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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215화 (215/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215 - 역사

최지몽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장교 하나가 달려와서 말했다.

“마마,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알았다.”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마 야율이호의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나를 부르는 거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왕무의 처소로 달려갔다.

“이제는 슬슬 야율이호에게 군사를 보내줘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군사를 보내주면 야율이호가 요동까지 우리에게 할양하겠대. 거기에 야율이호가 태후 술률평도 석방해달라 청하고, 포로로 잡힌 거란군사들도 보내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 ”

과연 나를 본 왕무가 그리 운을 띄웠다.

‘흐흐흐. 내 예측대로 왕무가 움직이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뭐 사로잡힌 거란 포로 1만 명 중 한 5천 명 정도는 석방시켜야지. 지금 야율이호의 세력이 워낙 작으니. 나머지 5천은 야율이호가 하는 걸 봐서 풀어주고. 다만 술률평은 지금 풀어주면 안 돼. 우리 고려가 한동안 끼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귀국시켜야지. 태후 술률평이 지금 거란 황실의 최고 어른이 됐어. 거란 내에서 술률평을 끼고 있는 사람이 정통성 확보에 유리하지. 우리가 술률평을 끼고 있으면 야율이호 뿐만 아니라 야율올욕도 조종할 수 있어.”

애초에 내가 어떻게든 거란 태후를 사로잡고 막판에 거란 군사들에게 항복을 권했던 이유가 이거였다.

‘물론 이런 식으로 내전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 거란황제 야율덕광이 언제 죽을지 알고 있어서 어느 정도 혼란이 있을 거라 예상하고 포로를 많이 잡아두긴 했는데. 일이 이리 흘러가네. 어쨌든 한동안은 적극적으로 야율이호를 도와야지.’

거란의 내전이 길어져야 고려가 지금 새로 얻은 발해령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중원에 들어갔던 야율올욕이 거느리는 군사가 5만에 이르는데 반해 상경 임황부에 있는 야율이호의 군사는 1만도 안 됐다.

그냥 실력대로 싸우면 야율이호가 순식간에 패했다. 그러니 고려에서 우선은 야율이호를 밀어줘야 했다.

“진나라는 어찌 나올까?”

왕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왕규가 진나라를 둘러보고 왔는데 한동안 뭘 할 여력이 없을 거래. 야율덕광 손에 하마터면 나라가 망할 뻔했으니. 그야말로 진나라의 수도인 개봉이 함락당하기 직전에 부여진에서 우리가 이긴 거야. 거란군사들이 퇴각하면서도 약탈을 심하게 해서 진나라가 입은 피해가 커.”

나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정말 이번에 고려가 거둔 승리는 아슬아슬했다. 부여진에서의 싸움을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가슴이 떨렸다.

“진나라가 그래도 대단하긴 대단해. 8만에 이르는 거란 대군을 상대로 그리 시간을 끌다니.”

직접 대군을 이끌고 거란 군사들을 상대해 본 왕무도 그런 평가를 내렸다.

“그 강력한 거란을 우리가 격파했어. 그 덕에 사람들도 말을 잘 듣고.”

확실히 거란을 야전에서 격파한 덕에 고려가 얻은 이익은 컸다. 구 발해령의 장군과 귀족들은 모두 고려 조정에 귀부했다. 최소 구 발해령 내에서는 우리에게 거역하는 세력이 없었다.

“그래. 나는, 나는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가.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일리천의 구름이 보고 싶다고 하셨어. 정말 아버님 인생 최고의 순간을 상징하는 구름이니. 연우야. 나도 죽는 순간까지 하늘에 떠오른 고려의 이름을 잊지 못할 거야. 그걸 다시 볼 수 없으니 안타깝긴 해.”

왕무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침 나도 기구를 띄울 때 태조께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떠올렸는데. 그런데 걱정마. 무야. 기구는 얼마든지 다시 띄울 수 있어. 그 기구가 아직도 있는데 뭐. 오늘이라도 다시 띄울까?”

나는 당당하게 그리 말했다. 그런데 왕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건 알아. 하지만 그래도……모르겠다.”

그런 왕무의 얼굴을 보고 나는 시무룩해졌다.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네.’

