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의 멜로디-2화 (2/221)

< 002. 발전하는 멜로디 >

중학교 1학년쯤인가.

친구 녀석이 도톰한 (-당시엔 그렇게 얇아 보였던) 터치폰에 음악 하나를 넣어 가지고 왔다.

솔직히 이제 와 떠올려보면 음악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까랑까랑한 전자 소리의 조합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우매했고.

피아노를 조금 배우긴 했지만, 그것마저 체르니라서, 코드라곤 기본 메이저 코드밖에 모르는 아이였다.

물론 전위(inversion-자리바꿈)는 개념 자체도 없었고.

어쨌든, 그 일로 미디(midi)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디를 하려면 daw란 작곡프로그램이 필요하단 것도.

“야, 너 집 안가냐.”

“잠만 기다려봐. 이거 거의 다 완성됐어.”

친구 녀석 집에서 마우스만으로 곡 하나를 만들었다.

작은 네모 칸에 커서를 찍으니 해당 음이 흘러나오더라.

그 옆 칸에 다른 음들을 찍으니 멜로디가 되더라.

신기했다. 그리고 재밌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가, 처음 미디를 접한 그 날.

어디 모바일 게임에 나올법한 전자 음악을 완성 시켰다.

핸드폰에 그 곡을 넣어 집 가는 내내 듣고, 다음 날 듣고, 그다음 날도 들었다.

결국, 못 참고 우리 집 컴퓨터에도 깔았지. fl studio.

그때부터였다.

내가 작곡가를 꿈꾸게 된 건.

그 후에 여러 일이 있었다.

첫 작업실을 구하고.

첫 음원을 내고.

첫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첫. 첫. 첫······.

하지만, 서른쯤 돼서.

더 이상 ‘처음’은 없고, 아홉 번째, 열 번째.

불안감만 커지고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을 무렵.

“솔직히 난 너 이거 시작한다고 했을 때부터 말리고 싶었다.”

“그게 되겠냐고. 헛 꿈꾸지 말라니까?”

“고생 존나게 해봤자. 그래 봤자, 딴따라잖아. 내가 다 너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다? 나봐라. 회사 생활 좆같지만 그래도 대기업이니까 회사 밖에서 인정받으며 살잖아.”

화가 났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거기서 ‘그런 건가?’라고 자문하는 건 분명 나 자신이었으니까.

얼마 안 가 작곡을 포기했다.

사람들의 말이 날 흔들었고.

부모님의 침묵이 날 바꿨다.

그래서 포기했다.

오랜 꿈이었던 음악을.

‘그래, 정신 차리자.’

다짐과는 달리, 그건 정신을 놓은 것에 더 가까웠다.

피아노 레슨 같은 것도 본업으론 여의치 않더라.

그래서 회사에 이력서를 돌렸다.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음악으로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지? 누가 뭐래도 남자한텐 이게 최고야. 음악은 나중에 여유 되면, 그때 직장인 밴드 같은 거 하면 되지.”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이죽거리던 배불뚝이 중소기업 사장.

“전공이 좀 걸리긴 한데······일단 내일부터 나와봐. 불쌍해서 뽑아주는 거니까, 죽도록 열심히 해.”

그 부름을 받아 기꺼이 노예가 되었고.

퇴근의 ‘근’이 ‘야근 근’자를 쓴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아가며 구르고 굴렀다.

상스러운 욕도 배불리 먹어가며 겨우겨우 퇴근하면 그대로 뻗었고, 눈 뜨면 아침.

그렇게 반복되는 삶에도 수년간 통 익숙해지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과거로 돌아왔다.

자고 일어나니,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선명하고.

다른 상황이라기엔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나는 결국 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10년 전을 기점으로 시간은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고 있다.

이렇듯 모든 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적응한 지 3일째.

나는 또 다른 고민에 빠져야 했다.

내게 생긴 두 번째 변화에 대해.

#

“저···계산···.”

긴 생머리. 새하얀 피부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예쁘다’란 감탄사가 느낌표처럼 떠오르는 카페 알바생.

나는 멍하니 그녀를 보았고.

그녀는 이 상황이 난감한 듯 안절부절못했다.

“아, 예. 예. 여기요.”

그래, 집 앞 카페에 이런 알바생이 있었어···.

작업실로 가기 전 꼭 여길 들렀던 기억이 있다. 예뻐서. 나 같은 애들 많았지.

하지만 내가 희미해진 기억 속의 인물을 추억하느라 계산대 앞에서 카드도 안 주고 멍때린 건 아니다.

그럴만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

소리.

소리가 들린다, 또.

‘그냥 과거로 돌아온 부작용. 혹은 환청 정도로만 여겼는데···.’

학준이 형과 대면했을 때 났던, 그 귓가에 아른거리는 듯한 소리.

옆집 아저씨와 만나 인사했을 때도.

시골에 계신 부모님과 통화했을 때도 일절 안 나던 소리가 다시 들리고 있다.

“수고하세요.”

“네, 또 오세요!”

피아노 소리 같으면서도, 음이 끌어지는 걸 보면 스트링이 떠오른다. 근데 또 악기라기엔 사람 목소리 같기도 해.

오묘하단 말이지?

그런데 소리의 종류만 같을 뿐.

학준이 형이랑 있을 때 들렸던 것과는 멜로디가 전혀 달랐다.

