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4화 (4/221)

< 004. 곡의 진짜 매력 >

JME는 꽤 큰 연예기획사다.

TKM과 비교하면···비슷할 거다. 둘 다 열 손가락 안에는 항상 언급되는 편이니까.

하지만 이땐 연습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나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아직은 뮤튜브 또한 파급력이 약했다.

즉, 일개 연습생을 아는 일반인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노랑머리 입장에선 낯선 사람이 뜬금없이 자신이 연습생인 걸 안다는 것 자체가 당혹스러운 일일 터.

“······그걸 어떻게.”

뭘 어떻게야. 우리가 구면이니까지. 물론 넌 기억할 수 없는 미래의 일이지만.

갑자기 머리가 잘 굴러간다. 과거로 돌아오더니 머리도 좋아진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는 옅게 웃으며 허리를 폈다. 그래도 놈보다 작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싸우려는 거 아니니까.

‘척’하기엔 이만하면 충분하다.

“그, 박 매니저는 잘 지내나?”

“······?”

···이게 아닌가? 표정을 보니 모르는 거 같은데? 꽤 오래 다녔다더니 구라였나.

그렇담, 더 높은 사람······그래.

“흠흠. 이 실장님도 잘 지내고?”

노랑머리 놈의 표정이 더 기묘해진다.

당황스러워하던 표정이 시시각각 옅어지는 것 같다. 의심의 눈초리도 있는 것 같고. 저럼 안 되는데?

“저희 실장님들 정씨랑 김씨인데요?”

정 실장? 김 실장?

난 이 실장밖에 모르는데.

망했나?

“이치구······없어?”

그제야 노란머리가 눈을 크게 뜬다. 약간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은 덤이었다.

옳지! 안 망했구나.

“티, 팀장님이에요.”

이땐 팀장이었군.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겉으론 티 안 나게.

‘척’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이 팀장님···아세요···?”

노랑머리의 불량했던 눈이 이제야 학생스러워졌다.

역시. 연습생에겐 먼 실장보다 가까운 팀장이 더 무서운 법이지. 게다가 이치구 그 새끼···반건달이었잖아? 덩치하며, 문신까지.

나는 아주 잠시,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이 고민이 아주 바보 같음을 깨달았다.

주도권을 잡았는데, 왜 끌려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말자.

의심할 정신도 주지 말자.

“알다마다. 이 팀장님이 너 이러고 있는 거 알아?”

“......."

대답이 없었다. 알 리가 없지.

"자기네 연습생이 여자 추행하고 다니는 거?"

"무, 무슨. 추행이라..뇨!"

화들짝 놀라 날 쳐다본다.

"아, 그럼 추행인지 아닌지 경찰서부터 가볼까? 이 팀장님도 부르고."

"그건...!"

기세를 몰아 알바생 쪽을 보았다. 시선은 팔 있는 곳까지 내리며, 지금 막 발견했다는 듯이.

“저분 팔은 왜 저래?"

“아, 아니 그건 저년이 싸가지없게······.”

“년?”

“하아···저 여자가. 그냥 번호 좀 달라고 했는데 고등학생 어쩌구 하면서 무시하길래 화나서 붙잡으려다가···.”

“얼씨구? 폭행까지?”

“!"

노랑머리 녀석이 움츠러들자, 옆에 있던 학생들까지 덩달아 혼나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눈치챈 거겠지.

“이거 이 팀장님이 알면-.”

“아, 안돼요!"

“뭘 안 돼. 아까 보니 카페 떠내려가라 욕 하더만.”

“아니 그게...하, 씨. 죄송해요. 됐죠? 이거, 이 팀장님이 아시면 저 진짜 죽는단 말이에요."

“손목 벌건 사람은 저깄는데 왜 나한테 사과를 해?”

“하아···죄송합니다.”

노랑머리의 정수리가 알바생을 향했다. 하기 싫은 표정, 몸짓, 말투였지만 애초에 이런 애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리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나는 알바생을 보았다.

아까는 두려움에 떠는 표정이었다면, 지금은 얼떨떨한 얼굴이다.

“저, 전 괜찮아요···.”

“정말로요?”

“네···.”

여전히 멜로디는 들리네.

이때다 싶었는지 노랑머리가 내게 물었다.

“가봐도 되죠···?”

이치구한테 얼마나 많이 혼났으면. 아니, 맞았으면 이렇게 이름만 듣고 사람이 달라질까?

알바생을 다시 슬쩍 봤더니 고갤 끄덕인다. 당사자가 그렇다니, 뭐.

“가. 아이돌 한다는 놈이 그러고 다니지 좀 말고.”

허락이 떨어지자 노랑머리가 무리를 데리고 우르르 몰려나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자 알바생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인사해왔다. 뒤이어 여자 알바생이 계산대 앞으로 와 꾸벅 허리를 숙였다.

