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5. TKM 엔터테인먼트 >
“흐이구야.”
녹음이 끝나고.
모두가 녹음실을 나가자마자 차덕규는 소파에 몸을 묻었다.
9시간 동안 쉴 틈 없이 이어진 녹음.
그가 이렇게 녹음을 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기획사가 아닌, 개인과 이렇게까지 해본 건 단연코 처음이었다.
그것도 고작 보컬과 기타만으로 쓴 시간 아닌가!
“장기로. 장기로···.”
모니터에 뜬, 녹음을 마친 프로젝트 파일을 보며 예약자의 이름을 되뇌었다. 저 프로젝트에 담긴 곡의 작곡자이기도 했다.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아마추어? 개뿔. 녀석은 프로다. 그것도···.
‘완전 괴물 같은.’
솔직히 처음엔 무시했다.
소속도 없고, 어리다.
음원을 내본 경험도 없단다.
녹음의 목적도 디지털 싱글 발매 같은 게 아닌, 공모전이었다.
웃음이 났다.
방구석에서 sm58 마이크로 녹음해도 노래만 좋다면 뽑는 게 기획사다.
그럼에도 녹음의 퀄리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린 작곡가 지망생들이 꼭 있다. 진짜 중요한 건 음악인데.
뭐 상관없었다.
돈은 입금되었으니까.
그래서 대충 문제점이나 짚어주고, 믹싱으로 해결 가능한 선만 툭툭 잡아주며 진행하면 9시간이 길 지언정, 힘들지는 않겠다 싶었다.
딱 실용음악과 졸업앨범 정도. 그 정도만 힘쓰면 되겠지 싶었지.
그래서 오늘은 차덕규에게 쉬어가는 타임이었다.
적어도 음원을 틀기 전까진 그랬다.
하지만 모니터 스피커에서 장기로란 학생이 작업해온 결과물을 듣는 순간.
“······!”
차곡차곡 쌓아온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작은 감탄.
‘소리가 단단해.’
단순히 악기 종류만 늘려 때려 넣거나, 모든 악기가 화려하게 연주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단단함이 아니었다.
각각의 악기가 제때 들어가고 제때 나온다. 그래서 과한 부분도. 부족한 부분도 없다.
편곡에 고민을 많이 한 티가 역력했다. 줄타기를 잘 했어. 기발하면서도 대중적인 편곡.
게다가.
‘믹싱도···수준급인데?’
이미 학생 수준은 아득히 뛰어 넘어섰다. 당장 디지털 싱글로 내려 해도 손색없을 정도.
‘뭐지 얘···.’
그때였다.
지이이잉-
일렉 기타가 연주되기 시작한 것은.
‘톤 잘 잡았네.’
‘실력도 괜찮고.’
‘저기 저런 라인을 넣네?’
녹음이 이어질수록, 차덕규는 머릿속엔 여러 감상들이 떠올랐다. 그만큼 일렉 기타의 톤부터 들어가는 구간, 라인까지 모든 게 수준급이었다.
‘이건 기타 치는 애 실력도 실력이지만······.’
“엔지니어님. 건반 좀 써도 되죠?”
“···아, 예.”
“상진아. 좀 전에 라인 좋긴 했는데···좀 과한 느낌이 있거든? 차라리 그걸 이렇게 바꾸는 건 어때?”
건반을 눌러 그 자리에서 기타 라인을 새로 만드는 장기로.
차덕규는 자신도 모르게 끄덕였다. 딱 저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허···!’
차덕규는 머릿속에 있던 장기로에 대한 이미지를 지웠다. 느낌표 하나만 남기고서.
그렇게 기타 녹음이 장장 2시간 만에 끝나고.
드디어 보컬 녹음 차례가 되었다.
이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온 빼빼 마른 남자가 녹음 부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기타까지 얹어진 완전한 음원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
정말 머릴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남자의 음색은 훌륭했다. 가창력은 아직 부족한 점들이 보이지만 다듬으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거 다 차치하고.
‘잘 아우러진다.’
가창자가 가진 미세한 습관까지도 노래가 받쳐주는 느낌.
마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 것처럼 딱 들어맞았다.
차덕규가 믹싱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보컬이 뽐내기 위한 노래가 아닌 조화롭기 위한 노래.
음악은 장기자랑도, 원맨쇼도 아니니까.