‘아. 끊겼네.’

카페을 나오자마자 멎는 소리.

혹시나, 싶어 다시 카페 안쪽을 보았다.

통유리 너머로 카페 알바생이 다음 주문을 받는 중이었다.

소리는 여전히 안 나고.

‘역시 보는 것만으로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러면······.’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후후 불어가며 잰걸음으로 작업실에 도착했다.

그거 좀 걸었다고 정직하게 배고프네.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상대방의 목소리.

그걸 들으면 멜로디도 들려온다.

그게 멎으면, 멜로디도 끊기는 거고.

지금으로선 이게 가장 유력했다.

‘신기하네.’

특정 사람 앞에 서면 어떤 멜로디가 들리는 능력이라니!

천재들에게 떠오른다던 악상(樂想), 영감(樂想) 같은 게 이런 거려나?

이유도, 연유도 모른다.

물론 이미 과거로 돌아오는 경험도 한 마당에 어떤 걸 이상히 여겨야 할지···그것도 모르겠다.

머리가 고장 난 듯싶다. 모든 게 현실감이 없어.

톡. 톡.

애꿎은 볼펜만 딸깍거리다,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멜로디는 좋던데······.”

둘 다 꽤. 아니, 상당히 좋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작곡 초반에 잡는 스케치 정도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냥 듣기엔 구멍 숭숭 뚫린 느낌이라 미흡하기 그지없다.

흠, 학준이 형의 멜로디는 뭐랄까. 밝게 흘러가나 싶으면서도 살짝 마이너틱하다고 해야 하나.

“코드를 좀 꼰 거 같긴 해.”

멜로디의 길이가 원 체 짧았다.

7, 8초 정도가 무한 반복될 뿐이었으니까.

고작 그걸로는 뭔가를 확장해 나가기가 어려웠다.

반면, 카페 알바생은 확실히 음이 톡톡 튀었다. 재미도 있고, 동시에 묘한 긴장감도 있고.

‘텐션(tension-꾸밈음) 같이 들리는 음들이 있던데.’

한쪽에 치워둔 오선지 공책을 끌어다 두 이름을 적었다.

학준이 형. 카페 알바생.

그 아래에 멜로디를 그린다.

그래 놓고 보니 참······.

“어울리네. 멜로디가.”

역으로 놓고 봐도 그 사람이 떠오를 만큼.

탁. 커피포트가 꺼졌다.

“흣짜.”

삐걱, 하고 앓는 소리를 내는 의자에서 일어나 컵라면을 뜯었다.

저것도 제때 바꿨어야 했는데. 나중에 허리 아프고 고생 좀 했지.

그러면서 분말을 탈탈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며 마스터 키보드를 응시한다.

누렇게 바랜 건반.

그만큼 열심이었다.

전역하고 나선 더욱이 그랬었다.

쪼르륵-.

물을 부으며 잠시 고민했고.

“······.”

이내 결정했다.

발전시켜볼까? 멜로디.

#

공부는 힘들다.

사무도 힘들다.

우리가 지고 살아가야 할 업(業)이라서 업무인가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책상머리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소름 돋는 사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책상 앞에서 완전히 몰입하고 있다.

힘듦? 그게 뭔가요. 엉덩이의 저림조차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즐거운데.

가장 처음 한 일은 피아노 트랙을 만드는 거였다.

달그락, 거리는 소프트 건반을 눌러가며 멜로디를 입력했다.

거기에 내가 생각하는 템포를 입력하고 들어보니, 역시 듬성듬성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간단하지 뭐.’

주제(主題)가 정해졌다. 그러니 얼개를 짜 맞추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음악을 15년 가까이 했던 나에겐.

사이사이에 어울리는 음들을 넣어주고.

필요에 따라 멜로디를 재조합하기도 하며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찾는다.

그러면 사비(chorus)는 완성.

‘이게 지금 B키니까······.’

옛날에 어떤 소설가가 결말부터 쓰고, 전-승-기를 맞춰나간다는 얘길 들은 것 같은데, 약간 그런 느낌이다.

사비를 만들고, 브릿지를 만들고, 벌스를 만든다.

그에 맞는 코드를 나열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다.

보다 듣기 편하게.

그러면서도 의표를 찌르는 센스가 보이도록.

“흐으아.”

얼마나 흘렀을까?

정말 오랜만에 몸을 뒤로 젖혔다. 그리고 흐뭇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아직 간단한 피아노 반주에 멜로디를 입힌 게 전부였지만 만족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여기에 리듬 악기와 각종 화성 악기들이 어우러지면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지.

기대감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느낌 얼마 만이냐, 진짜.’

단순히 (-라곤 볼 수 없겠지만) 과거로 돌아왔을 뿐인데.

꼭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은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보다.

몸이 가뿐해진 건, 그냥 내가 10년 젊어져서가 아닐지도.

‘그럼, 다시···.’

나는 컵라면과 같이 먹다 남은, 김빠진 콜라를 한입에 털어 넣고 다시 집중했다.

이미 한참 늦은 새벽.

나는 날이 밝아서야 대강의 작업을 마쳤고, 작업실을 나서며 학준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 아침. 자다 깬듯한 목소리에 대고 나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형. 나 곡 작업 좀 도와줄 수 있어?”

< 002. 발전하는 멜로디 > 끝

ⓒ 나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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