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6. 들린다 >
“들려라 악상아, 영감아, 멜로디야···!”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올라타는 사람들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전화 중인 사람.
옆 사람과 대화 중인 사람.
목적지까지 가는지 물어보는 사람.
그들을 향해 손바닥도 살짝 내밀어보기도 하고, 기지개 펴는 척 쭉 뻗어보기도 하고.
끙. 안테나 같은 게 필요한 걸지도 모르잖아.
‘······.’
쩝. 안돼 이거. 안돼.
손을 탁탁 털며 고개를 저었다.
‘다 듣는 건 욕심이려나···.’
모든 사람에게서 각기 다른 멜로디를 듣는 거지. 그럼 내겐 국내에서만 수천만 개의 소스가 생기는 거다.
미친 거지. 평생 곡 걱정은 없이 사는 거잖아. 치트키다, 치트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짓을 다 해봐도 능력이 내 맘대로 발현되는 일은 없었다.
‘들리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나?’
안 들리던 사람을 들리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유대감을 쌓는다던가···. 아니지. 내가 카페 알바생이랑 유대감이 있진 않잖아.
하, 모르겠다. 골똘히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청담이다. 좋은 차, 명품샵, 빌딩이 즐비한.
버스에서 내려 보도블럭을 밟는 순간, 설렘과 긴장감이 뒤섞인다. 물론 긴장감이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갔다.
과거엔···아니, 미래엔 곡 작업은커녕 약간의 접점도 없었던, 큰 기획사.
‘10년을 더 살았다 해도, 안 떨릴 리가.’
골목길 사이로 들어가 쭉 걷다 보니, 분위기 있는 카페들 사이에 꼭대기를 사선으로 딱 잘라놓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가장 먼저 떠오른 감상은···
이런 건물은 얼마일까? 엄청 비싸겠지? 저런 거 하나 있으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음악만 할 텐데. 같은 것들.
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간다.
여전히. 아니, 아까보다 더 긴장된다. 하지만 그걸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겠지.
공모전 발표일은 아직 한 달이 남았는데, TKM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절대 나에게 나쁜 신호는 아니라 생각했다.
상황에 대한 추측이기도 했지만, 곡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가 핸드폰을 꺼냈다.
도착하면 전화하라 했었지.
-네, 정대현입니다.
“저 장기로라고 합니다. 공모전···.”
-아, 그렇지 않아도 연락드리려 했는데. 혹시 어디쯤이세요?
“방금 로비에 도착했습니다.”
-네. 지금 내려갈게요.
잠시 후. 한 남자가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정대현. TKM 내외의 작곡가들을 관리하는 A&R팀 소속이고, 직급은 대리. 즉, 정 대리다.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서글서글한 웃는 상이었다. 아담한 키에 살집도 좀 있다.
왠지 곰돌이란 별명을 가졌을 것 같은 느낌? 사람 좋아 보이네.
“장기로씨?”
“네, 안녕하세요.”
“잘 오셨어요. 일단, 올라가실까요?”
엘리베이터를 잡아탄 정 대리가 내가 뒤따라 타는 걸 확인하곤 6층을 눌렀다.
띵. 엘리베이터가 엄청 빠르다. 건물이 좋아서 그런가.
깔끔한 복도에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까진 여느 회사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스타일이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각자의 개성들이 뚜렷하단 걸 알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JME와 규모는 비슷한데, 분위기는 분명히 달랐다.
좀 더 자유분방한 느낌. 부품처럼 느껴지지 않아 좋다.
“이쪽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은 복도 쪽은 유리로 훤히 보이는 작은 회의실이었다.
자리에 앉자 잠시 사라졌던 정 대리가 알로에 음료수를 하나 들고 와 건넸다.
“팀장님 지금 내려오고 계세요.”
“옙.”
“그리고 노랜 잘 들었어요. 완전 제 취향이더라고요.”
“하하, 감사합니다.”
빙그레 웃으며 엄지까지 치켜드는 정 대리에게 너털웃음을 흘렸다.
이후엔 비교적 평범한 대화들이 오갔다. 뭘 타고 왔으며, 얼마나 걸렸는지, 부모님과 함께 사는지 같은 것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아, 팀장님 오셨네요.”
정 대리의 말에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회의실로 들어온다.
“A&R팀 서재원입니다.”
하늘색 와이셔츠에 운동을 꾸준히 하는지 다부진 팔뚝. 하지만 JME의 이치구와는 전혀 다른 느낌.
이쪽은 뭔가 차분하다. 특히 목소리가 무슨 성우 뺨친다.
“장기로입니다.”
짧은 통성명을 마치고 서재원 팀장은 내 앞에 앉았다.
스윽. 손깍지를 끼며 말을 꺼낸다.
“갑자기 불러서 당황스럽죠? 공모전 발표는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덕분에 TKM 사옥을 구경해보네요.”
