셨어요.

-어머!

“웃기시네. 1년 전 인터뷰 때 못생긴 게 얼굴 너무 들이댄다고 그랬으면서.”

-진짜 누나 팬으로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대체 신곡은 언제 나오나요?

-사실 이건 누나한테만 말하는 건데. 아마 다 다음 달쯤이면 저희 신곡을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요!? 이거 너무 기대되는데요? 다 다음 달···어떻게 기다리죠?

이현은 핸드폰에 나오던 영상을 끄고, 이어폰을 집어 던지듯 빼버렸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분을 삭인다.

그러다 작곡가 놈이 떠올라 또 화가 끓어올랐다.

명백한 무시하는 눈빛.

넌 이 곡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듯.

“···들어나 보라고? 고작 공모전 하나 우승했다고 뻗대기는. 내가 같이 작업한 히트곡 작곡가가 몇 명인데.”

중얼거리면서도 핸드폰 속 음원을 뒤지는 손가락.

듣고 비웃어주겠단 일념으로 이현의 독기 품은 손끝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 007. 안 부르는 게 아니라, 못 부르는 것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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