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3. 어디서 봤더라? >
예대에 입학하기 전, 면접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음악을 하게 된 이유나 계기 같은 게 있나요?’
거기에 나는 조금 냉소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대답을 했었지.
‘어쩌다 보니······좋아져서.’
교수님들은 대체 날 무슨 생각으로 뽑았을까?
여하튼, 지금이 그렇다.
어쩌다 보니 또 음악을 하고 있네.
그것도 밤까지 새워가며.
이게 얼마 만이냐.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하는데, 행복한 기분이라니!
내가 음악을 그만둔 시점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내가 정말 음악을 좋아하긴 했구나······.’
알고 있었지만, 새삼 다시 느껴진다.
그리고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과거로 돌아온 거 말이다.
너 후회했지? 그러니까 이번엔 포기하지 말고 제대로 해봐. 충분한 시간도, 능력도 줄 테니.
꼭 이런 것 같잖아? 아니야?
“하아아암.”
잠을 얼마 못 잤더니 생각이 마구 샘솟는다. 문제는 필터링이 안 된다는 거다.
터무니없는 생각들이 자꾸 그럴듯하게 느껴져.
‘이럴 땐 커피지.’
3시간쯤 자고, 작업실에서 학준이 형과 다시 만났다.
호록. 뜨거운 커피가 목을 타고 넘어간다.
앞에서 샌드위치를 입에 쑤셔 넣는 학준이 형. 저런데 신기하게 살이 안 쪄.
와구. 학준이 형은 햄 치즈에 치즈 한 장을 더 얹은 샌드위치를 순식간에 해치우며 커피로 입가심을 했다.
“어우, 잘 먹었다.”
굳이 말로 안 해도 입가가 말해준다. 자알 먹었다고.
휴지 한 장을 툭 빼 건넸다.
학준이 형은 감동받은 눈빛으로.
“우리 자상한 장기로. 여친한테 이쁨받겠어. 있기만 한다면.”
이러고 있다. 지 연애 시작했다고 유세 부리는 거다. 쯧. 약오르는 게 아니라 어쩐지 짠하다.
그리고 묘한 소리는 여전히 하다. 형이 말하는 동안 끊임없이 들렸다, 멈췄다를 반복하고 있다.
봐도 봐도 신기하네. 아니, 들어도 들어도.
“됐고. 이거나 들어봐.”
밤새 작업한 파일을 열었다.
“오오, 이번엔 자신 있나 본데? 지난번이랑 표정부터가 달라, 아주.”
그땐 곡이 문제가 아니라, 과거로 돌아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은 후였고요.
“형만 할까. 연애한다고 얼굴이 밝다 못해 허옇게 떴어.”
학준이 형을 보니 이거 하난 알겠다.
악상이 떠오르는 대상의 기분이 멜로디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랬다면 달달한 사랑 노래가 나왔을 테니까.
“흐흐, 그냥 듣고 좋은지 안 좋은지만 말해주면 돼?”
끄덕이며 화면 상단에 떠 있는 재생표시를 누른다.
꿀꺽. 괜히 긴장되네.
노래가 시작됐다.
형에게는 3분 남짓의 짧은 시간.
하지만 나에겐 과장 좀 보태서 30분은 될 법한 기다림이 시작된 거다.
“······.”
“······.”
노래가 진행되면서도 형은 말이 없었다.
이따금 눈썹이 잘게 떨렸지만, 그마저도 고개를 푹 숙이고 눈까지 감은 채로 듣고 있어 감정을 엿보기가 어려웠다.
이럴 땐 또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단 말이지.
김학준.
실용음악과 선배고, 유쾌한 형이다.
같이 있으면 항상 기분이 좋을 정도로 밝고, 비굴한 모습도 서슴없이 보일 정도로 호탕하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음악을. 정확히는 노래를 정말 좋아했었다.
집안 사정으로 나보다 훨씬 먼저 이 길을 포기했지만.
회귀 전, 학준이 형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그리 오래되지 않다. 불과 반년 전쯤? 형은 어느덧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어엿한 가장이었고, 동시에 작은 회사의 과장이었다.
꼬치 전문점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그 날, 난 처음으로 형의 슬픈 표정을 보았다.
‘노래···계속했으면 어땠을까?’
그저 눈시울이 붉어진 것에 불과했지만, 항상 밝은 형이었기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지.