내가 웃으며 답하자 서재원 팀장도 따라 웃는다. 아주 옅게. 사람이 정말 고급져 보이네.
“앞으로 구경 많이 하게 될 텐데요, 뭘.”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예쓰!’를 외쳤다. 마치 그 말이 ‘당신은 이번 공모전의 당선자이고, 이제 계약도 하게 될 겁니다.’로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서재원 팀장이 이에 대해 못을 박았다.
“장기로씨는 이번 공모전에 수상하셨어요. 그것도 우승자로요.”
가슴이 벌컥벌컥 뛰었다.
‘됐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겪었던, 10년의 미래가 선로에서 벗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앞으론 완벽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거고, 결말도 판이하게 달라지겠지.
이번엔 음악을 접는 일 따위, 없을 거다.
무려 TKM와 계약을 하게 될 테니까!
책상 아래,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하는데, 서재원 팀장이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한 달이나 먼저 불러서 이렇게 얘길 꺼내는 건···.”
그래. 나도 그게 제일 궁금해. 발표일 언저리도 아니고, 제출이 마감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공모전이잖아? 곡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이렇게 빠르게 진행될 것까지야···.
“장기로씨 곡 때문이에요.”
···내 곡?
“장기로씨 곡을 저희 가수의 복귀 앨범으로 내려고 합니다.”
#
도미솔. 레파#라. 미솔#시. 파라도······
작은 손이 떠듬떠듬 메이저 코드를 잡아간다.
“어려우면 한 음씩 잡아도 돼.”
“할 수 있어요! 어제 연습 엄청 했거든요.”
퀀텀보이즈를 좋아하는 레슨생은 7개의 코드를 모두 잡더니 뿌듯한 표정으로 날 보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웃었다.
“그럼 이번엔 마이너 코드를 알려줄게. 다음 시간까지 똑같이 한 번에 짚을 수 있게 연습해와. 알았지?”
마이너 코드를 모두 알려주었다. 중간중간 퀀텀보이즈, ‘너에게’에 나오는 코드를 알려주니 오선지에 형광펜으로 별 표까지 치더라.
“안녕히 계세요~!”
수업이 끝나고, 신이 나 학원을 나서는 레슨생.
녀석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그리고 돌아서며 사무실 쪽을 보았다.
버티칼 살짝 내려진 사무실 안쪽으로 우리 또래의 젊은 실장이 보인다.
‘쟨 왜 저기에 있어···.’
문제는 실장만 있는 게 아니란 점.
그래도 오늘 말해야 한다. 도의적으로, 란 게 있지 않나.
“실장님.”
“아, 기로씨.”
우리 또래의 젊고 예쁜 실장. 그리고 의도가 훤히 보이게 느끼한 미소를 장착하고 앉아있는 강병식.
녀석은 내가 들어오는 걸 보더니 손을 치켜들었다. 엄청 친한 것처럼.
“여, 장기로!”
그리고는 실장에게 ‘우리, 같은 대학교 나왔거든요.’라며 설명한다. 별로 안 궁금해 보이는데?
사무실 벽에 붙은 포스터들이 보인다.
학원과 기획사가 연계하여 진행하는 오디션 포스터. 나름 이름있는 회사들이다.
“알바생이 무슨 일이야? 사무실엔.”
저 딴에는 농담이었는지 선홍빛 잇몸을 보이며 이죽거린다.
“학원 나오는 거 때문에.”
“아~너 레슨생 몇 안 되지?”
그게 무슨 상관이지?
“흐음, 이해는 한다만···레슨생은 못 늘려줘. 어쩔 수가 없다. 나도 어려운 친구 돕고 싶긴 한데 요새 취미로 피아노 치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거든. 근데 또 니가 입시반을 맡기엔 이력이 쫌······.”
“아니, 그거 말고.”
“응?”
의아해하는 강병식을 무시하며 실장에게 말을 꺼냈다.
“제가 이번 달까지만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네? 왜요?”
“갑자기, 일을 하게 돼서···.”
불청객이 또 끼어든다.
“무슨 일? 설마 예전처럼 또 과외 하려고? 야, 2년 새 많이 바뀌었어. 요새 과외는 더 깐깐해. 학벌 보는 건 물론이고 석사는 돼야 부모들도 믿고 맡긴다니까?”
참다못한 실장이 강병식을 보았다.
“······저, 부원장님? 선생님들 관리는 제 일인데요?”
“아, 아. 예.”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며 괜히 다리를 꼬는 강병식.
불청객이 잠잠해지자 실장이 물어왔다.
“어떤 일 하는지 물어봐도 돼요?”
“작곡일을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
“아···일주일에 세 번 정도 나오시는 건데도 시간이 어려우세요?”
“회사 소속으로 일하게 됐거든요.”
