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1. 나 혼자 듣는 멜로디 >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재능은 어느 정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천재라 부를 수준은 아니었다.
천재란 영감(靈感), 악상(樂想) 같은 걸 받아 무언가를 창조해내지 않나.
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그래서 그들을 동경하며 부러워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들의 기분을 이해했다.
#
지이잉-.
진동에 무거워진 두 눈을 반개했다.
밝아지는 시야 사이로 보이는 건 좁은 방이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원룸은 아닌.
지이이잉-.
우선, 전화부터 받자.
“여보세요?”
-어, 기로야.
“어······.”
누구지? 목소린 익숙한데···
다시 핸드폰을 볼에서 떼어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어, 어. 학준이 형?”
-그래, 나다. 지금 너 작업실 앞인데, 어떻게. 작업실로 내려가? 아니면 치킨집으로 가 있을까?
“작업실? 치킨집?”
-그래, 임마. 왜 이리 어벙해? 너 자다 깼지? 목소리 상태 보니 아주 푹 잤는데?
“아, 자긴 잤는데······.”
자긴 잤지. 퇴근하고 내 원룸에서.
근데, 여기가 어딜 봐서 원룸인가.
얼떨떨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방음 역할을 하는 베이지색 아트보드들이 촘촘히 붙어 있다.
바닥엔 두툼한 패브릭 재질의 천이 깔려있었고 긴 책상 위엔 영롱하게 빛나는 노트북과 61 건반 마스터 키보드가······.
나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내뱉었다.
“뭔데, 대체.”
-뭐가? 오늘 나 퇴근하고 보기로 했잖아. 그새 까먹었냐?
“······.”
그런 약속을 한 기억이 없는데?
아니 그전에, 내가 왜 여기 있는 거냐고. 애저녁에 정리하고 나왔던 작업실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상황 파악이 필요해. 일단 이 전화부터 끊고.
“아. 이, 일단 나 잠바만 입고 나갈게. 먼저 주문하고 있어.”
-뭐 시킬 건데?
“형 어차피 무조건 후라이드잖아.”
-흐흐, 넌 날 너무 잘 알아.
뚝. 전화가 끊겼다.
자, 어디까지 했더라······그래, 마스터 키보드. 노베이션(novation)사에서 나온 거다. 무려 10년 전에 내가 쓰던.
그 위 모니터엔 로직(daw-작곡프로그램)이 켜져 있고, 여러 트랙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번엔 고개를 살짝 돌려 본다.
겹겹이 쌓여 있는 컵라면.
얼음이 녹아 보리차 색이 된 아메리카노.
지하의 숱한 먼지와 고군분투하며 맹렬히 돌아가고 있는 공기청정기.
그리고 결코 오늘일 리 없는 날짜를 보란 듯이 펼쳐 보이는 달력.
멍해진다.
뭘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자문해봐도 뭔가를 알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꿈인가···?
-라고.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뺨을 때리거나 꼬집을 필요도 없다.
너무 생생하니까.
몸에 닿는 모든 감각들이 이건 그냥 현실이라고 외쳐대고 있었으니까.
‘근데 이게 현실이면······.’
미치겠네.
그건 내가 10년 전으로 돌아왔단 소리였다.
#
“그래서 내가 집 앞에 데려다주면서 딱, 물었지. 이번 주 주말에 또 볼까요? 그러니까 그분이 뭐라는 줄 아냐?”
“······.”
모른다.
그리고 내가 별안간 왜 10년 전으로 돌아왔는지도.
역시, 모른다.
“좋아요래, 좋아요. 그냥 알겠다 대답한 것도 아니고 좋아요라더라. 이 정도면 완전 그린라이트 아니냐? 흐흐.”
“······.”
나도 좋은 건가? 뭐가 어찌 되었든···과거로 돌아왔으니 좋은 거잖아? 그치?
“야, 야. 듣고 있냐. 형님이 지금 무려 27년 만에 연애를 하냐, 마냐의 기로에 서 있는데 커피잔만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있냐. 남들이 보면 아주 오해하겠어. 니가 나 좋아하는 줄 알고.”