괜찮은 줄 알았는데.
결혼에 애까지 낳고, 나와는 달리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산다 생각했는데······.
“······야.”
부르는 소리에 고갤드니, 어느새 학준이 형이 날 보고 있었다.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어쩌면 술잔을 기울였던 그 날과 비슷했을.
평소와는 전혀 다른 얼굴로.
“와···진짜. 이거 뭐라 해야 하냐.”
“왜?”
“난···너무 마음에 든다···.”
“그래? 다행이네.”
기분 좋게 대답했다.
기뻤다. 나만 좋아선 모르는 거잖나. 그런데 둘이 좋다니 힘이 났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준이 형을 보며 악상을 떠올린 거다. 그러니 이 곡의 테마는 학준이 형인 셈. 싫어할 수 있을 리가.
“너 바람 넣으려는 소린 절대 아닌데. 이 정도면 진짜 될 거 같다. 듣는데 딱, 미쳤다! 이 생각부터 했다니까? 어느 소속사에 들려주든 바로 미팅 날짜 잡자고 할 것 같은데?”
“···그래?”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학준이 형을 보았다.
학준이 형은 고갤 파닥이며 덧붙였다.
“그렇다니까! 도와달라더니 도와줄 것도 없네. 지적할 건덕지가 없어. 너 군대 갔다 오더니 어째 믹싱 실력도 는 거 같다? 밸런스가 너무 좋던데?”
“푸흐, 그래도 형이 도와줘야 해.”
“내가? 뭘?”
“이거 작곡 공모전에 내보낼 거거든. 알잖아. 데모는 돌려봤자 제대로 듣는 기획사 몇 없는 거.”
“아, 그렇긴 하지.”
주억거리는 학준이 형.
“근데, 마침 TKM 엔터에서 작곡을 공모하더라고.”
내 말에 학준이 형의 눈이 확 커졌다.
TKM 엔터가 국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지도 있는 기획사인지라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TKM 말이지? 내가 알고 너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어.”
비록 며칠 만에 뚝딱 만든 곡이지만 애정은 남다르다.
음악을 포기한 지 몇 년 만에 작업한 곡이니까.
그래서 기획사 메일의 스팸으로 분류되기도 싫었고, 그저 그런 공모전에 보내기도 싫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르더라. TKM 엔터에서 이맘때 공모전을 했던 기억이.
우승상금이 꽤 큰 데다 우승할 경우 전속계약 조건까지 걸려있어 이맘때 정말 많이 고민했었다.
뭐, 결국 자체적으로 음원을 냈고 완벽히 망했지만.
“그럼 상금은 얼만데? 명색이 TKM인데 삼백 주고 저작권 값까지 퉁. 이러진 않을 거 아냐.”
“3천만 원. 그리고 전속계약까지.”
“···!”
학준이 형이 놀라서 들썩였다.
형, 그 의자 망가지기 직전인데···.
“그래서 말인데.”
“어, 어?”
“알다시피 내가 노랠 엄청 잘하진 않잖아? 근데 공모전에서 입상하려면 곡도 곡이지만 누가 부르냐도 중요하단 말이지?”
“···그래서?”
“그래서 불렀다고.”
“어엉?”
“도와달라 했잖아. 설마 내가 곡 좋은지 들어봐달라고 도와달라 했을까.”
“그럼···.”
“형이 불러줘라. 이 곡.”
학준이 형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 사진이야 뭐야.
“나?”
“응. 내가 많이는 못 줘도, 페이 꼭 챙길 게. 만약에 우승하면 상금도 절반···.”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진짜 나보고 데모 떠달라고? 이거?”
“왜? 너무 바쁠 거 같아?”
“아, 아니! 누가 바쁘대! 그냥 갑작스러워서 놀란 거지!”
학준이 형이 손을 빠르게 휘저었다.
입가에 보이는 숨길 수 없는 미소.
마음에 드는 곡을 부르고 싶은 건 한때 가수를 꿈꿨던 형에겐 완벽한 약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멈칫하더니 묻는다.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나는 당연히 하고 싶지, 하고는 싶은데···근데 괜찮겠냐? 다시 말하지만, 이거 진짜 될 곡 같은데···.”
표정과 말투에서 짐작컨대, ‘나 따위가 불러도.’라는 말이 뒤에 생략된 것 같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도박이다. 확률이 매우 희박한.