실장의 눈이 동그래진다. 옆에서 찌그러져있던 강병식도.
“혹시 소속사랑 전속계약 하신 거예요?”
“예.”
“와, 정말 잘된 일이네요! 어딘데요?”
실장의 반응 때문일까? 강병식이 얼른 끼어들어 비아냥댄다. ‘너가 기획사를?’ 이런 표정으로.
“야 야, 너 소속사 아무 데나 계약하면 안 된다? 요즘 어쭙잖은 애들한테 접근해서 사기 치는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은···.”
“TKM이요.”
“···데에에?”
순간 놀라 손으로 입을 가리는 실장.
“아하하, 무슨 소리야, TKM이라니···정말? 진짜? 퀀텀보이즈 있는 그 TKM? 거, 거기서 널 왜!?”
믿을 수 없다는 듯, 너 따위가 어떻게 거길 같냐는 듯 말꼬릴 올리며 질문하던 강병식이 실장 쪽을 보더니 얼굴이 벌게지며 조용해진다.
실장이 한심하단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거든.
그러게 왜 조용히 나가려 했는데 굳이 허세를 부려서 이 사달을 만들어···.
나는 형편없이 일그러진 강병식의 표정을 보며 알면서 왜 물어? 라는 말투로 되물었다.
“글쎄. 왜일까?”
곡이 좋아서겠지.
#
“누가 들으면 아들이 돈 훔친 줄 알겠어. 응, 노래가 좋아서 준 거라니까. 공모전. 응, 응. 그럼! 나 이제 취업한 거라니까? 아, 나도 한 번 내려가려고 했는데, 여기서 빨리 내가 필요하다고 하도 그래서. 흐흐, 알겠어요. 아버지 들어오시면 이따 저녁에 전화하시라고 해. 아니다, 내가 할게.”
찌익. 핸드폰을 내려놓고 토스트를 뜯었다.
건너편, 내가 다닐 회사를 보면서.
다시 봐도 건물 참 잘 지었다. 느낌 있게.
냠. 이른 아침인데, 카페 안엔 사람이 꽤 많다. 나처럼 출근 전 끼니를 때우는 사람도 꽤 있는 것 같지만, 출근을 한다기엔 좀 어려 보이는 얼굴들도 더러 있다.
퀀텀보이즈를 좋아한다던 레슨생이 떠오르네. 근데, 오늘 평일이잖아? 쟤네 학교는 안가? 아···방학이겠구나.
“나, 나온다!”
“꺄악!”
“대에박!”
나처럼 창가 붙은 자리에 앉아있던 여중, 여고···아무튼 어린 여자아이들이 카페를 박차고 나가 한곳으로 몰려든다. 남자 아이돌이겠지.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다.
데모 돌리랴 기획사를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다. 나는 저렇게 누군갈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굉장히 서구적인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남은 커피까지 쭉 들이킨 후 카페를 나섰다.
“오빠 힘내요!”
“화이팅!”
“기다릴게요!”
군대라도 가나?
뭘 저렇게 애절하게 응원하지?
팬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으며 회사로 들어가는 검정 가죽자켓에 검은 마스크를 쓴 남자. 모르겠다. 저렇게 얼굴을 다 가렸는데 누군지 어떻게 알겠어.
‘쟤들은 뭘 보고 알아본 걸까? 눈?’
그것 참 미스테리라고 생각하며 TKM 사옥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옆엔 팬들 때문에 뒤늦게 들어온 마스크 쓴 남자가 선다.
나는 곧장 그를 향해 인사했다. 우리 회사 연예인인데 나쁠 거 없잖아.
‘우리 회사?’
흐. 그래 앞으로 적어도 2년은 TKM이 우리 회사다, 우리 회사.
남자도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며 나에게 작게 인사했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렸고 나와 남자 둘만 타게 되었다. 어색한 침묵.
나는 정 대리가 오라고 한 5층을, 남자는 3층을 눌렀다.
순간, 작지만 격한 감정이 압축되어 있는듯한 이를 악문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어, 형, 어떻게 됐어? 그냥 그대로 진행한다고? 미친. 아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마추어였다며. 그런 별 볼 일 없는 아마추어 곡을 나한테 준다는 게 말이 돼? 나 이번 싱글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
“······.”
“아니. 하, 진짜···일단 알겠어. 나 지금 올라가는 중이니까, 만나서 얘기해.”
“······.”
마스크 너머로 일그러진 표정이 상상된다.
말하는 것도 거칠고.
목소리만 들어선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날 선 통화내용을 본의 아니게 듣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췄다.
남자가 내린다.
그 뒷모습을 응시했다. 좀 전의 통화내용이 인상적여서 라던가. 그런 건 아니었다.
문이 닫히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들린다······.”
멜로디.
< 006. 들린다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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