나는 괜히 민망해져 손을 휘휘 저었다.

“괜찮습니다.”

“···감사해요.”

“······.”

“······?”

“저 주문하려고···.”

“아, 예, 옛!”

어쩐지 지난번이랑 반대가 된 것 같다.

#

“하아. 여자 하나 꼬시려다 뭐 될 뻔했네.”

“이치군가 뭔가, 걔지? 완전 깡패 같다던.”

“어. 그 새끼 당구 큐대로 때려. 미친 새끼.”

“세상 진짜 좁다. 그 새낄 알고 있는 놈을 동네에서 만나네. 깡패처럼 생기진 않았던데.”

“그러게······근데, 날 어떻게 알아본 거지?”

노랑머리. JME 연습생, 김종운은 이상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에 있던 다른 친구 녀석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실실 웃으며 답을 내놓는다.

“막 이런 거 아니냐. 딱 봐도 깡패는 아니었잖아. 그럼 뭐겠어? 동종업계 사람인 거지. 그 이치구인가 뭔가 하는 놈이랑.”

“오, 그럴듯해.”

“그럼 기획사 쪽 사람이란 건데···이거 삘 오지 않냐. 너 잘한다고 소문 쫙 난 거지! 다른 기획사까지!”

“어······?”

그런가? 진짜? 하긴. 그게 아니면 나를 알고 있을 리 없잖아?

의식의 흐름을 이어가던 김종운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과 마찬가지로. 연예계, 이 업계도 좁다. 어디 연습생이 특출나다, 하면 업계 내에선 소문이 돌도 돈다는 거지.

그러네! 그러니까 아까 그놈도 아이돌 할 애가 이러고 다니지 말라고, 아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한 거고.

딱딱 맞아 떨어진다!

“후후.”

‘나, 곧 데뷔할지도···?’

김종운의 행복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

“3년 뒤였나?”

집에 와, 유자차의 유자를 잘근잘근 씹으며 중얼거렸다.

아마 그때쯤일 거다.

내가 JME 사옥을 방문했던 게.

그때도 난 열심히 곡을 만들어 이리저리 돌렸고, 그 중 JME의 연락을 받았다. 큰 회사라 어안이 벙벙하더라.

‘진짜요?’를 그 통화에서 몇 번 썼는지.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 강남의 8층짜리 빌딩에 들어가 미팅을 했다.

그때 나를 맞이한 게 이치구 실장이었다.

딱 붙는 반 팔 티셔츠를 입고 나를 반겼다. 문신 그득한 팔로.

그때 알았어야 했다. 이 회사의 질을.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

실장의 말이 어찌나 번지르르하던지. 와, 하다 보니 그간 작업한 곡을 전부 오픈하고 있더라고 내가.

‘더 없어요?’라는 말에 한 달 정도 거의 출근하다시피 사옥을 들락날락하며 곡을 실어 날랐다.

그 후.

‘연락 줄게요.’

-라는 말만 믿고 4개월 정도를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내가 들려줬던 곡 중 하나가 음원 사이트에 올라왔다. 제목만 바꿔서. 다른 작곡가의 이름으로.

으, 그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엔 절대 안 엮여야지.’

이치구랑도. JME랑도.

다짐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인룸 스튜디오? 여기가 좋긴 한데···.

그나저나, 내심 짠하다.

노랑머리 고등학생 말이다.

분명히, 3년 뒤에도······.

‘연습생이었지.’

#

일주일 동안, 나는 학준이 형과 수시로 연락하며 작사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무릎을 탁, 칠만한 가사를 만들어줄 작사가가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금전적으로나 인맥으로나 불가능했다.

그런 아쉬운 마음도 학준이 형이 가녹음 해 보내준 걸 듣는 순간, 단번에 녹아버렸다.

자신에게서 나온 멜로디라서 그런 걸까?

첫 소절부터 소름이 돋았다.

핸드폰 녹음으로 이 정도인데, 좋은 장비와 환경에서 제대로 녹음한다면 얼마나 더 좋아질지···!

욕심이 더 난다.

곧바로 추려놓은 녹음실 중에 가장 좋은 곳을 예약했다.

그리고 정확히 이틀 뒤. 나는 합정역 부근에 위치한 녹음실의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어어, 그···장기로씨 맞죠? 공모전 준비한다던?”

“네, 맞아요.”

“반가워요. 엔지니어, 차덕규라고 해요.”

엔지니어까지 고용했다. 예약 전화를 했을 때의 목소리와 같은 걸 보니 이 녹음실의 주인이기도 한 것 같다.

“3프로(9시간) 빌리신 거 맞죠?”

“넵.”

“풀 세션 녹음해요?”