회상과 상념을 오가던 차덕규는 눈을 살짝 떴다.
작업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
뜬금없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프로듀서들의 성난 목소리는 그리 희귀한 편이 아니다.
밤새워가며 완벽에, 완벽을 기해 만든 곡.
그런 곡을 가수가 어쭙잖게 부른다면 작곡가 입장에서야 꼭지가 돌만 하잖나.
하지만 어쩌면.
‘전후관계가 바뀐 걸지도 몰라.’
가수가 몸에 맞는 곡을 억지로 입는 게 아니라. 마치 맞춤 정장처럼, 곡이 가수에게 맞춰야 하는 게 아닐까?
“흐흐.”
열정은 좋다며 비웃었는데.
이 녹음실이 어쩌구하며 으스댔는데.
차덕규는 괜히 부끄러워져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세상에 완벽한 곡은 없지만.
‘누군가에게 완벽한 곡은 있는 걸지도······.’
#
“누른다?”
“누르라니까?”
“진짜 눌러?”
“···형?”
“하아, 떨려서 그런다. 떨려서.”
위 단추 두 개 정도 풀어헤친 와이셔츠. 늘어진 넥타이.
퇴근 후 작업실로 온 학준이 형에게 마우스를 맡겼더니 지금 십 분째 클릭을 못 하고 있다. 아주 공모전 끝날 때까지 저러고 있겠네. 누가 보면 형이 나가는 줄 알겠다.
“그냥 내가 할게.”
“아냐. 내가 해줄게.”
그럼 제발 빨리 해주시죠.
꿀꺽.
“으하아앗차!”
[지원 완료]
“하하하···.”
갔네. 갔어.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나도 꽤 긴장했었다. 이건 곡에 대한 자신감과는 별개의 것이었다.
“후우···.”
학준이 형은 축 늘어져 있다.
나도 멍하니 모니터를 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적을 깬 건 학준이 형이었다.
“끝났네.”
“그러게.”
과거로 돌아와, 처음으로 잡은 목표였다. TKM 공모전 지원. 그걸 무사히 마쳤으니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날 여기로 보낸 존재가 있다면 묻고 싶네. 이렇게 하면 되는 거 맞냐고.
그때 학준이 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맙다.”
“응?”
“덕분에 재밌었어. 맨날 회사 일에 치이면서 노래 부르는 즐거움 같은 건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푸흐, 다행이네. 난 얘기 꺼낼 때부터 형이 안 부른다고 뻗대면 어쩌나 싶었는데.”
“만약 그랬으면 한 대 쳤어야 했다. 미쳤냐고. 이 좋은 곡을 안 부르냐고. 인정?”
“인정. 흐흐.”
기분 좋게 웃고 있는데 학준이 형이 불쑥 묻는다.
“너 그 이번에 하나 더 만들었던 곡은 잘 진행 돼가?”
공모전 준비 때문에 더디지만 꾸준히 발전시키던 멜로디. 카페 알바생에게 들었던 그 멜로디를 말하는 거였다.
이전에 건반으로 간단하게 친 반주에 멜로디를 흥얼거린 버전을 학준이 형에게 들려줬었지.
그리고 키 낮춰서 한 번 불러 달라고 했었다.
궁금했다. 다른 사람이 부르면 어떨지.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별로였다. 안 맞는 옷을 입은 모델을 보는 기분이더라고. 옷은 예쁜데···.
“조금씩 건들고 있어.”
“그거 노랜 진짜 좋더라. 만약에, 진짜 만약에 너 이번 공모전 잘 돼서 TKM이랑 계약하게 되면, 그때 그 곡 써 먹어봐. 흐음. 어디보자, TKM 소속 가수 중에 누구랑 어울리려나···. 제인? 아니면···아, 하서윤도 괜찮겠네. 흐흐, 너무 김칫국 마시는 건가.”
제인. 하서윤.
다들 나이도, 스타일도 다르지만 모두 엄청난 가수들이다.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이 곡을 그들이 불러준다면 대단할 거다.
하지만, 저 유명 가수들이 알게 된다면 어이없어 하겠지만, 내 머릿속엔 카페 알바생이 부른다면? 이란 전제가 떠올랐다.
궁금했다. 어떤 시너지가 나올지.
학준이 형 때처럼 몸에 딱 맞는 느낌일지.
‘그나저나···.’