나와 왕무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갑자기 왕건을 떠올리니 가슴이 무겁긴 하네. 왕건이 살아 있었으면 발해가 해방된 것을 보고 기뻐했을 텐데. 몇 년 차이로 이걸 못 보다니. 영토를 크게 넓혀서 여러 사람들에게 분봉도 해줄 수 있는 상황이 됐어. 충주원이나 황주원도 분봉을 미끼로 우리 말을 잘 듣게 만들어야지. 어쨌든 그 사람들도 공이 크긴 크니.’

분봉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내 뇌리에 갑자기 대광현이 떠올랐다.

“발해군왕 대광현의 반응을 어때? 발해군왕 자리를 주긴 했는데 서운해하지 않을까?”

나는 왕무에게 그것을 물었다.

대광현은 공도 크고 명분상 큰 자리를 줄 수밖에 없었다. 다만 구 발해령 전체를 영지로 내린 것이 아니라 상경 용천부 주위의 땅만 떼주었다.

‘거기다가 열만화도 정안군왕으로 봉해 버렸으니. 군사들을 이끌고 달려온 열만화의 공이 커서 자리를 안 줄 수는 없었어. 다만 대광현은 자기를 견제하기 위해 열만화도 군왕으로 봉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아니 사실은 그게 맞아.’

지금은 고려가 구 발해령을 얻었다고 해도 직할 통치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대광현, 열만화 같은 사람들에게 작위를 내리고 땅을 떼주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대광현, 열만화도 고려 왕실의 제후로 편입시켜야 했다. 그 사전 작업으로 사이가 나쁜 대광현과 열만화를 나란히 군왕으로 봉해 서로를 견제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나와 왕무는 그 두 사람을 중재하면서 차근차근 발해령을 명실상부한 고려 땅으로 만들어 가는 거고.’

내가 그런 계산을 하고 있을 때 왕무가 입을 열었다.

“대광현이나 발해 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어. 고맙다고 하며 군왕 자리를 받아들였을 뿐이야. 약간 미안하기는 하네.”

왕무도 대광현 문제가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내가 한번 가서 대광현을 만나 볼게. 혹여 우리에게 불만이라도 품고 있으면 잘 달래야지.”

내가 말하자 왕무는 펄쩍 뛰었다.

“왜 네가 만나? 차라리 내가 만날게!”

왕무는 아직도 대광현을 견제하는 것 같았다.

‘이러니 내가 직접 가서 대광현을 보고 달래놔야지.’

나는 차근차근 떼를 쓰는 왕무를 설득해 나갔다.

* * *

겨우 왕무를 진정시킨 나는 발해군왕 대광현을 불렀다. 나와 왕무는 고려 대군과 함께 아직 옛 발해의 수도 상경 용천부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래서 용천부 인근을 영지로 받은 대광현을 만나기도 쉬웠다.

“왕후 마마를 뵙습니다.”

대광현이 달려와 나에게 정중히 예를 올렸다.

“음 건강은 어떻습니까?”

나는 그런 의미 없는 인사를 먼저 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선뜻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잡담을 이어나갔다. 내가 오늘 대광현에게 할 말은 대단히 민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눈치 빠른 대광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왕후 마마께서는 제가 혹여 분봉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을까봐 근심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핵심을 찌른 대광현의 말에 나는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대광현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기실 고려로 망명할 때 저는 거란을 격파하는 일이 가능할 거라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폐하와 왕후 마마의 도움으로 동포들을 구해냈으니. 저와 발해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나는 다만 그것이 대광현의 진심인지 아니면 나를 안심시키려는 계책인지 헷갈렸다. 그래서 말끝을 흐리는데 대광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고왕께서도 옛 고려를 회복시키겠다는 명분으로 당군을 격멸하고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런 다음 고왕께서 스스로 제위에 오르시고 옛 고려의 왕족들인 고씨들을 예우하셨습니다. 그게 당연한 세상의 순리입니다. 우리 발해가 무너진 지 20여 년이 흘렀으니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에 대한 원망은 없습니다. 다만 허탈할 뿐입니다.”