심지어 몇 년간 음악을 쉰 회사원이 목소리를 입힌다니.
내가 다시 한번 음악을 해보겠다 해서 형까지 꼬드기려는 것도 아니다.
미래의 형은 노랠 관둔 걸 후회하지만, 그날부로 툭툭 털어낸다. 가장이잖나.
난 그런 미래를 바꿀 용기도 자격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 얘길 꺼낸 건 아쉬움이다.
이 곡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래에서 온 나도 알 수 없지만, 시작만이라도 학준이 형의 목소리였으면 싶은.
아쉬움.
‘어쨌든, 형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곡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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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히 들어가세요. 작곡가님.”
“······이 컨셉 언제까진데?”
“컨셉이요? 무슨 말씀이시죠? 한 번 작곡가님은 영원한 작곡가님이죠.”
“······.”
“그럼 살펴 가시지요. 작곡가님.”
그래, 맞춰주지.
“······그래. 김 가수. 연락할 때까지 연습 많이 하고.”
“예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손을 휘적거리는 학준이 형을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흐아아.”
기지개를 펴며 돌아섰다.
작업실이 아닌, 집으로 향한다.
아, 은근 머네. 이참에 그냥 작업실 빼고, 원룸에서 해?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헤드셋 끼고 도둑고양이처럼 조용조용 작업하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아니까.
‘가서···녹음실부터 알아보자.’
내 작업실에서 녹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보컬만큼은 좋은 환경에서 녹음하고 싶었다. 확실히 퀄리티가 다를 테니.
하아. 녹음실도 괜찮은 곳으로 하려면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
1프로(-3시간)만에 후딱 해버려? 아니지. 내가 그래도 돌아오기 전까지 합치면 10년 차가 넘는데. 무슨 아마추어도 아니고···.
머릿속을 정리하며 터벅터벅 걷다 보니 내가 사는 빌라 앞에 도착했다.
곧장 들어갈까 하다가, 몸을 돌린다.
“······.”
대낮인데도 은은한 조명이 밝혀져 있는 건너편 카페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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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넨 주말이 오히려 한적하다.
다들 놀러 나갔나.
어쨌든, 그래서인지 카페 안엔 계산을 기다리는 고등학생? 정도의 남자아이들을 제외하곤 사람이 없었다.
‘뭐 마시지?’라는 고민보단, ‘이번에도 멜로디가 들릴까?’라는 의문이 더 컸다. 애초에 그것 때문에 오기도 했고.
계산대 쪽으로 다가섰다.
그런데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왜 그런 거 있잖나. 싸-한 느낌.
“시발. 번호 한 번 물어봤다고 정색을 하네.”
“······.”
앞쪽에서 흘러나오는 욕설.
고갤 쭉 빼, 앞쪽을 보니 여자 알바생은 겁먹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멜로디가 들리던 그 알바생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한쪽 손목을 다른 한 손으로 잡고 있다. 자세히 보니 붉게 올라왔네?
다른 남자 알바생은 이 상황을 어떻게서든 무마시키려고 갖은 노력 중이었다. 한겨울에 땀까지 뻘뻘 흘리며.
“존나 기분 나쁘잖아, 진짜.”
그리고 그들에게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건 샛노란 머리의 남자아이였다.
나는 되게 어정쩡한 포지션이 되어버렸다.
내가 다가온 걸 안 몇몇 남자아이들은 날 보았다. 정확히는 노려 보았다. 형씨는 갈 길 가라고 할 기세.
황당한 상황에 어리둥절해 하는데, 앞쪽 여자 알바생과 눈이 마주쳤다.
해외 뉴스 보면 눈빛만 보고 위험에 처한 걸 알고 구해주는 일화가 소개된 적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이 딱 저런 눈빛이었겠구나.
“그, 저기 학생들···.”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최악에 경우엔 고딩들한테 얻어맞을 각오까지 하며.
노랑머리가 내 쪽을 돌아봤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얼굴은 잘생긴 녀석이 인상은 뭐 저리 험악···.
“?”
근데 너 낯이 익다? 가만, 어디서 봤더라?
어? 너······
“JME 연습생?”
“···!”
순간, 반항적이던 놈의 눈매가 움찔했다.
< 003. 어디서 봤더라?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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