이제 둘을 제외하면 더 이상 누구에게도 멜로디가 들리지 않고 있다.
왜지? 왜일까?
‘둘과 나머지의 차이가 대체 뭐길래···.’
내가 듣는 게 환청 따위가 아니란 걸 이젠 확실히 알겠으니, 앞으론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싶은데···.
문제는 이게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 점이었다.
#
화살은 쏘아졌고, 과녁까지의 거리는 한 달 남짓을 남겨두고 있다.
학준이 형은 평일엔 회사 다니랴, 주말엔 연애하랴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나도 알바를 하기 위해 입대 전에 나갔던 실용음악 학원을 찾았다.
학준이 형은 내가 보컬 녹음 명목으로 건넨 돈을 한사코 거절했지만, 기어이 입금에 성공했다.
그러고 나니 원룸 월세에 작업실 월세까지 감당하려니 빠듯하더라.
녹음에 너무 큰 돈을 썼나···?
“어? 오랜만이네? 다시 알바 하러 왔다는 얘긴 들었는데.”
누르스름한 피부에 살짝 치켜 올라간 눈.
관상은 모르지만,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진 않은 얼굴이 날 보더니 아는체 했다.
강병식이었다. 나와 동갑이자, 학교 동기. 그리고 이 학원에서 이젠···부원장.
“······.”
나는 호칭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그러자 녀석이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웃는다.
“그냥 병식이라 불러. 동창끼리.”
내 고민을 녀석이 알아챘다는 게 더 좀 그러네.
녀석이 부원장이 된 줄 안 건 얼마 안 된 일이다. 알았더라면 안 왔을 거다. 그냥 예정대로 과외나 할걸. 수입은 들쭉날쭉해도 그게 맘 편했을 뻔했다.
“부원장 됐다는 얘긴 들었어. 축하한다.”
“고맙다. 내가 그래도 누굴 가르치는 덴 소질이 있었나 봐.”
“그런가 보네.”
“다행이지. 그 어느 쪽에도 소질 없이 빌빌 거리며 사는 애들이 오죽 많냐. 실용음악 쪽에.”
“뭐, 꿈이니까 하는 거지. 좋으니까.”
“에이, 꿈도 꿈 꿀만 해야 꾸는 거지.”
빙글빙글 웃는 강병식을 보니 속이 좀 뒤집힌다. 그래도 티는 내지 말자. 내가 잘하는 거 있잖아. ‘척’.
“암튼 열심히 해줘. 요즘 학원 상황이 마냥 좋진 않거든. 알바들이 잘해줘야 해. 알바들이.”
그러면서 슥 지나쳤다. 사람 약 올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걸로 경쟁자를 한 명씩 화병으로 제거하며 올라간 거 아닐까?
고개를 내저으며 복도 끝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레슨생이 먼저 와 연습 중이었다.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 부모님을 졸라 등록했다는 취미반 여중생.
옆자리에 앉으며 대견하다는 듯 말했다.
“이제 스케일 잘 치네?”
“헤헤, 연습 열심히 해왔어요. 얼른 쳐보고 싶은 곡들이 많아서요. ”
“기특하구만. 뭐가 제일 치고 싶은데?”
“퀀텀보이즈의 너에게요.”
“아, 이거?”
나는 곧장 피아노에 손을 올리고 반주를 시작했다. 레슨생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네, 넹. 이거요!”
반주를 멈추고.
“이거 그렇게 어렵지 않아. 네 개 코드가 계속 반복되거든. 그 말은 네 개 코드만 다 외우면 반주가 가능하단 얘기고.”
“우와···얼른 해보고 싶어요.”
“푸흐, 퀀텀보이즈 팬이구나?”
“네, 완전요. 주말엔 TKM 건물 앞에 놀러 가기도 하고 그래요.”
“정말? 그 정도야?”
놀라며 웃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이잉-.
화면에 떠오른 번호를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다. 앞자리는 02. 서울인데?
“안 받으세요?”
“레슨 중이잖아.”
“괜찮아요. 저 스케일 연습 더 하고 있을게요!”
지이이이잉-.
“···그럼 잠깐만?”
핸드폰을 가지고 복도로 나왔다. 한쪽 구석에 기대어 전화를 받았다. 보험 들라고 하면 얼른 끊어버려야지.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TKM 엔터테인먼트, 정대현이라고 합니다.
< 005. TKM 엔터테인먼트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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