대광현이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고사까지 거론하자 나는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대광현이 설마 대조영의 고사를 이용해 나를 속이려 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대광현의 말이 맞아. 그게 순리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하께서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다만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광현을 보니 나는 더 미안해졌다.

“그럼 폐하께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대광현은 정중히 예를 갖추며 내 앞에서 물러났다. 나는 멍하니 그런 대광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 *

대광현과 열만화를 필두로 옛 발해 출신 귀족들과 고려의 장수들에 대한 분봉을 마친 나와 왕무는 철군하기로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군사들도 많고 나와 왕무도 솔직히 지쳤다. 거기에 고려 땅에 돌아가 처리해야 할 일도 산더미처럼 쌓였다.

‘고려에 돌아가면 우선 수도를 옮겨야 해. 옛 발해령까지 관리하려면 서경을 새 수도로 삼아야 하니. 이것만 해도 진짜 엄청난 일이고. 새로 얻은 땅과 원래 고려 땅을 아우르는 행정체제를 만들어야 하니. 휴우. 그래도 현이를 다시 볼 수 있으니 좋다. 몇 달간 현이를 못 봤으니. 그나마 거란과의 전쟁이 길게 가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나는 왕무 곁에서 말을 몰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 이 일들을 다 처리하려면 몇십 년이 걸릴지도 몰라. 이걸 근데 안 할 수도 없고. 남은 평생동안 실업자가 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그러고 보니 현대에서 취업도 못하고 빌빌거리던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네. 일이 있으면 좋은 거지 뭐. 그리고 무도 나와 함께 할 건데.’

한숨을 쉬던 나는 내 곁에서 말을 모는 왕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렇게 웃는 나를 보고 왕무 역시 웃으면서 말했다.

“연우야.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뭔데?”

“결국 그 지동의는 가짜였잖아. 그런데 너는 백두산이 폭발할 것을 어떻게 안 거야? 거란과의 결전이 벌어지기 전에는 연우 네가 나한테 그에 대해 얘기를 해줄 것 같았는데 경황이 없어서 그냥 지나갔어. 이제는 이야기를 해줄 거야?”

왕무가 나를 보며 그리 말했다.

“어…… 그건.”

나는 왕무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얼굴을 붉혔다.

‘그 당시에는 거란과의 싸움에서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왕무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싶었어. 그런데 지금은…….’

거란을 격파하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하자 나는 또 입을 열기가 망설여졌다. 내가 어물어물거리고 있는데 왕무가 웃으면서 말했다.

“연우 네가 말해주고 싶을 때 말해주면 돼. 기다릴게. 처음에 결혼하고 나서도 기다렸는데 뭘.”

왕무의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따지고 보니 나는 결혼하고 나서도 7년 동안이나 왕무와 거리를 두고 그런 생활을 했어. 내가 왜 그랬는지.’

그때 당시에는 그게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너무 미안했다.

‘마후라 대사가 주머니를 줬을 때 그냥 바로 열어봤어야 했는데 괜히 뜸을 들여서. 어쨌든 이번에는 너무 시간을 끌면 안 돼. 모든 걸 털어놔야 하는데. 에잇. 서경으로 천도하는 일을 마무리하면 그때 말해야지. 좀 상황이 안정이 되면.’

그런데 그 순간 왕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연우 네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도 나는 괜찮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랐다.

‘왕무가 어떻게 알았지? 이거 참. 이건 아무리 봐도 뭔가 눈치를 챈 건데.’

그 순간 말 위에서 왕무가 손을 뻗어 내 손을 꽉 쥐었다. 왕무가 손을 잡아주니 나는 또 마음이 가라앉았다.

‘에라 모르겠다. 왕무가 괜찮다니 괜찮겠지. 근데 내 비밀을 아는 것은 왕건밖에 없는데. 왕건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니 뒤처리를 제대로 안 하고 간 거구나. 그래서 왕무가 안 거야! 왕건의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마음속으로 그리 한탄하면서도 나는 왕무의 손을 꽉 쥐고 계속 말을 몰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고창 전투 때처럼 왕무가 내 손을 뿌리치는 일은 없겠지. 그래. 그때가 나에게는 일리천의 구름 같은 때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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