“아뇨? 일렉 기타랑 보컬만요.”

“하하, 근데 무슨 아마추어가 이렇게까지 해요?”

아마추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제3의 시선으로 본다면, 난 그냥 갓 전역한 까까머리 청년일 뿐이니까.

항상 느끼는 거지만, 대한민국은 어리다는 게 약점일 때가 종종 있다.

“잘하고 싶어서요.”

“녹음 시간이 길다고 잘해지나요. 뭐, 열정은 보기 좋네요.”

방구석 작곡가에겐 과분한, 넓은 모니터링 공간.

디자인 좋음. 소재 좋음. 공기. 흐음~. 쾌쾌함 따윈 전혀 없네.

“좋죠?”

“네, 진짜 좋네요.”

“여긴 녹음실 갖춘 어지간한 기획사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요. 녹음실이 부족하거나, 퀄리티가 잘 안 나올 때. 그만큼 신경 쓴 공간이거든요. 사실 이 가격에 할 게 아닌데······.”

자랑을 쉴 새 없이 늘어놓는다.

사이트에 이미 대문짝만하게 써놓은 걸 굳이······.

그때 구원투수처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유상진.

야이 씨, 반갑다. 친구야.

“여어~.”

안 그래도 덩치 큰 녀석이 미슐랭 캐릭터 같은 패딩을 입고 들어온다. 등에 멘 기타가 우크렐레처럼 보일 지경이다.

“와, 여기 죽이네.”

그 소리에 차덕규의 눈이 빛났다.

“좋죠?”

아니야, 안 돼. 대답하지 마.

“네, 진짜 쩌네요.”

“그죠? 여기가 녹음실 갖춘 어지간한 기획사에서도 심심치 않게······.”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일장 연설을 듣고 나서야 음원 파일을 넘길 수 있었다.

녹음실 컴퓨터에 띄워진 프로툴(daw)에 파형이 떠올랐다.

“준비됐어?”

역시 우쿨렐레가 아닐까? 싶은 기타를 들고 소파에서 일어나는 유상진.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지."

“뭐래. 여기 비싸.”

“오케이, 원큐에 간다.”

자신감 무엇.

그래도 실력만은 믿을만한 녀석이니까.

녹음실로 들어간 녀석은 이펙터 세팅을 마치고, 의자에 걸터앉아 톤을 잡았다.

차덕규가 빨간 버튼을 눌러 말했다.

“사운드 체크 한 번 합시다.”

-옙.

앰프에 설치된 세 개의 마이크.

일렉이지만 마이킹으로 녹음이 진행된다.

앞으로 점점 줄어들 방법이지만 아직은 이게 당연할 때였다. 그리고 내 열악한 작업실에선 엄두도 못 낼 방법이기도 했다.

“자, 들어갈게요.”

녹음 전, 확인해야 할 것들이 끝나고.

차덕규의 신호에 맞춰 음원이 틀어졌다.

-!

가상악기에서 뽑아낸 세 가지의 소리가 동시에 인트로를 연주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플릭한 베이스와 댐핑감 있는 비트.

딱, 일렉 기타와 학준이 형의 목소리만 빠진 음원이 모니터 스피커를 통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문득 돌아보다 보게 된 차덕규의 얼굴은 꽤 재밌게 변해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심드렁하기만 하던 표정에 다른 감상이 끼어들었다.

눈이 커지고, 자세는 살짝 앞으로 나왔다. 누가 봐도 놀란 모양새.

이어서 유상진의 기타 소리가 마이크들을 타고 들어가 프로툴 위에 파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주 절묘한 필인(fill-in).

자칫 비어 보일 수 있었던 공간이 기타 소리로 꽉 메워지기 시작한다.

‘저거지!’

내가 아무리 가상악기를 지지고 볶아봐도 나오지 않는 느낌. 버징이 살아있는 기타 본연의 소리!

유상진에게 고맙다. 녀석은 내가 원했던 포인트들을 제대로 살려서 연주해주고 있었다.

‘곡이 단단해지고 있어!’

나는 흥분해서 주먹을 말아쥐었다. 솔직히 만세삼창이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차덕규 저 엔지니어 양반 때문에 그건 좀 어렵지만.

다시 차덕규 쪽을 보았다.

차덕규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모니터에서, 녹음 부스 안 유상진에게로. 유상진에게서 나에게로.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곤, 다시 모니터로.

궁금하다. 수많은 곡의 탄생을 지켜 봐왔을 저 양반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하긴,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없다.

‘아직 이 곡의 진짜 매력은 십 분의 일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때마침 핸드폰이 파르르 떨린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학준이 형이었다.

[나 도착했어. 바로 올라갈게.]

나머지 9할을 채워줄 멜로디가 도착했다.

< 004. 곡의 진짜 매력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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