“아···잠이 좀 덜 깨서.”
고갤 들어 학준이 형을 봤다.
네이비색 정장에 호리호리한 체형.
확실히 얼굴은 젊었네, 이때가.
“또 밤새 작업 했겠구만. 넌 군대 갓 전역한 놈이 왜 그러냐? 하루 죙일 음악만 만들지 말고 좀 나와서 여자도 만나고 그래라 좀.”
뭐라는 거야 모쏠 딱지 이제 떼는 사람이. 그리고 지금 연애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내가 지금 10년 전으로 뚝 떨어졌는데···!
“······에휴.”
말해봐야 안 믿겠지.
‘미친놈 꿈꿨냐?’
이런 대답이 돌아올 거다.
뻔해 아주.
치킨 가슴살을 쭉 뜯어 오물거리던 학준이 형이 입꼬릴 올린다.
“한숨은. 부럽냐? 걱정마라. 형님이 형수님 친구들 중에 괜찮은 사람 있는지 물어봐 줄 테니.”
형수님은 얼어 죽을. 저러다 사귀기야 하겠지만, 넉 달이었나?
아무튼 반년도 안 돼서 깨질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시시콜콜한 연애사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레 학준이 형의 직장 얘기로 넘어갔다.
팀장에게 PPT로 욕먹은 이야기.
실용음악과 나왔다는 이야기에 거래처 사장이 ‘노래 한 곡 뽑아봐’라며 거들먹거렸던 이야기.
그런 사회 전선에 바짝 붙은 이야기들을 쭉 지나, 어느새 내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그래서. 곡 작업은 잘돼가? 지난번에 뭐 하나 만든 거 있다며.”
“아···.”
뭘 만들었다는 건지 알 것 같다.
나올 때 보니 10년 전의 내가 밤새 만든 듯한 파일이 열려있더라고.
거의 완성 되어 있는 상태였고 어떤 곡인지도 기억난다.
하지만 차마 완성되었단 말을 할 순 없었다.
‘그거 완전 망하는 곡이잖아.’
미래를 알기에.
데모 만들어서 이 소속사, 저 소속사 다 돌렸는데 다 까이고.
이를 갈며 다시 제대로 녹음해 디지털 싱글로 냈는데 그건 첫 달에 2백 원이 통장에 찍히지.
아, 나중엔 유튜브도 올렸었다. 끝끝내 조회수 1천을 못 넘겼지 아마?
하아. 그때 썼던 녹음, 믹싱, 마스터링 비용을 생각하니 지금도 속이 쓰리다.
전역한 지 한 달 만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을!
“아, 그거? 그거 막상 작업해보니 곡이 생각보다 별로더라고.”
적당히 얼버무려 일단 넘겼다.
학준이 형은 이해한다는 듯 고갤 끄덕인다.
“그런 경우 있지. 그래서 그렇게 정신 나가 있었구만?”
아니지만.
시간여행을 했다는 더 대단하고 쇼킹한 것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그런걸로.
그나저나 아까부터 진짜 이상하다. 뭔 이런 노래가 다 있지?
나는 카운터 쪽으로 고갤 돌렸다.
“뭐 더 시키게? 더 시켜. 형 월급 엄청 적으니까.”
뭔 말이 저래?
“아니, 여기 노래 되게 특이한 걸 틀어놨길래···.”
무슨 멜로디 하나가 끝도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가끔 끊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상태가 안 좋나?
막 거슬리거나 그런 건 아닌데, 특이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응?”
내 말을 들은 학준이 형의 얼굴엔 물음표가 떠올라 있었다.
저건 마치, ‘대체 무슨 노래?’라는 표정.
나는 조금 당황하며 이거 안 들리냐 확인했고, 형은 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갤 저었다.
“뭔 노래. 전혀 안 들리는구만.”
“?”
여전히 멜로디 하나가 내 귓가를 맴돌고 있다.
근데 이게 안 들린다고?
뭐지?
< 001. 나 혼자 듣는 멜로디 > 끝
ⓒ 나일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